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서영태 장편소설 <무서운 마을>



1월9일 저녁10시
재래시장 옆 줄지어선 포장마차 안에 김재진과 윤길현이 꼼장어를 안주삼아 술잔을 나누고 있다. 한 겨울 찬바람이 쌀쌀하게 살을 파고드는 저녁이지만 길거리를 지나는 남녀, 어깨동무를 하고 흥얼거리고 지나는 세 남자, 마지막 손님을 받느라 문을 닫지 못하는 김밥집 주인이 김재진의 눈에 들어온다.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포장마차에 앉아 흘끔흘끔 둘러보며 술잔을 비우는 김재진의 작은 여유시간. 저녁이면 기자들이 올린 기사를 승인하느라 한가한 시간을 내지 못하는 그의 처지에서는 아주 모처럼 만의 외출이다.
「사무국장님 덕에 지역주민들의 여론이 바뀌고 있습니다.
이제 주민들도 진실을 알게 된 것 같아요. 상인조합에서도 내분이 생겨 불매운동을 중단했어요.」
「편집장님, 3개월 전부터 신문사에서는 여론을 조성하고 <바른시민모임>에서는 연구를 진행하기로 약속했던 것 아닙니까! <주간충남>에서 여론을 조성해주지 않았다면 시민들에게 진심을 알리기 어려웠을 겁니다.」
두 사람은 순대국밥집에서 저녁식사를 같이한 후 그냥 헤어지기가 서운해서 포장마차를 들러 술잔을 나누고 있다. 이곳에 앉은 지 두 시간이 다 지나가고 있지만 꼼장어 한 마리에 소주 두병을 다 못 비우고 있다. 겨우 네 사람 정도 앉을 수 있는 자리를 갖춘 포장마차 주인아줌마는 가끔씩 하품을 해대며 조그만 TV에서 나오는 드라마에 빠져있다.

어제 열린 시민단체들의 공동성명서는 효과가 무척 컸다. 지역발전을 외면하고 있었던 여론 주도층에서도 더 이상 가만히 있을 수 없는 입장으로 몰고 갔다. 그동안 주민들은 무엇이 진실인지, 어느 것이 맞는 정책인지 잘 모르고 있었지만 시민단체들이 공동으로 나서자 진실이 드러난 것이다. 따라서 <주간충남>의 기획기사가 정당성을 갖게 되면서 급속도로 여론의 방향이 바뀌기 시작했다. 재래시장 상인들도 더 이상 조합장과 간부들의 말을 맹신하지 않게 됐다. 경제학 박사들이 지적했듯이 조합이 먼저 비전을 제시하고 활성화 방향을 제시해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는 자성론이 대두됐다. 현재까지 운영되는 주먹구구식으로는 미래가 없다는 진실을 알게 된 것이다.

진실의 힘은 점점 커지고 있다. 오늘 오전부터 <주간충남>사무실에는 신문을 중지해 달라는 독자들이 없어졌다. 어제부터 4대의 전화선을 모두 연결해서 원상복구 했지만 그동안 빗발쳤던 중지요청이 싹 사라진 것이다. 오히려 진실을 보도한 신문사가 힘내야 한다는 격려의 전화가 3통이나 왔다. 갑자기 상황이 바뀐 현실에 <주간충남>사람들은 기뻐하면서도 어리둥절했다. 그러나 시장조합의 불매운동으로 인한 타격은 컸다. 어제까지 중지되거나 반송된 부수가 2천부를 넘었다. 총 부수에서 거의 30%나 떨어져나갔다. 불매운동이 한 달간만 지속됐다면 신문사는 거의 모든 독자를 잃고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나마 이정도의 독자만 떨어져나간 선에서 마무리된 걸 다행으로 알아야한다. 신문사의 유료독자는 절대로 단기간에 올릴 수 없다. 이전의 유료독자 수준으로 끌어올리려면 수년이 걸릴 수도 있다.

