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서영태 장편소설- 무서운 마을

[제4화] 환 각

11월22일 저녁10시
정태섭 부부 살인사건이 발생한 저택은 멀리서 희미한 가로등 불빛에 윤곽을 드러낸 채 전혀 불빛이 새어나오지 않고 있다. 겉으로 봐서는 개미 한 마리 살 것 같지 않는 음산한 고요만 흐르고 있다. 이 저택의 거실 비밀 문으로 통하는 지하 공간에는 정반대의 밝은 불빛이 찬란하기까지 하다. 실종됐던 두 사람은 아직도 기둥에 묶여 머릿속에서만 여러 생각들이 교차하고 있다.
이 100여 평이나 되는 비밀 공간 안에 다시 비밀스런 문 속으로 걸어 들어간 노인이 뭔가를 만지는 소리가 들려온다. 날카로운 금속성소리, 유리병 같은 것들이 부딪히는 소리가 들릴 때면 이정수의 귀가 민감하게 반응한다. 이제 이정수는 완전하게 정신이 돌아왔다. 한참 전부터 신미연과 이야기를 주고받았지만 그녀도 영문을 모르고 붙잡혔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 둘은 자신들이 얼마나 오랜 시간을 붙잡혀 있는 줄도 모른다. 그저 많은 시간이 흘렀을 거라고 추측할 뿐이다. 이미 몇 시간쯤 전에는 생리현상을 참지 못한 두 사람이 기둥에 묶인 채 그 자리에서 소변을 볼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든 살아야 한다는 생각과 무서움 때문에 창피하다는 생각도 무뎌졌다. 그저 상황에 승복하고 자포자기할 수밖에 없었다.

잠시 후 비밀의 방문을 열고 노인이 신미연에게 먼저 걸음을 옮긴다. 그가 손에 든 물체는 날카로운 바늘이 먼저 보이는 주사기가 분명하다. 신미연의 얼굴 가까이까지 다가간 노인은 뭔가 냄새를 맡았는지 코를 킁킁거린다.
「음 - 예쁜 아가씨가 칠칠치 못하게 바지에다 오줌을 쌌군.
내가 늦게 들어오는 바람에 아가씨 바지를 갈아입히지도 못했네.
나중에 내 말 잘 듣게 되면 속옷까지 갈아입혀 줄 테니까 아무걱정 말어.」
특이한 노인의 가래 끓는 목소리가 섬뜩하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노인의 말투에서 커다란 공포가 뼈 속까지 전달되어 신미연의 몸이 사르르 떨리기 시작한다. 노인이 손에 들고 있던 작은 주사기를 그녀의 팔에 꽂으려고 한다. 그녀가 필사적으로 몸을 빼내려고 하지만 단단히 묶인 몸이 움직이려하지 않는다. 순간적으로 이정수가 외친다.
「그만두란 말이야. 미연이 몸에 손대지마! 당신 이러고도 무사할 것 같아?」
멈칫하던 노인이 고개만 돌려 이정수를 노려본다.
「야 이놈아! 네 처지나 걱정해라. 조금 있다가 너도 꽂아 줄 테니까 조금만 참고 있어!」
마침내 노인은 저항하지 못하는 신미연의 팔을 걷어 제치고 주사바늘을 꽂아 넣었다. 이어서 바르르 몸을 떠는 신미연은 급속도로 정신을 잃어가고 있다. 노인은 이정수에게로 걸음을 옮겨 미리 준비해온 주사기를 꺼낸다. 그의 점퍼와 셔츠를 강제로 끌어 올리려는데 잘 되지 않는 듯 불쾌한 표정을 짓는다.
「협조를 해야 풀어주지. 넌 내말을 듣게 되어있어. 너희들을 구해줄 사람들은 아무도 없다 니까. 오늘 오후에 너희들 신문사 사람들이 이곳에 와서 두 사람을 찾더라구. 그래서 내 가 뭐라고 했을 것 같애? 전혀 본적도 없다고 했지. 그러니까 너희들의 존재는 전혀 알 수 없다구.」
「아니야! 꼭 찾아내고 말거야. 당신은 이 엄청난 일을 숨길 수 없어!」
노인은 이정수의 오른쪽 눈에 그 날카로운 주사바늘을 바짝 들이댄다. 마치 눈동자를 찌를 것처럼 위협적인 행동에 이정수는 순간적으로 긴장한다. 오로지 날카로운 주사바늘을 피하고 싶은 마음을 고개를 기둥으로 돌린다. 노인은 다시 한 번 금이빨을 드러내며 히죽거린다.
「그래. 이렇게 겁을 먹어야 정상이지. 무서워 죽겠지?
정태섭 부부를 죽인 범인이 누군 줄 알어? 바로 나야. 내가 죽였다니까. 너희를 죽이는 것은 일도 아니야. 파리 한 마리 죽이는 것보다 더 쉽지. 그러나 난 너희들에게 은혜를 베풀어 줄 거야. 이 주사 한방만 놓고 풀어 줄 거란 말이지.」
더 이상 저항 할 수 없는 이정수의 팔에 주사바늘이 꽂힌다. 조금 지나서 그는 현실의 세계가 아닌 꿈속을 헤엄치는 것 같은 기분을 느낀다. 점점 몸이 떠오르고 무중력의 상태를 체험하게 된다. 눈에 보이는 사물이 흐릿해졌다가 다시 다른 물체로 변신하기도 하고 우주를 유영하는 듯 자유로워진 몸을 느낀다. 그렇게 한없이 자신만의 세계로 빠져든다.
1시간이 지나고 3시간이 지나서 두 사람은 비밀의 방 침대에 누워 환각의 여행을 계속하고 있다. 마치 마약을 흡입한 사람들처럼 환각 속을 헤매 다니기도 하고 울부짖기도 한다. 그런데 마약 때문에 환각에 빠진 사람보다는 더욱 심해 보인다. 사지를 움직일 수 없는 것이다. 몸을 뒤척이기는 하지만 손발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가 없다. 뇌에서는 명령이 내려가는데 신경을 통해 전달된 명령이 손발에 도착하기 전 소멸돼 버린다. 이정수는 환각에 빠진 상태에서도 뇌리에 스치는 생각이 있다.
「왜 손발을 움직일 수가 없지? 전신마비 상태라는 게 이런 것인가?
이제는 현실세계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도 없어져버리네. 무엇이 현실이고 무엇이 환각인 지 구분도 할 수 없네.」

