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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화] 결 투
[연재소설] 서영태 장편소설 <무서운 마을>
[111호] 2011년 08월 10일 (수) 10:34:03 서영태 기자 ssytt00@naver.com

12월8일 새벽2시 4차선도로변 한빛가구점 간판이 마주보이는 길 건너편에 차량들이 인도를 따라 일렬로 주차되어있다. 예전 같지 않게 이곳도 차량통행이 증가하면서 거주인구가 늘어났고 주차장이 부족해진 상황이 되어 야간에는 도로변에 주차된 차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최근에는 수도권 공장들이 땅값이 싸다는 이유 때문에 이주하고 있어서 원룸촌이 늘었다. 대도시에 가족을 남겨둔 기러기 아빠들이 많아지면서 원룸이 인기를 끌고 있기 때문에 주차문제가 더 심각해진 것이다.

주차된 차량들 중 한 승용차 안에서 두 사람이 길 건너편을 주시하고 있다. 김재진과 이연준이다. 광고주의 가게가 협박을 당한 것에 대해 심각하게 대책을 논의한 두 사람은 아직 협박당하지 않는 광고주를 확인하고 새벽시간에 잠복하기로 했다. 김재진은 한쪽자리에 깁스를 한 채 이연준과 함께 왔다. 불편한 몸이었지만 심각한 상황이기에 작은 보탬이나마 되고 싶은 것이다. 이른 새벽시간이라서 아직 신문배달꾼도 나오지 않았다. 조금 전에는 술 취한 아저씨가 구슬픈 트로트를 흥얼거리며 차 앞을 지나갔다. 숨죽인 채 한빛가구점을 지켜보고 있는 사이에 30여 분의 시간이 지난다. 가끔 차들이 4차선 도로를 빠른 속도로 지나간다. 그런데 1톤 트럭 한 대가 한빛가구점을 천천히 지나치더니 100미터 전방에 정차한다. 두 명의 젊은이들이 차에서 내려 빠른 걸음으로 가구점 쪽으로 향한다. 이연준이 김재진의 팔을 잡는다. 두 눈은 계속 두 청년을 주시하고 있다.

이 때 이연준이 운전석 문을 살짝 열고 몸을 숙이더니 청년들 방향으로 조심스럽게 다가간다. 김재진도 차문을 살짝 열고 목발을 짚고서 조심스럽게 이연준의 뒤를 따른다. 한빛가구점 바로 앞까지 빠르게 다가선 두 청년은 손에 들고 있던 물체를 가구점 유리창에 힘차게 던진다. 대형 유리창이 와장창 깨지는 소리가 들리더니 두 청년이 몸을 돌려 트럭 방향으로 뛰어가려 한다. 이 순간을 놓치지 않은 이연준이 손에 들고 있던 몽둥이로 한 청년의 다리를 가격한다. 타격을 입은 청년은 더 이상 지탱하지 못하고 아스팔트에 쓰러진다. 이 상황을 지켜보던 다른 청년이 이연준에게 달려들어 순간적으로 그의 턱을 주먹으로 가격한다. 갑자기 턱을 맞은 이연준도 아스팔트에 쓰러진다.
그 청년은 쓰러진 이연준이 끝까지 붙잡고 있던 몽둥이를 발길로 차버린다. 이제 이연준은 무방비로 누워 당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다. 50대의 이연준이 아무 무기도 없이 청년을 당해내기는 어려워 보인다. 이때 목발을 짚고 살금살금 다가간 김재진이 그 청년의 머리를 향해 목발로 사정없이 내려친다. 청년은 아무 대책 없이 뒤통수를 정통으로 맞은 후 몸을 부르르 떨더니 고꾸라져 버린다. 그 사이 몽둥이로 다리를 가격 당한 청년이 절뚝거리며 10여 미터 앞에서 뛰기 시작한다. 지켜보던 김재진이 다시 목발을 짚고 힘겹게 그 청년의 뒤를 쫓는다. 그러나 앞서가던 청년과의 거리가 점점 멀어지더니 타고 온 차 운전석으로 오르는 모습이 목격된다. 1톤 트럭은 험한 굉음을 내고 저 멀리 사라져간다.
김재진과 이연준은 그제 서야 정신을 차리고 112로 전화한다. 3분 만에 가장 가까운 지구대에서 순찰차가 출동한다. 간단하게 두 사람에게서 설명을 들은 경찰관들은 현장사진을 찍고 쓰러져 있는 청년을 순찰차에 태워 지구대로 향한다. 두 사람도 순찰차를 따라 지구대로 차를 몬다.

지구대에 도착해서 정신을 차린 청년의 몸에서는 신분증이 나온다. 청수마을에 사는 36세의 가순석이다. 그는 지난 번 납치사건 때는 보이지 않던 청년인데 새로 가담한 것으로 보인다. 경찰관들이 가순석에게 도망간 청년이 누군지 여러 번 물어도 전혀 대답을 하지 않는다. 왜 광고주를 협박하고 다녔는지 물어도 전혀 대답이 없다. 애초부터 잡힐 경우에는 묵비권을 행사하도록 교육 받은 사람 같아 보인다. 지금 그들은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조직 폭력배보다 더 조직적이고 치밀한 범행을 하고 있는 것이다. 가순석은 도망간 청년에 대해서 끝까지 진술을 거부한다. 그리고 그는 현행범으로 체포되어 경찰서 유치장에 감금된다.

