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의정 이원익이 종묘사직에 고유문을 다 읽고 나자 왕은 위패 앞에 끓어 정중히 절을 했다. 도열했던 문신, 무신, 유생들도 일제히 국궁하면서 눈시울 적셨다.

이날 왕은 삼남각도에서 급히 징집했던 군사들을 해산시키고 이원익의 추천을 받은 윤방을 불러 어명을 내렸다. “경은 즉시 한양으로 가서 전쟁의 여화를 진압하고 민심을 수습하여 조정의 환도를 돕게하라.”

 

윤방은 한양에 들어가 백성이 적과 통한 문서를 거두어 모두 불사르고 민심 수습에 노력하였다. 환도할 날짜가 결정되어 왕과 종묘사직과 조정은 다 함께 이월 십구일 일찍 공주를 떠나기로  했다. 이로서 이괄은 거병한 지 이십이일 만에 완전히 패하고 난은 평정되었다.


 

#대수장군의 풍토

도원수 장만은 한양에서 왕을 맞이할 준비를 서둘러야 했다. 그는 포고문을 반포하여 민심을 수습하고 우선 도성의 황폐한 길을 닦게 했다. 되도록 성대히 왕의 환도 길을 영접하고 싶었던 것이다. 도성에 있는 문무신은 물론 일반 백성들도 그날은 특히 의관을 정제한 다음 한강변으로 나가 임금을 영접하도록 하였다.

왕의 일행이 공주 행재소를 거두고 한양으로 떠나는 날 아침, 이번 싸움에 큰 공을 세운 전부대장 정충신이 심각한 표정으로 원수부에 나타났다. 그는 건곤일척의 어려운 싸움을 승리로 이끌어 왕으로 하여금 왕통을 유지하게 한 핵심 인물이다. 그런 그가 왜 지금 그토록 심각하고 허탈한 모습으로 도원수 장만의 앞에 나타났는지 그 이유를 아무도 모른다. 장만은 반가이 맞아 자리에 앉기를 권하는데 충신은 “괜찮습니다. 도원수 어른께 여쭐 말씀이 있습니다.” 앉기를 사양하고 굳게 결심한 표정으로 얼굴을 들었다.

“무슨 이야기인지 앉아서 나눕시다. 그동안 병약했던 이 사람이 도원수의 막중한 직책을 그런대로 수행할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정공의 지략과 용맹에 있었던 것인데 우리 사이에 무슨 격의 있는 화제 거리가 있겠소.” 그런데 정충신은 굳어진 표정을 풀지 않고 오늘 안주로 돌아가겠다는 것이다. “안주로?! 왜....?” 장만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주상께서 제게 맡겨 주신 직책은 안주 목사겸 방어사입니다. 서북방에서 군사를 거느린 신하로서 역적을  빨리 목베지 못하고 반군이 한양에 까지 입성하였으며 임금님께서 파천까지 하셨으니 이 나라의 국방을 담당한 신하로서 죄가 적지 않은데 어찌 감히 공이 있는 사람처럼 강가에서 주상의 수레를 맞으오리까? 오히려 임지인 안주에 돌아가 대죄하는 마음으로 조정의 처분을 기다리는 것이 마땅합니다. 또한 서북쪽의 오랑캐들이 호시탐탐 언제 침범할지 모르는 위급한 시기에 서북 방어의 요충인 안주성에장수가 비어 있고 싸움이 휩쓸고 지나간 민심은 황량합니다. 어서 돌아가 민심을 안위시키고 구멍 난 북관의 방비를 수습해서 오랑캐의 침략에 대처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한다. 대수장군의 풍모라 아니 할 수 없다.


그러나 그 말을 듣는 장만의 얼굴은 굳어졌다. “정공의 그 단성은 알고도 남음이 있소. 그러나 하루 이틀이 급할 것은 없지 않소? 그러니 주상의 환도의식이나 성대하게 치러 드리고 한양의 질서를 바로 잡아 놓은 뒤에 우리 함께 다시 서북을 지키러 내려갑시다. 어느 일에 경중이 있을까만 지금은 우선 상감과 조정을 한양으로 옮겨 나라의 체통을 바로 잡아 놓은 것이 우리들의 지상과제가 아니겠소?” 장만은 자상한 성품이었다. 정충신의 손을 잡으면서 간곡하게 말을 했다. 그러나 충신은 고개를 가로 저었다. “말씀은 충분히 이해하겠니다만, 이번 싸움에 공훈이 큰 장수들이 기라성처럼 대감을 받들고 있습니다. 저의 뜻대로  평안도에 가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대관절 정공! 왜 그러시오? 내가 정공에게 섭섭한 일을 저질렀소?“ 장만이 답답하다는 듯 따지는 투로 묻자 정충신은 입을 한자로 굳게 다물고 멍청하니 장만을 바라보았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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