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서영태 장편소설 <무서운 마을>



3월25일 저녁9시 첫사랑교회 예배당.
수요예배에 참석한 후 심미연의 엄마 문 권사가 담임목사님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목사님, 제 딸 미연이가 요즘 교회에도 안 나오려고 하고 이상한 말을 하고 다녀요. 자기의 주인님은 진짜 살아있는 신이라고 하며 죽은 신은 더 이상 믿지 않겠다고 말해요.”
“권사님, 참 이상하군요. 그렇게 신실하던 미연이가 그렇게 말한다는 것은 뭔가 이유가 있을 겁니다.”
“제발 우리 미연이 한번 만나주세요. 저대로 두면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몰라요. 꼭 귀신들린 아이 같아요.”
첫사랑교회는 이 지역에 설립된 지 50년이 넘은 역사 깊은 교회였다. 미국선교사들이 처음 설립해서 담임목사만 5명 째 배출했고 신도 수는 800여명에 이르는 큰 교회로 자리 잡고 있다. 현재 담임을 맡고 있는 진 목사는 미국에서 신학박사학위를 받고 정통 신학과정을 밟은 엘리트였다.

진 목사는 그날 저녁으로 신미연 집을 신방한다. 마침 집에는 신미연이 오랜만에 빨리 들어와 있다. 가족이 다 모인 거실에서 진 목사가 가정예배를 인도하여 말씀을 전한다.
“하나님은 우리의 영혼과 몸을 주관하시는 유일한 분입니다. 그분에게 우리의 모든 마음을 드려야 평안을 얻을 수 있습니다. 악의 세력이 끼어들지 못하게 쉬지 말고 기도해야 합니다.”
“목사님, 저의 주인은 바뀌었습니다. 더 이상 그런 말은 하지 마세요.”
진 목사의 설교도중에 신미연이 불쑥 말을 내뱉는다. 전혀 예상치 못한 말을 듣고 그는 무척 당황한다. 예전에 말 잘 듣고 신앙심 두텁던 미연이가 아니다. 어떻게 이토록 짧은 시간에 사람이 변할 수 있는가. 부모의 믿음을 이어받아 어렸을 때부터 차근차근 신앙생활을 해오던 미연이의 모습은 어디 갔단 말인가. 진 목사는 당황한 마음을 다잡고 신미연을 인자한 눈빛으로 바라본다.
“미연아, 나는 너를 꼬맹이 때부터 보아왔다. 너는 하나님의 딸로 세례를 받고 주님의 은총 안에서 잘 성장해왔다. 그런 네가 왜 이렇게 변하게 된 것이냐?”
“목사님, 저의 주인님은 실제로 살아 있어요. 그 분은 저의 모든 삶을 지배하고 있어요. 정 못 믿으시겠다면 내일 주인님의 선지자를 모시고 올게요.”
진 목사는 신미연과 대화해서는 도저히 이유를 찾아낼 수 없었다. 그래서 그녀가 말하는 선지자란 자를 만나보기로 했다.

