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서영태 장편소설 <무서운 마을>




1월 23일 오전 10시 학부모연합 사무실에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다. 이 단체 대표 유희석이 시민단체 대표들을 초청한 것이다. 사무실 앞에는 대형 현수막이 걸렸고 큰 글씨가 보인다.
‘시민단체 연합회 창립모임’
유희석은 명예욕이 많은 사람이었다. 그래서 일반 학부모의 역할에서 끝나지 않고 학부모 모임에서 리더 자리를 맡더니 결국 학부모연합 단체 대표직까지 오른 경력을 보아도 조직을 장악하고 구성하는 능력이 탁월한 사람이었다.
그는 며칠 전에 이정수와 만나서 이야기를 주고받을 때만 해도 시민단체연합회 구상을 못했었다. 그런데 이정수의 제안이 나오자마자 그의 남다른 명예욕이 발동하더니 오늘 창립준비모임까지 추진해 버린 것이다.

유희석이 초대해서 참석한 시민단체 대표들은 11명이다. 총 15개의 단체 중에서 바른시민모임과 밀접한 관계에 있는 4개 단체만 빠지고 다 참석한 것이다.
유희석은 특별 초대손님으로 시청 총무국장과 이정수, 신미연을 소개하고 시청 총무국장에게 발언 기회를 준다.
“안녕하십니까. 시청 총무국장입니다. 다름이 아니라 저희 시청에서는 올해부터 시민단체 보조금 지급 운영을 조금 바꾸게 됩니다. 기존에 개별적으로 보조금을 지급하던 방식에서 연합회를 통해 단체 지급하는 방식으로 바꾸게 되었습니다. 이는 더욱 효율적인 방안으로서 시민단체의 위상을 높여주고 투명한 행정이 되도록 운영될 것입니다.”
총무국장의 말뜻은 시민단체 보조금을 연합회에다 몽땅 주면 거기에서 각자 분배하겠다는 말이었다. 이렇게 되면 연합회가 시민단체들을 장악할 수 있는 근거가 생긴다. 각자 단체들은 예산을 더 많이 배정 받으려고 연합회의 눈치 보기에 바빠질 것이다.
총무국장의 발언에 이어 진행을 맡은 신미연이 나선다.
“오늘 진행을 맡게 된 신미연입니다. 연합회가 왜 필요한 지 총무국장님의 말씀을 들어서 잘 아실 겁니다. 따라서 오늘 이 자리에는 시민단체 대표들이 대부분 참석하셨으므로 연합회장을 선출하도록 하겠습니다. 추천을 부탁합니다.”

조직 장악력이 뛰어난 유희석은 어젯밤 그와 가장 친한 시민단체 대표 3명을 술자리에 불러 작업을 해놓았다. 이번에 연합회를 구성할 포부를 밝히고 자기를 연합회장으로 밀어주면 부회장 자리를 약속하고 다른 단체에 비해 2배의 예산을 정해 주겠다고 회유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판공비로 쓰라고 각각 500만원씩 약을 먹여놓았다. 누이 좋고 매부 좋고 그들끼리 짜고 치는 고스톱판이었다.

미리 약속된 한 단체 대표가 유희석을 추천한다. 이어서 다른 대표가 또 유희석을 추천한다. 또다시 유희석이 최고 적임자라는 발언이 나온다. 더 이상의 추천이 들어오지 않는다.
다들 눈치를 보느라 누구를 추천하고 말고 할 경황이 아니다.
“유희석 대표님이 단독 후보로 추천되었습니다. 반대하시는 분이 없는 것으로 알고 만장일치로 통과하도록 하겠습니다. 박수로 찬성표시를 해주시기 바랍니다.” 신미연이 신속하게 진행한다.
미리 짜맞춘 대표들이 바람을 잡아 열심히 박수를 치고 있는 사이에 다른 대표들도 뻘쭘한 얼굴색으로 따라서 힘없는 박수를 보낸다. 이렇게 유희석은 시민단체연합회장에 당선되었다.
“저를 연합회장으로 뽑아주신 각 단체 대표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저는 앞으로 시민단체 발전을 위해 더 많은 보조금을 유치하도록 하겠으며 일을 잘 하는 시민단체를 선정하여 우선적으로 예산을 배정하겠습니다. 모두 발전을 위해 열심히 일합시다.”
유희석은 당선인사에서 어떤 기준으로 예산을 배정하겠다는 말을 안한다. 연합회장의 권한을 마음대로 휘두르겠다는 속셈을 감추기 위함일 것이다.

