대산항 컨테이너

대산항 컨테이너

이봉하선생기념비

이봉하선생기념비

 

 

         


13일 정종환 장관 만나 약속 받아

한중간 국제객화선 정기항로 개설 및 사업비 지원 건의도 함께

 


대산항의 국가관리항만 유지가 최종 확정됐다.

 


13일 국토해양부를 방문한 유상곤 서산시장이 정종환 국토해양부장관과 신평식 물류항만실장 등을 만나 이와 같은 내용을 거듭 확인 대산항의 국가관리항만 존치 약속을 받아냈다는 것.

 


이는 지난해 7월 행정안전부가 부산, 인천, 울산, 광양, 군산, 평택 당진 등 6곳의 주요국가무역항을 제외한 나머지 무역항과 연안항을 지자체에 위임?이양한다는 방침 발표 이후 1년여에 걸친 끈질긴 노력의 결과이다.

 


시는 그동안 시의회와 함께 행정안전부와 국토해양부, 기획재정부, 충남도 등에 대산항의 국가항만 존치의 당위성을 지속적이고 다각적인 방법으로 피력해왔다.

 


충청권 유일 국가부두 대산항의 운영을 통한 국가균형발전과 울산, 여수와 함께 우리나라 3대 기간사업 석유화학단지라는 측면, 대산항을 배후지로 한 황해경제자유구역과 미래혁신산업단지, 테크노밸리 등 굵직굵직한 사업의 추진 등을 연관, 대산항이 국가 경제발전의 중추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만큼 국가관리항만으로서 마땅히 체계적 지속적 관리 육성이 필요함을 역설해왔다.

 


대산항은 지난해 우리나라 28개 무역항 중 물동량 6위, 위험화물처리량 3위로 경기침체와 물류대란에도 불구 전국에서 유일하게 컨테이너 화물처리량이 증가하는 등 국제무역항으로서 그 비중이 점차 증가 국가차원의 지속적인 관리와 행?재정적 지원이 절실한 만큼 이번 대산항의 국가관리항만 유지는 매우 고무적인 일로 평가된다.

 


이번 대산항 국가관리항만 유지 확정은 그동안 대산항 조기건설 차질에 따른 깊은 우려와 위험화물 취급항만으로서의 불안감 등을 한꺼번에 모두 종식시키고, 지방이양 시 소요되는 관리 운영비를 연간 50억원이상 절감하는 효과를 가져와 환황해권시대 대중국 물류허브항으로의 자리매김을 위한 도약과 지역경제 활성화를 통한 지역발전에 탄력을 받을 것으로 기대된다.

 


대산항은 현재 22선석 규모의 사설부두와 잡화 2만t급 규모의 국가부두 1선석을 운영중이며 컨테이너 정기항로를 주 5항차로 확대 취항하고 있다.

 


시는 대산항의 국제무역항으로서의 이미지 제고와 활성화를 위한 화물유치 인센티브제도 시행과 선사?화주 초청 워크숍 및 청소년 해운?항만교실 운영 등 전략적인 마케팅을 지속적으로 펼쳐 2011년 총 4선석 운영을 목표로 3선석을 추가 건설하는 등 부단한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또 대전-당진 간 고속도로 대산 연장의 당위성과 시대적 요구, 지역 균형발전 등을 중점 부각 중앙부처와 충남도 등 관련기관에 적극 피력하는 한편 시민역량을 총결집하여 고속도로의 대산 연장을 성취 대산항의 접근성 개선은 물론 대산읍 정비사업을 병행추진 동북아 물류허브 대산항의 꿈을 실현시킨다는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

 


한편, 유 시장은 이번 방문에서 한-중(대산-석도)간 국제객화선 정기항로 개설과 2010년 대산항 건설사업비 112억원 국비지원 및 대산항 전용진입도로 개설 용역비 20억원에 대한 지원도 함께 건의 긍정적인 답변을 받아낸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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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유공자 素雲 이봉하 선생 기념비 세워져

 


독립유공자 소운 이봉하 선생의 공헌을 기리는 기념비가 64주년 광복절을 하루 앞둔 14일 서산시 부석면 취평리에 세워졌다.

 


유상곤 시장과 이철수 의장을 비롯 마을주민과 기관 사회단체장 등 2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차분하고 엄숙한 분위기에서 치러진 이날 행사에는 동문동에 거주하는 이 선생의 맏딸 이간난(73) 씨를 포함 미국으로 이민 간 7남매가 모두 고향을 방문, 이 열사의 남다른 자식사랑을 엿보게 했다.

 


이봉하 선생은 1894년 경기도 이천 출생으로 일제식민지 하인 1919년 3 1만세운동을 기점으로 전국 각지에서 독립만세운동이 벌어지자 허후득 선생과 함께 이에 동참 마을주민들을 결집 만세운동을 주도하다 일경에 체포되어 갖은 고초를 겪으며 6개월간 공주교도소에서 복역했다.

 


석방 후 선생은 부석면 취평리에 자리를 잡고 가정을 꾸려 살아가다 1971년 향년 78세를 일기로 생을 마쳤다. 강직하고 과묵한 성격에 자신의 독립운동 사실을 이웃은 물론 가족에게도 알리지 않아 역사 속으로 사라질 뻔 했으나 허후득 선생 후손 허용 선생의 노력으로 선생의 의기가 세상에 알려지게 되어 지난해 3?1절에 대통령표창을 수상한 바 있다.

 


유 시장은 축사를 통해 “애국지사들의 선구자적 사상은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 이정표가 되고 있다.”며 “이번 제막식을 통해 선생의 거룩하고 숭고한 희생정신을 계승 발전시키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기념비 건립추진위원회 안효종 위원장은 “늦었지만 이제라도 선생의 공헌이 알려지게 된 것은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며 도와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린다.”며 “이런 노력들이 모여 우리 역사를 바로 세우는 소중한 계기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서해안신문 류병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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