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서영태 장편소설 <무서운 마을>




3월27일 오전 9시 <주간서해> 상담실.
남 선지자가 신미연과 함께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남 선지자는 웬만하면 청수마을을 떠나지 않는 사람이었지만 오늘만큼은 백발도사 같은 모습으로 시내를 나왔다.
“아무래도 우리가 지역 종교계를 접수해야겠습니다. 갈수록 우리를 경계하는 분위기가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특히 기독교계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아요.”
“선지자님, 생각해둔 특별한 방법이 있습니까?”
“신 기자가 다녔던 첫사랑교회를 우리가 지배할 수 있다면 일이 쉬워질 겁니다. 그 담임목사가 우리 주인님의 방해세력이 되고 있어요. 이번에 그를 추종자로 만들어 놓는다면 주인님이 세상을 지배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겁니다.”

첫사랑교회 담임 진 목사는 지역종교계에도 상당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었다. 그의 훌륭한 인품과 지도력이 인정받아 기독교연합회장을 맡기도 했으며 현재는 종교단체연합회장을 맡아 천주교, 불교계와도 소통이 가능한 종교인이었다. 남 선지자는 진 목사를 포섭할 수만 있다면 지역종교계까지도 손아귀에 넣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최현범에게 보고하여 승낙을 받은 터였다.

남 선지자가 진 목사를 포섭하기로 제안한 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그는 추종자들과 비밀의 방에서 만나 종교적인 상담을 하면서 추종자들에 어떤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첫사랑교회 진 목사가 종교지도자들이 만난 자리에서 청수마을 사이비교단을 경계해야 한다는 발언을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종교계가 청수마을을 주목하고 있다는 소문이었다. 며칠 전에 신미연과 함께 남 선지자가 진 목사를 만나본 것도 과연 방해가 될 인물인지 알아보고자함도 있었다. 그 후 진 목사를 꼭 포섭해야겠다는 결심을 굳힌 것이다. 이날 신미연과 만난 남 선지자는 진 목사를 어떻게 포섭할 것인지 작전을 세우고 헤어졌다.

다음날 새벽 5시 첫사랑교회 예배당에서는 120여 명의 신도들이 모여 새벽기도집회에 참석했다. 담임목사인 진 목사가 설교를 마친 후 신도들은 가정과 직장의 여러 문제들을 붙들고 기도에 몰입한다. 6시가 지나서야 신도들이 집으로 다 돌아가고 진 목사는 옆구리에 성경책을 낀 채 가로등길을 걸어간다. 그의 집까지는 걸어서 10분 거리라서 평소에도 운동 삼아 걷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진 목사가 5분여쯤 걸어왔을 때 길옆에 주차된 차에서 내린 신미연이 그를 부르고 있다. 반가운 표정으로 몸을 돌려 걷는 순간 옆구리에 강력한 전기충격을 받고 기절해버린다. 옆구리에 끼고 있던 성경책은 땅에 떨어져 뒹굴고 있다.

저택 비밀의 방으로 끌려온 진 목사는 신경독성물질을 주입당하고 3일간의 환각여행을 다녀온다. 아주 길고 길며 고통스럽고 무시무시한 환각이 계속 이어진다.

