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서영태 장편소설- 무서운 마을




12월2일 오전11시가 조금 넘은 시각 취재 본부장 이연준은 세 사람이 들어간 집을 주시하며 소나무밭 사이에 몸을 숨기고 있다.
아침회의가 끝나고 이정수와 신미연의 행동이 너무 수상하다고 여긴 이연준은 그들 뒤를 미행하기로 작심했다. 그가 같이 동행하자고 제안한 것도 한사코 뿌리친 것을 보면 뭔가 숨기는 게 있는 것이 분명했다.
이연준은 형사생활 때부터 남들이 인정한 특유의 직감이라는 게 있다. 자신의 직감을 믿어서 해결한 사건이 수두룩했다. 동료를 미행한다는 것은 상당히 부담스럽긴 했지만 정태섭 회장 부부 살인사건과 연관이 있을 거라는 막연한 직감을 한 번 믿어 보기로 했다.

이정수와 신미연은 시내에서 50대로 보이는 아줌마를 태우고 이 집으로 들어갔다. 이 집은 이연준이 편집장과 함께 얼마 전에 왔었던 최 씨 영감의 전원주택이다. 이연준은 최 씨 영감을 처음 볼 때부터 눈빛이 마음에 안 들었다. 이것도 직감에 의존하는 것이지만 뭔가 속을 볼 수 없는 흑막을 치고 사는 것 같은 눈빛이었다. 아무관계가 없을 것 같은 네 사람이 한 곳에 모였다. 안에 들어간 사람들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 지 무척 궁금했지만 이연준은 더 이상 가까이 갈 수 없다.
세 사람이 전원주택으로 들어간 지 벌써 한 시간 반이 지나고 있다. 이연준은 상당히 의심스런 장면을 목격하면서도 이대로 계속 기다려야 하는지 갈등한다.

소나무숲에 숨어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지자 이연준은 신문사에 입사한 지 9년 세월을 되돌아본다. 그는 <주간충남>을 운영하고 있는 김재진 편집장 보다 1년 늦게 입사했다. 불미스러운 일로 경찰생활을 청산한 후 한동안 빈둥빈둥 놀았다. 형사시절에는 사건도 많이 해결하고 표창도 두 번이나 받았지만 막상 사회에 나와 보니 오라는 곳이 없었다. 퇴임한 경찰관이 갈 곳이 없다더니 어디를 가도 환영받지 못했다. 그래서 그는 사람을 피해 다니는 습성이 생겼다. 하루는 산에 올라갔다가 하루는 낚시터에서 시간을 죽였다. 그런데 그런 한량 같은 생활도 차츰 지겨워지기 시작했다.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외로움과 무력감이 밀려왔다. 더 중요한 문제는 얼마 안 되는 퇴직금을 다 써버렸다는 것이었다. 일자리를 알아볼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집에서도 쫓겨날 판이었다. 그러나 40대 중반인 그를 받아주는 곳은 없었다. 과거의 형사 경력은 차라리 이력서에 기재하지 않는 것이 더 유리하게 생각됐다.
이연준은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구인광고를 뒤지다가 드디어 기회를 잡은 곳이 <주간충남>이었다. 당시 이 업체대표는 젊은이보다는 40대를 더 선호하는 사람이었다. 젊은이는 기회만 생기면 큰 신문사로 이직해버린다는 것이 이유였다.
이연준은 간신히 취직은 했지만 박봉이었다. 형사시절 월급의 절반에 불과했다. 하지만 자신의 처지가 월급이 많고 적음을 따지기 어려웠다.
형사시절 동료에게 시기를 받을 정도로 잘나가는 이연준이었지만 기자생활은 달랐다. 자신보다 1년 먼저 입사한 김재진 편집장은 추월할 수 없는 존재였다. 일단 기사작성 능력에서 김재진과는 겨룰 수 없었다. 이연준은 새로운 환경에서 다시 배워야 하는 입장이 됐다. 배우는 과정에서 설움도 많이 당했다. 최선을 다했지만 나이를 극복할 수는 없었다. 현재 이연준의 나이는 54세. 신문사에서는 최고 많은 나이라서 취재본부장이라는 명함을 주었지만 치고 올라오는 후배 기자들은 자신을 퇴물 취급 하는 것 같다. 나이를 많이 먹어서 그런지 자꾸만 소외당하는 느낌이 더해간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꿋꿋하게 버티고 있다.

