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서영태 장편소설- 무서운 마을


12월5일 오전10시 서산경찰서 서장실에는 조영우 서장과 최현범이 마주 앉아있다.
최현범은 잠시 서장실을 둘러보다 어떤 물건을 보더니 벌떡 일어서서 다가간다.
「야아. 이 상패 좀 봐. 우리 조 서장 참 대단하네.
시민단체에서 주는 감사패에다 장애인단체에서 준 공로패, 경찰청장에게 받은 표창패까지 좋은 상을 많이 받았네? 이렇게 훌륭한 일을 많이 한 분께서 내 사람이 된 기분은 어떤가?」
「주인님을 위해서 목숨을 바치겠습니다. 제 모든 것을 다해 섬기겠습니다.」
고개를 푹 숙인 조영우를 잠시 바라보던 최현범은 대단히 흡족한 듯 금이빨 두 개를 드러내며 껄껄 거린다. 최현범이 이렇게 흡족해 하는 이유는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조영우 스스로 자신에게 주인님이란 호칭을 썼기 때문이다. 자기의 추종자들은 이제 서서히 종교집단화 되어가고 있음을 느낀다. 추종자들에게 분위기만 잡았을 뿐인데 정신세계를 지배하는 주인이 된 것이다.
「그 사건 말이야. 정태섭이 죽은 사건은 이제 종결처리 된 건가?」
「네. 주인님의 명령대로 빨리 수사방향을 잡아서 외아들이 부모를 죽인 걸로 종결하고 있 습니다. 아직까지는 절차를 밟느라고 특별수사팀에서 최종 정리하고 있는데 곧 검찰 송치가 됩니다. 아무 걱정 안하셔도 되시게 완벽하게 처리했습니다.」
「역시 내가 너를 내 사람으로 만든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어.
그런데 사실 말이야. 그 정태섭 외아들이 자살한 것은 정말 뜻밖이었어.
그 부모를 죽이라는 명령은 내렸지만 자기 자신까지 죽일 줄은 몰랐단 말이야.
아마도 그 놈은 더 이상 고통을 견딜 수 없었나봐. 악마에게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통로가 죽음이었을 게지.」

최현범은 잠시 한 달 전의 일을 떠올린다. 최현범이 정 회장의 저택 정원을 여기저기 산책하고 있을 때 정인주와 그의 애인이 찾아왔다. 최현범은 그 전에도 정인주를 몇 번 본적은 있지만 애인을 데러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최현범은 정원수를 손질하는 척 연기하며 이제 막 육중한 정문을 통해 들어서는 정인주의 애인을 눈여겨 살펴보았다. 20대 후반 쯤으로 보이는 그 아가씨는 유난히 흰 피부를 가지고 지성미가 넘쳐흐르는 보기 드문 미인이었다. 아가씨의 키는 그렇게 크지 않은 아담한 사이즈였지만 허리벨트를 꽉 묶지도 않은 것 같은데도 잘록한 허리의 곡선이 잘 드러났다. 그 아가씨가 정태섭 부부에게 인사를 할 때 우아하게 품은 미소는 꿈속에서 만난 어느 나라의 공주님처럼 남자들의 넋을 뺏어갈 만했다.
최현범의 나이는 올해 71세다. 남들이 볼 때는 남자의 기능을 다 써먹은 늙은이로 보일지도 모른다. 더 이상 남자의 자존심을 쓸 때 없고 성욕마저 오래전에 잃어버린 노인네로 취급 할지 모른다. 그러나 최현범은 한의사 출신으로서 자신의 건강을 위해 몸에 좋다는 보약을 만들어 놓고 정기적으로 복용해왔다. 서산에 내려와서도 매일 가야산 줄기를 올라 다니며 하체를 단련해왔다. 얼굴은 나이를 속일 수가 없지만 몸은 40대 청년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지난 15년 동안을 아내와 딸을 위한 복수심에 불타서 살아왔다. 그러나 그 복수심은 점점 욕망으로 변질돼서 그를 진짜 악마로 만들고 있었다. 권력욕, 재물 욕에 이어 이제 가장 원초적인 본능인 성욕을 채우고 싶은 것이다.