다음날 저녁 신미연과 한 백발의 남자가 집안으로 들어선다. 그 남자는 거의 발끝까지 백발을 늘어뜨렸는데 얼굴은 회색빛을 띄며 늙어가는 과정에서 탈색된 것처럼 보인다. 그는 남 선지자였다. 미리 기다리고 있던 진 목사와 신미연의 부모가 자리를 권한다.
“선지자님이라고 들었는데 어떤 교파에 소속되어 계십니까?”
진 목사가 백발의 남자를 유심히 바라보다가 말을 꺼낸다.
“저는 어떤 교파가 아니라 모든 신위에 절대적인 신에게 소속된 사람입니다. 우리 신미연 자매도 저와 같은 분을 섬기고 있지요.”
“그럼 미연이가 어떻게 그분을 만났습니까?”
“미연이가 만난 게 아니라 그분이 먼저 찾아오신 겁니다. 주인님의 은혜로 자매님이 선택받은 것이지요.”
“주인님이라는 분은 어떤 존재입니까?”
“저희의 주인님은 세상 사람들의 모든 두려움을 합친 것보다 더 무시무시하고 두려운 존재입니다. 그분을 배신하는 자는 결코 생명을 보존할 수 없을 겁니다.”
진 목사와 선지자의 대화를 듣고 있던 신미연의 엄마 문 권사는 가슴이 덜컹 내려앉는 것 같다. 이 자들이 누구이기에 그렇게 착하던 미연이를 이 꼴로 만들었단 말인가. 제발 미연이만은 구해내야 한다. 그들의 손에 놔 둘 수는 없다. 문 권사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대화에 끼어든다.
“우리 미연이를 이제 놔주시면 안 되나요? 제발 미연이는 안돼요!”
“그건 신미연 자매에게 직접 물어보십시오. 자매가 선택할 몫입니다. 그러나 우리 주인님을 배신하면 가족 모두의 목숨을 내놔야 할 것입니다. 우리 주인님은 질투의 신입니다. 배신하고 다른 신을 섬기는 자는 철저하게 응징할 것입니다.”
남 선지자가 떠난 후 신미연은 자기 방으로 들어가서 문을 닫아버린다.
담임목사와 신미연의 부모는 머리를 맞대고 앉았지만 침울한 분위기만 감돈다.
“부모님이 제일 어려울 겁니다. 미연이 상태로 봐서는 단단히 마귀에게 지배당하고 있습니다. 악의 세력이 절대 놓아주려하지 않고 있어요. 제가 조만간 귀신을 쫓아내는 능력을 가진 목사님을 모셔오겠습니다. 그동안 함께 기도하면서 승리합시다.”
신미연의 부모는 담임목사를 믿고 기도하는 수밖에 없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딸을 저대로 악마의 손아귀에 놔둘 수는 없다. 그들은 매일 쉬지 않고 기도를 올리기 시작한다.

