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서영태 장편소설 <무서운 마을>




1월 20일 오후2시 <바른시민모임>사무실에서 15개 시민단체들이 연합회의가 열리고 있다. 오늘 중대한 사안을 논의하는 만큼 모든 단체에서 대표자를 보내왔다. 자리에서 일어난 윤길현이 먼저 의제에 대해서 말을 꺼낸다.
“오늘 긴급회의에 참석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지금 지역언론계가 개인의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서 일사분란하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주간서해> 최현범 대표가 언론계 고문으로 위촉되더니 시청출입기자들을 돈으로 매수해서 사조직화하고 있습니다. 우리 시민단체들이 이대로 두고 볼 수 없습니다.”
윤길현의 장황한 설명이 이어지자 대부분의 단체 대표자들은 수긍하는 분위기다. 지금 언론계가 돌아가는 상황을 어느 정도 들어서 알고 있는 것이다. 문제가 심각하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이때 한 사람이 손을 들고 벌떡 일어선다. 그는 <학부모연합>대표 유희석이다.
“윤 국장님은 언론계가 개인의 사욕에 의해서 망가지고 있다고 말씀하셨는데 그것은 맞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알기로는 그동안 지역언론계는 모래알 같이 흩어져서 서로 물고 무는 무한경쟁에 빠져 밥그릇 싸움만 해왔습니다. 이런 잘못된 관행을 바꾸기 위해 시장님이 나섰고 영향력 1위인 지역주간신문 최현범 대표를 언론고문으로 위촉한 것입니다. 이제야 언론계도 소모적인 경쟁을 그치고 시민을 위한 조직으로 새롭게 정비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우리가 나쁘게만 보면 시민단체와 언론단체 간에 전쟁이 벌어질 것입니다.”
유희석의 말은 단호했다. 그리고 전쟁발언까지 서슴지 않으며 긴장감이 감돌게 만들었다.
순간적으로 모든 사람이 할 말을 잃고 침묵한다.
이에 윤길현이 침묵을 깨고 나선다.
“시장이 직접 언론계를 바꾸겠다는 발상이 잘못입니다. 그렇게 되면 관에서 언론을 통제하게 됩니다. 또한 최현범 대표가 격려금을 빙자해서 매달 기자들에게 거액을 지급한다는 것은 분명히 돈을 이용해서 매수하는 행위입니다. 우리가 나서서 이를 저지해야 합니다.”
이에 질세라 유희석이 또 발언에 나선다.
“시장이 시정의 원활한 운영을 위해서 고문을 위촉한 게 무슨 잘못입니까. 또한, 매달 출입기자들에게 거액을 준다고 했는데 무슨 근거로 그런 말을 하십니까. 확실한 증거도 없이 그런 말을 하면 명예훼손에 해당합니다. 저는 우리 시민단체들이 선동에 놀아나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언론단체를 건드리는 것은 자살행위가 될 수 있습니다.”

회의 분위기는 윤길현 대 유희석의 대결구도가 됐다. 참석자들은 어느 한 사람의 편에 서기 어려운 입장이 된다. 회의가 길어질수록 두 사람의 대결구도는 더욱 긴장감이 흐른다. 결국 회의는 결론을 내지 못하고 종료되고 만다. 다음 회의 날짜조차도 잡지 못한다.
이날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하고 극한 대결만 보인 채 파장된 후 시민단체의 분열이 발생한다. 그동안 지역사회의 어려움이 닥칠 때마다 한목소리를 내서 진실을 알리던 시민단체의 분열은 치명적이다. 지역언론계가 진실을 보도하지 못하는 상황에 빠진 것도 문제지만 시민단체들이 단합하지 못하면 지역사회에서 견제의 역할을 수행할 곳이 모두 사라져 버리는 것이다.
이 때문에 윤길현은 가슴이 미어진다. 지난 10년 이상을 시민운동에 종사해왔지만 이렇게 분열되어 어려움을 겪은 적은 처음이다. 오늘 강력하게 반대한 유희석이 아무런 의도 없이 반대한 것인가, 아니면 언론계와 결탁한 때문인가. 누가 적이고 누가 아군인지 경계가 불명확해진다. 앞으로 더 문제가 커질 것이다. 진실을 말할 사람은 점점 더 줄어들 것이다. 거대한 세력의 존재가 점점 지역사회를 먹어 치우는 것 같다. 그래서 윤길현의 마음이 답답해지고 있다.

