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서영태 장편소설- 무서운 마을



11월26일 오전10시20분

서산중앙병원 302호 특실에 입원한 신미연의 몸은 아직도 경직이 풀리지 않은 채 천장만 바라보고 있다. 조금 전까지 가족의 보살핌을 받다가 김재진과 이연준의 방문에 분위기가 어색하게 바뀌었다. 김재진이 손에 들고 온 큼지막한 과일바구니를 내려놓고 신미연을 지키고 있던 어머니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건넨다.
「신 기자가 말문을 열었습니까?」
긴 한숨을 내뱉은 신미연의 엄마는 힘없이 대꾸한다.
「아직 한마디도 안 해요. 의사선생님은 정신적인 쇼크로 인한 일시적인 언어장애일 수도 있다고 하는데 도대체 뭔 일을 당했는지 알아야 속이라도 시원하지...」
5층 특실에 입원한 이정수도 한마디 말을 못하고 있다. 말을 알아듣는 것 같은데 질문을 해도 대답을 못한다. 신미연은 어젯밤에 살짝 잠들었을 때 악몽을 꾸고 있었다고 한다.
「살려주세요. 다시는 안 그럴게요. 하란대로 다 할게요. 제발 살려주세요.」
곁에서 간호하던 신미연 엄마는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 식은땀을 흘리며 비명을 지르는 딸의 모습이 안타깝고 속상해서 쉼 없이 기도를 올렸다.
「하나님, 내 딸을 도와주세요. 사탄의 권력에서 구해주세요.」

신미연의 엄마는 독실한 기독교인이다. 처녀 때부터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는데 점점 하나님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믿게 되었다고 한다. 여름이면 어김없이 열리는 청년부 수련회에 2박3일 일정으로 동행했을 때의 일이다.
지리산 기도원에서 진행된 수련회는 어느 때보다 뜨거웠다. 기도하고 찬송 부르고 성경을 읽는 중에 점점 마음이 뜨거워지는 걸 알게 되었다. 주체할 수 없는 뜨거움은 자연스럽게 그녀를 기도의 문으로 이끌었다. 시간을 잊은 기도가 계속되는 가운데 어느 한 순간 예수님의 모습이 보였다고 한다. 안개가 피어오르는 듯 새하얀 공간을 뚫고 걸어오시는 예수님은 그녀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항상 너와 함께 있을 것이다」
그녀의 감격적인 체험은 오늘날까지 잊을 수 없다고 한다. 항상 생생한 장면이 가슴 깊이 박혀있는 것이다. 그날 이후 독실한 크리스천이 된 신미연 엄마는 같은 교회 청년부에 다니던 남자와 사랑에 빠져 결혼하게 된다. 그 후 신미연을 낳아 기독교적인 신앙생활을 꾸준히 유지하며 오늘까지 이른 것이다.
신미연도 엄마의 신앙을 그대로 물려받아 교회에서 청년부 회장을 맡으며 주일학교 교사로 일 해왔다.

두 사람이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많은 사람들이 병문안을 갔다. 3일간 말을 못하던 두 사람은 사람들의 질문에 조심스럽고 짧게 대꾸해 줄 수 있는 단계까지 발전했다. 그러나 실종됐던 3일간 어디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묻는 질문에 대해서는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 사람들이 더 이상 물을 수 없을 정도로 두 사람의 얼굴이 고통 속으로 빠져들었다. 그 때 사건을 떠올리면 다시 무서운 공포 속으로 떨어져버리는 것 같았다. 그 후 아무도 실종사건에 대해 물을 수 없었다. 당사자들이 고통스러워하는데 굳이 해답을 얻어 낼 필요는 없었다. 일단 두 사람이 아무 탈 없이 돌아왔다는 점에 안도하는 표정들이었다.

두 사람이 입원한 지 일주일이 지난날 아침 <주간충남>사무실에는 원래의 멤버였던 6명 모두 정확히 출근해서 편집회의를 진행하고 있다. 이정수와 신미연이 일주일 동안의 입원생활을 마치고 출근한 것이다. 그런데 분위기가 상당히 냉랭하다. 뭔가 빠진 느낌이다. 평소에 그렇게도 깔깔거리고 웃음을 참지 못하던 신미연의 얼굴이 굳어 있다는 점이 다르다. 회의시간에 돌출발언을 가끔씩 해서 편집장에게 야단을 맞던 이정수의 표정도 신미연과 똑같다. 마치 머릿속이 텅 빈 사람이 되어버린 듯하다. 이런 냉랭한 분위기를 바꿔보려는지 사무국장 진현미가 말을 꺼낸다.
「우리 이정수 부장과 신미연 기자가 퇴원해서 첫 출근을 했습니다. 다 같이 격려하는 마음 으로 박수를 보냅시다.」
네 사람이 동시에 박수를 치고 있지만 이정수와 신미연은 여전히 굳은 표정이다. 마지못해 이정수가 답례를 한다.
「감사합니다.」

오늘 편집회의는 어색하게 끝났다. 이정수와 신미연이 실종된 후 정태섭 회장 부부 살인사건은 본부장 이연준이 맡기로 했다. 이미 이번 주 발행된 <주간충남>에는 1면 탑으로 이 사건에 대해 ‘외아들이 범인이었다’는 제목하의 기사가 나갔다.
편집장 김재진은 이정수와 신미연의 상태가 좋지 않다고 판단하고 되도록 취재 건을 배정하지 않는 배려를 생각하고 있다. 두 사람이 자율적으로 업무에 복귀하도록 놔두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라 생각한 것이다.

