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서영태 장편소설 <무서운 마을>




1월3일 오전10시 시청 대회의실.
양복에 넥타이를 점잖게 멘 신사들이 밀려들어오고 있다. 이미 500여 평의 대회의실엔 양복 입은 신사들 수백 명이 의자에 앉아 신년교례회가 시작되길 기다린다.
맨 앞좌석에 시장, 경찰서장, 교육장, 농협조합장 등 기관장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 가끔 옆 사람에게 말도 건네면서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덕담을 주고받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참석한 사람들은 얼굴이 알려지지 않은 한 사람에 대해서 주의 깊게 살펴보고 있다. 김정철 시장의 옆자리에 앉아있는 사람은 머리가 거의 백발에 가깝고 얼굴 군데군데 주름이 많은 노인이긴한데 제법 균형 잡힌 몸으로 봐서는 50대 후반으로 보이기도 한다. 시장이 그를 극진히 대접하는 것으로 보아 보통 인물은 아닌 것 같다. 그는 <주간서해>대표로 변신한 최현범이다.
매년 1월3일 열리는 신년교례회는 지역사회 모든 기관장과 단체장들이 참석하기 때문에 매우 중요한 자리로 평가받는다. 그들만의 친교가 있고 교류가 열리는 공식무대이기에 최현범도 이 자리를 통해서 공식적인 데뷔를 한 것이다. 이제 그의 존재는 기관장과 단체장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질 것이다. 최현범이 영향력을 넓히는 계기가 될 것이 확실하다. 이미 매체영향력 1위를 달리던 <주간충남>이 무너져 내리고 있지 않는가. 벌써 <주간서해>가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한 달 동안 모든 가구에 무료신문을 배부해왔으니 그들의 기사를 읽고 웃고 우는 주민들은 이미 세뇌당하기 시작했다. 지역사회를 움직이는 여론을 만들어내고 이끌어가는 유일한 매체로 오직 <주간서해>만이 남을 것이다. 최현범은 머릿속에 그날을 생각하며 빙긋 입꼬리를 올린다.

신년교례회가 열리는 입구에서도 불매서명운동은 계속되고 있다. 각 기관장들이 대거 참여하는 날이니만큼 10여명의 시장 아줌마들이 천연색의 한복을 갖춰 입고 참석자들에게 전단지를 나눠주고 서명을 권유하고 있다. 대부분의 참석자들은 돌아가는 사정을 잘 알기 때문에 서명에 동참하는 분위기다. 지역사회 기관장들의 입장에서는 이미 대세가 <주간충남>에서 <주간서해>로 넘어가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거대한 영향력을 과시하는 상인조합이 전면전을 벌이고 있기에 이미 파워게임에서 승자는 정해졌다고 보는 것이다. 그래서 승자의 편에 서는 것이 가장 안전하고 자연스러운 것이다.

이날 기관장들의 불매운동 서명은 <주간충남>에 또 다른 큰 피해를 안겨줄 것이다. 지역사회에는 300여개가 넘는 기관·단체가 운영되고 있다. 이들 기관에서 구독하는 <주간충남>은 1천여 부가 넘어선다. 그동안 신문사 유료부수의 거의 ⅕을 이들 기관·단체에서 떠받치고 있었다. 오늘 기관장들의 서명은 <주간충남>을 공동으로 중지하였다고 선언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렇게 영향력 1위 매체가 매장될 위기로 빠르게 치닫고 있다. 떨어진 유료부수를 올린다는 것은 엄청난 노력과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공든 탑이 한순간에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편집장 김재진은 30여 미터 떨어진 곳에서 기관장들이 불매운동 서명에 동참하는 것을 지켜보고 있다. 그에게는 큰 아픔으로 느껴진다. 가슴이 답답해지고 머리가 어지럽다. 성난 민심이라는 것이 이토록 무서웠던가. 10년간 몸담아왔고 애정을 쏟아 부었던 터전의 뿌리가 썩어가는 모습을 지켜봐야만 한다.
오늘까지 불매운동 서명탑에는 2만5천명의 숫자가 기록되어 있다. 그 빨간 숫자가 차츰 올라갈수록 김재진의 생명이 점점 사라지는 고통을 맛보고 있다.

다음날 아침 <바른 시민모임>사무실에 출근한 사무국장 윤길현은 현관문을 열자마자 충격에 휩싸인다. 거리를 향한 커다란 유리창들이 와장창 깨져있다. 서산사무실이 생긴지 11년 동안 이런 일은 처음이다. 깨진 유리창으로 도배하다시피 한 바닥에서 돌멩이에 싸인 종잇조각이 보인다. 「연구발표회를 취소하지 않으면 죽음을 면치 못하리라.」그들의 메시지는 강력하다. 7일로 예정된 연구발표회가 <주간충남>에 게재되자 반대 측에서 테러까지 자행하고 있다. 생명까지 위협하는 그들은 왜 그렇게도 연구발표회를 막으려고 하는가. 무엇이 두려워서 이처럼 무서운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가.

