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서영태 장편소설


[제5화] 잠 복

11월23일 오전10시
김재진과 이연준은 달리는 승용차 안에서 정면만 주시하고 있다. 두 기자가 실종된 지 벌써 3일째가 되어서 그들의 가족들까지 나서자 <주간충남>사무실은 야단법석이 됐다. 오늘 아침 출근시간부터 가족들이 몰려와 자초지종을 꼬치꼬치 묻고 푸념을 늘어놓는 바람에 업무가 마비되다시피 했다. 김재진과 이연준은 두 기자의 행방을 알아보고 오겠다며 간신히 빠져 나왔다. 목적지를 딱히 정하지 않고 승용차로 이동하던 두 사람은 가족들의 성화를 피하고 싶은 마음 밖에 없었다. 5분여를 승용차로 달리는 내내 두 사람은 말을 먼저 꺼내지 못한다. 잠시 후 이연준이 먼저 무거운 입을 연다.
「편집장님, 이건 내 생각인데요. 어제 그 밀짚모자 쓴 영감이 좀 수상해 보이던데요. 제가 어제는 정확히 얼굴을 기억하지는 못했는데 저번에 시장실에 갔을 때 말입니다. 그 뭐더 라. 신미연 기자하고 함께 사장님 인터뷰 때문에 들렀는데 말입니다. 우리가 비서실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조금 지나서 시장실 문을 열고 그 영감이 나오지 뭡니까. 잠깐 보긴 봤어도 그 영감이 맞는 것 같아요. 글쎄. 뒤따라 나온 시장님 얼굴이 상당히 굳어 있었는데 문밖까지 나와 극진하게 배웅 하는 걸 보니까 보통 어려운 사이가 아닌 것 같던데요.」
「아니 조경일이나 도와주는 영감이 시장님과 가깝게 지낼 일이 없을 텐데 잘못 본 것 아니 에요?」
「제가 사람 얼굴 기억하는 거는 도사 아닙니까. 눈칫밥 하나로 평생을 살아서 그런지 눈썰 미는 정확해요. 그래서 말인데 제 예감에는 그 영감이 뭔가 숨기는 게 있습니다. 분명히 있어요.」
어느새 두 사람은 정태섭 회장부부 저택으로 향하고 있다. 직감적으로 그곳에 사건의 실마리가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잠시 후 저택에서 100여 미터 떨어진 2차선 도로 옆에 차를 세운다. 가로수들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어 저택 방향에서는 승용차가 잘 보이지 않지만 차 안에서는 어느 정도 동태를 파악할 수 있는 알맞은 위치다. 마침 하늘에서는 가을비가 한 두 방울 떨어지기 시작한다.
차안에서 저택을 주시한 지 한 시간 째 개미 한 마리 얼씬거리지 않는다. 기자들에게 잠복이라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다. 중앙지 사건 담당 기자들에게도 잠복할 일이 그렇게 많지는 않다. 그런데 이렇게 작은 시골도시에서는 큰 사건이 1년에 한 번 터질까 말까해서 흔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젊은 시절을 말단 형사로 잔뼈가 굵은 이연준에게는 흔한 일이었다. 풀리지 않는 사건 때문에 사무실에 들어가면 윗사람에게 시달림을 당할 때 잠복근무를 지원하기 일쑤였다. 용의자가 꼭 찾을 것으로 예상되는 집 앞에서 적어도 삼일, 많을 때는 보름까지도 잠복했다. 그래서 해결한 사건이 20건도 넘었다. 이렇게 이연준은 타고난 경찰이라고 생각했다. 새로 부임한 경찰서장이 사사건건 자신과 부딪히지만 않았어도 경찰공무원으로 쭉 살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평소 가까이 지내던 김 사장이 문제였다. 사행성 오락실을 운영하던 김 사장이 합동단속에 걸렸는데 자신에게 불리한 사정이 되자 그동안 단속정보를 몇 번 흘려주었던 이연준을 걸고넘어진 것이다. 결국 징계를 피할 수 없게 되자 그는 과감하게 사표를 던지고 말았다. 이렇게 잠복을 하고 있자니 형사 시절 숱하게 겪었던 일들이 하나하나 흘러간다. 회상에 잠겨 있던 그는 뭔가 떠오른 듯 입을 연다.
「저기, 요 앞에 조금만 내려가면 버스 정류소가 나오는데요. 거기에 동네슈퍼 주인이 이 동네 사정을 잘 알고 있거든요. 한 번 물어보면 그 노인네에 대해 알 수 있을 텐데요.」

