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서영태 장편소설 <무서운 마을>



2월 6일 저녁 10시 저택 비밀의 방에는 50여명의 사람들이 무릎을 꿇고 앉아서 주문을 외우고 있다.
“주인님은 세상의 절대자요, 우리의 영혼을 지배하는 주권자요, 전지전능한 신중의 신이요, 죽음보다도 무서운 권능자요, 우리가 충성을 바쳐야 할 만물의 주인이시로다.”
이들의 주문은 묵직하면서도 사람의 마음을 흔드는 분위기를 자아낸다. 똑같은 주문을 반복하면서 점차 어떤 최면에 빠지는 듯 눈물을 흘리는 사람, 몸을 바들바들 떨면서 경련을 일으키는 사람, 머리를 땅에 묻고 거의 혼이 나간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 이들은 벌써 한 시간째 주문을 반복하면서 더욱 더 깊은 최면에 빠져들고 있다.
최현범은 비밀의 방 모니터에서 50여명의 추종자들을 지켜보고 있다. 그러면서 그들의 신이 된 자신에 뿌듯한 만족감을 느끼고 있다. 그가 이처럼 매주 종교적인 모임을 개최하게 된 배경에는 정태섭 회장 부부의 사건이 있었다.

정 회장 아들이 애인 서인애를 저택에 데려온 그날 밤 정 회장은 아들과 애인을 주인님께 바치라는 명령을 거부하고 그의 바짓가랑이를 잡으며 애걸을 했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사랑하는 외아들만큼은 악마의 추종자로 넘겨줄 수 없다는 결연한 부모의 저항이었다. 그 순간 최현범은 충격을 받았다. 자신의 추종자들이 절대로 해서는 안 될 일이었다. 성경에 의하면 아브라함은 아들인 이삭을 바치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아들의 생명을 거두려고 제단위에서 칼을 번쩍 들었다. 그런데 정태섭 부부의 정신을 지배하는 주인님에게 그들은 아들의 정신조차도 바치지 못하겠다고 저항했던 것이었다.
그날 밤 최현범은 정회장 부부가 달라졌다는 점을 느끼게 됐다. 밤새 비밀의 방에서 고민을 거듭했다. 모니터를 통해 아름다운 서인애의 방을 몰래 훔쳐보면서 더욱 큰 고민에 빠졌다. 그녀를 차지하고픈 마음이 굴뚝같은데 정 회장 부부가 가로막고 나서 너무 큰 실망에 빠진 것이었다. 급기야 정 회장 아들까지 새벽에 찾아와 최현범의 멱살을 잡더니 자신의 부모에게 무슨 짓을 했는지 똑바로 대라고 눈을 부릅뜨는 것이 아닌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몰래 아들을 불러 악마의 환각여행을 보내고는 정 회장 부부를 없애라고 명령을 내린 것이었다. 세상을 지배하고픈 최현범은 용납할 수 없는 잘못을 저지른 그들을 응징할 수밖에 없었다.
그 사건 후 최현범이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종교집단을 만들어야 되겠다는 것이었다. 다시는 정 회장 부부와 같이 혈육의 정에 이끌려서 명령을 거부하는 자가 나오지 않게 하려면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종교집단을 만들어야겠다는 목표가 생겼다.
이후 최현범은 청수마을 청년들을 전국으로 보내서 종교집단을 만들기에 가장 적합한 자를 수소문했다. 그러던 중 우리나라 종교계를 발칵 뒤집어 놨던 사건의 주인공이 정신병원에 갇혀 있다는 소식을 접했다. 그 사람은 남 선지자라고 불리는데 15년 전 30여명의 추종자들이 자살하도록 명령해서 죽음으로 내몰았고 자신만 유일하게 살아남은 인물이었다.
남 선지자는 재판정에서 꽁꽁 묶인 채 마지막 변론을 멋지게 했었다.
“우리는 모두 악마의 자식입니다. 저는 절대악마가 보낸 선지자입니다. 나를 따르는 추종자들을 악마에게 바치는 것이 저의 임무였습니다. 추종자들은 모두 행복하게 주인님께 몸을 바쳤습니다. 누가 강요하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그분에게 떠난 것입니다.”
멋진 마지막 변론은 마치 숭고한 성직자 같았다. 도저히 제 정신이라고 보기에는 온당치 못한 미친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교도소에 들어가면 모든 수용자들을 오염시킬 것이었다. 판사는 현명한 선택을 내렸다. 평생토록 정신병원에서 혼자 묶여 있게 만든 것이었다.
그 후 15년 째 남 선지자는 정신병원에서 묶인 생활을 이어왔다. 좁은 2평의 공간에서 말도 할 수 없도록 마스크가 씌워졌다. 그는 혼자만의 정신세계에 빠져 악마와의 영적교류에만 몰입했다. 아무도 알 수 없는 이상한 소리를 내며 얼굴에는 가끔 미소가 흘렀다. 그는 너무도 악마를 사랑하고 있었던 것이다.
남 선지자를 면회 온 사람은 지난 15년 동안 단 한 명도 없었다. 그의 추종자들이 모두 저 세상으로 떠난 후 그에게 면회를 올만한 사람은 남아있지 않았다. 세월이 지나면서 세상도 그를 완전히 잊었다. 30여명이 단체로 자살했다는 사건을 기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의 존재는 그렇게 잊혀졌다.
