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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화] 납 치
[연재소설] 서영태 장편소설 <무서운 마을>
[111호] 2011년 12월 14일 (수) 16:36:46 서영태 기자 ssytt00@naver.com


1월12일 오전 9시
김재진은 승용차를 몰고 서해대교를 막 넘어가고 있다. 거대하게 세워진 교각이 한 개 지나고 두 번째 교각이 눈앞에 들어선다. 8㎞에 이르는 다리를 지날 때마다 그는 육중한 교각을 바라보며 인간의 거대한 힘을 느끼곤 한다.
서해바닷물에 다리를 담그고 하늘을 향해 우뚝 선 거인, 동화 속에나 나오는 거인이 실제로 인간 세상에 나타나 기나긴 팔을 뻗어 자동차들을 지나다니게 돕는 것 같다. 걸리버 여행기에서 등장하는 소인국에서 걸리버가 바닷물에 들어가자 적군의 함선에 탄 소인들이 혼비백산하던 장면에서 거인 걸리버의 모습이 소인들에게는 이 교각처럼 보였을 것이다.
거인 걸리버 같은 교각을 머릿속에 그리며 동화에 빠졌던 김재진이 아침부터 서울로 달려가는 이유는 서인애 때문이다. 그녀의 부러진 팔이 퇴원해도 될 만큼 회복되었다. 김재진의 다리도 이미 회복되어 오랜만에 승용차를 직접 운전하고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다.

1시간50분만에 서인애의 입원실에 도착한 김재진은 환자복을 벗고 우아한 투피스로 갈아입은 서인애를 번쩍 안아서 들어버린다. 부러진 다리 때문에 조심스럽게 그녀와 스킨십을 나누던 예전의 김재진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시켜주고 싶은 욕심인 것 같다.
그녀도 다 나은 팔로 그의 허리를 꽉 잡으며 힘껏 매달린다. 건강을 회복한 두 사람은 환자에서 정상인으로 돌아온 기쁨을 이렇게 벅차게 나누고 있다.

잠시 후 두 사람이 탄 승용차가 일산의 한 오피스텔 지하주차장으로 미끄러져 들어간다. 서인애는 3년 전부터 부모님 집에서 독립해 이곳에서 혼자 살아오고 있다. 그녀가 이곳에 자리를 잡게 된 것은 호수공원 코스를 걸어봤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일산호수공원에 매료됐다고 한다. 그녀는 이곳에 이사 온 후 새벽에 일어나 호수공원을 바라보며 뛰기도 하고 걷기도 하며 여유를 즐겼다고 한다. 입원실에 있을 때도 그녀는 김재진에게 호수공원에서 손잡고 걷고 싶다는 말을 여러 번 했었다.
어두운 주차장 입구를 벗어나 안쪽으로 들어가니 수많은 승용차들이 반듯반듯하게 세워져있다. 조금 더 들어가자 주차공간이 이 빠진 것처럼 비어있다. 반듯하게 줄을 맞춰 주차하고 두 사람이 동시에 내린다. 리모컨으로 문을 잠그는 소리가 경쾌하게 울린다.
서인애가 앞장서고 김재진이 짐 꾸러미를 들고 뒤따라 엘리베이터 앞에 서서 버튼을 누른다. 10층에 있던 엘리베이터가 8층, 6층, 3층, 1층까지 내려왔을 때 뒤에서 남자 목소리가 들린다.
「김재진 씨 맞죠?」
김재진이 고개를 돌리는 순간 그의 옆구리에 한 번도 경험한 적 없는 엄청난 전기가 밀려든다. 갑자기 모든 힘을 일시에 빼앗아가는 그 충격파. 그 무시무무시한 기계는 분명 전기충격기다. 서인애가 그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오다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서인애에게도 어느 순간 다른 남자가 다가와 전기충격을 가한다. 두 남자가 한 남자와 한 여자를 승용차에 옮겨 싣는다. 그리고 청테이프로 손과 발을 꽁꽁 묶고 입까지 막아버린다. 작업을 마친 승용차는 재빨리 자리를 벗어나 고속도로로 올라선다.

얼마나 달려왔을까. 김재진이 먼저 정신을 차린다. 아직도 옆구리가 저려온다. 살짝 실눈을 뜨고 옆을 보니 서인애가 꽁꽁 묶인 채 잠들어있다. 운전석과 조수석엔 두 남자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저 두 년 놈을 한 달간이나 기다렸다니깐. 언젠가는 저년이 꼭 집에 나타날 줄 알았어!
주인님께 저년을 바치면 얼마나 좋아하시겠어!」
「형님, 이제 30분만 가면 톨게이트가 나와요.
주인님은 절대로 휴게소에도 들리지 말고 바로 데려오라고 했어요. 저 여자를 주인님이 확실히 점찍었나 봐요.」
「그런데 저 놈은 어떻게 하지? 그냥 저수지에다가 돌을 메달아 던져버릴까? 우리가 저 놈 때문에 이 고생을 하고 있는 것 아니냔 말이야.」
「안 돼요 형님, 저 놈도 꼭 데려오라고 했어요. 죽으면 주인님의 지배를 받을 수 없잖아요. 저런 놈들을 세뇌시켜서 추종자로 만들어놔야 세상을 지배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어요.」
정신이 똑바로 돌아온 김재진은 그들의 말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듣는다. 그들이 말하는 주인님은 누구인가. 그 주인님이 서인애를 점찍어서 자신의 여자로 만들겠다는 말은 무엇인가. 세뇌를 시켜서 추종자로 만들어 세상을 지배한다는 말은 또 무엇인가. 그렇다면 그들 모두 세뇌당해서 추종자가 됐다는 말인가. 도무지 알 수 없는 수수께끼가 김재진을 난해하게 만들고 있다. 두 사람을 기절시켜 납치한 놈들은 청수마을과 관련되어 있을 것이다. 이들에게 계속 끌려가다간 서인애와 김재진의 목숨이 위태로울 수도 있다. 어떻게 해서든 그들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야한다. 김재진은 실눈을 뜨고 작은 허점을 노리고 있다.