아가씨의 미소에 사로잡혀 비밀의 공간으로 돌아간 최현범은 더 깊숙이 자리 잡은 비밀 방으로 들어섰다. 그 곳에는 11대의 모니터가 켜져 있었다. 건설 회사를 운영하는 정 회장의 직원들이 비밀스럽게 만든 작품이었다. 이 모니터는 저택의 모든 방과 욕실을 비롯해 정원과 정문 앞까지 비추고 있었다. 저녁 10시가 되자 정인주의 애인 서인애가 2층에 마련된 손님방으로 들어섰다. 마음씨 착하고 소심하기로 이름난 정인주가 함께 들어오지 않는 것을 보니 아직까지는 서인애의 몸을 지켜주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서인애는 몸에 걸린 옷을 하나하나 벗어냈다. 비밀 방 모니터를 통해 그녀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최현범의 눈에는 번데기가 껍데기를 버리고 알몸을 드러내며 우아한 나비로 변화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녀가 마지막 남은 껍데기를 벗어 내었을 때 최현범은 섬세하고 아름다운 비너스를 닮은 나비를 껴안고 춤을 추는 상상에 빠졌다. 모니터 속에 빠질 것처럼 가까이서 지켜보던 최현범은 정태섭 회장 부부에게 전화를 걸어 정원으로 불러냈다. 그리고 그들의 며느리가 될 서인애와 아들을 함께 비밀의 방으로 데려올 것을 명령했다. 치밀한 최현범은 서인애 혼자만 환각여행을 보낼 경우 정인주가 후환이 될 것을 계산에 넣은 것이었다.

그러나 정 회장 부부는 최현범에게 무릎을 꿇고 아들만은 살려달라고 애원하기 시작했다. 아무리 신경독성물질이 그들의 머릿속에 침투해서 세뇌시켰다고 해도 강력한 자식사랑만은 어찌하지 못하는 듯 했다. 그들은 최현범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매달렸다. 자식만은 악마의 제물로 내어줄 수 없다는 부모의 절박함이 묻어났다.
악마가 된 최현범이 자신의 욕망을 채우려고 하던 게 처음으로 빗나가고 있는 것이었다. 그로서는 이를 방치하기 어려웠다. 그의 명령을 거부한 정 회장 부부를 이대로 방치했다가는 나중에 어떤 사태가 일어날지 모르는 일이었다. 최현범은 일단 정 회장 부부에게 자식만은 손대지 않겠다고 약속하고 조용히 비밀의 방으로 돌아왔다. 모니터를 통해 서인애의 잠든 얼굴을 내려다보면서 사악한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나는 저 애를 꼭 갖고야 말 것이다. 너희를 다 몰살시켜 버릴 것이다.」

잠시 한 달 전 일을 생각하던 최현범은 조영우에게 조곤조곤 말한다.
「조 서장은 나를 배신할 일 없을 거야. 그렇지?」
조영우는 최현범의 존재를 절대적으로 거대하게 느끼고 있다. 1년 전 비밀의 방에서 3일간의 환각여행을 체험한 후 최현범을 절대자로 신봉하는 추종자가 되었다. 세상의 어떤 신보다도 더 두려운 존재, 자신의 생과 사를 한손에 쥐고 있는 존재가 바로 최현범이었다. 지난 1년 동안 그는 편안하게 잠을 잘 수 없었다. 항상 눈은 충혈 돼 있고 정신은 꿈속을 헤매는 듯 비틀거렸다. 어디에 있든지 ‘그분’이 지켜보는 환각에 빠져서 헤어나질 못했다. 오늘 최현범의 방문은 그에게는 너무 두렵고 무서운 일이다. 지옥에서 악마가 나타나 그의 앞에서 노려보는 것과 같다.
「저는 주인님만 따르겠습니다. 절대 복종하겠습니다.」
「내가 비밀을 하나 알려주지. 사실은 말이야 한 달 전에 정태섭 부부가 나의 명령을 거부 하는 사태가 발생했어. 그렇게도 내가 그들에게 친절하게 대해줬는데도 말이야.
어떻게 이 주인님의 지상명령을 거부할 수 있어? 그래서 말이야 내가 철저하게 벌을 내린 거야. 그들의 아들을 내 것으로 만들어 버린 거야. 그래서 아들에게 명령했지. 부모를 죽 여라고 말이야. 나를 배신한 그의 부모를 죽이도록 내가 명령했던 거야.」

