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서영태 장편소설- 무서운 마을


12월2일 오후3시 <주간충남>상담실에 김재진과 이연준이 앉아있다. 두 사람은 한참 전부터 문을 굳게 닫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편집장님, 아무래도 이정수와 신미연이 아주 이상한 행동을 하고 있습니다.
무례한 행동인걸 알면서도 제가 두 사람을 미행했었는데 어떤 50대 아줌마를 차에 태우더니 저번에 저와 편집장님이 같이 갔었던 그 전원주택으로 들어가지 뭡니까. 두 사람이 실종된 사건과 분명 연관이 있는 듯한데 그 이상은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 전원주택이라면 저번에 정태섭 회장 네 저택에 갔을 때 정원을 손질하던 그 영감이 사는 집말인가요?」
「네. 그렇죠. 정황이 자꾸 정태섭 회장부부 살인사건과 연관됩니다.
더 이상한 점은 두 기자가 그 집에서 나오기는 했는데 함께 들어갔던 50대 아줌마는 나 오지를 않았습니다. 제가 한 시간을 더 기다려 봤는데 여전히 모습을 보이지 않더라구요,
그래서 말인데 그 아줌마에 대해서 조사를 해보면 뭔가 나올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십 니까?」
김재진은 골똘히 생각에 잠긴다. 사실 두 기자가 3일간 실종된 사건은 신문사 입장에서는 대단히 중요한 일이다. 그냥 넘어간다면 세간의 비난을 받을 수도 있다. 자신이 운영하는 신문사의 기자가 두 명씩이나 실종되어 3일 만에 돌아왔는데 전혀 책임지지 않는 몰지각한 운영자로 몰릴 수도 있다. 인구 15만밖에 안 되는 작은 도시 지역사회라는 게 숨기려고 해도 숨길 수가 없다. 기자들이 고정 출입하는 기관·단체가 대략 50군데 정도 되는데 어떤 특이한 일이 발생하면 하루 만에 소문이 돌곤 한다.
고향 선후배로 얽히고 학교 선후배에다가 각종 친목회에서 서로 겹치게 활동하는 인물들이 많아 비밀이라는 게 보장되기 어려운 구조라고 볼 수 있다.

<주간충남>기자 두 명의 실종사건도 하루 만에 지역사회에 퍼졌다. 이곳저곳 출입처를 방문해보면 그쪽에서 먼저 걱정하는 투의 말을 건넨다. 신문사 측에서는 상당히 조심스런 일이라서 비밀을 철저히 지키려고 애썼지만 그런다고 지켜질 비밀이 아니었던 것이다. 실종된 기자들이 복귀한 뒤에도 지역사회의 분위기는 별로 변하지 않았다.
출입처를 방문한 기자들 말에 의하면 사람들은 실종됐던 두 기자가 어떤 일을 겪었는지 궁금해 했다. 왜 실종되었는지, 누가 이들을 납치한 것인지,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으며 답변을 듣고 싶어 했다. 심지어 여러 종류의 루머까지 등장했다.
어떤 루머에 의하면 실종된 두 기자가 바람이 나서 먼 곳으로 도망쳤다가 잡혀온 것이라고 했다. 또 다른 루머에 의하면 <주간충남>이 지역 건달에게 약점을 잡혀서 협박을 받아왔는데 두 기자를 납치해서 겁을 주고 풀어줬다는 것이다. 어떤 루머에는 두 기자가 조폭 두목이 운영하는 골프장에 대한 기사를 썼는데 이를 괘씸하게 여겨 납치해서 위협했다는 구체적인 정황까지 제시했다.
김재진은 편집장으로서 시중에서 떠도는 루머들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지난 7년간 <주간충남>을 운영해오면서 여러 가지 루머에 시달려왔다. 특히 이 지역에서 태어나고 자라지 않았기 때문에 그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루머는 여러 가지였다. 그렇지만 두 기자 실종사건으로 인한 루머는 지금까지 있어왔던 루머에 비해 수준을 뛰어넘는 것이었다. 그래서 김재진은 심리적으로 대단한 압박을 받고 있었다.
이윽고 김재진은 이연준에게 말한다.
「두 기자가 차에 태웠다는 그 아줌마네 집에 한 번 가봅시다.」

10분 후 김재진과 이연준은 영세민 아파트와 작은 빌라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골목에 도착한다. 그 아줌마가 나왔다는 아파트는 너무 오래되어서 여기저기 페인트가 떨어진 자국이 선명하다. 작은 현관문은 각종 광고 스티커가 너덜너덜 붙여진 채 사람들의 손때 자국이 얼룩덜룩 새겨져 있다. 현관 앞에 작은 평상처럼 생긴 사각형 편의시설이 있는데 그곳에 다섯 명의 할머니들이 잡담을 나누고 있다. 할머니들 곁으로 다가간 이연준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한다.
「할머니들, 말씀 좀 여쭐게요.」
「나이는 약 50대쯤 되는데요. 뺨에 큰 점이 있는 아줌마인데요. 여기에 사는 분인데 누군 줄 아시겠어요?」
이연준의 뜬금없는 물음에 잠시 소곤소곤하던 할머니 중 한분이 대답한다.
「으응. 점순이? 오늘 오전에 어떤 차에 타고 나가던데?
요즘 통 밖에 안 나가더구만 젊은 사람들이 와서 싣고 갔어.」
「아-.네-. 그런데 그 점순이 아줌마는 뭔 일 하는 사람이래요?」
「그 있잖혀? 얼마 전에 죽은 무슨 회장이라던디? 거기서 17년간이나 집안일을 도맡아 해 왔다지 아마? 근디 뭔 일로 찾는겨?」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냥 말씀들 나누세요.」