신미연도 이정수와 똑같이 환각여행을 체험하고 있다. 처음 체험해 보는 무의식의 세계. 마치 꿈속을 여행하는 것 같기도 한데 꿈이라고 단정 짓기에는 이상한 점이 많다. 처음과는 달리 이제는 너무나 생생하다. 너무나도 자유로운 몸. 우주를 여행하는 우주인의 느낌 같기도 하고 죽은 사람의 몸을 벗어난 무게감 없는 영혼 같기도 하다.
「도대체 이런 세계는 무엇일까. 어떻게 이런 체험이 가능할까.」
그렇게 한참을 자신의 무의식속에 갇혀 환각여행을 하던 두 사람의 여행은 서서히 거대한 물체의 중력에 빨려 들어간다. 저 멀리 다가오는 것 같은 검은 점. 그 점은 서서히 커져서 이제는 사람이 들어갈 수 있는 크기가 된다. 그런데 뒤늦게 느껴지는 것은 그 검은 점이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두 사람의 몸이 그 곳으로 빨려 들어간다는 것이다. 그것도 점점 속도가 빨라지고 더욱 강력한 힘에 의해 끌려가고 있다.
이정수는 점점 얼굴이 파랗게 질린다. 절대적인 공포감이 머릿속을 꽉 채운다. 더 이상의 공포라는 것은 맛보지도 못했고 앞으로도 대면할 수 없을 것 같다. 입에서는 울부짖음이 저절로 나온다.
「제발 살려줘요. 다시는 안 그럴게요. 나 좀 구해줘」
두 사람이 똑같이 울부짖는 모습을 지켜보는 노인은 또 한 번 금이빨을 드러내 보이며 미소를 짓는다. 유난히 잔인해 보이는 미소를 지으면서 그들의 울부짖는 소리가 새어나갈 걱정 따위는 전혀 없어 보인다. 사실 이 비밀공간은 완벽하게 방음시설이 된 곳이다. 내부의 소음이 전혀 집 밖으로 새어나갈 수 없도록 철저하게 계산되어 지어졌다. 밝은 형광불빛 역시 전혀 새어나갈 수 없게 설계되었기 때문에 외부에서는 전혀 눈치 챌 수 없는 것이다.
노인이 잔인한 미소를 짓고 있는 사이에도 두 사람은 극도의 공포감을 체험하고 있었다. 그 작은 검은 점이 이제는 태양처럼 커져 두 사람을 집어 삼키려한다. 무한대의 두려움이 그들을 꼼작 못하게 만들고 발끝부터 머리털 끝까지 사악한 검은 색깔로 변모시켜도 그들은 움직일 수가 없다. 깊고도 깊은 사악함의 터널로 떨어지고 또 덜어진다.
한참을 떨어지다가 그들 앞에 멀리서 나타나는 형체가 있다. 꾸물꾸물 갈지자로 움직이는 존재. 그것은 멀리서 봐도 알 수 있는 뱀의 움직임이다. 점점 다가오는 속도가 빨라지는 뱀의 사각형머리. 입속에서 쭉 뻗으며 튀어나오는 갈라진 혀의 움직임. 두 사람의 마음 저 깊숙한 곳에 똬리를 틀고 있던 원초적인 공포가 꿈틀거린다. 감히 저항조차 할 수 없는 섬뜩한 공포에 입안이 바짝 마르고 솜털까지 바짝 선다. 언젠가 영화에서 본 아나콘다가 사람을 통째로 집어 삼키는 장면이 두 사람 앞에 연출되고 있다. 도저히 눈을 뜨고 당할 수 없는 절대 공포에 두 사람은 눈을 감으려 하지만 눈꺼풀을 닫을 수가 없다. 마침내 두 사람 코앞가지 다가선 거대한 사각머리 뱀은 무시무시한 입을 활짝 열어 제친다. 그리고 얼음이 된 그들의 몸을 차례차례 집어삼킨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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