윤길현은 6년 전에도 이런 경험이 있다. 당시 자치단체에서는 쓰레기처리문제가 당면한 현안이었다. 내부적으로는 여러 가지 안이 제시되었고, 1년여의 논의결과 입장을 정리하여 효과적으로 쓰레기를 줄일 수 있는 대규모 소각시설을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이에 대해 <바른 시민모임>에서 조사해본 결과 인근지역에 상수원 보호구역이 있고 마을까지 몰려있어서 환경적으로 큰 문제점을 발견했다.
이에 윤길현은 <주간충남>편집장 김재진의 도움을 얻어 쓰레기 소각시설 유치의 문제점을 여론화시키고 인근 마을사람들과 함께 반대투쟁에 들어갔다. 그런데 쓰레기 소각시설을 짓는 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주민들의 경우 거액의 이주보상금을 받을 수 있다는 기대감이 무너지자 그 화살이 윤길현에게 집중됐다. 반대투쟁을 중지하지 않으면 가만 놔두지 않겠다는 협박전화는 기본이었고 10여명의 주민들이 찾아와 멱살을 잡고 물건을 부수는 일까지 벌어졌다. 신변의 위협을 느낀 그는 한동안 사무실 출근도 못하고 몸을 피해 다녀야 했다. 그런데 김재진은 그 당시 끝까지 윤길현의 편이 되어주었다. 그런 경험이 있는 윤길현은 의리가 있는 김재진에게 이번에는 자신이 도움을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최소한 두 박사님들이 연구 발표라도 할 수 있게 행사를 진행하는 것까지는 꼭 해야 된다고 생각하는 윤길현은 강하게 마음을 다잡는다.

7일 날 오전9시50분. 서산문화회관 대강당에 지역주민들이 몰려들고 있다. 강당 정면에는 「터미널이전과 재래시장 활성화연구발표」라는 대형 현수막이 걸려있다. 800여석의 좌석은 이미 꽉 채워졌다. 지역에서는 가장 논란이 많은 이슈라서 그런지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반증이다.
이곳에는 불매서명운동에 나서고 있는 시장상인들도 200여 명이나 참석했다. 돌아가는 상황도 파악하고 싶었지만 상인들과 직접적인 연관을 갖고 있는 연구가 어떻게 나왔는지 알고 싶은 호기심에서 이 자리에 온 상인들이 많았다.
이윽고 <바른 시민모임>사무국장 윤길현이 연단에 나와 청중 앞에 인사를 한다.
「주민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현재 우리지역에서는 터미널 이전과 재래시장 문제가 가장 큰 이슈로 떠올랐습니다. <바른 시민모임>에서는 가장 객관적인 두 분의 박사님에게 3개월 전부터 이 문제에 관한 연구를 맡겼는데 그 결과가 나왔습니다. 이에 두 분의 박사님께서 그 결과를 발표하시겠습니다.」
잠시 후 불이 꺼지고 프로젝터에서 나온 영상이 정면 대형스크린에 비친다. 경제학 박사들이 번갈아가면서 연구결과를 발표한다. 박사들의 발표에 의하면 도시계획이 인근 자치단체에 비해서 20년이 뒤쳐졌다고 분석한다. 그 가장 중요한 이유로 교통이 가장 복잡한 곳에 터미널이 자리 잡고 있어 도시 발전을 저해하고 있으며 차량소통에도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또한, 도시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거점별로 세분화되어 새로운 블록을 형성해 나가야 하는데 20년 째 구도심 상권을 지키는 데에만 집중해서 거점별 발전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재래시장 활성화에 대해서는 아직 터미널 상권이 살아있는 만큼 서둘러 전통재래시장의 장점을 살릴 수 있는 테마 시장을 만들어야 한다는 분석이다. 더 자세히 말하자면 대형마트에 대항해서 경쟁을 하는 것이 아니라 차별화를 선택해야 하며 어시장, 야채시장, 풍물시장 등을 특색 있게 육성해야하며 그 속에 스토리를 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차별화 된 전통시장을 만들려면 상인조합이 새롭게 변모해서 상인들에게 새로운 버전을 제시해야 하며 시청에서도 전국적으로 변화하고 있는 흐름을 살펴 낙후된 재래시장을 바꿔야 영세상인들의 상권을 지킬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이 자리에 참석한 영세 상인들이 듣기에도 구구절절 옳은 말이다.
전국의 재래시장은 급속도로 테마시장으로 변하고 있는데 이곳 재래시장은 거의 변화가 없었다. 특별한 청사진도 없이 그때그때 상인들이 요구하는 대로 시설보수를 해주는 정도에 그치다보니 시대의 흐름을 전혀 받아들이지 못했다. 이뿐만 아니라 참석자들은 인근 자치단체에 비해 20년이나 도시발전이 뒤떨어졌다는 말에 무척 공감하는 분위기다. 이미 전국의 자치단체들이 지역별로 특화된 거점을 중심으로 도시를 발전시키고 있지만 시대의 흐름을 제대로 타지 못하고 뒤처지고 말았다는 분석에 참석자들은 침울하기도 하면서 진실을 확인 한 것이다. 이날 연구 발표회는 참석자들에 의해 급속도로 전 지역사회에 퍼진다.
두 경제학 박사가 발표한 연구는 지역사회의 고질적인 문제점을 아프게 찌르면서도 해법을 제시했다. 도시정책이 이대로 굴러가다간 20년이 아니라 40년이 뒤질 수도 있다는 비판적인 여론이 형성되기 시작한다.
지역민들이 서서히 진실을 알아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김재진은 결국은 진실이 이긴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한 기분이다. 이날 이후로 여론은 급속도로 전파되고 있다. 20년이나 뒤진 도시정책을 바꿔야하며 차별화된 재래시장을 육성해야 한다는 주장이 이곳저곳에서 터져 나온다. 이윽고 지역에 존재하는 시민단체들이 연합해서 20년 뒤진 도시정책을 바꾸고 침체된 재래시장을 육성하라는 성명서를 발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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