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서영태 장편소설- 무서운 마을



12월6일 오전10시 이연준이 서산경찰서 앞 다방에서 사람을 기다리고 있다. 그가 형사시절 후배였던 박정호 형사를 만나서 최근의 사건에 대해 정보를 알아 볼 속셈인 것이다.
이연준 기억에 의하면 박 형사는 수사 감각은 좀 부족했지만 선배가 일을 시키면 성실하게 일처리를 하는 스타일이었다. 너무 잘난 사람은 공무원 생활 오래 해먹지 못한다는 속설이 있듯이 잘나갔던 이연준은 옷을 벗게 됐고 박 형사는 꾸준하게 형사로 남아있게 되었다. 기다리면서 과거를 회상하던 이연준은 그렇게 생각하며 작은 위로를 삼고 있다. 10분을 기다리자 박 형사가 다방 문을 밀치고 들어와 이연준 앞에 앉는다.
「선배 때문에 잠깐 시간 냈으니까 빨리 말하세요.」
「박 형사, 너무 바쁜 거 아니야? 조금씩 쉬어가면서 해.
다른 게 아니고 어제 청수마을에서 납치미수사건 있잖아. 어떻게 진행되고 있어?」
「아 그거 3명 즉사하고 몇 명 다친 것 말이죠? 단순 교통사고라며 교통과로 넘긴다던데 요.」
「아니-. 단순 교통사고라고 누가 그래? 우리 편집장님이 청수마을 청년들한테 칼로 위협을 당했다니까! 그 마을 청년들이 편집장 차를 계속 뒤쫓다가 저수지 급커브 길에서 5톤 트 럭과 부딪힌 거야.」

이연준의 설명을 듣고 있던 박 형사도 오늘 오전의 상황을 떠올리며 이상하다는 생각을 한다. 청수마을 사건이 어제 접수되어 후배 형사가 신고자들을 방문조사 했었다.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주간충남>편집장과 동승한 여성은 상당히 구체적으로 진술했다고 한다. 마을 청년들이 두 사람을 칼로 위협하고 추격전까지 벌여 결국 교통사고까지 내고 말았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마을 청년들은 완강하게 단순교통사고라고 주장하며 죽은 3명의 동료는 앞차의 운전방해 때문에 피해를 보았다고 상반된 주장을 하고 있었다. 이 사건을 조사한 후배 형사를 박 형사가 오늘아침에 만나서 들은 이야기였다.
그러면서도 그 후배는 무척 혼란스럽다는 말을 던졌다. 자신이 조사한 사건인데 사건을 넘기라는 지시를 받았다는 것이다. 극히 이례적인 일이라 무척 당황하고 있었다.
열심히 사건내용에 대해 설명하던 이연준이 화제를 바꾼다.
「요즘 내가 취재하고 있는 건이 있는데 말이지. 청수마을이 이상한 것 같아.
약 30여명이 외떨어진 집에 매주 모여 어떤 음모를 꾸미는 것 같아.
정태섭 회장 가족 사건과도 어떤 연관성이 있는 거 같고.」
「아니 그 건은 외아들이 저지른 것으로 종결이 됐어요.
선배는 직감도 좋지만 너무 나가는 것 같아요.」

