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서영태 장편소설 <무서운 마을>



3월 22일 오후3시 국회의원 후보 현석주 사무실.
방금 전에 자체적으로 조사한 여론조사 결과가 나왔다. 현석주 후보가 39%, 현직 국회의원이 41%. 오차범위이긴 하지만 아슬아슬하게 뒤처지고 있다. 역시 현직 국회의원의 프리미엄과 조직력은 살아있었다. 핵폭탄급 악재 속에서도 무너지지 않고 뚝심으로 견디고 있는 중이었다.

어제 성폭행 기자회견이 열리자마자 야당 국회의원은 전 조직력을 동원해서 야당탄압이라고 주장했다. 자신과는 전혀 무관한 일이며 뒤처진 여당 쪽에서 자작극을 벌인 것이라고 호소하고 다녔다.
연단에 오른 야당 국회의원은 시민들 앞에 눈물까지 흘리며 흐느끼는 목소리로 호소하기 시작했다. 야당을 탄압하는 사람들에게 속지 말고 진실을 믿어달라고 외쳤다. 연단에는 그의 아내까지 올라와서 남편이 절대로 그럴 사람이 아니며 자신은 밤마다 남편 곁을 떠난 본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눈물로 호소하는 아내의 말을 믿는 시민들도 꽤 있었다. 아내가 저렇게까지 호소할 정도면 여당에서 흑색선전을 하는 거라고 수군거리는 아줌마들도 있었다.
야당 국회의원 부부가 시내 곳곳을 돌며 억울함을 호소하고 다녔지만 언론에서는 철저하게 외면하며 얼씬도 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국회의원 부부는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마다 찾아다니며 직접 시민들을 만나 호소하고 다녔다. 이런 움직임 때문인지 여론은 두 후보자 간에 박빙으로 흘러서 우세를 점치기 어려운 혼돈상황으로 치달았다.

후보사무실에서 여론조사 결과를 보고받은 현석주는 일단 반가우면서도 역전하지 못해 안타까운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이정수와 민주혁도 함께 보고를 받았다.
“두 분 덕분에 지지도가 많이 올라갔습니다. 조금만 더 오르면 확실하게 승리할 수 있을 겁니다.”
“저번에도 저희가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이제 저희는 확실하게 승리를 굳힐 마지막 작전을 쓰려고 합니다. 우리가 반드시 승리하게 될 것입니다.”
현석주는 더 이상 물어보지 않는다. 이 사람들은 무서운 조직이었다. 목적을 위해서라면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해서 이뤄내고 마는 비정한 자들이었다.

이정수와 민주혁은 성폭력 기자회견을 성사시키기 위해 치밀한 작전을 세웠다. 목적을 이루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라는 주인님의 말씀에 따라 지지도를 끌어올릴 작전을 수립했었다.
청수마을 청년 2명이 기자회견 4일 전에 야당 후보 사무실에서 퇴근하는 여직원을 승용차로 미행했다. 그들은 이미 10일 전부터 이 여직원을 표적으로 삼고 은밀히 미행하고 있었다. 여직원이 골목길로 접어들 때 잠복하고 있던 청년이 전기충격을 가하자마자 그녀는 기절해 버렸다. 어느새 다가온 승용차 안에 여직원을 잽싸게 밀어 넣은 청년들이 청수마을 저택으로 차를 몰아갔다.
3일간 환각여행을 다녀온 여직원은 주인님의 충실한 추종자로 변해 있었다. 주인님은 그녀가 해야 할 일을 말해주고 생명을 다해 복종하라고 명령했다. 이윽고 청년회장 민주혁이 여직원을 기자회견장에 데리고 가서 미리 준비한 원고를 읽게 만든 것이었다.
이정수와 민주혁은 성폭행기자회견 하나만 터지면 역전할 수 있을 줄로 예상했다. 그러나 예상외로 야당후보가 무너지지 않고 있었다. 그들의 조직력이 생각보다 탄탄해서 그럴 것이었다.

