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서영태 장편소설 <무서운 마을>

 

12월19일 저녁8시 희망영농조합 사무실에서 조합장과 이정수, 신미연이 함께 마주앉아 커피를 마시고 있다. 그들은 <주간충남>앞 항의집회 현장에서 30분마다 전달하는 상황을 주의 깊게 지켜보며 계속 명령을 내리고 있다. 항의집회에 나선 지 2시간이 지났지만 내부에 있는 사람들이 아무도 빠져나가지 못했다는 상황을 방금 전에 보고 받았다.

「이 편집장님, 저놈들이 언제까지 버틸까요? 아마 오래 가지 못할 겁니다.」

「그렇게 만만하게 보셔서는 안 됩니다. 그쪽 편집장이 완고한 사람이라서 쉽게 항복하지는 않을 겁니다. 계속 밀어 붙이셔야 해요.」

「<주간서해>에서 이렇게 적극적으로 나서 주시는데... 저희가 최선을 다해서 그놈들을 항복시킬 겁니다. 우리가 손을 잡은 이상 이제 시간문제입니다.」

함께 있던 신미연이 들고 온 가방에서 구두상자 같은 크기의 종이상자를 꺼내 조합장 앞에 놓는다.

「이것은 저희 대표님께서 농민들 힘내시라고 찬조금을 주신 겁니다. 이천만원이 담겼습니다. 식사라도 하시고 힘내십시오. 대표님께서 다음에 또 다시 협찬하시겠다고 했습니다.」

「신문사에서 기사를 내주신 것만 해도 고마운데... 대표님께 정말 고맙다고 전해주십시오. <주간충남>같이 물을 흐리는 미꾸라지는 꼭 잡겠다고 전달해주십시오.」

돈까지 받아 챙긴 조합장은 더욱 기운이 나는 것 같다. 돈이 있어야 조직을 장악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생각지도 않던 거액이 들어왔다. 이 돈을 가지고 더 효율적으로 조직을 장악할 수 있을 것이다. 조합장은 두 언론사의 밥그릇 싸움을 구경하면서 떡고물만 챙기면 된다. 그렇게 하면 영농조합을 더 굳세게 장악하고 비자금도 조성할 수 있게 된다. 이렇게 든든한 신문사의 후원을 얻게 된 조합장은 두려울 게 없다고 생각한다.

「조합장님, 김재진 편집장의 사퇴를 이끌어 내지 않는 한 항의집회를 풀어서는 안 됩니다. 영농조합 기사를 쓰라고 사주한 사람이 바로 김재진입니다.

「그럼요. 그놈의 목을 날려버릴 때까지 계속 밀어 붙이겠습니다.」

 

한편, <주간충남>사무실에서는 편집장 김재진을 포함해서 4명의 상근자들이 꼼짝도 하지 못한 채 6시간을 갇혀있다. 저녁식사도 하지 못해서 허기진 속을 달래며 시끄러운 소음을 억지로 참고 있는 중이다. 그나마 다행히 화장실이 안쪽에 달려서 급한 용변은 해결할 수 있었다. 짜증난 표정을 지은 채 사무국장 진현미가 김재진에게 큰 소리로 말한다.

「2시간 전에 경찰에 신고했는데 아직도 출동하지 않았어요. 이거 너무 하는 것 같아요. 빨리 와서 보호를 해줘야 할 것 아니에요.」

「경찰서장이 청수마을 청년들과 매주 모이는 걸 봤어요. 그들이 한패라면 우리 입장이 상 당히 어려워 질 것 같아요.」

이연준이 큰 소리로 진현미에게 대꾸했다. 그렇게 소란한 상태로 2시간이 지난 후에야 경찰관과 의경들이 출동한다. 심야시간이라서 주택가 쪽에서도 여기저기 신고가 들어간 게 분명하다. 그 덕분에 영농조합 농민들은 더 이상 불법집회를 할 수 없게 되어 지도부만 남기고 철수한다. 곧이어 영농조합 이사진으로 구성된 지도부는 신문사 안으로 들어가 4명의 상근기자들을 만난다. 편집장 김재진이 먼저 말한다.

「당신들의 요구사항이 뭡니까?」

「젊은 사람이 사과를 먼저 해야지 요구사항이 뭐여? 잘못을 했으면 정중하게 무릎 꿇고 사과 먼저 하란 말이야!」

「저희들은 진실을 보도한 겁니다. 만일 사실과 다르다면 법적인 책임을 지겠습니다. 여러 분들의 요구사항이 있으면 말씀해 주십시오.」

「그래. 우리 영농조합의 요구 사항은 딱 하나야. 김재진 편집장이 사퇴하는 거여. 만약 요구조건을 들어주지 않으면 더 심각하게 몰아 부칠겨!」

그들은 세찬 삭풍이 산기슭에서 불어 닥치듯 시리디 시린 말을 뱉어내고 사라져버린다. 김재진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욱 세차고 모진 방법으로 도전을 해오고 있다. 농민들의 머리만 가지고는 나올 수 없는 방법으로 압박을 가해오고 있다. 그 배후에는 <주간서해>를 새로 인수한 최현범과 이정수, 신미연이 있을 것이다. 김재진을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 그들이 드디어 작전을 계획에 옮긴 것이리라. 생각이 여기에 이른 김재진은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한기를 체험한다.

