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서영태 장편소설 <무서운 마을>



12월14일 오후5시 <주간충남>사무실은 모처럼 평온한 오후를 맞이한다.
서인애가 구해준 투자자가 1억 원을 신문사 통장에 이체하자 바로 인쇄비 미수금부터 시작해서 당장 급한 외상값을 순서대로 결제했다. 이제 한동안은 미수금 독촉전화에 시달리지 않아도 될 것이다. 편집장 자리에 앉아서 기자들이 올린 기사를 체크하던 김재진도 오랜만에 편안한 마음이 된다. 그 전에는 각종 독촉 때문에 일손이 잡히지 않았었다. 서인애의 아버지가 소개해 준 투자자는 서울에서 제법 큰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건실한 사업가라고 했다. 그분 고향이 충남 서산인데 어릴 적 부모를 따라 서울로 올라가 초등학교 시절 기억밖에는 없다고 했다. 서인애의 아버지는 부장 판사까지 지내고 서울에서 변호사로 일하는 중인데 민사사건 때문에 그 투자자를 알게 되었고 많은 도움을 주었던 사람이었다. 마침 딸이 사정을 이야기하고 간절히 부탁하는 바람에 서산이 고향인 사업가가 생각나서 자세한 이야기를 했더니 아무 조건도 없이 선뜻 투자하겠다며 나선 것이다. 일이 이렇게 급진전 된 데에는 서인애 아버지의 영향력이 크게 작용했다. 1억의 투자금은 영세한 <주간충남>에는 아주 큰 힘이 될 것이다. 절약하며 운영의 기술을 발휘한다면 적어도 1년은 버틸 수 있을 것 같다. 그 사이에 서서히 고정광고를 유치하고 별도로 소액 후원자를 모집한다면 틀림없이 다시 일어 설 수 있을 것이다. 김재진은 이제 다시 자신감을 되찾는다. 꼭 튼튼한 신문사를 만들어 보일 것을 다짐한다.

이날 오후 6시 청수마을 입구 도로변 한정식 집에 한 무리의 젊은이들이 들어선다. 별도로 마련된 넓은 방안에는 맨 상석에 최현범이 양반자세로 앉아서 눈을 감고 있다. 그 옆으로 신미연과 이정수가 무릎을 꿇고 있고, 상을 빙 둘러서 마을 청년 10여명이 무릎을 꿇고 있다. 그 어떤 조직보다 더욱 긴장감이 넘쳐흐르고 날아가는 파리마저 얼려버릴 정도의 차가운 기운이 감돈다. 청년회장 민주혁이 먼저 입을 연다.
「주인님, 이 모든 게 편집장 김재진의 방해로 무산 되었습니다.
그 놈을 쥐도 새도 모르게 처리하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저희 청년들이 김재진과 서인애를 밀착 감시하고 있습니다.」
민주혁의 말에 눈을 뜬 최현범이 말을 잇는다.
「아직도 그 놈을 만만하게 보고 있구나. 그 놈이 한 일을 보면 결코 만만하게 볼 작자가 아니야! 오히려 우리 측 피해만 늘어나고 있어. 방법을 바꿔야해. 차라리 경쟁 신문사를 인수해서 정면 대결을 하는 거야. 어마어마한 물량공세로 <주간충남>을 없애버리는 거 지.」
이제 ‘그분’의 새로운 명령이 떨어졌다. ‘그분’의 추종자들은 새로운 명령에 신속하게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것이 절대적인 힘을 가진 ‘그분’에 대한 도리이며 자신의 사명이다. 치밀한 최현범은 일이 잘못되었을 때를 대비해서 <주간충남>에 밀려 영향력 2등을 달리고 있던 <주간서해>에 접촉했었던 것이다.

며칠 전에 김정철 시장실에서 그쪽 대표를 불러들여 인수의사를 밝힌 것이다. <주간서해> 김 대표는 인쇄업을 하고 있었는데 시청의 대부분 인쇄물을 이곳에서 수주하고 있었다. 신문사는 적자였지만 대신 사업적인 도움이 있었기에 붙들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예전 같지 않았다. 계속해서 늘어가는 신문사 적자가 너무 부담스러워졌다. 이런 형편에 새로운 물주가 나선 것이다. 그것도 적자나는 영세한 주간지에 5억이란 인수대금을 준다는 제안은 황홀하기까지 했다. 한 푼도 못 받더라도 부채를 책임지는 작자가 있으면 넘겨버릴 속셈이었다. 새로운 물주는 구세주와도 같았다.