그런데 15년 만에 최초로 면회를 온 사람은 최현범과 민주혁이었다. 남 선지자를 만난 두 사람은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한 번도 이발을 안 했는지 하얀 머리가 땅에 닿아 있었다. 50대 중반인 남 선지자의 얼굴은 70대처럼 쭈글거렸고 완전히 백발이었다. 지난 15년간 영양공급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묶여만 있던 탓인지 실제 나이보다 많이 늙어 보였고 걷는 것조차도 힘들어 보였다. 그러나 그의 광기어린 눈빛만은 예사롭지 않았다.
최현범은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요즘 어떻게 지내십니까. 저도 선생님처럼 악마를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
“그래요? 반갑습니다. 저와 같은 종교를 가진 사람을 만나게 되었군요. 저는 악마의 명령을 충실히 세상에 전파하는 선지자일 뿐입니다.”
“잘됐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우리가 선지자를 구하고 있었습니다. 남 선지자를 꼭 모셔가겠습니다.”
그렇게 최현범과 남 선지자 사이에 통하는 바가 있었다. 그 후 최현범은 모든 정보를 다해서 남 선지자를 빼낼 방법을 모색했다. 다행히 남 선지자의 사건은 정권이 여러 번 바뀌면서 세상사람들의 기억에서 완전히 잊어졌다. 그냥 서류상으로만 남아 있을 뿐이었다. 정보는 김정철 시장을 통해 들어왔다. 정치계를 통해 알아본 결과 10억 정도의 뇌물이면 나올 수 있다는 것이었다. 물론 이 돈은 갑부였던 김 시장이 마련하기로 하고 속전속결로 처리되었다. 이에 대해 어느 누구도 관심을 갖질 않았다. 그저 늙고 병든 정신병자 하나가 세상에 나오는 것이었다.
남 선지자가 저택으로 들어서자 마자 청수마을 청년들이 그를 기절시켜 악마의 환각여행을 체험시켰다. 3일간의 환각에서 깨어난 남 선지자는 악마가 세상에서 걸어다니고 직접 자신의 손을 잡고 말을 건네는 은혜를 입게 됐다. 너무나도 생생한 절대 악마는 최현범이었다. 남 선지자는 주인님을 위해 충성을 다하며 이 세상에 주인님의 존재를 전파하는데 목숨을 바치겠노라고 맹세했다. 그는 마치 광야에 선 세례요한 같은 존재라고 생각했다. 그의 주인님을 세상에 전파하기 위해 추종자들을 모으고 생명을 바칠 각오로 사명을 감당하는 진정한 선지자라고 생각했다.
남 선지자는 매주 한 번 씩 종교집회를 진행하기 시작했다. 신비스럽고 가장 사악한 악마를 숭배하는 추종자들은 50여명에 이르렀다. 시장, 경찰서장, 시민단체 대표, 국회의원 후보 등 거물들에서부터 청년들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추종자들이었다.
15년이 지났지만 남 선지자에게는 익숙한 일이었다. 정신병원에 묶여 있으면서도 끊임없이 악마와 정신적인 교류를 이어왔기 때문이었다.
업무를 시작한 남 선지자는 우선 주문을 만들어 추종자들이 반복하게 만들었다. 그들의 정신을 완전하게 세뇌하고 매주 자신도 모르게 반복적으로 주입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주문을 외웠다. 추종자들이 주문을 반복할 때마다 주인님은 단순한 악마가 아니라 추종자들의 영혼을 주관하는 진정한 신으로 영접하게 됐다.
남 선지자는 다음으로 악마의 피를 마시게 했다. 이 것은 큰 대접에 성스러운 짐승의 피를 담아 모든 추종자들의 손가락에 상처를 내어 흐른 피를 한 방울씩 떨어뜨린 것이었다. 남선지자는 성스러운 짐승으로 흑염소를 지목했다. 검은 털을 지닌 염소가 악마의 상징이며 그 뿔이 악마를 증명한다는 논리였다. 흑염소는 반드시 산 채로 비밀의 방에 끌고 가 제단 위에서 단 번에 심장을 찔러서 죽였다. 그 짐승에게서 흐르는 따뜻한 피는 제단아래 작은 구멍을 통해 큰 대접으로 흘러들었다. 사실 남 선지자는 그 성스러운 제단위에 벌거벗은 숫처녀를 올려놓고 배를 가를 생각이었다. 그 계획을 주인님께 물어봤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라는 대답에 흑염소를 산채로 바치기로 한 것이었다.
성스러운 짐승의 피에 추종자들의 손끝에서 흘린 피한방울을 나눠 마시며 추종자들은 피를 나눈 형제가 되어갔다. 악마를 섬기는 형제들에게 세상의 권세나 욕망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주인님을 위해 영혼을 바친 형제들의 믿음은 갈수록 견고해져 갔다. 그들에게 배신이라는 것은 용납될 수 없었다. 배신자는 반드시 죽음으로 주인님께 바쳐져야 했다. 정태섭 회장 가족의 죽음도 결국 배신에 대한 댓가로 추종자들에게 강력히 각인됐다.
피를 나눠 마신 추종자들은 마지막으로 다시 주문을 외우게 했다. 무릎을 꿇은 채 한 시간 가량 주문을 외웠을 때 그들의 몸과 영혼은 주인님을 맞아들일 준비가 됐다. 이때 비밀의 방 깊숙한 곳에서 모니터를 살피던 최현범이 등장해서 추종자 한 사람 한 사람의 머리에 손을 얹고 성스러운 피를 묻혀 세례를 베풀었다. 너무나도 황홀한 체험에 추종자들은 몸을 버티지 못하고 자지러졌다. 주인님의 세례에 완전히 몰입하고 감동을 받아 쓰러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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