이연준이 이것저것 생각에 잠긴 사이 전원주택 현관문이 열리고 이정수와 신미연이 나온다. 그런데 함께 들어갔던 50대 아줌마는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 승용차에 올라탄 두 사람은 시야에서 사라졌지만 여전히 50대 아줌마는 전혀 나올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최현범의 전원주택을 빠져나온 이정수와 신미연은 잠시 후 한적한 식당에 차를 멈춘다. 간판에는 ‘해물칼국수’가 유난히 돋보인다. 아직은 좀 이른 점심시간이라서 그런지 손님은 두 사람밖에 없는 것 같다. 저수지가 잘 내다보이는 큼지막한 창문가에 자리를 잡고 앉는 두 사람. 햇빛을 받은 물결이 반짝이는 게 마치 수 만개의 다이아몬드를 뿌려 놓은 듯하다. 앉자마자 메뉴판을 들고 온 아줌마에게 두 사람은 해물칼국수를 주문한다. 지긋이 햇빛에 반사되는 저수지물을 감상하던 신미연이 속삭이듯 말한다.
「선배, 난 너무 무서워. 더 이상 옛날의 내 모습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 같아.」
「나도 무서운 건 마찬가지야. 우리에겐 선택의 길이 없어. 우리의 운명은 이미 정해진 거 야. 이미 그분은 우리 가슴 깊이 들어와서 지배하고 있어. 너도 느끼고 있잖아. 우리는 그 분의 손아귀에서 절대로 벗어날 수 없어. 절대 순종해야 사는 길이야.」

이정수와 신미연의 뇌 속 깊숙이 침투한 신경독성물질은 두 사람이 빠져나갈 틈을 주지 않고 있다. 최현범의 집안대대로 내려오는 비급과 동물실험 끝에 완성도를 높인 이 물질이 두 사람을 완전히 포로로 잡은 것이다. 지금 두 사람은 세상의 어떤 종교보다 더 깊숙이 빠져들었다. 세상에 있는 대부분의 종교는 높은 도덕성을 기본에 깔고 있어서 인간 세상에 큰 도움을 주고 있다. 세상사라는 것이 법만 가지고 통제되는 것은 아니다. 사람이 착하게 살려는 의지가 바로 도덕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것이 없다면 법과 규칙은 혼란에 빠지게 된다. 도덕성이 높은 종교야 말로 인간세상이 혼란에 빠지지 않게 만드는 첨가제 역할을 한다. 그런데 어떤 때는 신의 이름으로 사람을 죽인다. 사실을 알고 보면 그들이 사용하는 어떤 경전에도 사람을 죽이라는 말은 없다. 사람이 그렇게 해석한 것일 뿐이다. 따라서 사람 속에 있는 악마의 속성이 신의 이름을 빌려 사람을 죽이는 행위를 할 뿐이다.
최현범이 완성한 신경독성물질도 똑같은 원리로 작용하고 있다. 이 물질은 사람의 뇌 깊숙이 침투해서 인간의 마음속에 내재되어 있는 악마의 속성을 깨워낸다. 어떤 종교보다도 강력하게 사람을 지배한다. 문제는 무의식 속에 잠자던 공포심과 악의 속성을 계속해서 자극한다는데 있다. 공포심은 ‘그분’이라는 절대자를 섬기게 하고 악의 속성을 일깨워 어떤 명령이라도 받아들이게 만드는 것이다. 세상에 있어왔던 그 어떤 사이비 종교보다 더 무서운 광신도 집단이 형성되는 것이다.

