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서영태 장편소설- 무서운 마을




12월5일 오후3시 서인애와 한 남자가 전원주택을 방문한 직후 최현범은 지금이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한다. 정태섭 가족사건이 완전히 마무리 된 후 서인애를 데려올 생각이었다. 그런데 뜻 밖에도 그토록 원하던 그녀가 자신의 집을 찾아온 것이다. 서인애의 매력에 푹 빠진 최현범은 평소의 치밀한 그답지 않게 서두르고 있다. 남자는 여자 때문에 망한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그녀를 차지하고픈 욕망이 그를 가만히 놔두지 않는다. 최현범은 이제 세상이 자기 것이라고 믿기에 거칠 것이 없다. 이미 그에게는 생명을 바칠 수 있는 추종자가 30명이나 있다. 그들은 어떤 명령이든 목숨을 걸고 수행할 것이다. 이런 경우를 대비해서 동네 사람들을 20명이나 추종자로 만들어 놨다. 그 중에 마을 청년이 10명을 넘는다. 최현범은 신속하게 마을 청년회장에게 전화한다.
「빨리 마을 입구를 막아!」

최현범에게 더 물어보았자 나올 것이 없다고 판단한 두 사람은 정태섭 회장 자택을 한 번 더 둘러본다. 이 저택은 워낙 철옹성 같이 담장을 둘러서 개미 새끼 한 마리 들어갈 구멍을 발견하지 못한다. 별 소득을 얻지 못한 두 사람은 허탈한 마음을 간직한 채 승용차에 올라 마을 입구로 향하고 있는데 길 정면에 건장한 청년 5명이 서 있다가 승용차를 제지한다. 김재진은 운전석 유리창을 내리고 무슨 일인지 청년들에게 묻는다. 한 청년이 운전석으로 다가와서 등 뒤에 숨기고 있던 칼을 김재진의 목에 갖다 대며 내리라고 말한다. 순식간의 일이었다. 동네 청년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갑자기 흉기를 든 강도로 돌변한 것이다. 김재진은 여기서 내렸다가는 생명이 위험하다는 사실을 직감한다. 어떻게든 이 위기를 모면해야한다. 반사적으로 김재진의 왼손이 칼을 든 청년의 손목을 잡는다. 그의 오른쪽 발끝에는 잔뜩 힘이 들어간 채 액셀을 힘차게 밟는다. 차가 괴성과 함께 급발진하면서 손목을 잡힌 청년의 팔을 우두둑 부러뜨린다. 튕겨나가는 차를 막고 있던 두 청년의 몸이 강한 충격과 함께 허공으로 떠오른다.

두 사람이 탄 차를 멍하니 쳐다보던 청년들은 옆에 세워둔 1톤 트럭에 잽싸게 올라타자마자 추격을 시작한다. 용현계곡 구불구불한 길을 앞서 나가는 김재진은 위험한 커브길에서 속력을 올리지 못하고 있다. 옆에 탄 서인애는 갑작스런 사건에 창백한 얼굴이 되어 안전벨트를 꽉 붙잡기 시작한다. 청년들이 탄 1톤 트럭은 벌써 앞차의 꽁무니에 다가선다. 마을길을 잘 아는 청년들의 운전 실력이 더 뛰어난 것이다. 다급해진 김재진이 속력을 내려 해도 워낙 폭이 좁고 길이 험해서 어쩌지를 못한다. 이 때 뒤차가 앞차를 쿵쿵 들이박기 시작한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앞차가 고꾸라지게 생겼다. 앞차는 간신히 고비를 넘기며 이리저리 피해 다닌다. 그러나 무섭게 들이박고 있는 뒤차가 사고를 낼 것 같다. 길이 험한 용현계곡을 간신히 빠져 나온 김재진의 승용차는 뒤꽁무니 트렁크가 절반은 오그라진 채 저수지 커브길을 질주한다. 이제 정면에는 급커브길이 눈에 들어온다. 뒤차가 다시 바짝 꽁무니에 붙어서 앞차를 들이박으려고 전속력을 낸다. 그 상황을 백미러로 주시하던 김재진이 핸들을 확 돌려 중앙선을 넘어서면서 가까스로 위기를 모면한다.
그런데 앞에서 5톤 화물 트럭의 급박한 경적이 울린다. 김재진은 이미 제 차선으로 돌아 갈 시간이 없다고 판단하고 더욱 왼쪽으로 핸들을 꺾어 반대 차선 가드레일을 들이 박는다. 정면에서 달려오던 5톤 화물트럭도 김재진의 차를 피하려다 반대차선을 달려오던 청년들의 1톤 트럭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1톤 트럭에 탔던 3명의 청년들은 종잇조각 같이 구겨진 차안에서 즉사한다. 그러나 반대 차선 가드레일을 들이박은 김재진의 승용차는 20미터를 더 가서 멈춰 선다. 두 사람은 죽을 고비를 넘기고 살아난 것이다.