취재기자들은 방금 전에 회의가 끝나자마자 모두 뿔뿔이 흩어졌다. 이연준이 이정수에게 함께 취재현장에 나가자며 제안했지만 그는 신미연과 함께 꼭 가야할 곳이 있다며 나가버렸다.
이정수와 신미연은 정태섭 회장 네 집안을 봐주던 전 씨 아줌마 집 앞에 승용차를 세우고 기다리고 있다. 살인사건이 일어난 후 갑자기 실업자가 된 전 씨는 마침 집에 있었던 터라 곧바로 나오겠다고 했다. 오래전에 남편을 잃고 홀로 된 아줌마는 두 딸을 키우기 위해 억척같이 남의 집일을 전전했다. 거의 20년 가까이 혼자의 힘으로 두 딸을 키워 낸 것이 자랑스러웠다. 그래서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 가면 잘 키워낸 두 딸을 자랑하는 걸 낙으로 삼고 살았다. 큰 딸은 외국에 나가 살고 있고 작은 딸은 서울에서 남부럽지 않은 직장에 다닌다고했다. 그러나 아줌마의 생활이 그렇게 나아진 것은 없는 것 같다. 아직도 16평짜리 영세민 아파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아줌마의 이웃들은 모두 그녀를 전 씨라고만 불렀다. 사실 아줌마의 본명은 전미순 이었지만 아무도 이름을 불러 준 사람은 없었다.
오래 기다리지 않아 전미순이 두 사람이 탄 승용차에 올라탔다. 원래 입이 가볍다고 소문난 전미순답게 먼저 말을 건넨다.
「신기자! 실종됐다는 소문이 쫙 돌았었어.
도대체 어디에 있다가 온 거야?
혹시 내가 저번에 정태섭 회장네 저택이 이상하다고 해서 그런 거야?
괜히 내가 찔리더라고. 신 기자한테 그런 말을 해가지구.」
「혹시 저 말고 누구한테 그런 말 하셨어요?」
전혀 웃음기 없는 얼굴로 정색을 한 신미연이 전미순에게 묻는다.
「누구한테 할 새가 없었지! 처음으로 신 기자한테 그런 말 했는데 실종됐었잖어?
그래서 괜히 무서운 마음이 들어 혼자만 끙끙대고 있었지.」

시내에서 출발한 승용차는 15분가량을 달려 최현범의 전원주택에 도착한다.
주위를 둘러보던 전미순은 궁금한 표정을 하며 입을 연다.
「여기는 최 영감네 집 아니여? 왜 나를 여기로 데려온 거여」
「급히 최영감과 상의할 일이 있어요. 정태섭 회장 살인사건을 해결하려면 아줌마가 최 영 감을 꼭 만나야 해요.」
전미순은 순간 서늘한 생각이 들었지만 그렇다고 여기까지 와서 발을 뺄 수도 없었기 때문에 일단 들어가 보기로 한다. 최 영감의 집 현관은 활짝 열려있다. 집안으로 들어서자 각종 의학서적들과 관련 서적들이 즐비하게 쌓여있다. 더 깊숙이 들어가자 작고 기다란 유리병 모양의 실험도구들, 잘 말린 약재들, 여러 종류의 바늘이 돋보이는 주사기들이 가지런히 놓여있다.
전미순은 이런 것들이 최 영감에게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물건들이란 생각이 든다. 최영감이 워낙 폐쇄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어 집안에 남을 들인 적이 없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지만 이런 것들을 숨겨놓고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전미순이 아는 최영감은 그저 일주일에 한 번 정태섭 회장 저택을 출입하면서 잔디 깎고, 조경수들의 가지를 쳐주며 소일하는 사람일 뿐이었다. 그런 노인네에게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집안 환경을 살피며 황당할 지경이다.
전미순이 이리저리 집안 구경을 하고 있는 사이에 갑자기 옆구리에 강한 충격이 전달된다. 살아오면서 전혀 경험하지 못한 무지막지한 전기가 온 몸으로 밀려든다. 그 순간 전미순은 한마디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무의식 세계로 빠진다.
이정수가 전미순을 전기 충격기로 기절시킨 것이다. 그들에게는 잠깐의 망설임도 없다. 전혀 딴 사람들처럼 행동한다. 정태섭 회장 저택 비밀 방에서 3일간 극한 공포여행을 다녀온 후 완벽하게 세뇌당한 것이다. 두 사람이 환각여행을 다녀온 후 정신을 차렸을 때 최현범은 비밀 방에 대해 제보한 사람에 대한 정보를 신미연에게서 들을 수 있었다. 저택의 비밀을 완벽하게 숨기고 있는 줄 알았는데 최근에 전미순에게 발각 된 것이다.
가만있을 최현범이 아니다. 자신의 손으로 직접 처리할 필요도 없다. 이미 그에게는 이정수와 신미연이라는 절대 복종자들이 생겼다. 두 사람은 신경독성물질 때문에 완벽하게 세뇌되었다. 이들은 당장 죽으라면 죽을 수도 있는 상태가 되었다.
전미순을 기절시킨 두 사람은 바닥에 깔려있는 카페트를 걷어낸다. 그곳에는 정태섭 저택에서 보았던 비밀문이 있다. 두 사람은 그 문을 통해 지하로 연결된 정태섭 저택 비밀방으로 전미순을 옮긴다. 비밀방에서는 기분 나쁜 미소를 띤 최현범이 반갑게 맞아준다.
「전 씨 아줌마도 왔구먼. 내가 아주 이상한 환각 여행을 보내주지」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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