후보사무실 밀실에서 세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시민단체연합회장 유희석이 조심스럽게 들어와 앉는다.
“제가 유 회장님을 긴급히 모셨습니다. 확실하게 승리할 수 있는 방안을 내놓으실 겁니다.”
이정수의 말에 유희석이 잠깐 냉수로 목을 축인 다음 대답한다.
“야당후보가 아직 무너지지 않는 것은 후보 부인이 시민들에게 직접 눈물로 호소하고 다니는 영향이 큽니다. 자기 남편이 억울하다는 여자의 말에 시민들의 마음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제 생각에는 여자는 여자가 상대해야 합니다. 우리 여성단체를 다 동원해서 시민을 상대로 호소작전에 나서면 승리할 수 있습니다.”
머리가 잘 돌아가며 눈치가 빠른 유희석이었다. 시장 선거운동을 은밀히 지휘하면서 배운 노하우가 마음껏 발휘되고 있는 것이다.

유희석은 오늘부터 당장 여성단체 회원들 300여명을 소집한다. 미리 준비한 현수막, 피켓에는 선동적인 문구가 쓰여 있다.
“성폭력 국회의원은 물러가라. 여직원을 욕보인 국회의원은 사과하라. 짐승만도 못한 야당후보는 자폭하라”
무시무시하고 선동적인 문구가 적힌 피켓과 현수막을 들고 300여명의 여성들이 거리행진을 벌인다. 구호를 외치는 여성들 때문에 교통이 막히고 지나가던 시민들의 주목을 끌어낸다.
여성들의 거리행진은 밤늦게까지 계속됐고 다음날 아침부터 또다시 시작된다. 아파트단지, 주택가, 상가를 돌며 동참을 호소하는 전단지를 돌린다. 거리행진을 가로막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다. 오히려 의경들이 나와서 여성들을 보호해주고 차량통행까지 차단한다. 이날은 500여명의 여성들이 동원되어 야당후보를 심각하게 압박하고 있었다.

여성들의 거리행진을 멀리서 지켜보는 두 사람이 있다. 김재진과 이연준이다. 두 사람은 야당후보 여직원이 성폭행 당했다는 기자회견장에 청수마을 청년들이 동행한 것부터 의심했다. 그들이 어떤 음모를 꾸미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음모인지는 알 수 없었다.
두 사람은 여직원의 기자회견이 끝나자마자 뒤늦게 알아차렸다. 그들이 야당후보를 떨어뜨리려고 음모를 꾸미고 있는 것이었다. 그때서야 비로소 청수마을 청년들이 선거를 조작하고 있으며 여당후보를 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됐다.
그 후 두 사람은 은밀하게 청수마을 청년들을 미행했다. 특히 민주혁의 뒤를 밟았다. 그들은 여당후보 사무실을 뻔질나게 들락거리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이정수와 시민단체 쪽 유희석 연합회장까지 합세하고 있었다.
그들이 만난 후로 여성단체가 거리시위에 나선 것이었다. 이런 정황들을 살펴볼 때 이정수와 청수마을 청년들이 선거를 조작하는 사실이 분명해지고 있었다.

그러나 현재의 주간충남은 언론단체에서도 외톨이가 되어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거기다 거대한 세력의 압박에 눌려 겨우겨우 신문을 만들어 낼 정도로 운영난이 심각했다.
이런 실정이다 보니 주간충남의 영향력은 급속도로 떨어졌다. 엄청난 자금을 투입하는 주간서해에 1위 자리를 내주고 관심 받지 못하는 영세한 언론사로 추락해 버린 것이다.
그들의 선거조작 음모를 지켜보면서도 진실을 제대로 파헤치지 못하는 현실이었다. 그것이 바로 자금력이 형편없는 신문사의 안타까운 모습이었다.
반면, 언론단체를 이끌고 있는 주간서해 편집장 이정수의 힘은 엄청났다. 그가 작성해서 단체메일로 보내는 기사는 20여개 매체에 신속하게 실려 여론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오늘 여성단체의 거리시위만 해도 모든 언론사 기자들이 총동원 되어서 취재경쟁에 열을 올리고 있다. 평소에는 찾아오지도 않던 기자들이 카메라를 들고 나와 여성들의 표정을 하나하나 담아내고 있다. 이미 이정수가 단체문자를 통해 긴급 취재요청을 보낸 것이었다.
시민단체와 언론단체가 야당후보를 죽이려고 공모해서 한쪽은 행동으로, 한쪽은 보도를 통해 협동하고 있다.

결국 선거 당일 저녁 발표된 결과는 여당후보가 49%, 야당후보가 32%의 득표율로 이어져 최현범이 점찍은 현석주가 국회의원에 당선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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