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소설] 충무공 정충신 장군

 

"지난 2월7일에 내려주신 글월에 편안하시다니 위안이 되었습니다. 평안감사가 보고한 가운데 박난영이 거느린 오랑캐 통역 김봉산의 보고에 의하면 한인을 잡으려 하였지만 거절당하고 이제 와서 가도를 공격하자니 큰 일이 생길 것이라고 한 말들은 머리와 끝을 알 수 없으니 이 모두 무엇을 뜻하는 것입니까? 다음 서신에서 상세히 알려두시기 바랍니다. 며칠 밤 태풍과 큰비에도 다행히 군선의 돛대가 무사함은 모두 사또의 지극한 정성과 염려하여 주신 덕분인가 합니다."

"태풍이 사라진 뒤라도 음산한 구름이 하늘 가득히 머물러 비가 개일 것 같지 않으니 두려운 마음뿐입니다. 황해감사의 보고에 의하면 호남지방의 배가 지난 초사일 말도에서 바람을 타고 떠났는데 오후에 역풍을 만나 아직 연평도를 지나지 못했다 하니 이 배들이 돌아와 정박하는 날을 예측할 수 없으니 걱정입니다. 팔천칠백 명의 군병을 먹일 식량도 이 달 그믐이면 동이 나는데 일찌기 때를 맞추어 군량 수송선이 도착한다면 칠월 까지는 군사를 먹일 수 있지만 방금 관향사가 적에게 잡혀가서 주관할 사람이 없습니다. 일마다 잘못되니 민망하기 그지 없습니다."하였다.

2월 12일 오후 4시경 충신은 안주를 떠나 숙천에 당도하여 쉬었다. 이번 행차는 체찰사 김시양과의 연명 상소에 대한 상감의 처분을 기다리기 위한 평양행이었다. 13일 평야에 이르러 조보를 받아보았다.

조보에 상감께서 우리들의 연명 상소를 보시고 진노하여 말씀하시기를 "김시양, 정충신은 군인으로서 자기 본분을 잃을까 두렵다. 저희들 마음대로 나라의 사신을 머물게 하고 조정을 지휘하려 하니 이같은 일을 옛날부터 없었던 일이다. 이들의 목을 베어 여러 사람을 위해 경계하지 않는다면 윤리 도덕의 질서를 바로 잡지 못할 것이다. 정충신 김시양을 효수하여 백성에게 경계를 삼는 것이 타당한지 아닌지를 급히 의논하여 보고하도록 하라."고 비변사에 명하였다.

이에 대하여 비변사에서 여러 대신들이 의논하여 복계하기를 "김시양과 정충신은 매우 큰 죄를 지었으므로 목을 베어 대중에게 보이며 경계하여도 잘못이 없겠으나 다만 전쟁시에 싸움터에서 군율을 어긴 것과는 비할 바가 아니니 우선 잡아다 국문한 다음에 그 죄를 규정하소서. 정충신은 전쟁하는 장수의 신분으로서 목숨을 버려 순국할 의리는 생각하지 않고 감히 소를 올렸으니 그 죄가 더욱 중합니다. 잡아온 후 경중을 가려 처단하고 그 두 원수의 후임을 바로 차출하여 보내게 하소서."하니 상감은 올린 글 내용대로 시행하라고 하였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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