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서영태 장편소설- 무서운 마을



12월4일 저녁10시 이정수와 신미연이 최현범의 전원주택 현관으로 들어간다.
지난 3일 동안 두 사람을 은밀히 미행하며 취재해온 이연준은 오늘도 두 사람의 이상한 행동을 감시하고 뒤따라왔다. 자신이 타고 온 승용차는 약 100미터 거리의 길가에 세워두고 걸어서 소나무 밭으로 잠입했다.

지난 3일간 두 사람을 면밀히 관찰해 본 결과 이전의 두 사람과는 전혀 다른 사람처럼 행동했다. 이전에는 젊은 기자들답게 취재현장을 종횡무진 뛰어다니며 왕성한 활동을 보여줬었다. 그러나 변해버린 두 사람은 취재현장에서 충분히 몰입하지 못하고 사람이 적은 곳을 찾아 어디선가 걸려온 전화를 받는 일이 흔하게 일어났다. 이틀 전 시청 기자실에서 있었던 지역경제과 브리핑에서도 전혀 질문하지 않고 무성의하게 자리만 지키는 모습이었다. 이연준은 두 사람의 심각한 변화를 지켜보면서 더욱 의심을 키워나갔다.

오늘 점심 무렵에 여러 기자들이 함께 식사자리를 가졌는데 이정수의 옆에 이연준이 앉아있었다. 어디선가 이정수의 핸드폰으로 걸려온 벨소리가 작게 울렸다. 조용한 목소리로 그는 전화를 받았다. 그리고 바로 옆에 앉아있던 신미연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이 때 이연준은 두 사람의 반응을 면밀히 살폈다. 그들은 평정심을 잃고 어느 때보다 경직되어 있었다. 그 때부터 이연준은 두 사람의 뒤를 다시 쫒기 시작해서 지금 소나무 밭에 숨어들어 최현범의 전원주택을 주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정수와 신미연이 전원주택 현관으로 들어간 지 5분 쯤 지나서 검정색 세단이 미끄러져 들어온다. 소나무 밭을 향하여 주차하고 내린 사람의 얼굴이 가로등 불빛에 드러난다. 며칠 전 경찰서에서 수사발표를 하던 조영우 서장이 분명하다. 어둠속을 한 번 둘러보던 그는 전원주택 현관으로 빠르게 사라진다. 다시 저 멀리서 검정색 승용차가 들어와 공터에 주차한다. 차에서 내린 인물의 얼굴을 찬찬히 살피자 김정철 시장의 얼굴이 드러난다. 그도 역시 빠른 걸음으로 현관문을 열고 사라진다.

이 모든 장면을 지켜본 이연준은 당황하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 쟁쟁한 거물들이 촌에서 정원일이나 도와주는 노인의 집에 모일 일이 없는 것 아닌가. 도대체 이 노인이 어떤 인물이기에 이렇게 거물들까지 순순히 찾아오는가! 생각할수록 의혹이 풀리지 않는다. 이연준은 3일 전 이 집안으로 들어갔던 아줌마에 대해서도 알아봤다. 그 아줌마의 이름은 전미순이었고 정태섭 회장 네 저택에서 집안일을 도와주던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런데 그 전미순은 이 집으로 들어 간지 3일간 그녀의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이웃들도 그녀가 돌아오지 않자 염려하면서 이연준에게 사실을 이야기해 주었다.

한편, 전원주택으로 들어간 사람들은 차례차례 비밀 문을 통해 지하 통로를 건너고 있다. 이 지하통로는 겨우 한 사람이 고개를 숙이고 지날 수 있을 정도로 비좁다. 신장이 큰 사람이 지나간다면 거의 허리를 숙여야 할 판이다. 그러나 철골 구조물로 벽을 감싸게 만들어져서 제법 튼튼한 구조로 이루어졌다. 5미터 간격으로 형광불빛이 밝게 비추고 있어 통행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인다. 지하 통로를 다 빠져 나온 사람들은 비밀 문을 통해 나온 후 차례로 자리에 앉는다. 그 자리에는 의자가 없고 두꺼운 카페트만 깔려 있다. 그들이 앉은 곳 맨 앞에는 커다란 기둥이 3개 달린 촛대가 있고 그 위에서 촛불이 이글거리며 자신을 태우고 있다. 이곳에 참석한 사람들은 아무런 말을 꺼내지 않는다. 모두 타오르는 촛불만 주시하고 있다. 참석자들은 어림잡아 30명은 되어보였다. 참석자들이 다 도착한 후 10분여가 지나 또 다른 문을 통해 참석자들이 말하는 ‘그분’이 나온다. 이 때 참석자들은 황급히 일어나 90도 각도로 고개를 숙인 후 무릎을 꿇은 자세로 앉는다. ‘그분’의 얼굴은 최현범이다. 이 노인이 참석자들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최현범은 참석자들 하나하나의 얼굴을 훑어보며 자기만족에 빠진다. 그가 생각해도 자신의 능력이 놀라울 따름이다. 이제는 세상을 지배할 수 있는 힘을 가진 것 같기도 하다. 금이빨 두 개를 드러낸 최현범은 입꼬리만 약간 올린 채 조용히 미소를 짓는다.
최현범은 자신을 따르는 추종자들 한명 한명의 머리에 손을 얹고 말한다.
「네가 나를 진실로 믿느냐?」
‘그분’의 손길이 머리에 와 닿은 것을 느끼며 김정철 시장이 경련을 일으키며 대답한다.
「당신을 위해 제 생명을 드리겠습니다. 당신의 명령에 절대 복종하겠습니다.」
최현범은 한명 한명에게 비슷한 대답을 들으며 황홀경에 빠진다. 어느 누구도 갖지 못한 절대 반지를 가진 느낌이다. 이 순간 그는 몇 년 전 극장에서 보았던 <반지의 제왕>영화를 떠올려 본다.