다음날 진 목사는 가야산 자락에서 농촌교회를 설립하고 7년째 사역하고 있는 정 목사를 찾아갔다. 정 목사는 사이비 종교를 20년째 연구하고 있으며 책도 여러 권 집필해서 이 분야에서는 종교계에서도 전문가로 통한다.
정 목사는 사이비종교계에서 척결 대상자로까지 지목돼 있다. 세밀하게 추적해서 세상에 알리는 그의 열정을 두려워한 탓이었다.
8년 전에도 정 목사는 충남지역을 근거지로 맹위를 떨치고 있던 사이비종교를 고발하는 글을 써서 신문에 게재했었다. 그들은 기존 개신교 교단 내에 침투해있던 자들이었는데 누가봐도 정상적으로 운영되는 교회의 모습이었다. 그런데 그들은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전도를 하지 않고 기존 교회에 들어가서 신도들을 꼬여내는 방법의 전도를 하고 있었다. 그 때까지만 해도 워낙 은밀하게 기존 교회에 침투하기 때문에 교단에는 그들의 존재가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
정 목사는 그 당시 신학대학 선배가 목회하는 교회에서 이상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제보를 받았다. 선배의 교회는 대전 시내에서 설립된 지 30여년 지나 1천 여 명에 달하는 큰 교회로 성장한 상태였다.
정 목사는 선배의 교회에 은밀하게 들어가서 어떤 문제가 있는지 상세하게 조사하기 시작했다. 예배나 여러 기관 모임들은 정상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데 문제는 교구모임에 있었다. 이 교회에는 20여개의 교구가 있어서 마을, 아파트, 직장별로 가까이 사는 이웃끼리 한 교구를 형성하고 있었다. 그런데 한 교구에서 담임목사가 나눠준 정상적인 교육자료를 거부하고 새로운 교재로 공부하고 있었다. 그 새로운 교재는 교구장이 가져온 것으로 이미 1년 전부터 30여명의 신도들이 다른 내용을 배우고 있었다.
이 교구장은 3년 전에 교회에 등록한 안수집사였다. 서울에서 이사를 왔다는 그 안수집사는 교회의 모든 집회에 빠짐없이 참석하면서 큰 일꾼 역할을 했다. 특히 중고등부, 청년회, 주일학교 교사를 자진해서 맡아 헌신적으로 일했으며 두각을 나타내어 교구장까지 맡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의 목적은 다른 데 있었다. 영적으로 연약한 신도들에게 다른 말씀을 전하여 큰 교회를 점령한다는 명령을 받고 이단교회에서 파송된 자였다. 아무것도 모르는 신도들은 교구장의 말에 따라 이단자들의 교재를 가지고 1년 동안 공부하다보니 이미 그들의 논리에 물들어버렸다. 독약이 우물물을 독물로 바꿔버리듯이 신도들에게 이단교리가 주입되자 다른 교구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이제 교회운영이 제대로 될 리가 없었다. 이단 교리를 퍼뜨리려는 자들이 다른 교구로 넘어가 영적싸움이 치열하게 벌어졌다. 기존 교리를 가르치던 교구장들을 음해하고 그들을 몰아내려는 시도까지 있었다.
이 사실을 파악한 정 목사는 사건의 원인이 이단자들의 은밀한 침투에 있다는 점을 담임목사에게 알려주었다. 그리고 썩은 지체를 잘라내지 않으면 교회 전체가 이단자들에게 넘어갈 것이라고 경고했다.
담임목사는 너무나도 괴롭고 무서웠다. 이단자들의 공격에 사랑하는 신도들이 잘못된 길로 빠져버린 것은 자신의 책임이 크다고 생각했다. 늑대 같은 이단자들의 이빨에 갈기갈기 찢긴 신도들은 벌써 두 교구에 90여명이 넘어서고 있었다. 선한 목자는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을 찾아 온 땅을 헤매고 다닌다고 했지만 이미 신도들은 늑대의 뱃속에 들어 가버린 뒤였다.
담임목사는 모든 신도들이 모이는 총회를 열어 이단자들이 벌써 두 개 교구를 차지하고 이단교리를 전파했다고 설명했다. 이들을 그대로 둔다면 교회 전체를 점령하게 될 것이라는 경고도 했다. 그리고 신도들의 투표를 통해 이미 이단교리에 물든 이단자들을 출교시키기로 의결했다.
이단자들은 담임목사와 장로들에게 항의하며 사악한 마성을 드러냈다. 늑대의 무리가 된 이단자들은 그냥 앉아서 당하지는 않겠다는 듯 한명의 신도라도 더 끌어들이려고 애를 썼다. 그 후 6개월이란 세월이 흘러서야 100여명의 이단자들이 모두 떨어져 나갔다. 1년 만 더 이단자들이 은밀하게 활동했더라면 대부분의 신도들이 이단자들에게 넘어갔을 지도 모른다.

이처럼 선배교회의 사례를 자세히 지켜보았던 정 목사는 기독교신문에 자세하게 게재해서 기존 교회들이 이단자들에게 당하지 말 것을 요청했다.
그 후 이단자들의 협박이 정 목사에게 향하기 시작했다. 자신들의 사명을 방해하는 사람을 그냥 놔두고 볼 수 없었던 것이다. 그들의 협박과 위협은 집요하게 이어졌다. 계속 방해하면 죽이겠다는 협박전화와 편지는 기본이었고 이상한 승용차가 그의 집 앞에서 하루 종일 서서 지켜보기도 했다. 어느 날 새벽에는 유리창문이 요란하게 깨지는 소리에 놀라 온 식구가 불안에 떨기도 했고 어느 날에는 고양이 시체를 현관 앞에 던져놓아 소름끼치는 무서움을 느끼도록 압박하기도 했다.
그런 무수한 협박을 받고도 견딜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 때문이었다. 그렇게 사악하고 악랄한 이단자들이 교회를 오염시키고 사람들을 괴롭히는 것을 지켜볼 수만은 없었고 그들을 구해야 한다는 열정이 있었다.

