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서영태 장편소설 <무서운 마을>


12월16일 새벽3시20분 승용차 한 대가 서산중앙병원 1층 현관 앞에 멈춰선다. 이연준이 운전석에 앉아 시동을 걸어 놓은 채로 현관안쪽을 주시하고 있다. 1분도 넘지 않아 목발을 짚은 김재진과 팔에 깁스한 서인애가 빠른 걸음으로 현관을 빠져나와 대기하고 있던 이연준의 차에 올라탄다. 굉음과 함께 빠져나온 차는 톨게이트를 지나 빠른 속도로 서해안 고속도로에 진입한다.

두 사람이 빠져나올 때 복도 비상계단 쪽에 청년 한명이 졸고 있었다. 그는 청수마을에서 보낸 청년으로 두 사람의 동태를 감시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그들은 오전오후로 나눠 사람을 바꿔가며 감시의 눈을 멈추지 않았다. 특히 그들은 서인애에 대해서는 집중감시를 하고 있었다. 그녀에 대한 감시가 조금도 풀어지지 않는 걸 보면 또 다시 납치사건을 벌일 가능성이 높아보였다. 이를 며칠간 지켜본 김재진은 서인애에게 속삭였다.
「아무래도 저들이 머지않아 인애 씨를 또 다시 납치하려 할지 몰라요. 좀처럼 감시망을 풀 지 않고 있어요. 분명히 무슨 일을 저지를 것 같아요.」
「그럼 어떻게 하죠? 이대로 있을 수는 없잖아요. 경찰을 부르는 게 어때요?」
「그렇다고 특별한 증거가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그것도 곤란해요. 저들의 눈을 피해 탈 출 해야 될 것 같아요.」
「편집장님, 무서워요. 어디로 탈출 한단 말이에요.」
「제 친구가 서울에서 개인병원을 운영하고 있어요. 거기라면 인애 씨를 보호해 줄 거예요. 저만 믿고 따라오시면 돼요.」
어젯밤에 두 사람은 탈출계획을 짰다. 그리고 이연준에게 오늘 새벽에 승용차를 병원 앞에 대기하라고 말해 둔 것이다. 세 사람이 탄 차는 새벽안개를 뚫고 서해대교를 넘어 행담도 휴게소에 들른다. 추운 날씨를 녹여줄 커피 세잔을 뽑은 이연준이 김재진과 신미연에게 건네준다.
「편집장님, 커피자판기 옆에 멈춘 승용차 번호가 상당히 낯익습니다. 청수마을 취재를 하 면서 알게 됐는데 그 마을에서 봤던 차인 것 같습니다.」

청년회장 민주혁은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이중으로 감시망을 가동하고 있었다. 두 사람이 병원에서 탈출할 경우를 가상하고 톨게이트에 청년 한명을 대기시켰던 것이다. 병원복도에서 깜빡 졸던 청년이 뒤늦게 두 사람이 탈출한 사실을 알게 되자 곧바로 톨게이트에 대기하던 청년에게 연락했다. 마침 앞을 지나가는 이연준의 차를 목격한 청년이 뒤를 추적해서 휴게소까지 미행하게 된 것이다.

세 사람은 차에 올라타고 뒤차를 따돌릴 작정을 한다. 한참을 달려서 백미러로 뒤를 살피자 휴게소에서 목격됐던 승용차가 눈에 들어온다. 조금 있으면 화성휴게소 입구가 나온다. 세 사람이 탄 차가 빠른 속도로 휴게소에 진입한다. 뒤차도 100미터 후방에서 깜빡이를 켜고 진입한다. 앞차가 주차장 쪽으로 진입하는 모습이 목격된다. 그 사이 간격이 벌어진 틈에 주차했던 다른 승용차가 끼어든다. 세 사람이 탄 차가 갑자기 속력을 올리더니 빠른 속도로 휴게소를 빠져나간다. 청년이 탄 차가 급한 마음에 경적을 울렸지만 끼어든 차가 속도를 올리지 않는다. 전속력으로 고속도로 분선에 진입한 이연준의 승용차가 속도를 늦추지 않고 달리다가 안산 방면으로 진입한다. 백미러에는 더 이상 청년의 차가 보이지 않는다.
이연준의 차는 국도를 달려 서울로 진입한다.

미행하던 차를 놓쳐버린 청년은 급히 청년회장 민주혁에게 연락한다.
「역시 만만한 상대가 아닙니다. 쥐새끼 같이 눈치를 채고 도망갔습니다.」
「주인님 말씀대로 쉽게 볼 놈들이 아니군. 일단 철수해!」

세 사람은 청수마을 청년들의 2중 감시망을 뚫고 탈출에 성공한다. 더 이상 그들을 추격하는 놈들은 없다. 지난 일주일 동안 지긋지긋하던 감시의 눈을 피하고 나자 비로소 안도의 졸음이 몰려온다. 새벽부터 탈출극을 벌였더니 피곤한 것이다. 서인애의 힘없는 머리가 김재진의 어깨로 넘어온다.