시장 측근이 연합회장에 당선되자 시민단체의 존재가 달라진다. 대부분의 시민단체를 거느린 연합회는 각 단체들이 개별적인 활동을 하지 못하게 통제라는 역할부터 시작한다. 그전에는 어떤 사안에 대하여 개별적인 성명서도 발표하고 항의 방문도 했었지만 이제는 연합회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연합회장 유희석은 시민단체가 단결해야 더 큰 목소리를 낼 수 있다며 함께 행동하자고 강조하지만 실제로는 각 시민단체들에게 활동보고를 받아 사전 통제하는 데 더 큰 목적을 두고 있다.
가령 언론단체를 장악한 최현범의 언론 사욕화를 저지해야 한다는 건의가 들어오면 연합회의를 열어서 결정하자면서 실상은 측근들을 이용해서 반대표를 행사하는 식이다. 연합회 운영은 유희석과 그의 측근 3명이 똘똘 뭉쳐서 이권을 나눠먹고 나머지 단체들은 들러리를 서는 것이다. 그러나 예산 배정권을 가진 연합회에 각 단체들은 큰 소리를 칠 수도 없는 입장이다. 처음에는 11개 단체가 참여한 연합회는 한 달여 만에 14개 단체로 늘어난다. 자치단체 예산을 전혀 받지 않고 운영해오던 바른시민모임만 끝까지 연합회에 가입하지 않는다.
만약 가입한다고 해도 연합회장 유희석은 받아들이지 않았을 것이다. 조직 장악력이 뛰어난 유희석은 시민단체 연합회를 빠른 속도로 장악해 나간다. 측근 3명을 부회장으로 앉혀서 2배의 보조금 예산을 배정해주고 나머지 단체에는 충성도에 따라 철저하게 차별한다. 시민단체들까지 무한 충성 경쟁이 벌어진다.
연합회 사무국장은 신미연이 맡았다. 사전에 시장과 최현번이 유희석을 만나 언질을 준 것이었다. 언론단체는 이정수가 맡고 시민단체는 신미연이 사무국장을 맡아 그들의 주인님 뜻이 잘 전달되도록 통로 역할을 잘 해낼 것이었다.

첫 시민단체연합회가 끝났을 때 신미연이 유희석에게 제안한다.
“최현범 대표님께서 연합회장님을 3일간의 여행에 초대한다고 하십니다. 꼭 시간을 내서 좋은 여행을 다녀오시죠.”
그 후 10일이 지나 유희석은 최현범, 신미연과 함께 3일간의 여행을 떠난다. 해외여행인줄 알고 최현범의 전원주택에 들렀던 유희석은 옆구리에 강력한 전기충격을 받고 비밀의 방에서 3일간의 환각여행을 체험한다. 그리고 주인님의 충실한 개가 되어 돌아온다. 이렇게 최현범은 시민단체연합회를 장악한다.

이제 시장, 경찰서장, 언론단체, 시민단체를 장악한 최현범에게는 더 이상 장애물이 없다. 지역사회에서 힘이 센 기관단체들을 모두 지배하고 있는데 누가 감히 비판을 할 수 있는가. 비판을 하고자 해도 그들의 말을 들어줄 곳이 어디에 존재하는가. 이제 완전히 최현범이 원하는 세상이 된 것이다. 지역사회 모든 분야를 지배하는 꿈이 드디어 이루어진 것이다.

최현범이 지역사회 곳곳에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사실은 은밀하게 기관장들 사이에서 퍼져나간다. 그를 통하면 안 되는 것이 없다는 소문이 돌자 각종 청탁을 하려는 무리들이 그의 전원주택을 찾기 시작한다. 이즈음 갑부로 소문난 김정철 시장이 정태섭 회장 저택을 50억에 샀다는 소문이 부동산 업계에서 나돌기 시작한다. 그런데 정작 김 시장은 저택으로 이사를 하지 않고 최현범이 혼자 살고 있으며 매주 마다 50여명의 사람들이 모여든다는 소문이 나돌고 있다.

더 이상 최현범은 작은 전원주택에 살지 않는다. 그곳은 그의 행동대 역할을 하는 청수마을 청년들 사무실로 내주고 김 시장이 구입했다는 죽은 정 회장 저택에서 생활하고 있다. 어차피 김 시장의 정신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에 모든 재산이 다 최현범 것이나 다름없다. 지하통로로 연결된 전원주택에서는 든든한 청년들이 밤낮으로 그의 저택을 지켜주고 있다.

이제 각종 청탁자들은 최현범을 만나기 전에 전원주택에 들러 여러 가지 심사에 통과해야 한다. 그 첫 번째 심사가 재산현황이었다. 얼마나 많은 부동산과 현금을 보유하고 있는지에 대한 재산세 현황, 등기부 등본을 필히 제출해야 한다. 두 번째로 사회적인 영향력을 심사한다. 사회적으로 어떤 직위를 맡고 있나. 주변에 친하게 지내는 저명인사가 있는가, 운영하는 회사나 직장은 얼마나 튼튼한 곳인지를 꼼꼼히 체크하고 증명자료를 제출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무엇 때문에 최현범을 찾아왔으며 청탁의 대가로 무엇을 바칠 수 있는지 체크하는 심사가 3단계로 까다롭게 이어진다.
청탁을 하러왔던 사람들 중에는 기준 미달로 돌아간 사람도 있고, 3단계 심사에 불쾌감을 표시하며 돌아간 사람도 나온다. 이중에 불평을 했던 사람은 일일이 체크해서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따로 보관한다. 나중에 비판세력으로 나설 경우에 철저하게 응징하기 위한 사전 준비 작업이다.
3단계 심사를 모두 통과한 사람은 또다시 10일을 기다려서 저택으로 안내된다. 저택에 들어가기 전 철저한 몸수색은 기본이어서 꼭 청와대로 대통령을 만나러 가는 것과 비슷한 형태다. 나중에는 아예 자동검색대까지 마련해서 더욱 철저하게 보안을 유지한다.

저작권자 © 충남인터넷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