한편, 실종된 담임목사 때문에 첫사랑교회에서는 난리가 났다. 교회에서 집으로 걸어다니는 길을 뒤져서 진 목사의 성경책도 찿아냈다. 교회 전 신도들이 근심하며 담임목사의 무사귀환을 위해 단체기도를 올리기도 하고 경찰에 실종신고도 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성도들이 진 목사를 찿아다니는 와중에 저택 비밀의 방에서는 사악한 악마가 개발한 3일간의 환각여행에서 진 목사에게 거대한 악마가 다가와서 명령한다.
“너의 죽은 신을 버리고 세상의 권세를 잡은 나를 영접하라. 나를 영접하지 않으면 너의 몸과 너의 가족을 갈기갈기 찢어버리리라. 나를 받아들여라.”
그러나 진 목사는 영적인 싸움을 벌이고 있다. 사악한 악마가 커다란 입을 벌리고 혀를 날름거려도 굴복하지 않고 있다. 불타는 지옥의 뜨거움과 타들어가는 목마름을 온몸으로 느끼면서도 여전히 굴복하지 않는다.
진 목사에게는 50평생을 갈고 닦은 기도의 힘이 있었다. 매일 새벽부터 하나님께 기도하며 쌓아온 기도의 힘이 어둠의 강력한 세력을 어렵게나마 막아내고 있었다.
환각여행 3일 동안 최현범은 진 목사를 굴복시키기 위해 그의 상태를 체크하고 또 체크하며 계속 지켜봐왔다. 환각여행의 마지막 날에는 집중적으로 악마를 영접하라고 명령했다. 그러나 진 목사는 기도의 힘으로 자신의 영혼을 방어하고 있는 것이다.
진 목사의 영적인 반항을 지켜보며 최현범은 당황한다. 지난 10여 년간 신경독성물질을 주입해서 강력한 환각상태를 만들어 모든 사람들을 다 추종자로 만들어왔었다. 아무도 실패한 사람이 없었다. 인간으로서는 감히 참아낼 수 없는 절대 공포를 체험한 자들은 모두 악마를 영접했다. 그런데 진 목사는 마지막까지 굴복하지 않고 있다. 이 자의 정신력이 얼마나 대단하길래 절대공포를 이겨낸단 말인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최현범은 최초의 실패를 경험하며 크게 상심했지만 더 이상의 세뇌작업은 의미가 없음을 안다. 그렇다고 진 목사를 풀어주었다간 반드시 후환이 생길 터다.
고민하던 최현범은 청수마을 청년들을 부른다. 그리고 진 목사를 야밤에 저수지에서 처리하라고 명령한다. 큰 돌을 매단 채 진 목사는 물고기 밥이 될 것이었다. 새로운 주인을 영접하지 못한 댓가는 생명을 뺏는 것이었다.

담임목사 실종사건을 겪은 첫사랑교회 신도들은 답답한 마음을 억누르며 기도에 전념하고 있다. 언젠가는 꼭 신도들 곁으로 돌아오리라 믿고 또 믿으며 희망을 잃지 않는다.
진 목사의 실종기간이 길어지면서 지역사회에서도 큰 주목을 끌기 시작한다. 어떤 소문에는 교회에 앙심을 품고 있던 이단자들이 납치해서 쥐도 새도 모르게 죽여버렸다는 설, 어떤 소문에는 여자 신도와 눈이 맞아서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야반도주 했다는 설, 어떤 소문에는 거액의 교회재산을 빼돌린 것이 발각되어 도망갔다는 설 등등 별 해괴한 소문이 무성하게 나돌았다.
세상의 소문은 이처럼 허무맹랑한 것이었다. 아마도 사람들이 상상하는 대로 지껄이다보니 별별 소문이 무성하게 생기는 것 일게다.
지역사회의 여러 소문들을 시시각각 접하고 있는 최현범과 남 선지자의 입장에서는 열심히 노력했지만 첫사랑교회를 차지하려는 음모가 실패로 돌아가게 되어 실망하고 있다.
그렇다고 여기에서 포기할 최현범과 남 선지자가 아니었다. 종교계를 손아귀에 거머쥔다면 완벽하게 지역사회를 지배하게 되는 것이었다. 현재까지 그들은 정치, 행정, 언론, 시민단체, 경찰까지 모두 통제할 수 있는 힘을 가졌다. 그러나 종교계를 손에 넣어야 정신적인 지배를 완전하게 이룰 수 있었다.
담임목사가 실종된 첫사랑교회는 지금 위기에 빠져 있다. 임직원들과 신도들은 혼란스러울 것이다. 이때를 이용한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생각하는 최현범은 아직 포기하지 않고 있다.

한편, 최현범의 지도자중 종교계를 맡고 있는 남 선지자는 이미 자신들의 교단 이름도 청수마을을 따라서 ‘청수교’라고 정하고 그의 주인님께 허락도 얻었다. 이제 성수교가 모든 세상의 종교가 될 때까지 전파하고 또 전파할 것이다. 순순히 받아들이지 않으면 강제로라도 받아들이도록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할 것이다. 남 선지자는 젊은 시절 선배 선지자가 가르쳐 줬던 교리를 더욱 연구하고 발전시켜서 ‘청수교리’라는 교본도 만들었다. 이 교본은 성경 요한계시록을 기본으로 만들어졌는데 교묘하게도 악마가 세상을 점령하고 모든 사람들을 지옥으로 끌고 간다는 상상력을 발휘하며 구세주가 이미 세상에 돌아왔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살아있는 신을 믿어야 하며 그가 최현범이라는 논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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