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서영태 장편소설 <무서운 마을>


1월 16일 저녁 7시
시내에서 팔봉산으로 향하는 2차선 도로. 팔봉산 자락에 우아한 곡선 지붕을 얹은 한옥 음식점이 기품 있게 자리 잡고 있다. 조금 전부터 이 집에 승용차가 10여대 넘게 속속 들어와서 멈춰 선다.

봉이 여덟 개라고 해서 이름 붙여진 팔봉산은 요즘 전국 등산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아름다운 산으로 소문났다. 처음에는 평평한 산길이 나오고 적당한 돌계단이 나오고 또 기묘하게 생긴 암벽과 철 계단이 나오더니 간 큰 산악인들을 위해 스릴 넘치는 밧줄타기 코스까지 다양한 재미를 주는 명산이다. 이름이 팔봉이라서 그런지 그 재미도 여덟 가지는 되어보일 것 같다.

이렇게 아름답고 재미난 팔봉산 아래 지은 한옥집이 사람을 끄는 은근한 매력이 있는지 오늘 손님들의 방문이 이어진다. 음식점에는 작은 정원 건너 안채가 별도로 마련되어 있는데 지금 들어온 손님들은 다 그리로 들어간다. 자리를 잡고 앉은 사람들의 면면은 서로 잘 아는 사이, 시청출입기자들이다. 일간지, 주간지, 방송기자들 20여명이 옆 사람들과 담소를 나누고 있다. 곧이어 김정철 시장이 최현범과 함께 방에 들어선다. 그런데 이 자리에는 <주간충남>출입기자만 빠져있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아무도 모른다.

“많이들 기다리셨습니다. 이번에 <주간서해>운영을 맡으신 최현범 대표님을 여러분 앞에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우리 최 대표님은 시에서도 언론분야 고문을 수락하셨습니다. 앞으로 언론계를 이끌어갈 어른이시기 때문에 여러분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부탁드립니다...한마디 하시죠 고문님!”
김 시장의 발언에 최현범이 참석자들을 둘러보더니 입을 연다.
“네, 최현범이올시다. 저는 이곳이 고향은 아니지만 뼈를 묻을 작정입니다. 무엇보다도 우리고장 언론 발전을 위해 여기 모인 기자님들과 잘 사귀어서 좋은 지역사회를 만들도록 노력하겠습니다.”

20여명의 출입기자들에게는 많이 불쾌한 자리일 수밖에 없다. 언론사라는 게 서로 잘난 맛에 경쟁하는 처지인데 경쟁관계에서 누가 누구 위에 올라간다는 것이 좋게 받아들여질 리가 없다. 그래서 무한경쟁 구도가 지속되어 온 것이다. 그런데 시장이 나서서 한 언론사 대표에게 고문직을 위촉하고 그 사람을 중심으로 언론계를 재편하려는 시도로 받아들여지면서 불편한 마음이 생기는 것이다. 그러나 시장이 주관하는 만찬자리인데 겉으로 표현하기는 어렵다.

한편, 시청출입기자들이 한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모래알 같이 흩어진 데에는 다른 이유도 있었다. 20여명의 등록된 출입기자 중에 이름만 등록하고 제대로 출입하지 않는 기자가 10여명은 됐다. 이들은 주로 대전 등지에 본사를 둔 출입기자들이었는데 수입이 일정하지 않기 때문에 다른 직업을 가지고 있어 프리랜서식의 활동에 그치고 있었다. 비교적 출입을 잘하는 기자들의 경우에도 대도시에 본사를 둔 일간지 기자들과 지역에 본사가 있는 주간지 기자로 나누어져 서로 경쟁관계가 형성되었다. 또한 일간지 기자들 간에도 경쟁이 치열해서 기자단을 만들었다가도 깨져버리곤 했다. 그래서 출입기자들은 모래알처럼 각자 생존방식으로 활동하며 기자단 구성이 어려웠다. 오늘 시장 주관 만찬도 시청공보실에서 각자 출입기자들에게 통보해서 이뤄졌다.
이런 환경에서 <주간서해>대표가 언론고문을 맡았다는 사실은 빅뉴스였다. 지역언론계의 관행을 하루아침에 바꿔버리고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 버린 것이었다. 그것도 김 시장이 직접 단행한 것인 만큼 두고두고 뒷말이 무성할 게 틀림없었다.