한 달 전 눈물로 호소하던 정태섭 부부를 안심시킨 최현범은 새벽까지 잠을 이루지 못하고 모니터를 내려다보며 생각에 잠겼다.
모니터 속의 서인애는 분홍빛 브래지어와 팬티만으로 아름다운 몸매를 겨우 가린 채 침대에 누워있었다. 최현범이 잠을 못 이루듯 그녀 역시 잠을 못 이루고 뒤척이고 있었다. 눈앞의 먹잇감을 노려보듯 침을 꿀꺽 삼키는 최현범에게는 누구와 겨뤄도 이겨낼 수 있는 장점이 있었다. 어떤 일을 성공시키려고 오랜 세월 기다릴 수 있는 인내력이 그의 장점이었다. 마치 악어가 먹잇감이 다가올 때까지 수면 아래 매복하듯이 최현범은 그런 인내력의 소유자였다. 최현범의 먹잇감이 모니터 속에서 뒤척이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먹잇감이 완벽하게 덫에 걸려들 때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었다.

그날 이른 아침이 되었을 때 서인애가 옷가지를 챙겨 입고 정인주를 만나는 모습이 모니터에 잡혔다. 그리고 스피커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두 사람이 어젯밤에 최현범과 정 회장 부부가 만난 것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닌가. 서인애가 그 장면을 목격해버린 것이었다. 이어서 정인주가 자신을 만나러 전원주택으로 향하는 모습이 정문 모니터를 통해 보였다. 최현범은 지하통로를 통과하여 전원주택 현관문을 열고 정인주를 만났다. 그때 정인주에게 멱살잡이까지 당한 최현범은 그들에게 잔인한 응징을 해주어야겠다고 결심했다. 악마가 어디까지 사악해 질 수 있는지 보여주고 싶다는 욕망이 가슴에서 꿈틀거렸다. 멱살을 잡고 따지는 정인주에게 최현범이 금이빨 두 개를 드러내며 입꼬리를 올렸다.
「내일 저녁 10시까지 이곳으로와! 아무한테도 알리면 안 돼. 만약 네가 혼자 오지 않으면 너희 부모는 죽게 될 거야. 아주 이상한 비밀을 알려줄게.」
멱살을 잡고 있던 손을 천천히 떼어낸 정인주는 부모에게 무슨 일이 있다는 것을 직감했다. 도저히 남에게는 알릴 수 없는 치욕적인 일이 분명히 있을 것으로 여겼다. 돌아보면 그의 아버지인 정태섭 회장은 국회의원을 두 번하면서 숨기는 게 많았던 것 같았다. 건설 회사를 운영하면서도 떳떳하지 못한 일을 많이 했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이런 시골노인에게 큰 약점을 잡힌 게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다음 날 저녁 10시 정인주는 부모의 목숨이 달려 있다는 말에 최현범의 전원주택을 혼자 찾을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의 치욕적인 약점을 해결해주고 싶은 생각도 했다. 정인주가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그는 옆구리에 강한 전기충격을 느꼈다. 그리고 비밀의 방에서 3일간의 무시무시한 환각여행을 경험했다. 그 후 최현범은 복수심과 욕망에 사로잡혀 사악한 명령을 정인주에게 내렸던 것이다.
「네 부모를 죽여서 나를 기쁘게 하라.」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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