1시간 뒤 119구급차가 두 사람을 신속하게 싣고 서산 중앙병원 응급실로 들어간다. 의사의 진찰결과 김재진의 왼쪽 다리가 부러졌고, 서인애의 오른쪽 팔이 부러졌다. 두 사람 몸의 다른 곳에는 경미한 타박상이 있었으나 큰 문제는 되지 않는다는 결과가 나온다.
잠시 후 사고 소식을 듣고 취재본부장 이연준이 김재진의 입원실로 들어선다.
「편집장님, 어떻게 돼서 이렇게 큰 사고를 당하셨습니까?」
「너무 염려하지 마세요. 다리만 부러졌을 뿐 다른 데는 멀쩡해요.」
김재진은 이연준에게 오늘 벌어진 사건에 대해 상세하게 알려준다. 그리고 경찰에 신고해서 사건을 조사해 달라는 말도 잊지 않는다. 그에게는 이해가 되지 않는 미스터리 사건이다. 왜 그 청년들은 필사적으로 두 사람을 추격했던 것일까. 119구급대원의 말에 의하면 두 사람을 추격하던 3명의 청년들은 현장에서 즉사했다고 한다. 만약 그들이 죽지 않았다면 두 사람은 어떻게 됐을까. 생각만 떠올려도 끔찍하다.

경찰에 신고를 마친 이연준이 김재진에게 다가와 이야기한다.
「조금 있으면 경찰 조사관이 방문해서 사건 경위에 대해 조사할 겁니다.
그런데 편집장님을 추격하다 죽은 그 청년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습니까?」
「그 마을 청년들 같았어요. 복장이나 말투로 봐서 그 곳 사람들이 맞는 것 같은데 나한테 칼을 들이 댈 이유가 없단 말이죠. 왜 그랬을까요?」
「그 마을에서 두 분이 무슨 일을 하다 나온 거죠?」
「글쎄, 입원해 있는 서인애 씨와 함께 정 회장 저택을 둘러보았어요. 그리고 그 저택 정원 을 가꿔주던 영감을 찾아가 정 회장 가족 사건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 있으면 말해달라고 했었지요.」

이번 사건도 그 영감하고 연결된다. 정 회장 가족 사건과 그 영감은 어떤 관계일까. 이연준의 의심은 갈수록 깊어진다. 그는 지금까지 독자적으로 취재한 것을 김재진에게 들려준다.
어제 저녁 이연준은 최현범의 전원주택 소나무 밭에 숨어들었다. 이정수와 신미연을 뒤 쫓아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이다. 두 사람이 전원주택 현관으로 사라진 뒤 계속해서 다양한 사람들이 집안으로 들어갔다. 그 중에는 김정철 시장과 조영우 서장도 함께 있었다. 사람들이 집안으로 사라진 뒤 한 시간이 지나 전혀 인적이 없자 이연준은 몸을 숨기던 소나무밭을 빠져나와 전원주택 현관문을 조심스럽게 열어보았다. 그러나 내부에서 잠긴 현관문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전원주택의 모퉁이를 돌아 창문 곁에 몸을 숨기고 내부를 엿보았으나 두꺼운 커튼이 모든 창문에 드리워져 전혀 안을 볼 수 없게 되어있었다.
밖에서는 전원주택의 내부를 볼 수 없도록 치밀하게 대비한 것이 분명했다. 이연준이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살펴보고 있는 사이에 현관문이 활짝 열리며 들어갔던 사람들이 차례로 나왔다. 이연준은 급히 전원주택 모퉁이에 몸을 숨기고 어둠속에 고개만 내밀어 살펴보았다. 마지막으로 나온 청년이 현관문을 열쇠로 잠그는 소리가 들리더니 어둠속으로 촘촘히 사라졌다. 이연준이 보기에 참석자들의 숫자가 30여명은 되는 것 같았다. 이 많은 사람들이 무슨 일로 시골 노인의 전원주택에 모였다가 헤어지는 것일까. 마을 회의라면 시장과 경찰서장, 기자들까지 올 일이 없는 것이었다. 몇 명은 걸어서 가는 것을 보니 이 마을 사람들이 분명해 보였다. 특히 청년들 10여명이 함께 걸어가면서 형님 아우라는 호칭을 쓰는 것을 듣자 이 마을 청년들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왔다.

이연준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김재진은 잠시 말을 끊는다.
「그래 맞아. 그 마을 청년들이 나를 위협하고 추격전을 벌인 것 같아요.
그들은 무엇인가를 숨기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 것 같아요.
아마도 정태섭 회장 가족 사건과 무슨 연관이 있지 않을까요?」

경찰의 방문조사가 끝나자 입원실 창밖에는 어둠이 깔리고 있다. 석양의 아름다운 퇴장을 오랜만에 감상하던 김재진은 옆방에 입원해 있는 서인애가 보고 싶어진다. 목발을 짚은 김재진은 그녀의 병실을 노크한다.
해지는 창가에 누워있는 서인애의 모습은 요정의 자태 뒤로 우아한 후광이 빛을 발하는 모습이다. 아름다운 요정이 고약한 사냥꾼에게 쫓기다 날개가 부러져 그의 앞에서 누워있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요정이 먼저 말을 걸어온다.
「다리가 부러지셨다면서요. 괜히 저 때문에 함께 가셔서 이런 험한 꼴을 당하신 것 같아 죄송해요.」
「아닙니다. 서인애 씨 잘못이 아니에요. 어쩌면 그 사람들은 어떤 음모를 숨기려고 우리 두 사람을 동시에 노렸는지도 모릅니다.」
「우리 두 사람은 애인을 먼저 하늘나라로 보낸 동지였었는데 이젠 끔찍한 사고까지 같이 당한 특별한 동지가 되었네요.」
서인애가 말한 ‘특별한 동지’라는 말이 김재진의 가슴에 스며든다. 이 여자도 나에게 어떤 감정을 느끼기 시작한 게 분명한 것 같다. 지금 내가 느끼는 감정과 똑같을까. 아니면 다를까. 김재진은 서인애의 눈빛을 지그시 바라본다. 서인애도 그의 눈빛을 피하지 않고 우아한 미소로 답해준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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