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20일 오전10시 두 사내가 승용차를 타고 시내를 벗어나 농촌 들판을 뚫고 꼬불꼬불 뻗은 2차선 도로를 달리고 있다.
12월의 농촌은 초겨울 옷깃을 여미게 만드는 북풍이 불어와 가볍게 승용차를 흔들고 추수 때 베어낸 농토위로 하얀 눈이 수북이 앉아있다. 이연준과 이기윤이 탄 승용차는 10분여를 달려 파란 기와가 돋보이는 농가에 멈춰 선다.
「본부장님, 이 집은 영농조합과 관련해서 처음 제보를 한 분이 사시는 곳입니다. 이 분이 영농조합의 문제점을 훤히 꿰뚫고 있습니다. 1년 전까지 영농조합 감사를 하시던 분인데 조합장 편에 서지 않았다고 보복을 당했다고 합니다.」
「제보자를 만나보면 영농조합의 문제점을 더 자세히 알겠군요.」
두 사람은 살짝 열려진 대문을 밀치고 마당으로 들어선다. 꽤 넓은 마당에는 추수철이 끝 나 포장해 둔 콤바인, 트랙터가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다. 각종 농자재가 여기저기 널려 있는 모양이 정말 농사꾼의 집답다. 이때 기다리고 있던 50대 후반 남자가 방문을 열고 나온다.
「신문사에서 오셨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제보를 하셨던 김 선생님이시죠?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어서 왔습니다.
희망 영농조합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말씀을 부탁합니다.」
마루에 앉은 두 사람을 잠시 기다리게 하던 김 씨는 손수 만든 매실차라며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찻잔을 내려놓는다.
「저는 희망영농조합의 창립 멤버입죠. 그래서 그 공로를 인정받아 3년간 감사로 재임 했었시유. 그런데 1년 전 조합장과 그를 추종하는 이사들이 저를 몰아내는 사건이 발생했쥬. 이유는 쓸데없는 소문을 퍼트리고 다닌다는 거유. 기자양반들이 저의 억울함을 풀 어주셔야 됩니다.」

김 씨의 말에 의하면 희망 영농조합이 창립 된지 11년이 지났다. 그 당시 현재 조합장과 김 씨를 포함해 6명이 영농조합을 설립했는데 모두 순수하게 평생 농사만 짓던 농민들이었다.
그들은 그저 농사지을 줄만 알았지 왜 영농조합을 만드는 지도 몰랐지만 당시 농촌지도소장이 미래를 대비해서 경쟁력을 갖추려면 꼭 영농조합을 만들어야 한다고 권고하는 바람에 순순히 따랐다. 농민들을 어떻게 설립하고 운영하는 지도 몰랐지만 농촌지도소 담당자가 하라는 대로 서류도 떼어다주고, 100만원씩의 출자금도 걷어서 담당자가 하란대로 따랐다고 한다. 그 당시 심 조합장을 세운 것도 고등학교까지 졸업을 마친 사람은 그 사람 밖에 없어서 조금은 낫겠다 싶은 마음에 큰 의미 없이 만장일치로 합의했었다. 처음 조합을 만들 당시만 해도 계모임에서 계주를 뽑는 수준에 불과했다. 그런데 설립 3년이 지나면서 영농조합에서 국고보조금을 받아 공동창고도 짓고 공동 생산을 위한 사업비를 유치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이때부터 심 조합장이 욕심을 부리기 시작했다. 처음에 참여했던 농민들이 세상 돌아가는 것도 모르고 농사만 전념하고 있는 사이에 심 조합장은 자신과 잘 통하는 사람들을 계속해서 조합원으로 가입시키기 시작했다. 알고 보니 출자금도 심 조합장이 빌려주는 형식으로 마련해줬다고 한다. 그렇게 차츰차츰 늘어난 조합원들은 애초에 설립당시 참여했던 조합원 숫자보다 두 배를 넘어섰다. 그 후 심 조합장은 총회를 열어 자신의 친인척들을 이사진으로 만들고 완전하게 영농조합을 장악했다. 드디어 영농조합을 장악한 심 조합장은 조합원들도 모르게 각종 국고보조금을 신청하여 사용해왔다. 김 씨가 알기로는 지난 11년 동안 약 110억 원의 보조금을 받았는데 그 사용처를 정확히 알고 있는 조합원들은 아무도 없었다. 1년전 에는 영농조합 사옥을 지어야 한다며 2천여 평의 땅을 사들였는데 그 땅이 하필이면 조합장의 아내명의로 되어있었다. 주변에서는 평당 5만원이면 살 수 있는 땅이라고 알려져 있는데 영농조합은 평당 30만원에 사들인 것을 당시 감사로 있던 김 씨가 떠들고 다니자 총회를 열어서 제명해 버린 것이었다.

김 씨는 감사 당시 자신이 가지고 있었던 서류 꾸러미를 두 사람에게 건넨다. 자신의 억울함을 꼭 풀어주고 진실을 알려달라고 누누이 당부한다. 이어서 그는 감사 자료를 아무도 모르게 따로 보관해왔기 때문에 절대로 출처를 공개하지 말라는 당부도 잊지 않는다.