이정수는 신미연을 뚫어지게 쳐다보면서 계속 말을 잇는다.
「그 분은 우리를 항상 지켜보고 계셔.
난 아직도 그분을 처음 만날 때의 흥분을 잊을 수 없어. 그 오랜 시간동안 도저히 참을 수 없는 고통이 밀려왔어. 아무리 발버둥 쳐도 벗어날 수 없는 시간들이었어.
내가 상상 할 수 없었던 무서움과 공포가 완전히 나를 만신창이로 만들고 나를 삼키고 있 었어. 그런데 알고 보니 모든 것을 그분이 통제하고 있었던 거야. 내가 그분을 영접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에게 고통을 주고 시련을 주셨던 거야.
나는 그분의 존재를 고통 중에 발견하고서 수없이 물었어. ‘어떻게 해야 내가 이 고통에 서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까. 나를 풀어주십시오’라고 말이야. 그분께서 나를 불쌍히 여기 고 말씀하셨지. ‘나를 영접해라. 너의 마음속 중심에 받아들여라’라고 말이지.」

눈빛을 마주치지 못하고 시선을 내린 신미연이 말한다.
「나도 너무 처절한 공포를 체험했어. 선배가 말한 그런 체험을 똑같이 겪은 거야. 눈앞에 서 펼쳐지는 치욕적인 일들, 내 몸을 산산조각 내버리는 아픔을 말이야. 여자만이 겪을 수 있는 아픔도 있었어. 그 흉악하고 징그러운 괴물들이 수 없이 나를 겁탈했어. 괴물들 의 추한 모습을 연달아 지켜보면서도 나는 솜털하나 까닥할 수 없었어.
나도 그 분을 보았고 그분을 영접할 수밖에 없었어. 그 전까지의 난 독실한 크리스천 이 었어. 선배도 알다시피 우리 부모님의 영향을 받아 거의 30년간을 기독교인으로 살아오며 세례까지 받았어. 그리고 예수님을 영접했었지. 그런데 난 예수님을 꿈속에서도 본적은 없었어. 그저 마음속으로 믿었을 뿐이지. 내가 그렇게 모진 고통 속에 빠져있을 때도 예 수님은 찾아오지 않았어. 수없이 기도하고 또 기도했지만 내가 영접했던 분의 목소리도 없었어. 그래서 난 배신감을 느꼈던 거야. 모든 고통을 주관하는 그분을 영접할 수밖에 없었던 거야. 내 마음 속에 있던 30년의 주인이 단 3일간의 체험으로 바뀐 거야.」

신미연의 눈가가 촉촉해진다. 그렇게 씩씩하던 신미연이 한순간 아주 작아 보인다.
이정수는 순간 신미연의 어깨를 보듬어 주고 싶은 강한 충동을 느끼지만 꾹 눌러 참는다. 신미연은 이미 그분께 바쳐진 여자다. 이정수가 함부로 넘볼 수조차 없는 여자가 되어 버린 것이다.
신미연이 그분을 영접한 순간 그것을 인정한 것이다. 3일간의 환각여행에서 깨어난 후 그분은 말씀하셨다. 신미연이 아직 남자를 경험해 보지 못한 숫처녀라는 것을 알았다면서 이제 너를 내 여자로 삼겠노라고 분명히 말씀하셨다. 이제는 세상의 어느 남자도 그녀에게 다가설 수 없는 것이다. 만약에 그녀 곁에 어떤 남자가 다가선다면 이정수가 보호해줘야 할 사명감이 있는 것이다. 그것이 그분에 대한 도리다. 적어도 이정수의 마음에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지금 이정수와 신미연은 세상의 어떤 종교보다 강력한 신을 마음에 받아들였다. 그분이 직접 찾아와서 자신을 영접하라고 말했다. 만약 영접하지 않으면 이보다 더한 고통과 무서움을 안겨주겠다고 말했다. 그들은 처절하고 적나라하게 그분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이는 무당이 신 내림을 받는 것과 비슷하다. 아무리 피하려고 해도 그분은 늘 지켜보고 있는 것이다. 이 세상 어디에도 피할 곳이 없다. 그래서 그분을 운명처럼 받아들였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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