마침내 비가 내리던 날 오후 정 목사의 가족에게 너무도 큰 시련이 찾아왔다. 진작 학교에서 돌아왔어야 할 아들 녀석이 그날따라 늦어지고 있었다. 자전거를 타고 500여 미터 떨어진 중학교를 다니는 아들이 비 때문에 늦게 돌아올 거라는 생각은 하면서도 불안한 심정이 가득했다. 잠시 후 전화벨이 울렸고 병원이었다. 아들 녀석이 승용차에 치여 응급실에 입원했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전달받은 것이다.
아들은 다리뼈가 부러졌고 타박상을 입었을 뿐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다. 빗길에서 아들이 탄 자전거를 치고 달아난 승용차는 잡지 못했다. 정 목사는 그 순간 가족을 위해 피신해야 되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고, 어느 누구도 모르게 가야산 자락 농촌마을에 숨어들어 아주 작은 농촌교회를 세우게 되었다. 그 이후 7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더 이상 가족을 추적하는 이단자들은 보이지 않게 됐다. 정 목사는 누군가에게 노출되는 것을 극도로 경계하며 이름도 바꾼 채 살아가고 있었다.

첫사랑교회 담임목사는 정 목사가 내려온 지 6개월 만에 비밀리에 연락을 받고 농촌교회를 방문했었다. 진 목사가 정 목사의 신학대학 선배였으며 가까이 살면서도 서로 바빠서 자주 만나지는 못했었다. 그 후 첫사랑교회에서는 농촌선교 목적으로 정 목사를 정기적으로 후원하고 있었다.
“정 목사, 자주 찾아오지 못해서 미안해. 우리교회 권사님 딸이 이상한 사이비 종교에 휩쓸린 것 같아. 청수마을에 웬 선지자라는 자가 매주 집회를 열고 있나봐.”
“청수마을이면 우리 마을과도 멀지 않아 잘 압니다. 요즘 그 마을 청년들이 이상해졌다는 것은 알아요. 그 마을 어른들 걱정이 대단해요. 청년들 모두 이상한 귀신이 들렸다며 2년 전에는 굿판까지 벌이더라구요.”
“그 마을 청년들뿐만 아니라 유력인사 여러 명도 그 집회에 매주 참석한다는군. 살아있는 신을 섬긴다는 거야.”
“새로운 사이비종교가 청수마을에서 태어난 겁니다. 그들의 조직력은 대단해서 내부 정보가 새어나오질 않아요. 그 선지자라는 인물에 대해서도 전혀 정보를 알 수 없어요.”
두 사람은 오랫동안 대화를 나눴지만 더 이상은 청수마을 사이비종교에 대한 정보를 알아낼 수 없었다. 첫사랑교회 진 목사는 떠나면서 정 목사에게 부탁을 한다.
“우리교회 권사님 딸도 문제지만 우리 지역사회가 더 걱정이네. 자네가 꼭 나서서 그들의 정체를 세상에 알려야 하네. 유력인사들까지 추종자로 만든걸 보면 지역사회를 모두 지배해버릴 수도 있네. 꼭 자네가 나서서 그들의 음모를 막아주게.”

그동안 정 목사는 7년 전의 아픔을 기억하면서도 은밀하게 사이비종교의 진실을 파헤치는 일을 멈추지 않았었다. 물론 철저하게 가명을 사용해서 이단자들의 추적을 피해왔다.
1년 전부터는 청수마을의 이상한 소문에 대해 관심을 갖고 마을 어른들에게서 정보를 캐내는 중이었다. 이미 마을 청년 20여 명은 전부 이상한 집단의 지배를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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