이연준의 승용차가 서울 자양동 힘찬 정형외과 지하 주차장으로 미끄러져 들어간다. 1층에서는 김재진의 고등학교 친구인 진기현이 하얀 가운을 입고 반갑게 맞아준다.
「오랜만이네친구, 이렇게 아름다운 환자를 모셔오다니 너무 반갑네.」
「요즘 돈은 많이 벌어? 친구가 반갑게 맞아주니 좋네.」
김재진은 서인애와 이연준을 번갈아가면서 소개한다. 그리고 서인애를 한동안 잘 보살펴주고 환자정보를 절대로 외부에 노출하면 안 된다는 당부까지 한다.
이 친구 병원이라면 서인애를 잘 보호해줄 것이다. 아무리 청수마을 청년들이 찾아도 알아내지 못할 것이다. 김재진은 서인애에게도 당분간 집에 가지 말 것을 당부한다. 혹시 그놈들이 집 앞에서 잠복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김재진과 그녀의 관계에 궁금증이 난 진기현이 몰래 묻는다.
「너. 드디어 애인 생긴 거야? 그렇게도 옛날 여자를 못 잊고 혼자 살더니 말이야.」
「아직은 애인 아니야! 그냥 서서히 사귀고 있는 중이야.」
「뭘 그래! 두 사람 눈빛이 보통 아닌걸.」
두 사람이 서로 챙겨주는 모습이 애인이라고 할 수 밖에 없어 보였던 것이다. 너무 다정한 모습이 마치 오랫동안 사귄 연인처럼 느껴졌다.

한편, 서인애를 놓친 민주혁은 청년들에게 서울지역 병원을 수소문해서 꼭 찾아내라고 명령한다. 서인애는 ‘그분’께서 점찍은 여자다. 절대로 놓칠 수 없다. 목숨을 걸고 찾아서 ‘그분’께 바칠 것이다. 다짐하고 또 다짐하던 민주혁은 서인애의 집을 찾아내서 잠복하라는 명령까지 내린다. 청수마을 청년들은 사악한 악마의 충견들이 되어 사냥감을 찾아 헤매기 시작한다. 주인님이 점찍은 여자를 꼭 찾아내야 할 사명감에 불타고 있다.

김재진과 이연준은 서인애를 병실에 입원시키고 서해안 고속도로를 달린다.
「편집장님, 오랜만에 흐뭇한 미소를 보여서 좋습니다.」
「오늘 계획대로 잘 되었어요. 인애 씨를 안전하게 보호해줘서 기분이 좋은 것 같습니다.」
「지난 5년간 지켜본 중에 가장 행복한 모습을 보이시는 것 같습니다.」
김재진은 이연준이 모는 차를 타고가면서 5년 전 하늘나라로 떠난 윤하은을 생각하고 있다. 그토록 사랑했던 두 사람이 죽음 때문에 이별하는 순간 김재진은 웃음을 잃어버렸다. 다시는 어떤 여자도 사랑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황폐해진 그의 마음에 또 다시 사랑이 찾아왔다. 마치 하늘나라에서 윤하은이 보내준 천사 같은 여인이 사랑을 전달하는 듯하다. 그래서 김재진은 행복하다. 그의 마음이 자연스럽게 얼굴에 묻어난다.

한참을 달려 두 사람이 탄 차가 <주간충남>사무실 앞에 도착한다. 김재진과 이연준이 들어선 사무실에선 오랜만에 웃음꽃이 핀다. 이정수와 신미연이 내분을 일으켰지만 실패로 끝나고 경쟁 신문사로 옮겨가면서 우중충하던 분위기가 일거에 바뀐 것이다. 이제 더 이상 흔들릴 사람이 남아있지 않았다. 모처럼 밝아진 사무실 분위기 때문에 부담을 덜은 기자들이 더욱 열심히 일하고 있다. 김재진과 이연준도 밝은 분위기 속에서 오랜만에 맛있는 커피를 마시고 있다.
「그런데 편집장님, 그렇게 집요하게 따라 붙던 놈들이 가만있겠습니까?」
「그렇진 않은 겁니다. 가만히 있을 놈들이 아니죠. 인애 씨 집까지 찾아내어 잠복할 놈들입니다.」
「그런데 무엇 때문에 그들이 서인애 씨를 뒤 쫓는 걸까요?」
「아직은 그 이유를 정확히 모르겠어요. 인애씨가 정 회장 사건에 대해 뭔가 비밀을 알고 있지는 않은 것 같던데. 그런데도 쫓는 이유가 명확하지 않아요.」
두 사람은 아직도 청수마을 청년들이 서인애를 뒤쫓는 이유를 짐작도 못하고 있다. 사악한 늙은 악마가 그녀를 탐내고 있지만 상상도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서울로 올라간 청수마을 청년들은 서인애의 집을 알아내고 기나긴 잠복에 들어간다. 언젠가는 그녀가 나타나리라 굳게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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