한편, 다음날 오후3시 재래시장상인조합 사무실에서는 간부회의가 열리고 있다. 이 조합장이 맨 앞자리에 앉아있고 9명의 간부들이 순서대로 앉아서 진지한 표정을 짓고 있다.
「조합장님, 더 이상의 불매운동은 불가능합니다.
시민단체들이 공동성명서까지 낸 마당에 우리가 명분이 없습니다.」
「싸움을 시작했는데 이대로 후퇴하게 되면 우리 조합의 신뢰가 땅에 떨어질 겁니다.
상인들한테는 뭐라고 합니까. 우리의 불매운동에 문제가 있었다고 시인하란 말입니까?」
간부들은 불매운동을 중단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는 반면 조합장은 계속 이어가자는 주장을 굽히지 않는다. 이 조합장은 자존심을 버리지 못하고 현실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무엇보다 상인들에 대한 장악력을 잃게 될까봐 노심초사하고 있는 것이다.
이 조합장도 더 이상 불매운동을 이어갈 명분이 없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이미 상인들 사이에서도 실패한 불매운동이라는 지적이 대두되고 있었다.
「조합장님, 이대로 밀어붙였다가는 조합장님도 죽고 저희들도 죽게 됩니다. 고집을 부릴 일이 절대 아닙니다.」
이 조합장은 간부들의 말에 잠시 생각에 잠긴다. 간부들 말이 전적으로 옳다. 지금은 물러날 때다. 그렇지 않으면 조합에서 내분이 커지게 된다.
「알겠습니다. 간부님들의 의견에 전적으로 따르겠습니다.
불매운동을 완전히 중단하시기 바랍니다.」
드디어 명분을 잃은 불매운동이 중단된 것이다. 처음 시작할 때는 <주간충남>을 완전히 몰아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시장상인들의 힘을 모으면 언론사 하나쯤 문 닫게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진실이 밝혀지자 전세가 바뀌었다. 진실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 것이다.

불매운동이 시작되었을 때 김재진이 말했었다.
「언젠가는 진실이 이긴다.」
재래시장 상인들과의 대결에서 <주간충남>은 가까스로 살아남는다. 다행히 시민단체들이 나서서 진실을 가려주었기 때문에 간판을 내리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 후유증은 대단하다.
유료독자 숫자에서도 <주간충남>과 <주간서해>가 비슷해졌다. 오히려 <주간서해>의 영향력이 훨씬 커졌는데 그 이유는 5만부를 발행해서 집집마다 신문을 배부하는 바람에 단기간에 영향력이 커진 것이다. 신문시장에서는 영향력 1위와 2위의 차이는 엄청나다. 광고주들도 1위 신문사에 몰리게 되고 2위를 쳐다보지 않는다. 김재진은 그 설움을 가장 잘 알고 있다. 7년 전 그가 <주간충남>운영을 억지로 맡았을 때 2위의 설움을 뼈저리게 느꼈었다. 구독료 수입도 턱없이 모자랐지만 광고수입이 아주 형편없었다. 김재진과 기자들이 인맥을 총 동원하고 광고주들을 사정하면서 찾아다녔다. 그렇게 해서 고정광고를 하나 둘 유치하기 시작했고 7년 만에 1위 매체로 올라선 것이었다. 그런데 두 번의 큰 시련을 겪으면서 한순간에 2위로 떨어져 버린 것이다. 7년간의 기나긴 노력이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이날오후 <주간서해>사무실에서는 이정수와 신미연, 청수마을 청년회장 민주혁과 청년 3명이 낮은 탁자를 사이에 두고 소파에 몸을 묻고 있다.
「편집장님, 상인조합에서 불매운동을 완전히 중단하기로 했다는데 이렇게 되면 또 다시 우 리가 패배한 것 아닙니까?」
민주혁의 퉁명스런 말에 편집장 이정수가 멍하니 창문 쪽을 바라보다 대꾸한다.
「완전히 실패했다고 할 수 없습니다. 이미 <주간충남>은 커다란 타격을 입었습니다. 그들 의 숨통이 끊어지지는 않았지만 상처가 깊어서 오래가지는 못할 겁니다.
그 쪽 주재기자 중에 우리 측 정보원이 있는데 유료독자와 광고수입이 이전의 절반 수준 까지 떨어졌답니다. 그 정도면 3~4개월 정도면 끝날 겁니다.」
이들의 목표는 맹수같이 단 번에 적의 숨통을 끊어버리는 것이었다. 주인님의 명령이 그랬었다. 그러나 결과는 절반의 성공, 절반의 실패로 끝났다.
먹잇감은 맹수가 휘두른 날카로운 발톱에 살이 찢기고 피를 철철 흘리며 간신히 빠져나갔다. 다른 동료의 도움을 받아 가까스로 몸을 숨겼다. 그러나 너무 큰 상처를 입은 먹잇감은 오래가지 않아서 피곤해질 것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갈증에 목이 타들어갈 것이다. 조금 더 가다보면 눈앞이 희미해지면서 땅바닥에 쓰러질 것이다. 이제 맹수는 먹잇감의 핏자국을 쫓아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 머지않아 먹잇감의 맛있는 내장을 질겅질겅 씹어댈 것이다. 부드러운 뱃살을 따뜻한 피 냄새와 함께 맛보게 될 것이다. 이것은 정글의 법칙이다. 결국에는 맹수가 먹잇감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주간서해>사무실에 모인 두 기자와 청년들은 맹수와 같이 이글거리는 눈빛을 드러낸다. 그들이 두 번씩이나 공격해서 타격을 입힌 먹잇감을 절대로 뺏기지 않겠다는 다짐을 한다. 그리고 그 날을 기다리며 추적을 계속하기로 한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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