이날 오후 7시 시내 한정식집 골방에서 이정수와 신미연이 <학부모연합>대표 유희석과 자리를 마주하고 있다. 다리가 부러질 듯 잘 차려진 상 위에 놓인 술잔에 이정수가 고급스런 사기주전자를 들어 술을 따른다. 유희석은 얼굴에 흡족한 웃음을 머금고 술잔을 들어 단숨에 비운다.
“유대표님께서 저희들에게 큰 힘이 되어주셨습니다. 저희 최현범 대표님께서 고맙다는 말씀을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뭘 그 정도 가지고 그러세요. 그나저나 그 <바른시민모임> 윤길현이라는 자가 자꾸 쓸데없는 소리를 해서 걱정입니다. 그 작자가 시민단체들에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어요. 저는 편을 나누자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작자에게 시민단체들이 휘둘려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학부모연합>대표 유희석은 이 단체를 7년째 이끌어오며 각 학교마다 운영되는 학부모회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이 분야에서는 독보적인 영향력을 과시하고 있는 인물이다. 그는 김정철 시장과도 고등학교 선후배 사이이며 측근으로 알려져 있다. 본인은 별 관계가 없다고 한사코 부인하는 입장이지만 알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유희석은 어젯밤에 김정철 시장에게 한통의 전화를 받았다. 시민단체에서 내일 회의가 열리는데 언론단체를 공격하는 발언이 나오면 앞장서서 반대해 달라는 주문이었다. 언론단체가 시장을 잘 도와주고 감싸줘서 업무수행에 문제가 없는데 이를 시민단체가 문제 삼으면 안 된다는 말도 했다.
김 시장이 누구인가. 세상사람들은 잘 모르지만 유희석과의 끈끈한 관계는 둘 만이 아는 비밀이다. 김 시장은 선거 때마다 교육계의 선거운동을 유희석에게 맡겨왔다. 그의 입이 무겁고 조직을 구성하고 관리하는 능력이 있었기 때문에 함께 성장하자는 약속도 했고 아낌없이 선거비용을 내려 보낸 것이다. 누구나 다 아는 것처럼 집안 대대로 물려받은 김 시장의 재산은 천문학적인 숫자였기에 유희석이 받은 선거자금은 껌 값에 불과했다. 유희석 지난 선거에서도 10억의 선거자금이 든 사과박스를 김 시장에게서 건네받아 3억을 남겨두고 7억을 조직원에게 분배했다. 남겨진 현금은 집안 장롱구석에 꼭꼭 숨겨뒀다가 천천히 판공비로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차피 다음 선거 때까지 자신의 조직을 관리하자면 그 정도 판공비는 들어갈 것이었다.

다시 한 번 술을 따르던 이정수가 넌지시 말을 건넨다.
“이번 기회에 유 대표님께서 시민단체연합회장에 나서시면 어떨까요? 아직은 연합회장이 없지만 저희 언론단체에서 강력하게 밀면 안 될 것도 없지 않습니까?”
“그거 듣기에 좋은 말이기는 한데 가능하겠습니까? 시민단체들도 언론사들 마냥 자존심들이 무척 강합니다. 그래서 연합회장 같은 자리를 서로 인정하지 않으려고 해요. 또 진보단체와 보수단체로 이념에 따라 나눠져서 어려울 겁니다.”
“제가알고 있기로는 대부분의 단체들이 시청에서 운영비 지원을 받고 있습니다. 시장님과 협의해서 이 점을 이용하면 모든 시민단체들을 통합할 수 있을 겁니다. 가령 내년부터는 시민단체연합회를 통하지 않으면 예산을 배정하지 않겠다고 한다면 지원을 받기위해 단체들이 움직일 겁니다.”

이정수는 날카로운 지적을 하고 있었다. 대부분의 시민단체들은 영세하게 운영된다. 수십 년 전 시민단체라는 것이 태동했을 때에는 순수 회원들의 자비로 운영했다. 고정적으로 월급을 받는 상근직도 한 명 없이 전원 봉사하면서 호주머니에서 십시일반 꺼낸 회비로 근근이 운영해왔다. 정부나 자치단체의 예산을 받지 않고 독자적으로 활동했기 때문에 시민단체가 국민들에게 인정도 받고 시민권력이라는 새로운 주체로 우리 사회의 중요한 존재가 될 수 있었다. 수십 년간 독립적으로 활동 해 온 선배들의 힘이었다.
그런데 요즘에 활동하는 시민단체들의 모습은 많이 변했다. 대부분의 시민단체들이 정부나 자치단체에서 예산을 배정 받느라 혈안이 되어 있다. 이 돈으로 시민단체들은 상근자를 만들어 월급도 주고, 각종 사업도 펼쳐나간다. 그들의 활동에서 선배들이 가장 중요시하던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에 대한 독립성이 사라져 버렸다. 서서히 관 조직에 예속되어 갔다. 과연 순수한 시민단체가 얼마나 될 지 아무도 모르는 상황이 되었다. 이 때문에 시민단체들은 관 주도의 정책을 따르게 되고 공무원의 눈치를 보는 상황까지 이르렀다. 담당 공무원의 협조요청을 따르지 않으면 예산배정을 보장 받을 수 없다는 압박감에 시달리기도 한다. 또 한 가지 자치단체에서는 예산을 내려 주면서 관리감독권을 갖게 된다. 각종 보조금을 받은 시민단체에서는 배정 받은 예산뿐만 아니라 자기 자본금으로 사용한 영수증 내역까지 전부 제출해야 한다. 이에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담당공무원은 보고서를 다시 작성할 것을 요구한다. 이렇게 서서히 관에 예속되는 것이 시민단체의 모습이었다. 물론 모든 시민단체가 다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이 문제를 취재하면서 상황을 잘 알게 된 이정수는 말 안 듣는 시민단체들을 확실히 잡을 수 있는 계획을 세웠다. 그의 주인님께 모든 보고가 즉각적으로 올라갔다.

이정수는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최현범이 주는 격려금 5천만 원을 유희석에게 건넨다. 유희석은 어색할 정도로 얼굴 근육을 과도하게 사용하며 소리 없는 웃음을 흘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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