이 지역 뿐만아니라 전국 대부분의 자치단체와 출입기자들은 미묘한 관계에 있다. 자치단체는 막대한 홍보예산을 가지고 있으며 출입기자들은 자치단체를 견제할 수 있는 취재권을 가지고 있다. 자치단체는 막대한 홍보예산을 이용해서 출입기자를 교묘히 이용한다. 어떤 담당공무원은 비판기사를 쓰는 기자들에게 노골적으로 광고비를 주지 않겠다고 말한다. 반대로 홍보성 기사를 잘 내보는 기자에겐 거액의 광고비를 배정해준다. 이런 식으로 홍보비를 가지고 기자를 길들이다보니 본사 눈치를 봐야하는 출입기자들은 소신껏 기사를 쓰지 못한다. 그래서 지역일간지들을 보면 거의 비슷한 홍보성 기사가 제목만 바뀐 채 여기저기에 복사하듯이 실리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자치단체와 출입기자가 비정상적으로 관계를 맺는 배경에는 본사의 잘못이 크다. 출입기자들이 소신껏 취재할 수 있도록 기본적인 대우를 해줘야 하는데 우리나라 지방일간지의 경영이 영세하기 때문에 기본 취재비조차 지급하지 않는 경우도 있어 출입기자가 광고를 수주해야 약간의 수입이 생기는 시스템도 허다하다. 이 때문에 출입기자가 자치단체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오늘 시장과 만찬자리에서도 관행을 깨는 김 시장의 처사 때문에 불편해진 출입기자들은 공식적으로 불평하지는 못하고 있다. 그러나 시장이 자리를 뜨면 삼사오오 모여 뒷담화로 불평이 쏟아질 것이다. 이런 입장을 잘 알고 있을 공보계장의 이마에선 한 겨울인데도 땀이 한 방울 흘러내린다. 아마도 기자들의 불평은 만만한 공보게장에게 쏟아질 것이다. 최 일선에서 출입기자를 관리하는 사람이 공보계장이기 때문에 이 자리에 있는 한 숙명과 같은 것이다.
자치단체 공보계장 자리는 늘 참을성 많고 비위가 좋고 술도 잘 먹는 공무원이 담당해 왔다. 출입기자가 시청에 대해서 비판기사를 올렸을 때 눈치 빠른 공보계장은 그 기자에게 연락해서 무슨 문제가 있는지, 혹 감정이 있어서 그런지, 혹 원하는 게 무엇인지 파악하는 일부터 시작한다. 그래서 부서 담당자와 연락해서 출입기자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전달하고 더 이상의 관련기사가 나가지 않거나 취소되게 만드는 일에 최선을 다한다. 그들은 이것이야말로 원활한 소통이고 언론과 자치단체 사이의 관계라고 믿는다. 그래서 역할을 잘한 공보계장은 승진대상자에 오르는 경우가 많다. 물론 모든 공보계장이 다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이윽고 김 시장과 최현범이 동시에 일어나 인사를 한 후 밖으로 나간다. 그런데 시장이 최현범을 대하는 태도가 꼭 대통령을 모시듯 깍듯하다. 왜 그렇게까지 해야 되는 지 이해하는 사람은 이정수와 신미연 뿐이다.
두 사람의 모습이 사라지자마자 <주간서해>편집장 이정수가 재빠르게 앞으로 나가 짧게 인사를 한 후 두툼한 봉투를 하나씩 돌린다. 다시 앞으로 나선 이정수가 말한다.
“수고하시는 기자님들께 저희 최현범 대표님이 주시는 격려금입니다. 앞으로도 매달 여러분들께 격려금을 지급하실 계획입니다. 저희 대표님은 오직 지역 언론계가 한마음이 되어서 좋은 사회를 만들어가길 원하고 계십니다.”
봉투를 열어 본 참석자들은 100만원의 현금을 발견한다. 그리고 모든 불평불만의 목소리는 나오지 않는다. 긴장하던 공보계장도 비소로 안심하고 건배를 제안한다.

혜성처럼 지역언론계에 등장한 최현범은 김정철 시장의 후광을 힘입어 비교적 쉽게 언론계 최고의 어른으로 입지를 굳혔다. 김 시장이 그를 언론계를 대표하는 고문으로 위촉한 것도 큰 힘이 되었지만 출입기자들이 단숨에 그의 존재를 용인하게 된 것은 큰 씀씀이었다. 20여명의 출입기자들에게 매달 격려금으로 100만원씩을 준다는 것은 큰 부자라도 상상하기 조차 힘든 약속이다. 그런데 그가 얼마나 큰 부자이기에 그렇게 씀씀이가 크단 말인가. 기자들 입장에서는 저절로 굴러들어온 물주다. 그런 스폰서 하나쯤은 있어야 빠듯한 취재비 걱정을 덜 수 있다. 결국 최현범은 엄청난 배포와 현금으로 언론계 최고 어른으로 공식 데뷔한 것이다.

오늘 식사자리를 마련하고 출입기자들을 다 불러 최현범을 언론계 어른으로 모시게 된 것은 <주간서해> 편집장 이정수의 작품이다. 그는 <주간충남>기자로 재직하던 시절 시청을 출입하면서 타 언론사 기자들과 교분을 쌓았었다. 그래서 출입기자들의 성향과 시청과의 관계에 대해서 많은 정보들을 알고 있었다.
이정수는 며칠 전에 영향력이 큰 3개 신문사 출입기자들에게 식사를 대접했다. 그 자리에서 최현범이 언론계 고문으로 내정된 사실을 밝히고 조언을 구했다. 처음에는 부정적인 의견을 보이던 기자들에게 충분히 설명하며 기자들에게 충분한 지원을 할 수도 있다는 말도 첨가했다. 영향력이 큰 3명의 출입기자들은 서로 논의한 끝에 매달 격려금을 지급한다면 모든 기자들이 승낙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어보겠다고 제안했다. 그리고 비밀리에 3명의 기자들에게는 매달 두 배의 격려금을 주는 것도 첨가했다.
이정수의 주인님인 최현범은 이미 현금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말라는 명령을 내렸기 때문에 그들의 합의는 그 자리에서 이뤄졌다. 그리고 이정수는 약속한대로 실천했다.
최현범은 이미 비밀의 방 금고에 100억 원의 현금을 쌓아두고 있었다. 출입기자 20명에게 주는 격려금 정도는 껌 값도 안 되는 소액이었으며 지역언론계를 장악할 수 있다면 그까짓 것은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조금 더 있으면 지역의 모든 분야를 다 장악할 것이다. 그리고 나라를 통째로 먹을 것이다. 한 단계씩 세상을 지배하는 계단을 올라가면 된다. 그의 마음속에 세상을 지배하고 싶은 욕망이 꿈틀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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