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서영태 장편소설 <무서운 마을>


12월22일 오전 8시20분 <주간서해>편집실에서는 편집장 이정수와 신미연이 4명의 상근기자들과 함께 편집회의를 진행하고 있다. 회의에서 기자들이 보고한 바에 의하면 희망영농조합은 조합장과 측근들의 비리가 <주간충남>에 의해 세밀하게 밝혀지면서 극심한 내분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조합장파와 반대파간의 대립은 심각해서 결국 사법기관에 고발로 이어져 양측 모두 처절한 감정싸움을 보이고 있는 실정이었다.
「편집장님, 이제 희망영농조합은 경찰조사가 진행 중이어서 그 결과가 나올 때까지 지켜봐야 될 것 같습니다.」
영농조합 상황을 장황하게 보고한 기자에게 이정수가 말한다.
「상황이 그렇다면 일단 그 쪽은 보류하시고 다른 건으로 넘어갑시다.」

편집장 이정수는 어젯밤에 <주간충남>의 인터넷판 2년 치 보도를 모조리 검색했다. 그리고 정밀하게 기사 하나하나를 살펴나갔다. 그 자신이 지난 수년간 그 곳에서 핵심적인 취재업무를 담당했었기 때문에 돌아가는 형편은 잘 알고 있었다.
분석 작업을 하다가 이정수는 터미널 이전 문제에 대해 심도 있게 다루고 있는 김재진의 기사를 유심히 읽어 내렸다. 3개월 전부터 무슨 이유에선지 김재진은 터미널을 속히 이전해야 한다는 논조의 기획기사를 연재하고 있었다. 그러나 터미널 이전은 쉽게 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었다. 시에서도 이미 10년 전부터 기본적인 계획은 가지고 있었지만 말뿐이요 실천이 없는 계획에 불과했다. 가장 크게 저항하는 세력이 터미널과 접해있는 재래시장 상인들이었다. 대형마트에 상권을 많이 빼앗긴 재래시장이 그나마 비빌 수 있는 언덕이라곤 터미널 밖에 없었다. 시골도시라는 특징 때문에 터미널에는 쉼 없이 사람들이 들락거리는데 대부분이 시골마을에서 시내로 나오는 농촌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농촌에는 없는 병원, 약국, 농약가게, 옷가게 등을 찾아와서 꼭 한번은 재래시장을 들려 생선, 고기, 과일, 신발 등을 가득 사들고서 다시 버스에 몸을 싣고 마을로 돌아가곤 했다. 그래서 재래시장은 단골손님이 꾸준히 이어졌고 옛날만큼의 융성함은 없었지만 서민들이 먹고살 터전은 굴러가고 있었다.
재래시장 상인들의 단결력은 대단했다. 오래전부터 힘을 합쳐야 한다며 조합을 구성해서 정치적으로도 큰 힘을 발휘하고 있었다. 상인들의 숫자만 해도 400명이 넘었고 부양하는 가족들까지 합해서 족히 1500여명에 이르렀다.
시장이 되겠다고 선거에 나오는 사람들은 상인들을 위해 장밋빛 공약을 쏟아내곤 했다. 도의원, 시의원들도 마찬가지로 그들의 표를 얻기 위해 실제로 할 수 없는 권한 밖의 공약도 자주 눈에 띄었다.
두 번째로 터미널 이전의 장애 세력은 그 지역을 둘러싼 건물주와 세 들어 있는 상인들이었다. 터미널을 끼고 빽빽이 들어선 건물들엔 병원, 약국, 은행, 빵집, 신발가게 등 종류도 다양한 간판이 옹기종기 달라붙어있어 이곳이 최고의 상권임을 금방 알아볼 수 있었다.
오래전부터 이곳에 건물을 짓고 임대업을 해온 건물주들은 대부분 막대한 자금력을 지니고 있었다. 4층 건물을 기준으로 했을 때 한 달 임대료만 많게는 3천만 원이 나올 정도여서 세금, 관리비 등을 제하면 상당한 돈벌이가 됐다. 그들이 가진 부는 그대로 무시할 수 없는 힘이 되어 지역유지급의 영향력을 행사 할 수 있었다. 건물주들의 저항도 문제였지만 그 건물의 세입자들도 상권에 악영향을 줄 수 있는 터미널 이전에 부정적인 입장이었다. 거액의 임대료를 내고는 있지만 유동인구가 많은 탓에 물건이 잘 팔리고 손님들의 발걸음은 꾸준히 몰려들었다. 상권이 잘 형성 되어 있기 때문에 나가는 돈도 많았지만 버는 돈은 더 많아서 한번 자리를 잡은 가게는 오랫동안 유지하려는 경항이 있었다. 그들의 사업이 계속 굴러가는한 터미널 이전이라는 악재를 피하고 싶은 세력이 공동으로 힘을 합쳐 강력한 반대 세력을 만들어 낸 것이었다.
시장상인들과 터미널 이권 세력들의 강력한 반대를 알고 있는 자치단체장은 비좁고 허름한 터미널을 옮겨야 한다는 소신은 가지고 있었지만 실행할 용기를 내지 못했다. 이를 표를 먹고사는 정치인들의 태성적인 한계라고 지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런데 3개월 전부터 <주간충남>김재진 편집장이 까다로운 논란거리를 지면으로 끌어낸 것이었다. 이정수가 곁에서 지켜본 편집장 김재진은 그렇게 도전하는 것을 자신의 사명처럼 여기는 사람이었다. 각 출입처에서 나오는 보도자료나 실어주며 생색을 내면서 광고나 받아도 무난하게 운영될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굳이 무리를 해서 어려운 숙제에 도전하는 돈키호테 같은 사람, 김재진은 그런 종류의 사림이었다.