그들이 엄청난 자금력과 조직력을 갖추고 무섭도록 김재진을 압박하기 시작한 것이다. 전쟁은 이제 시작했을 뿐이다. 결코 쉽게 끝나지 않으리라. 이 전쟁에서 지면 모든 것이 끝장난다. 모든 것을 걸고 그들과 장렬히 싸우리라. 김재진은 다짐하고 또 다짐한다.

 

같은 시각 희망영농조합 조합장실에 대기하고 있는 조합장과 이정수, 신미연은 뒤늦게 출동한 경찰 때문에 항의집회를 자진해산했으며 이사진들이 <주간충남>기자들을 만나 김재진 편집장 사퇴 조건을 제시했다는 보고를 받는다. 보고를 다 받은 조합장이 말한다.

「이제 겨우 시작입니다. 우리 농민들의 뭉쳐진 힘을 제대로 보여줄 겁니다. 그들은 이번에 우리를 잘못 건드린 겁니다. 기사 한 번 잘못 쓴 것이 얼마나 큰 고통인지 알게 해줘야 합니다.」

조합장의 다부진 목소리에 이정수가 말을 잇는다.

「우리 <주간서해>가 조합장님과 농민들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겠습니다. 농민들에게 불리한 기사를 쓰는 신문이 발 부치지 못하도록 저희 기자들이 나서서 여러분을 돕겠습니다.」

희망영농조합과 <주간서해>사이에는 끈끈한 동맹관계가 맺어졌다. 서로 공통점은 없었지만 적의 적이 우리 편이라는 말과 같이 두 단체 간에는 공동의 적이 생긴 것이다. 뿐만 아니라 거액까지 제공하는 신문사에 조합장의 마음이 움직였다. 평소 같으면 언론사들은 창간기념일이다, 주민행사다, 초청공연을 한다는 핑계로 영농조합을 찾아와서 후원요청을 하기에 바빴다. 큰돈을 요구하는 것도 아니기에 십시일반이라는 생각으로 도움을 주며 영농조합에 대해 좋은 기사나 실릴 수 있게 부탁하곤 했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주간충남>이 영농조합을 비판하는 기사를 게재했으니 조합장의 심기가 크게 불편했던 것이다.

조합장은 이번 기회에 <주간충남>의 버릇을 확 바꿔놔야겠다고 다짐한다. 그것도 <주간서해>와 손잡는다면 해볼 만한 싸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농민들 50여명이 항의집회를 마치고 자진해산한 후 김재진 편집장을 비롯해 상근기자들과 영농조합 비판보도를 썼던 이기윤 주재기자가 <주간충남>사무실에 모여 심각하게 대책회의를 하고 있다. 사무실 현관 앞에 내걸린 동그란 시계 바늘은 저녁 11시 반을 넘어서고 있다. 평소 같으면 다들 집에 들어가고 가족과 함께 피로를 풀거나 나머지 기사를 작성하고 있을 시간이었지만 영농조합 사건 때문에 비상소집에 나선 <주간충남>사무실은 대낮처럼 밝게 불을 밝혔다. 영농조합기사를 작성했던 이기윤 주재기자가 먼저 말한다.

「제가 농업분야에서 일하고 있기 때문에 누구보다 세밀하게 문제점을 파악하고 있습니다. 희망영농조합의 조합장이 근본적인 원인입니다. 그들이 50여명의 농가들을 이용하여 이권 을 챙기고 있는데 진실을 숨기다보니 곪아터진 것입니다.」

이기윤 주재기자의 말을 곰곰이 듣고 있던 김재진은 힘이 실린 어조로 이야기 한다.「저는 이 기자님의 진실을 밝히고자 노력하는 점을 믿습니다. 저들이 힘으로 밀어 붙인다고 진실이 가려지는 것은 아닙니다. 비록 우리가 자금력이나 조직력이 부족한 것은 사실이지만 진실을 말할 수 있는 용기가 있습니다. 앞으로는 이기윤 기자님을 도와 이연준 본부장님이 나설 겁니다. 두 분이 힘을 합쳐서 꼭 진실을 밝혀주세요.」

편집장 김재진은 절대로 물러서지 말고 맞서 싸울 것을 요청한다. 반면 저들도 쉽게는 물러서지 않을 것이다. 모든 힘을 다해 <주간충남>을 무릎 꿇리려고 혈안이 될 것이다. 여기에서 그들의 힘에 포기한다면 진실은 영원히 묻히게 된다. 김재진과 기자들은 당황하지 말고 당당히 맞서 싸울 것을 다짐한다.

조합장의 지시를 받은 농민들이 다음 날 아침부터 <주간충남>앞에서 항의 집회에 나선다. 이번에는 꽹과리와 징까지 동원해서 사람 혼을 빼놓을 듯이 소음을 일으킨다. 그러나 경찰이 출동한다는 시점이 되면 교묘하게 골목으로 스며든다. 꼭 짜고 일을 벌이는 것처럼 궁합이 찰떡같다. 농민들은 기습시위 전략으로 바꾼 것이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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