5명의 할머니들이 물끄러미 바라보는 시선을 뒤로하고 두 사람은 승용차로 올라탄다. 두 사람은 방향을 정하지 않고 일단 출발한다.
「편집장님, 참 이상하죠? 조사를 하면 할수록 자꾸 죽은 정태섭 회장과 연결돼요.
제 직감에는 분명히 정 회장부부 살인사건과 연결돼 있어요.」
「본부장님 말을 들어보면 그렇기는 한데 이미 경찰에서는 정 회장 외아들이 범인이라고 발 표했잖아요?」
「제가 형사생활을 오래 해봐서 잘 아는데 형사들에게는 고정관념이라는 게 있어요. 어떤 한 방향으로 수사방향을 잡으면 꼭 그 쪽으로만 가려고 해요. 그래서 작은 단서를 놓치는 경우가 발생하죠. 제가 해결한 사건 중에도 그런 경우가 있었어요. 수사방향을 정해서 막 상 범인으로 특정해서 잡았는데 뒤늦게 다른 단서가 나오는 겁니다. 형사들은 항상 시간 에 쫒기죠. 그렇다보니 그 단서를 무시하고 넘어가게 되는 거죠. 사건을 빨리 해결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대단하죠. 그래서 가끔 언론에 보도가 나오잖아요? 진짜 범인을 잘못 잡는 경우가 있다는 얘기죠.」

이연준의 말을 가만히 듣고 보니 김재진도 이상한 생각이 든다.
4일전 서산경찰서에서는 정태섭 회장 부부살인사건에 대한 수사 발표가 있었다. 국회의원 2선 경력의 대단한 거물에 대한 사건이었기 때문에 경찰서장이 직접 나와 발표했다. 몰려든 기자들의 취재경쟁이 뜨거운 가운데 서장은 또렷또렷하게 사건해결에 초점을 맞추어 발표를 진행했다. 이어서 기자들의 질문이 이어졌다. 세간의 관심이 집중된 사건답게 중앙지 기자들도 서울에서 내려왔는데 그 중 한명이 질문했다.

「자살한 외아들이 부모를 잔인하게 죽일만한 동기가 밝혀졌습니까?」
「아직 수사 중입니다. 뚜렷하게 밝혀진 것은 없습니다.」
「범인이 따로 있을 수도 있지 않습니까?」
「이미 국과수 감식 결과 외아들의 지문이 나왔고 범행도구인 부엌칼도 발견돼서 더 이상의 확대 수사는 무의미합니다.」

당시 수사발표 현장을 지켜보던 김재진의 생각에도 경찰이 너무 성급하게 정태섭 회장 외아들의 범행으로 단정 짓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김재진은 평소 여러 지인을 통해 정태섭 회장 외아들에 대해서 들은 바가 있다. 아버지인 정태섭과는 상당히 다른 인물로 알려져 있었다. 그의 아버지는 권력을 지향하는 정치적인 인물이었으며 사회와 적당하게 타협도 할 줄 아는 수완이 뛰어난 사람이었다. 그러나 아들은 성직자가 되어도 좋을 정도로 고지식하고 예의바른 모습을 보여줬다. 늘 아버지의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면서도 아버지의 길을 가지 않고 평생 학자로서만 살아가겠다며 대학원 진학을 결심했다는 것이다.
김재진은 진작부터 정태섭 회장 외아들의 품성에 대해 들어왔던 터라 수사 발표가 황당하기 까지 했다. 자신이 아는 정 회장 아들은 부모를 잔인하게 칼로 찔러 죽일만한 패륜아가 아이었던 것이다.

운전대를 손에 잡고 생각에 빠져 있는 김재진에게 이연준이 말을 건넨다.
「편집장님, 제 직감이 상당히 정확하거든요.
정 회장 부부 살인사건과 두 기자 실종사건은 분명한 상관관계가 있습니다.
저에게 시간여유를 일주일만 주시면 해결의 실마리를 풀어보겠습니다.」
「그렇게 하세요. 다른 취재 건은 걱정하지 마시고 이일에 매달려 보세요. 혹시 특종이 터 질지도 모르니까요.」
김재진으로서는 정 회장 부부 살인사건 보다는 자신이 운영하는 신문사의 두 기자 실종사건에 더 관심이 많다. 이 사건을 그냥 덮고 가자니 체면이 말이 아니기 때문이다. 세간의 소문대로 조폭에게 납치되어 협박이라도 받았다면 큰일이다. 아무리 무서운 폭력 계 사람들도 넘지 말아야할 선이라는 것이 있다. 지역사회에서도 법조인, 경찰관, 언론인을 상대로 위협하거나 폭력을 행사하는 폭력배는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누가 시키지는 않았지만 서로서로 심리적인 경계의 대상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경계의 벽이 무너진다면 정말 큰 사태로 발전할 수 있다. 어찌 생각하면 야생의 세계에서 자연의 섭리인 먹이사슬과 같다. 아프리카 초원에서 사자와 하이에나가 먹잇감을 차지하기 위해 다투는 모습을 종종 본다. 그런데 사자가 먹이사슬을 벗어나 하이에나를 먹잇감으로 설정하고 사냥에 나선다면 두 종족 간에는 전면전이 벌어지고 말 것이다. 김재진은 그의 언론 경력만큼이나 이 경계의 벽에 대해 잘 알고 있다. 따라서 세간의 소문에도 민감하게 반응하고 여론의 추이가 변하는 모습을 주시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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