‘그분’의 명령을 받은 이정수와 신미연이 <주간서해>사무실로 찾아가 대표를 만난다. 양쪽 사이에는 이미 어느 정도 대화가 진행된 상태라서 일사천리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두 분 기자님에 대한 말은 많이 들어 알고 있어요.
그런데 새로 대표를 맡으실 최현범 씨는 어떤 분이죠?」
「그분은 세상의 그 어떤 존재보다도 위대하신분입니다.
우리들에게는 절대적인 존재입니다. 우리 두 사람은 그분을 위해 목숨까지 바칠겁니 다.」
결연에 찬 두 기자의 대답을 듣고 김 대표는 깜짝 놀란다. 꼭 북한사람들이 수령님을 위해 목숨 바쳐 싸우겠다는 것과 같은 표현을 쓰고 있는 것이다. 도대체 최현범이란 사람이 어떻게 했기에 두 기자가 이처럼 사로잡혔단 말인가. 생각할수록 이해할 수 없는 일로 여겨진다.

바로 다음 날 최현범과 김 대표 사이에 <주간서해>인계인수계약서가 체결된다. 양측의 이해가 맞아 떨어졌기 때문에 속전속결로 일이 진행된다. 이날도 최현범을 수행하는 청수마을 청년들이 15억이 든 사과 박스를 들고 와 신문사 운영진에게 10억, 김 대표에게 5억을 각각 건넨다. 이제 최현범은 자신의 이름을 세상에 드러내게 된다. 15년 동안 은밀하게 추종자들을 조종하는 데에 만족하지 못한 그가 언론사 대표로서 화려하게 데뷔하게 된 것이다. 이제는 공식적으로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신문사를 도구로 사용할 수 있게 된다. 더욱 많은 권력자들을 최현범의 추종자로 끌어들여서 지역사회를 완전히 장악할 꿈에 젖는다. 이날부터 <주간서해> 경영권을 거머쥔 최현범은 당장 이정수를 편집장, 신미연을 취재부장에 앉혀 자신의 수족으로 사용하기로 한다. 이제 그는 언론사 하나를 완전히 장악했다. 지역사회를 장악할 도구를 얻은 것이다. 그런데 가장 껄끄러운 것은 <주간충남>이다. 이제는 <주간서해>를 통해 전면전이 불가피하다.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방해세력을 완전히 제압해야 한다. 최현범은 새로운 욕망에 불타고 있다.

다음 날 15만 명밖에 안 되는 시골도시 지역사회에는 최현범이 <주간서해>의 새로운 사주가 됐다는 소문이 쫙 퍼진다. 또한 <주간충남> 이정수, 신미연기자가 편집장과 결별하고 <주간서해>로 자리를 옮겼다는 소문까지 더해진다. 이 소문은 당연히 이연준에게 포착됐고 입원중인 김재진에게 까지 들어간다. 병실에 찾아와 이 소식을 알린 이연준이 말을 잇는다.
「이정수와 신미연이 작정하고 우리를 배신한 겁니다.
그 두 사람은 진작부터 청수마을 사람들과 한 패였던 것 같습니다.
우리 신문사를 차지하려는 음모가 무산되자 <주간서해>를 차지한 겁니다.」
「나도 동감입니다. 그들은 치밀하게 언론사를 차지하기 위해 음모를 꾸며왔어요.
무엇보다 나의 대학후배였던 이정수와 신미연이 배신한 것에 마음 아픕니다. 이제는 그들 과 적이 되어 싸울 수밖에 없어요. 그들은 분명히 우리에게 도전을 해올 겁니다. 우리가 바짝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큰일 날 수 있습니다.」

이제 두 언론사간 전면전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지역사회에서는 밥그릇 싸움쯤으로 비쳐질 것이다. 그러나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사악한 욕망에 사로잡혀 언론을 이용하려는 세력을 막아내지 않으면 지역사회가 위험에 빠진다. 생각에 빠진 김재진은 사악한 세력으로부터 지역사회를 지켜야 하는 부담감을 느끼고 있다. 이 싸움은 단순한 언론사간 경쟁이 아닐 것이다. 그 사악한 세력은 사용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할 것이다. 잘못하다간 김재진이 가장 큰 피해자가 될 수 있다. 그들의 도발을 어떡하든 막아내야 한다. 김재진의 생각이 여기까지 이르자 소름이 돋는다.

이날 오후 화창한 햇살이 내리쬐는 벤치에 앉아 김재진이 서인애에게 며칠 사이에 일어났던 모든 소식을 전해준다.
「그런 나쁜 사람들이 언론사를 장악했으니 큰일이네요.
앞으로 큰 싸움이 일어날 것 같아요. 절대 지시면 안돼요!」
「인애 씨가 이렇게 저한테 힘을 주시는데 질수야 없죠.
어떡하든 그들의 사악한 음모를 막아낼 겁니다. 우리 <주간충남>기자들이 똘똘 뭉쳐서 그들의 정체를 밝혀낼 겁니다.」
진실을 밝혀 독자에게 전달하는 것, 그것이 신문의 힘이다. 김재진은 그들의 정체를 밝혀 꼭 진실을 세상에 드러내리라 마음먹는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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