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서영태 장편소설- 무서운 마을

[제2화] 실 종


11월22일 오전8시50분 충남 서산시 동문동<주간충남>편집실에서는 4명의 사람들이 편집회의에 참석해 시계를 노려보고 있다. 취재부장 이정수와 평기자 신미연이 20분 째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기 때문에 편집장 김재진은 잔뜩 화가 났다. 한참동안 시계를 힐끔 거리던 김재진이 한마디 내뱉는다.
「전화 해봤어요?」
「네 벌써 네 번이나 했는데 둘 다 핸드폰이 꺼져 있다고 합니다. 뭔 사고가 났는지 걱 정되긴 한데...」
「아침부터 무슨 재수 없는 소리를 해요! 출근하기 싫으니까 일부러 꺼놓은 거지」
편집장 김재진의 나이는 45세. 충남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첫 발을 지방일간지에 디딘 후 줄곧 신문사 밥을 먹어왔다. 10년 전 기자생활 중에 알게 된 <주간충남>대표의 권유로 편집장 자리를 보장받고 일자리를 옮기게 되었다. 주변에서는 걱정 반 우려 반이었다.
너무 젊은 나이에 편집장을 맡으면 버텨내기 어렵다느니, 그 주간지 재정 상태가 어려워서 아마 일 년도 견디지 못할 거라는 등의 말들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주간충남>대표는 김재진을 스카웃한 지 3년을 버티지 못하고 손을 들어버렸다. 더 이상 적자를 감당하지 못하고 4명의 편집진에게 모든 운영권을 넘긴다며 잠적해 버린 것이다. 넘겨받은 통장에는 마이너스 이천만원, 각종 세금, 인쇄비, 식대들을 모두 합쳐 빚만 9천만 원 가까이 됐다.
그 당시 기자들은 김재진의 입만 바라보고 있었다. 누구도 이 상태로는 운영할 수 없다는 절망감이 짙게 깔려 있었다. 김재진은 책임감이 느껴졌다. 이대로 그만 두기에는 3년간 고생한 시간이 아깝기도 했다. 그러나 그에게 있는 것이라곤 달랑 원룸 보증금 천만 원. 이 정도 가지고 운영에 손댄다는 것은 자살행위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그의 마음 한편에서 끓어오르는 도전정신, 지금이 기회일지도 모른다는 아득한 기대감이 있었다. 결국 김재진은 떨어져 사는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어 당장 필요한 2천만 원을 빌려 운영을 시작하게 된다. 그 후<주간충남>은 비상운영에 들어가 지면을 대폭 줄이고 아낄 수 있는 것은 최대한 아끼며 현재까지 7년을 버텨왔다. 그 과정에서 고통을 참지 못하고 2명의 기자가 딴 길을 찾아갔다. 심지어 식사비가 없어 도시락까지 싸가지고 다니던 기자들이었으니 불만이 없을 리 없었을 게다. 하지만 김재진의 오기와 인내는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서 결실을 맺어 믿을 수 있는 후배 두 명을 편집진에 받아들이게 될 정도로 안정궤도에 들어섰다. 7년간의 싸움이 헛되지 않아 6명의 편집진이 호흡을 맞춰 주간지를 알차게 만들어 내고 있었다.

시간은 9시를 넘어 10분을 가리키고 있다. 그토록 믿고 믿었던 후배들인데 이렇게 시간을 어긴 적이 없는데 김재진은 점점 불길한 예감이 느껴진다. 그는 오랜 침묵을 깨고 말을 내뱉는다.
「집에도 전화해보고 갈만한데 있으면 알아보세요.」
잠시 머뭇거리던 50대의 취재부장 이연준이 말을 이었다.
「생각해 보니까 어제 터졌던 사건 있잖아요. 그 사건 취재 때문에 밤늦게 야근해야 한다고 투덜대던데, 신미연이가 투덜대던 것을 듣긴 들은 것 같은데요.」
「정태섭 회장부부 살인사건 말이요? 내가 그거 신미연한테 취재하라고 보냈었는데... 무 슨 야근할게 있다고 말을 했어요?」
편집장의 물음에 이연준은 안경을 한 번 살짝 들어 보이더니 말을 이었다.
「분명히 어제 퇴근할 때 내가 왜 퇴근 안하냐고 물으니까 취재부장이 야근해야 한다고 했 다는 거예요. 무슨 특종 잡을지도 모른다고 말하면서도 짜증을 내던 것 같은데...」

어제 오전 출근하자마자 제보가 들어왔던 건은 정태섭 회장 부부 살인사건이었다. 이렇게 조그만 군 단위에서는 흔하지 않은 사건이기도 했지만 정태섭 회장이 누군가? 국회의원만 2선이나 역임했으며 지금은 지역에서 가장 큰 건설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사람이며 지역 사람치고 그의 얼굴을 모를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세를 타고 있는 인물이다. 신문사에서는 대단한 톱뉴스를 만난 것이다.
신미연에게 현장보고를 받은 김재진은 사안의 중대성을 감안해서 즉시 취재부장 이정수에게 신미연과 함께 팀을 꾸려 속보를 올리라고 지시했었다. 이럴 때일수록 가장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대학 후배들인 것이다.