영화에서 사람들은<절대반지>를 차지하기 위해 치열한 암투를 벌인다. 세상을 지배하고 싶어 했던 마법사가 <절대반지>를 차지하기 위해 전 세계를 위험에 빠뜨리고 전쟁을 일으킨다. 영화 속에서는 어둠의 마법사가 <절대반지>를 차지하는데 실패했지만 현실은 영화와 다른 것 아닌가. 최현범은 이미 신경독성물질을 완성하여 <절대반지>를 손아귀에 넣은 것이다. 이제 이 <절대반지>를 남에게 빼앗기지 않으면 세상을 지배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점점 자신감을 얻은 최현범은 1년 전 김정철 시장에게 명령을 내려서 당시 부임한 지 얼마 안 된 조영우 서장을 포섭하게 만들었다. 최현범의 포부는 지역사회를 시범케이스로 지배해보는 것이었다. 문제는 3일간의 시간여유가 있어야만 신경독성물질을 주입해서 세뇌가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명령을 받은 김정철은 기회 있을 때 마다 조영우에게 연락해서 3일간의 여름휴가를 같이 보내자고 제안했다. 모든 비용을 자신이 다 지불하고 특별한 서비스도 마련해 놓았다는 설명을 잊지 않았다. 김정철의 오랜 설득은 드디어 빛을 발하여 조영우가 휴가를 내게 된다. 결국 정태섭 회장 자택으로 유인된 조영우는 전기충격을 당하고 쓰러져 환각여행을 경험했다. 이것으로 최현범은 지역사회의 유력자 3명을 손아귀에 넣게 된다. 명령을 충실히 수행하는 세 사람을 통해 최현범은 점점 음모를 키워나갔다.
15년 전 가족을 잃은 가장으로서의 복수심은 이제 의미가 없어졌다. <절대반지>를 손에 넣게 되자 세상을 지배하려는 욕심에 불타는 노인으로 변해갔다. 사람을 지배한다는 것이 이렇게 짜릿하고 흥미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던 그였다. 그러나 그 맛을 경험하자 마약에 빠진 사람처럼 점점 도취되어가고 있었다.

최현범은 조영우를 세뇌시킨 후로 이제는 규모를 갖춰서 추종자들을 지배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어떤 형태로 해야 가장 효과적으로 지배할 수 있을지 생각해보았다. 궁리를 거듭하던 최현범에게 어느 영화에서 보았던 사교집단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그 영화 속 장면에서는 절대적인 존재를 위해서 처녀를 산제사로 드렸다. 최현범이 어릴 적 다니던 교회에서 선생님께 들은 이야기도 오버랩 됐다. 구약성경에서 이스라엘 민족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이 절대자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아들인 이삭을 산 제물로 드리려는 순간 하나님의 명령으로 아들의 목숨을 건지게 된 이야기였다.
종교라는 것은 무서운 힘을 가지고 있다. 살아 있는 사람을 제물로 바칠 수 있는 잔혹함을 정당하게 만든다. 최현범은 자신의 종교를 만들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이미 그에게는 사람을 세뇌해서 지배할 수 있는 절대 반지가 있기 때문에 어떤 일이든지 가능하다고 확신했다.
그 후 1년 동안 최현범은 사이비 종교에 대해서 연구하게 된다. 세상을 완전하게 지배하기 위해서는 종교적인 겉포장이 필요했다. 관련 서적을 구입해서 악마를 섬기는 사교집단에 대한 정보를 얻고, 악마를 숭배하는 장면이 나오는 비디오를 수소문해서 구입했다. 최현범은 점점 사이비 교주가 되어가고 있었다.

자신의 추종자들 한명 한명의 머리에 차례대로 손을 얹고 절대 복종맹세를 받은 최현범은 더욱 의기양양해져서 맨 앞으로 나아간다. 지금 최현범의 앞에는 절대 복종을 맹세한 추종자들이 무릎을 꿇고 몸을 바들바들 떨면서 어찌할 바를 몰라 하고 있다. 그들에게 자결할 것을 명령하면 당장 스스로 목숨을 끊을 준비가 된 자들이다.
최현범은 조용하고 엄숙한 어조로 말을 전한다.
「너희들에게 새로운 자매를 소개하겠다. 전미순은 앞으로 나오거라.」
저 멀리 무릎을 꿇고 있던 전미순이 힘없는 다리를 질질 끌며 나온다. 그녀는 3시간 전에 3일간의 환각여행을 마치고 깨어났다. 그 전에 수다스럽던 아줌마의 모습은 온 데 간 데 없고 완전히 혼이 빠진 추종자로 바뀌었다. 이제 최현범이 이끄는 이 모임은 세상의 어느 사이비 종교집단보다 더 위험한 세력이 되고 있었다.

다음호에 계속

저작권자 © 충남인터넷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