<주간충남>앞에서는 여전히 농민들이 모여 시위를 멈추지 않고 있다. 처음과는 달리 치고 빠지는 식의 영리한 시위를 벌이고 있다. 그들도 불법시위를 대놓고 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알고서 기습시위 형태로 바꾼 것이다. 영농조합을 취재하고 있는 이연준과 이기윤은 시위가 계속되는 신문사로 가지 않고 김재진의 병실로 찾아가 제보자에게서 가져온 자료를 분석한다. 그 자료에는 국고보조금의 액수, 사용처, 영수증 등이 무척 자세하게 사본으로 보관돼있다. 또한 영농조합 사옥부지 매매계약서 및 계약금 납입 영수증 등의 자료가 한 박스 분량이나 있다.
자료에는 인건비 내역도 나왔는데 조합장의 연봉은 5천만 원 정도로 평범했지만 각종수당, 판공비, 접대비 명목을 모두 합치면 연간 2억 원이 넘는다. 연봉은 평범하게 잡아서 공개하면서도 그 외에 공개하지 않는 내역을 거액으로 편성하여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기역적인 운영을 하고 있음이 드러난다.
분석결과 특히 큰 문제는 국가에서 나오는 영농보조금이었다. 서류상으로는 균등하고 적절하게 배분했다고 보이지만 조합장과 그 측근들의 명단을 넣어 검색한 결과 거액의 영농보조금이 조합장과 친인척, 측근들에게 집중되어 있었으며 나머지 조합원들은 들러리를 선 것이 나타난다.
세 사람의 세밀한 분석은 밤이 새는 줄 모르고 이어진다. 일에 몰두한 세 사람은 식사도 배달을 시켜 먹을 정도로 시간을 아끼며 집중한다. 자료에서 나온 영수증 내역은 다른 기자를 통해 실제 거래 액수와 면밀히 대조하는 작업도 진행한다. 또한, 부동산 중개소를 방문하여 영농조합 사옥 부지에 대한 실제 가격을 알아보는 작업도 다른 기자들을 통해 진행 중이다.
영농조합 문제를 밝혀내는데 <주간충남>의 모든 상근기자와 주재기자가 동원된다. 전 기자가 특별취재팀이 되어 조직적으로 취재를 진행한다.

드디어 다음날 오후까지 희망 영농조합 감사 자료에 대한 대부분의 확인 작업이 끝난다. 제보자 김 씨의 말이 대부분 사실로 확인되어 기사를 작성하는데 문제가 없다. 사실이 확인된 그 시각부터 편집장 김재진과 이연준, 이가윤이 각각 분야를 나눠 세밀한 기사를 작성하기 시작한다. 확인된 팩트를 중심으로 영농조합 운영의 문제점을 분야별로 비판하는 기획사가 완성된다. 이날 저녁 세 사람의 기사가 완성되자 마지막 교정 작업을 거쳐 인터넷 판에 첫 보도가 즉각적으로 나간다. 지역사회에는 희망 영농조합과 <주간충남>의 전쟁에 온통 관심이 쏠려있기 때문에 보도가 뜨자마자 클릭수가 수천 건으로 올라간다.
내일 오전까지는 수만 건의 클릭수를 기록할 것이다. 내일자로 나오는 신문이 독자들에게 배달되면 지역사회 대부분의 주민들이 희망영농조합의 실체를 알게 될 것이다. 진실은 감춘다고 감춰지지 않는다. 참고 참다보면 언젠가는 정의가 이기는 것이다. 이토록 김재진의 믿음은 확고하다.

다음날 아침 며칠 동안 <주간충남>앞에서 기습시위를 하던 농민들이 한순간에 사라졌다. 어젯밤까지도 시위대들이 징과 꽹과리를 울려대며 시끄럽게 하는 바람에 인근에 살던 주민들까지 피해가 막심했다. 그런데 오늘 아침부터 시위대들의 모습이 자취를 감췄다. 어젯밤부터 뜨기 시작한 <주간충남>인터넷 판의 효과였다. 희망영농조합의 비리를 고발하는 기사가 뜨자 농민들 사이에서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오늘 새벽에 나온 지면보도를 자세히 훑어본 농민들은 조합장의 비리가 엄청난 것에 서서히 분노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조합장과 측근들의 힘에 눌려 군말 없이 그들의 지시를 따랐던 조합원들의 분노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커져 조합장 반대파가 형성되어갔다. 결국 조합장파와 반대파가 서로 대립하는 극단적인 내분으로 치닫기 시작했다.
어제까지만 해도 조합장파의 감시와 힘 때문에 꼼짝 못하던 조합원들이 조직적으로 명령을 거부하기 시작한다. 반대파는 따로 모임을 갖고 조합장과 측근들을 비리혐의로 고발하자는 의견을 모아 정식으로 고발장을 접수하려는 움직임까지 보인다. 갑자기 전세가 역전되고 있다. 하룻밤에 올린 <주간충남>의 기사 때문에 영농조합은 극심한 내분에 휩싸여 더 이상 조합장의 명령에 따르는 농민들이 사라져 가고 있다.

조합장실에 모인 심 조합장과 이정수, 신미연은 큰 고민에 빠져든다. 세 사람이 그토록 세밀하게 준비해서 밀어붙인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게 생겼다. 희망 영농조합을 이용하여 <주간충남> 편집장을 제거하려 했던 두 가지의 노력이 무산됐다. 영농조합을 비판한 언론사와 경쟁 언론사를 싸움 붙여 자신의 권력을 강화시키려던 심 조합장은 더욱 큰 곤경에 몰렸다. 이제 세 사람은 역공을 당하는 신세가 된 것이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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