이연준을 돌려보내고 경찰서에 다시 들어간 박 형사는 잠시 생각에 잠긴다. 정태섭 회장 부부 살인사건을 신속하게 결론내고 종결한 것도 극히 이례적인 일이었지만 청수마을 사건을 조사하던 담당자를 하루 만에 바꾸는 것도 극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정황으로 봐서는 고위층에서 특별지시가 있었던 것 같이 뭐가 복잡하게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한편, 박정호 형사도 청수마을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정보가 있었다. 그 마을 이장이 박 형사의 외삼촌이라서 가깝게는 못 지내도 무슨 일이 있으면 의논 정도는 하고 사는 사이였다.
2년 전 어느 날 외삼촌이 박정호의 집으로 찾아왔다는 소식을 듣고 다른 약속을 미룬 채 집으로 퇴근했다. 외삼촌은 이것저것 집안사람들의 안부를 묻고 덕담을 나누더니 혹시 청수마을 괴 사건에 대해서 아느냐고 대뜸 물어봤다.
「내가 마을 이장인디 젊은이들이 한 3일은 없어졌다가 돌아온다니까.
도대체 영문을 모를 일이여.」
「당사자들에게 물어보셨어요?」
「벌써 20명 째인디 아무리 물어봐도 대답을 안혀.
어른들은 답답해서 무당을 불러놓고 큰 굿판을 열었는디 아무 소용이 없었지.」
「정식으로 경찰에 신고를 하라고 하세요. 그래야 수사를 해보죠.」
「사라졌다 돌아온 젊은이들이 절대로 반대하는디 워쩐댜?
이상하게도 그 젊은이들이 똘똘 뭉쳐서 나까지 이장일 못해 먹겠구먼.
자기들 말 안 들으면 오히려 협박까지 혀. 난 말로만 이장이지 실지로 우리 청수마을은 그 사람들이 마음대로 하는겨. 」
도대체 청수마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지난 2년 전 외삼촌의 이야기를 전해들은 후 박 형사는 나름대로 짬을 내서 청수마을에 대해 은밀한 내사를 진행해왔다.
외삼촌이 이 마을 이장인데 청년들에게 협박까지 당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흘려들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박 형사는 외삼촌이 알려준 명단을 가지고 3일간 사라졌었다는 청년들을 3명 만나보았다. 그런데 그들은 완강하게 그런 일이 없다고 부인했다. 어떤 청년은 멀리 여행을 갔다 왔는데 마을사람들이 오해를 한 것이라고 대답했다. 또 다른 청년은 술을 너무 많이 먹고 창고에서 깊이 잠들었는데 오해를 한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당사자들이 한 결 같이 부인하는데 더 이상의 조사는 무의미했다. 그러나 마을 청년들의 분위기가 이상하다는 점은 느낄 수 있었다. 한 청년의 집에서 방문조사를 진행하고 있는데 어떻게 연락이 되었는지 모르게 마을 청년 10여명이 몰려들었다. 그들은 박정호에게 어디서 왔는지, 아무 죄 없는 사람을 조사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누구에게 제보를 받았는지 등을 질문하며 박정호를 괴롭혔다.
청수마을 청년들은 무척 빠른 정보력을 가지고 오히려 박정호의 주변을 조사하고 다녔다. 그와 친한 친구며 학교 선후배를 접촉해서 박정호의 사는 집과 사족사항, 친척관계 등을 소상히 파악하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청수마을 이장 외삼촌이 급하게 박정호를 찾아왔다.
「이보게 조카. 더 이상 조사하지 말어! 마을청년들이 나와 조카의 관계를 수소문해서 알아 버렸단 말이여. 이러다가 나한테 무슨 일이 생길지 물러. 제발 없던 일로 혀.」
그 이후로 박정호는 조사를 계속 할 수 없었다. 2년 전 직접 겪은 마을청년들의 분위기는 아주 험악했다. 그들이 납치사건을 벌일 수도 없었을 거라는 의심이 든다. 이대로 놔뒀다간 더 큰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 그러나 박정호가 직접 나서게 되면 외삼촌이 위험해 질 수 있다. 또한, 그가 담당하는 사건도 아니다. 그는 일단 상황을 주시하기로 마음을 먹는다.

한편, 입원실에 모인 청수마을 청년 5명은 ‘그분’의 지시를 받은 뒤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 먼저 청년회장 민주혁이 입을 연다.
「그분이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는 두 사람을 감시하고 있어야 돼.
그리고 그 남자가 누군지 알아내야 돼.」
「그래. 두 명은 그들 위치를 파악해서 감시하고, 두 명은 그 남자가 누군지 알아봐.」
두 청년이 신속하게 병원 1층 안내실에 내려가서 여직원에게 묻는다.
「어제 청수마을에서 교통사고로 입원한 두 사람 있죠?
병문안 좀 왔는데 입원실이 어딥니까?」
잠시 컴퓨터 자판을 두들기던 여직원이 친절하게 입원실을 알려준다.
두 사람의 입원실을 알아낸 청년들은 입원실 앞에 부쳐진 명패를 보고 두 사람이 김재진과 서인애라는 것을 알아낸다. 다른 두 청년은 시내로 나가서 자동차정비공장을 차례차례 방문한다. 조사한 바에 의하면 어제 청수마을 앞에서 사고 난 차량이 멀리가지 않고 시내 정비공장으로 들어왔을 것이다. 두 청년이 세군데 공장을 조사한 끝에 사고차량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 승용차는 앞쪽 엔진 부위까지 심하게 뒤틀려 있었고 트렁크는 절반이 오그라진 상태였다. 정비공장에서 알려준 정보에 의하면 이 차를 운전했던 사람은 <주간충남>편집장 김재진이었다.

청년회장 민주혁을 통해 서인애와 같이 왔던 사람이 <주간충남>편집장 김재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최현범은 살짝 놀라는 표정을 짓는다.
「끈질긴 기자 놈들 같으니라구. 내 비밀의 방을 알아낸 두 기자를 간신히 세뇌시켜놨는데 또 다시 한 놈이 내게 도전을 하다니. 그 편집장 놈 때문에 서인애를 다 잡았다가 놓치고 말았잖아. 제 발로 찾아온 기회를 그놈 때문에 날려버린 거라구.」
최현범의 눈에는 분노의 불길에 또다시 타오른다. 먹잇감을 놓친 포식자의 으르렁 거리는 포효가 메아리치는 듯하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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