이날 새벽4시 청수마을 청년회 사무실에서는 아직 날이 밝지 않았는데도 대낮처럼 형광등이 밝다. 방금 전 도착한 한 청년이 차에서 내리더니 가순석이 잡힌 사실을 청년들에게 알린다. 청년회장 민주혁은 당황한다. 저번 납치시도 때도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아 청년들을 잃었는데 이번에는 가순석이 경찰에 잡힌 것이다.

민주혁은 지난 3년 동안 ‘그분’께서 맡긴 명령을 성실히 수행해왔다. 세상의 어떤 신보다도 더 큰 절대적 공포의 힘을 가진 ‘그분’이 명령한 것이라면 자신의 생명조차 아깝지 않았다. 그래서 ‘그분’을 영접하도록 다른 청년들을 한명 한명 꾀어내 추종자로 만들어왔던 것이다.
이 청수마을은 이제 ‘그분’의 왕국이었으며 전 세상을 ‘그분’의 왕국으로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민주혁의 사명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런데<주간충남> 편집장과 한 여성을 납치하려던 계획이 무산되더니 광고주 협박을 진행하던 도중 후배 청년이 경찰에 붙잡히는 일까지 생겼다. 일이 크게 잘못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회장님, 이 모든 일이 <주간충남> 편집장이 방해해서 잘못된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 놈을 쥐도 새도 모르게 없애버릴까요?」
「‘그분’께서는 일단 대기하라고 말씀하셨다. 큰일을 이루기 위해 인내가 필요하다는 말씀이 다. 붙잡힌 가순석에게는 내가 미리 입단속을 잘해놨으니까 ‘그분’의 명령이 있을 때까지 기다려보자.」

이날 오전10시 <주간충남> 광고주 협박사건을 배당 받은 박정호 형사는 피해자 측 김재진과 이연준을 경찰서 형사1계로 불러 진술을 듣고 있다.
「두 분을 요즘 자주 보게 되는군요. 신문사에 너무 사건이 많은 것 아닙니까?」
「이 사건들이 모두 청수마을과 연관되어 있어요. 그 마을청년들이 저를 납치하려다 실패 하자 이번에는 신문사 광고주를 협박해서 돈줄을 자르려고 했던 거예요.」
김재진의 대답을 듣고 있던 박 형사가 말한다.
「납치사건은 제 담당이 아니라서 잘 모르겠구요. 신문사 측에서 청수마을 사람들과 혹시 원한 관계나 적이 될 만한 일은 하신 적 있었습니까.」
「전혀 그런 게 없었어요. 단지 정 회장 가족사건 때 두 기자가 취재하러 그 마을에 간 적 밖에 없어요.」
두 사람은 정 회장 사건과 광고주 협박사건까지 한 줄기로 연결되어 있음을 진술한다. 청수마을과 <주간충남>과의 전면전이 벌어졌다는 말도 덧붙인다.
박정호는 이미 청수마을에 대한 정보를 어느 정도 확보하고 있다. 이미 외삼촌인 마을 이장의 제보로 2년 전부터 내사를 벌여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보일 뿐 증거가 부족하다. 김재진과 이연준이 청수마을 청년들의 조직적인 가담을 주장하고 있지만 이미 잡힌 마을청년 가순석이 입을 열지 않고 있다. 심지어는 단독적으로 광고주들을 협박했다며 혼자 덮어 쓸 자세까지 보이고 있다. 더 이상의 확대조사가 어려운 상황이다.

경찰서를 나온 두 사람은 <주간충남>사무실로 들어간다. 사무국장 진현미가 울상을 짓고 있다. 오늘 새벽에도 협박을 받은 광고주들이 광고 중단 요청을 해 온 것이다. 지금까지 30개의 고정광고 중 중단된 건수는 21개나 됐다. 이런 상태에서는 운영비 때문에 한 달도 버티기 어려워진다. 당장 기자들 인건비 주는 게 어려워진다. 다른 신문사에 비해서 그래도 <주간충남>은 인건비는 밀리지 않고 운영해온 자부심이 있다. 보통 2~3개월씩 인건비가 밀려왔던 타 신문사 기자들이 <주간충남>기자들을 부러워하기도 했다. 그랬던 자부심도 무너질 위기에 처했다.
「편집장님, 광고주들한테 협박하던 작자가 잡혔다고 설명하고 애원도 해봤는데 아무 소용 이 없었어요. 다들 하는 말이 너무 불안해서 어쩔 수 없다는 이야기를 해요.」
「협박하던 놈도 잡혔으니 조금 기다려 봅시다. 분명히 살 길이 열릴 것입니다. 지금은 참 고 기다릴 때입니다.」
김재진의 말에는 힘이 느껴진다. 자신이 10년간 몸담아오며 키워낸 <주간충남>을 뺏길 수 없다는 결의가 느껴진다. 그렇다고 문제가 풀리는 것은 아니다. 불안해서 광고를 중단 한 광고주들의 마음을 돌릴 묘안이 필요하다. 이대로 당할 수만은 없는 것이다.
「이번 사건은 우리 신문사에 큰 위기를 몰고 왔습니다.
이 위기를 극복해 내자면 우리 모두의 단결이 필요합니다. 다 같이 방법을 찾아봅시다. 이대로 무너질 수는 없습니다. 최선을 다해 봅시다.」
편집장 김재진의 말에 모두 침묵으로 동의한다. 그러나 이정수와 신미연의 표정은 굳어 있다. 뭔가 다른 생각에 빠져있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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