두 사람은 차를 몰아 슈퍼 앞에 도착했다. 말이 슈퍼지 그냥 구멍가게였는데 옛날 허름한 구판장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이젠 제법 내리는 가을비를 맞으며 가게 문을 연다. 구닥다리 TV를 멀뚱히 보고 있던 할머니가 고개만 살짝 돌려 쳐다보며 힘없이 말한다.
「뭘 찾으슈?」
김재진은 가게 안을 두리번거리다 먼지가 살짝 내려앉은 컵라면을 하나 집어 든다.
「할머니, 이 컵라면에 뜨거운 물도 부어주실 수 있어요?」
「그럼, 500원씩은 더 내야 되는겨」
가게 안에는 마침 조그마한 푸른색 탁자와 오래된 의자 두 개가 놓여있다. 아마도 동네사람들이 막걸리 한 잔 하고 가라고 일부러 놓아 둔 것 같다. 마침 점심시간이 다되어가서 뱃속에서는 신호가 오기 시작할 무렵이다.
김재진은 거의 15년 전부터 아침식사를 챙기지 못하고 있다. 대학 졸업 후 평 기자 생활을 하면서 격무에 시달리다보니 못 챙기는 것도 있겠지만 대낮에 취재현장에서 바삐 보내다 늦은 저녁부터 새벽까지 기사를 써대다 보니 늘 잠이 부족했다. 그래서 아침에 일어나면 밥맛이 없어지게 됐고 아예 아침식사를 끊어버린 것이다. 그렇게 하루 두 끼로 버티는데도 건강에는 큰 이상이 없다. 언론에서 아침식사를 거르지 않는 것이 건강에 좋다는 말을 종종 들을 때마다 적어도 그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확신까지 한다. 조금의 불안은 떨치지 못하면서 말이다. 그게 바로 이재진의 인생이었다. 최대한 간단하고 군더더기 없이 사는 것. 간결하게 사는 법은 그의 일상이 되었고 심지어 그가 작성하는 기사까지도 간결한 문체가 두드러진다.
「뜨거운 물 여깄슈.」
서산 사투리를 멋들어지게 입에 담는 할머니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두 사람은 컵라면에 뜨거운 물을 조심조심 붓는다. 시장기가 도는 뱃속에서는 벌써부터 요동을 치고 조금만 기다리면 잘 익은 컵라면의 제 맛을 볼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에 입안에 군침이 돈다.
「그런데 할머니, 정태섭 회장 집에서 큰 사건 난 것 아시죠?」
김재진의 뜬금없는 말에 할머니는 고개만 돌려 다시 한 번 두 사람을 뚫어져라 쳐다본다.
「그건 왜 물어본댜? 경찰에서 왔남?」
「아니오, 그건 아니구요. 제가 알던 사람이라서 좀 궁금해서요. 거기서 정원일 하시는 할아버지는 잘 아세요?」
할머니는 경계의 눈초리를 풀지 않고 다시 한 번 빤히 쳐다본다. 그러더니 다시 고개를 돌려 TV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마지못해 입을 뗀다.
「응―. 최 씨 말이구먼. 그 양반, 정 회장 네 집에서 보면 훤히 보이는 집에서 사는구먼. 그 근처에 한집밖에 없으니께 찾기는 쉬울꺼구먼.」
고개도 돌리지 않고 말을 내뱉는 할머니의 뒤통수에서 눈을 떼지 못하던 김재진은 무슨 생각을 하다가 다시 묻는다.
「그 최 씨 할아버지요. 여기서 산지는 오래됐어요?」
할머니는 계속TV만 보고 있다. 아마도 계속되는 질문에 귀찮은 모양이다.
「최 씨가 여기 온 지 한 10년 되나? 잘 물러! 통 얼굴을 안 비추는 사람을 우덜이 어떻게 알유? 더 이상 물어봐도 난 잘 물러!」
김재진은 더 이상 물어 볼 말도 없다. 신경질적으로 대답하는 가게 할머니를 붙잡고 물어봐야 더 이상의 정보가 나올 것 같지 않다. 시장한 허기를 간단하게 컵라면으로 때우고 나온 두 사람은 다시 차를 몰아 할머니가 말한 최 씨 영감의 집을 찾아냈다.

정 회장 저택에서 아주 잘 내다보이는 곳에 위치한 이 집은 아담하게 자리 잡고 있다. 약 20평정도 규모로 소박하게 보이면서도 전원주택 모양의 외벽에 속이 내다보이는 철조망 담장으로 둘려있다. 차에서 내린 두 사람은 성큼성큼 정문으로 다가가 초인종을 누른다. 잠시 후 다시 한 번 눌렀지만 좀처럼 인기척이 없다. 세 번째 초인종을 누르던 이연준이 입을 연다.
「도대체 어디에 간 거야? 가족도 없이 혼자 사나?」
하늘에서는 아직도 가을비가 촉촉하게 내리고 있다. 우산도 챙기지 못하고 나온 처지에 약간 차갑게 느껴지는 빗줄기를 맞고 몇 분을 서 있다 보니 몸에서 한기가 돋는다. 두 사람은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다시 차에 올라 조금 전에 잠복했던 정 회장 저택이 잘 내다보이는 장소에서 다시 시간을 죽이기 시작했다.
잠복에 익숙하지 못한 김재진은 3시간째에 접어들자 한계를 느끼기 시작한다. 버티기라면 자신 있었던 그였지만 이렇게 시간을 죽이는 일에는 경험이 거의 없다. 그렇다고 신문사에 들어가 봐야 실종된 기자들 가족에게 시달릴게 뻔하다. 예전에는 형사들이 잠복근무를 한다고 하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용의자가 꼭 온다는 보장도 없는데 죽치고 기다리는 것은 비효율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자신이 잠복하는 입장이 되니 그 마음을 이해할 것 같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잠복에 나선 두 사람은 오랫동안 침묵한 채 저택을 바라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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