청년이 운전하는 차가 서산 톨게이트 하이패스 구간을 지나 교차로 신호등에서 정차한다. 이들이 탄 승용차는 짙은 선팅으로 가려있어서 밖에서는 전혀 안을 볼 수 없다. 옆 차선에서 승용차가 나란히 서 있는 것이 보이지만 뒷좌석에 묶인 두 사람을 전혀 눈치 채지 못한다. 아직도 앞의 두 청년은 김재진이 정신을 차린 걸 깨닫지 못한다. 가끔씩 뒷좌석을 힐끔 거리기는 하지만 두 사람이 기절해 있는 것으로만 알고 있는 것 같다. 실눈을 뜨고 허점을 노리던 김재진의 눈에 길쭉한 검정색의 물체가 보인다.
운전하고 있는 청년의 호주머니에서 약간 튀어나온 모습이 낯익은 물건이다. 그 물건은 2주전 김재진이 신변의 위협을 느껴 구입했던 것과 같은 종류로 스위치만 누르면 바로 작동되는 전기충격기다. 언젠가 사용할 때를 대비해서 사용법을 연습한 적이 있다.
파란불에 승용차가 출발한다. 다음 신호등까지는 1분 정도 남아있다. 차가 신호등에 걸리면 한 번의 기회에 성공해야한다. 두 번의 기회는 오지 않을 것이다. 긴장된 1초, 2초가 지나더니 드디어 신호등 구간에 다가선다. 몸을 움직이려는 순간 차가 멈추지 않는다. 파란 신호등으로 곧바로 바뀌어서 멈출 듯하던 차가 계속 달려 나간다. 이제 더 이상 기회가 오지 않을 수 있다. 조금만 더 가면 오른쪽으로 90도를 돌아가는 코너가 나온다. 이곳에서도 빠져나가지 못하면 더 이상 기회가 없다. 김재진은 실눈을 뜨고 스쳐지나가는 길거리를 살핀다. 드디어 90도 커브를 돌기위해 승용차가 20km로 속도를 낮추고 운전대를 오른쪽으로 꺾는다. 잔뜩 몸을 웅크리고 있던 김재진은 용수철처럼 튕겨나가 운전대를 잡은 청년의 호주머니 속 물건을 잡는다. 스위치를 켜고 그의 옆구리에 힘껏 찔러 넣는다. 강력한 충격을 받은 청년이 운전대에서 손을 놓아버리고 축 늘어진다.
조수석에 있던 청년이 갑작스런 상황에 어리둥절하다가 운전대를 다시 잡아챈다. 그러나 이미 늦다. 승용차는 도로를 벗어나 반대차선 인도로 돌진하더니 슈퍼에 진열된 과일 상자를 들이받는다. 그 순간 김재진은 서인애를 안고 차 바닥에 엎어진다.
슈퍼 과일상자를 받은 승용차는 탄력을 멈추지 못하고 슈퍼 현관 기둥까지 들이받아 버린다. 앞에 탔던 청년들은 차 앞 유리창을 뚫고 땅바닥에 튕겨져 나가 움직이지 못한다. 차 바닥에 바짝 엎드린 두 사람은 다행히 큰 충격을 받지 않고 정신을 차리고 외친다.
「사람 살려주세요! 누구 없어요? 살려주세요!」
사고 난 장소에서 50미터 떨어진 곳에 파출소가 있다. 주민들의 신고를 받은 경찰관 두 명이 급히 뛰어온다. 차량 뒷자리에서 손발이 묶인 채 발견 된 두 사람을 보고 경찰관들은 납치사건임을 알아챈다. 그 즉시 김재진과 서인애의 묶인 손과 발을 풀어주고 두 청년들을 현장에서 체포한다. 김재진과 서인애는 파출소에서 피해자 진술을 마치고 나왔으며 붙잡힌 두 청년은 경찰서로 압송된다. 청수마을 청년들은 경찰서에서도 사주한 사람은 없었다고 고집한다. 한사코 두 청년이 모든 범행을 단독으로 저질렀다고 주장한다.

경찰서 정문에서 김재진과 서인애를 기다리고 있던 이연준은 곧바로 두 사람을 승용차에 태워 시내를 벗어난다.
「이번에 납치되면서 두 청년의 말을 엿들었어요.
그들은 주인님께 인애 씨를 바쳐야 된다고 했어요. 그래서 한 달 동안을 인애 씨 집 앞에 서 잠복했다고 했어요.」
「편집장님, 역시 청수마을 청년들의 짓이었습니다.
그들을 조종하는 자가 민주혁이란 것은 아는데 그 윗선을 정확히 모르겠습니다. 그들이 말한 주인님이라는 자가 혹시 최현범 영감 아닐까요?」
「글쎄요. 그 영감이 무슨 힘이 있다고... 그 영감이 기분 나쁜 뭔가를 숨기는 것은 분명해 보이긴 하죠.」
이연준이 몰고 잇는 차는 강원도로 향하고 있다. 사악한 악마의 손아귀에서 서인애를 숨겨야 하기 때문이다. 두 번씩이나 그녀를 납치하려했던 저들 아닌가. 커다란 충격을 받은 서인애는 김재진의 어깨에 기대어 잠에 빠져든다. 이제야 긴장을 풀고 편안함을 느끼다보니 잠이 몰려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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