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서영태 장편소설 <무서운 마을>



12월6일 오후8시 김재진이 입원해 있는 병실에 취재부장 이정수가 들어선다.
어제 편집장이 입원했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신문사 기자들은 모두 병문안을 왔었다. 그러나 이정수와 신미연은 오지 않아서 섭섭한 마음이 많았던 김재진이다. 그 두 사람은 특별히 김재진이 채용한 사람들이다. 대학 후배들이라서 가장 믿을 수 있는 기자들이었다. 그러나 실종사건을 겪은 후 두 사람의 행동이 이상해졌다. 선배인 김재진과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회의시간에도 소극적인 행동만 했다. 처음에는 충격을 받아서 그러리라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나도 이상한 행동은 계속되고 있다. 그런데 지금 들어온 이정수는 활짝 웃고 있다. 며칠 전의 우중충하던 얼굴과는 많이 달라 보인다. 한 손에 큼지막한 과일바구니를 들고 있다가 한쪽 공간에 내려놓는다.
「편집장님, 너무 늦어서 죄송합니다. 바쁜 취재 건이 있어서 이렇게 늦게 왔습니다.」
「그래. 괜찮아. 이렇게 와준 것만 해도 고마워.」

정태섭 회장 사건이 발생하기 전까지만 해도 이정수와 신미연은 <주간충남>의 핵심적인 취재기자였다. 김재진이 그들을 특별히 신임했기 때문에 다른 기자들의 질투를 받기까지 했다. 두 사람은 가장 어려운 취재 건을 서슴없이 맡으며 김재진에게 힘을 실어주었다.
김재진은 아무리 신문사 운영이 어려워도 두 후배들만큼은 보너스를 줄 정도로 대우도 특별했다. 그렇게 가장 믿을 수 있는 후배들이었기에 정태섭 회장 사건 같은 큰 취재를 맡긴 것이었는데 결과적으로 실종사건까지 터진 것이다. 선배로서 김재진은 두 후배에게 미안한 마음도 있다. 그들에게 문제가 생긴 것은 책임을 맡긴 자신의 책임도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김재진의 건강상태를 묻던 이정수가 선배의 눈치를 보면서 말을 꺼낸다.
「제가 요즘 취재하다가 만난 분인데요. 저희 신문사 운영이 어려운 걸 얘기했더니 그분이 후원금을 내겠다고 해서요.」
「그래? 어떤 일을 하시는 분인데? 자세히 좀 말해봐.」

실제로 김재진이 운영하는 <주간충남>은 겨우 운영자금을 마련하여 그달그달 넘기는 상태였다. 인쇄비는 세 달치가 밀려있고 사무실세도 여섯 달치가 밀려서 며칠에 한 번씩 독촉전화를 받는 상태였다.
그런데 알고 보면 <주간충남>의 형편은 다른 신문사에 비해 나은 편이었다. 다른 신문사의 경우는 인건비도 지급하지 못해서 기자들이 자주 바뀌기도 하고 사주가 빚 때문에 고민하다가 물주를 만나 아예 신문사를 팔아버리는 일도 자주 발생했다. 사실상 부도난 신문사를 인수한 사주들은 자신들의 명예나 사업목적 때문에 뛰어드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관공서나 공기업과 거래하는 사업주의 경우 기자들의 출입이 도움이 된다고 판단해서 적자나는 신문사를 덜컥 인수하기도 했다. 그런데 묘하게도 한 번 적자나는 신문사는 3년이 지나도 흑자로 돌아서지 못했다. 이에 견디지 못한 사주가 다시 다른 사업주에게 팔아넘기는 식의 잘못된 운영이 되풀이되고 있었다.
7년 전 <주간충남>의 대표도 그런 부류의 사주였다. 그러나 그 대표의 경우엔 자신의 주 사업이 부도나는 바람에 잠적해버린 상태였기 때문에 신문사를 넘길 사업주를 구할 기회조차 없었다. 그 당시에는 꼼짝없이 간판을 내리고 기자들은 다 실업자가 될 처지였다. 결국 김재진이 총대를 메는 수밖에 없었다.
김재진이 새롭게 인수한 후 죽을 고비를 넘겨가며 운영해온 현재의 <주간충남>도 크게 흑자 나는 구조는 아니었다. 그나마 간간히 운영할 수 있는 정도에 불과했다. 이 때문에 후원금을 내겠다는 사람을 만나면 무척 반가웠다.