11월22일 오전9시10분 이정수는 쪼개질 듯 멍멍한 통증을 참으며 가까스로 눈을 떴다. 평생 이렇게 눈을 뜨는 게 어려웠던 적은 없다. 시야에 들어온 것은 좀 전에 두 사람이 들어왔던 바로 그 곳이 틀림없다. 손을 움직이라는 신호가 팔을 통해 내려갔지만 전혀 꼼짝할 수 없다. 등 뒤로 각이 진 기둥이 느껴지며 팔이 움직이지 못하는 것을 볼 때 두 손이 기둥에 묶여진 것 같다. 약 6미터 떨어진 기둥에도 신미연이 묶여진 채 이쪽을 향해 뭐라고 소리를 지르는 것 같다. 모기소리처럼 작은 소음이 점점 커져 이제는 웬만큼 알아들을 수 있는 소리가 되었다.
「선배, 정신 차려 봐요! 여기 좀 봐요! 내말이 들려요?」
이정수는 뒤통수를 정통으로 맞은 것 같다. 이제는 좀 상황판단이 되어가고 있다. 지난 밤에 잠입할 때 푸른색 점퍼를 입었었는데 어느새 붉은 피가 주르륵 흘러내려 검붉은 자국을 남겼다. 가을이 됐다며 일주일 전에 아내가 큰 맘 먹고 『메이커』라며 사준 점퍼인데 아껴두었다가 처음 입은 것이 기억을 스치고 지나간다.
「아내가 사준 옷인데 이거 큰일인데... 도대체 어떻게 되어서 내가 이러고 있는 거지?」
「선배 지금 옷이 문제야? 어떻게 방법 좀 생각해봐!」
아직도 머리 통증 때문에 기분이 묘하고 상황정리가 어려운 이정수에 비해 신미연의 정신은 또렷하다. 어떤 누군가에게 아주 쉽게 제압당해버린 것이다. 아예 반항조차 할 기회가 없었다. 두 사람이 묶여서 꼼짝 못하고 있는 모습을 줄 곧 지켜보던 눈빛이 있었다. 두 사람에게서 8미터쯤 떨어진 곳에 이태리 고급 소파에 다리를 꼬고 응시하고 있는 사람은 약 70대로 보이는 노인 남자, 희끗희끗한 머리카락이 확 드러나는 것으로 보아 노인은 분명한데 눈매가 매섭고 광대뼈가 도드라진 얼굴 생김새에 딱 벌어진 어깨를 가지고 있어서 상당히 강인해 보인다. 노인이 앉은 소파 옆으로 야구방망이가 세워져 있는 것으로 봐서 이정수를 한방에 보내버린 물체가 분명해 보인다.
이정수가 아직도 멍멍한 머리 통증에 상황파악을 못하고 있는 사이 신미연의 얼굴이 노인을 향했다.
「왜 우리를 이런 곳에 묶어놨어요? 우리는 아무 죄 없는 사람들인데 빨리 풀어주세요.」
노인이 갑자기 이빨을 드러내며 히죽거린다. 금이빨 두 개가 하얀 불빛에 반짝거린다. 이어서 고음의 허스키한 목소리가 전달된다.
「죄가 없어? 비밀방을 알아 낸 게 죄라면 죄지. 죄가 아닐 수도 있고, 그런데 아가씨는 어떻게 이런 델 알아냈을까?」
「저희는 그냥 궁금해서 들어와 봤어요. 그냥 모른 체하고 갈게요. 제발 풀어주세요.」
신미연은 필사적으로 매달린다. 그저 풀려날 수만 있다면 다시는 이렇게 무모한 짓을 하지 않겠다고 마음속으로 다짐한다. 노인은 다시 금이빨을 드러내며 희죽 거리며 무언가 물체를 들어 보인다.
「니들 지갑이지? 이거, 명함이 있더군. <주간충남>취재부장에다 기자에다...기자양반 들이셨구만. 내가 가장 싫어하는 종류지.」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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