이날 오후2시 시장실에서는 김정철 시장이 가운데 자리에 앉아있고 오른쪽으로 이정수, 신미연이 자리를 잡고 있다. 왼쪽 소파에는 재래시장 이 조합장이 앉아서 이정수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있다.
「<주간충남>에서 터미널 이전여론을 조성하고 있는데 이대로 방관해서는 안 됩니다. 만약 그런 여론이 주민들을 설득해서 힘을 얻게 되면 시장님도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은 여론에 밀려 이전을 공식화하게 되고 시장상인들에게 되돌릴 수 없는 피해를 끼칠 겁니다.」
이정수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던 이 조합장이 나선다.
「<주간충남>김재진 편집장이 눈엣가시요! 뭔 영화를 누리자고 상인들이 한사코 반대하는 터미널 이전 문제를 계속 끄집어내는지 모른다니까요. 우리 상인들이 이대로 가만 놔두지는 않을 겁니다. 시장님도 이번엔 확실히 우리 편에 서야합니다.」
「아. 나야 물론 상인들 편이지요. 최근에도 상인들을 위해서 주차장과 화장실을 만들어 주지 않습니까. 앞으로도 재래시장 발전을 위해 무슨 일이든 할 겁니다. 이번 참에 상인들이 확실하게 힘을 보여주셔야 할 것 같아요. 그래야 골치 아픈 터미널 이전 이야기가 쏙 들어가지요!」
이 조합장과 김 시장의 대화중에 신미연이 눈치를 보다 끼어든다.
「그래서 말인데요. 조합장님! 저희 신문사에서 적극적으로 지원해 드릴 테니까 상인들이 <주간충남>의 버릇을 확실하게 꺾어 놓으셨으면 합니다. 그들에게 단합된 힘을 보여주셔야 합니다.」

김 시장과 재래시장 이 조합장은 사돈 관계다. 시골도시에서는 비밀이라는 게 없다보니 두 사람이 사돈이란 사실은 지역사회가 다 아는 사실이다.
지난 선거에서도 이 조합장이 김 시장의 사조직을 맡아 비밀리에 관리했었다. 재래시장 조합장을 맡고 있다 보니 내놓고 선거운동원 등록은 할 수 없었지만 비밀리에 각 마을 단위까지 조직책을 가동하며 음지에서 김 시장의 당선을 도운 일등공신이었다. 당시 이 조합장이 김 시장에게 받아서 관리한 자금만 해도 5억 원은 넘었는데 자신의 호주머니에 챙긴 것은 5천만 원밖에 안됐다. 이정도면 무척 깨끗하게 자금을 관리해준 것으로 다른 선거꾼들 같으면 거의 2억 원에 가까운 돈을 극소수가 나눠가졌다는 소문이 돌았다.
이 조합장이 비교적 깨끗하게 자금을 관리하고 적극적으로 조직책을 관리한 것은 사돈관계라는 특수성도 있었지만 재래시장 조합장으로서 훗날에 김 시장이 베풀어 줄 특혜를 기대했기 때문이었다. 기대는 어긋나지 않아서 김 시장이 당선된 후에 재래시장에 주차장, 화장실 등 시설개선 공사가 실행됐는데 이 조합장이 낙점한 건설업체에서 공사를 맡아 총 공사비의 20%인 3억 원이 그의 호주머니로 들어갔다. 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새 건물 신축공사가 예정되어 있어 또 한 번의 거액이 그에게 전달 될 것이었다. 이 조합장은 나름대로 철학이 있었는데 ‘공짜로 들어온 돈은 혼자 쓰지 않는다.’는 자기만의 법칙을 지켜나갔다. 건설업체에서 리베이트를 받은 후 조합 간부들에게도 총 1억 원의 금액을 골고루 쪼개서 현금으로 전달했다. 간부들 중에 공짜 돈을 받지 않은 사람이 없었고 그들을 공범으로 만들어 철저하게 입을 막는 데 성공했다. 이런 방법을 통해 이 조합장은 연임에 성공해서 5년째 조합을 운영하고 있었다. 돈을 받은 간부들 중에는 이 조합장이 총 얼마의 돈을 받았는지, 그 중 몇 퍼센트를 간부들에게 돌렸는지 물어보는 사람이 없었다. 그저 조합장이 혼자 먹지 않고 거액을 자신들에게 나눠준 것에 고마워했다. 심지어 몇몇 조합간부들은 명절 때마다 조합장 집에 찾아가 선물을 놓고 가며 아부를 떠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이 조합장의 장악력이 점점 커지고 있다는 반증이었다.

이날 아침 주인님의 사주를 받은 김 시장은 특수한 관계에 있는 이 조합장을 미리 만나 이번에는 시장 상인들이 <주간충남>을 손봐줘야겠다는 뜻을 전한다. 물론 이 조합장은 적극적으로 나서서 상인들의 힘을 보여주겠다고 굳게 다짐한다. 그렇지 않아도 쓸데없이 터미널 이전 여론을 부채질하는 <주간충남>에 대해 언젠가는 손을 봐줄 거라며 벼르고 있었다. 거기에다 경쟁 언론사에서 적극적으로 돕기로 약속하고 김 시장까지 시장 상인들 편에 서겠다는데 문제 될 것은 없어 보인다. 지역 주간지쯤이야 수백 명의 상인들이 나서면 한 방에 날아갈 것이다. 이야기가 한참 무르익었을 때 김 시장이 잘 포장된 선물꾸러미를 이 조합장에게 건넨다. 집에 들어가서 풀어보니 3천만 원의 거금이 들어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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