잠시 편집장의 얼굴을 빤히 보던 이정수가 대답한다.
「편집장님도 얼굴을 아시는 분이에요. 청수마을 최현범씨라구요.」
「뭐? 그 정태섭 회장 집에서 조경일 하시던 노인 말이야?」
이정수의 대답을 듣던 김재진은 크게 놀란다. 그런 시골 노인네가 무슨 돈이 있어서 후원금을 낸단 말인가. 최현범은 청수마을 청년들과도 친밀한 관계인 것 같고 이번 사건에도 관련이 있을 것으로 의심이 가는 인물이다. 신문사 운영이 아무리 어렵기는 하지만 그런 사람에게 후원금을 받았다가 탈이 날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김재진은 모르는 체하며 이정수에게 말을 건넨다.
「그래. 그 최현범씨가 얼마 정도 후원하신데?」
「5천만 원을 후원하시겠다고 말씀하셨어요. 평생 모아둔 재산이 상당한 모양이더라구요.」
보통 신문사에 후원한다는 분들은 약 백만 원 정도 내에서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사업목적으로 후원하거나 아니면 인맥으로 후원하기도 하고 순수한 목적의 후원은 거의 없다고 봐야한다. 그런데 최현범이 제안한 액수는 전혀 받아본 적이 없는 거금이다. 순간적으로 김재진의 마음이 흔들린다. 어려운 운영여건을 생각하면 받아야겠고 청수마을 사건을 생각하면 받을 수 없는 금액인 것이다. 김재진은 고민을 해보겠다며 일단 이정수를 돌려보낸다.

침대에 누워 한 시간 동안 천장을 바라보며 고민하던 김재진은 갑자기 휠체어를 타고 나가 서인애의 입원실을 노크한다. 밤 10시가 조금 안 된 시각인데도 그녀는 흔쾌히 문을 열어준다.
「아직 잠 잘 준비 안하세요?」
「글쎄요. 잠이 안 올 것 같네요. 평소 읽고 싶었던 책을 읽고 있어요.」
「우리 바람 좀 쐬러 나갈까요?」
두 사람은 1층 현관문을 빠져나와 병원에 있는 산책길을 따라간다. 하늘에서는 별이 맑게 빛나고 있다.
「인애 씨를 만날수록 오래전부터 알고지낸 사람처럼 느껴져요.」
「편집장님이 워낙 편하게 대해주시니 제가 더 좋은걸요.」
「다름이 아니라 한 가지 고민이 생겼어요. 이건 인애 씨와도 관련이 있어서 꼭 조언을 듣 고 싶어요. 조금 전에 우리 신문사 기자가 와서 하는 말이 5천만 원을 후원해 주겠다는 사람이 나타났대요. 그렇게 고마운 분이 누구시냐고 물어봤죠. 그 사람이 바로 최현범이 라고 정태섭 회장 저택 정원일 하는 노인이라는 거예요.」
「뭐라구요? 아니 그런 시골 노인이 무슨 돈이 있다고 그렇게 큰돈을 후원한다는 거죠?」
「제 생각도 인애 씨와 같아요. 그런데 그 노인네가 평생 모은 재산이 엄청 많은 숨겨진 알부자래요. 저는 운영자 입장에서 한 시간째 고민하다가 인애 씨에게 조언을 구하러 왔어요.」
「편집장님이 결정하실 문제지만 그 노인에게 분명히 흑심이 있어 보였어요.
그렇게 큰돈을 선뜻 준다는 것은 어떤 음모가 숨어있을 거예요.」
「인애씨 말을 듣고 보니 그런 것 같네요. 난 인애 씨만 괜찮다면 받으려고 했어요. 그런 데 큰 후환이 있을 것 같아요.」
12월 초겨울의 날씨가 쌀쌀했지만 휠체어 탄 김재진과 팔에 기브스를 한 서인애의 데이트는 무르익어 간다.

밤늦게 병실에 돌아온 김재진은 이정수에게 전화해서 후원금을 정중히 사양한다는 말을 전하라고 한다. 큰돈에 더 이상 마음이 흔들리기 전에 신속하게 결정을 내려버린 것이다. 전화를 끊고도 그의 마음속에는 커다란 미련이 남는다.
김재진이 후원금을 거절했다는 소식은 최현범에게 즉각적으로 전달된다. 이정수의 전화를 받는 최현범은 편집장 김재진이 만만한 존재가 아님을 깨닫게 된다. 지금 최현범은 비밀의 방에 놓인 커다랗고 호사스러운 이태리제 침대에 누워서 전화를 받고 있다. 그의 옆에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신미연이 품에 안겨 잠들어 있다. 그는 방금 전까지 악마의 포로가 된 신미연을 마음대로 농락했었다. 신경독성물질에 의해 뇌 속 깊이까지 세뇌되어버린 신미연은 저항 한 번 해보지 못하고 악마를 몸속 깊숙이 받아들였다. 태어나서 남자를 한 번도 받아들이지 않았던 신미연은 고통에 몸부림쳤지만 악마는 자신의 탐욕을 채우느라 처녀의 고통을 돌아보지 않았다. 그녀의 순결을 빼앗는 즐거움에 빠진 악마는 그녀의 고통까지도 즐겼던 것이다. 악마로 변한 최현범은 거액의 후원금을 주겠다는 제안까지 거절한 김재진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궁리한다. 그는 눈을 감은 신미연에게 말한다.
「그깟 신문사의 돈 줄을 끊어버리는 거야. 운영 형편이 어렵다고 들었는데 그 녀석이 얼마 나 버티겠어? 결국 더 이상 저항해도 어떻게 할 방법이 없으면 손을 들겠지.
그러면 내가 그 신문사를 인수해 버릴 거야. 제 아무리 강한 녀석이라도 돈 앞에서는 버틸 수 없을 거야!」



다음호에 계속 

저작권자 © 충남인터넷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