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서영태 장편소설 <무서운 마을>
4월17일 오전10시 첫사랑교회 당직자 회의실.
부목사와 장로들 12명이 원형 탁자에 둘러 앉아 있고 농촌교회 정 목사가 이야기를 하고 있다.
「저는 지난 2년 동안 청수 교에 대해서 은밀히 조사를 벌여왔습니다.
그들은 청수마을을 중심으로 마을 청년들과 사회 지도층을 끌어들여 이미 거대한 세력으 로 성장했습니다. 그들이 살아있는 신으로 섬기는 자는 최현범이란 자이며 남 선지자란 자가 청수교를 이끌고 있으며 청수성경연구회를 조직해서 첫사랑교회 청년들을 끌어들 이고 있습니다.」
「그렇게 무시무시한 놈들이 우리 교회를 노리는 이유가 뭡니까?」
장로 중 한 사람의 물음에 정 목사가 대답한다.
「제가 알기론 담임목사님의 실종사건과 관련이 있습니다.
담임 목사님이 실종되기 전 청수 교에 대해 공공연하게 비판하고 다니셨던 게 화근이었습 니다. 아마도 그들이 납치한 것으로 보입니다.」
「정 목사님, 그런데 무시무시한 놈들이 청년들을 다 잡아가고 있어요. 이대로 그들에게 다 내줄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엄중하게 대처하셔야 합니다. 일단 청년부를 완전히 해체하시고 그들이 신도들과 접촉하는 걸 엄격하게 막아야 합니다. 이제부터 비상체제로 들어가서 만약 가족 중에 한 명이라도 이단자가 생기면 철저하게 격리해야 합니다.」
이때부터 첫사랑교회는 비상체제로 들어간다. 정 목사가 하라는 조치는 다하고 청년들이 두 명 이상 만나는 것도 금지했다. 초강력조치에 청년들의 반발이 거셌다. 이때쯤엔 청수성경연구회에 나가는 청년들의 숫자가 30여명에 이르렀다. 이들은 장로님들을 찾아다니며 청년회를 폐쇄한 조치에 강력히 항의했다.
주일날에는 30여명의 청년들이 대형 현수막을 교회 현관 앞에 걸고 “청년부 폐쇄한 장로들은 물러가라!”라고 외치며 시위에 나섰다.
구호를 외치는 청년들의 목소리에서 너무도 섬뜩한 공포가 느껴졌다. 그들이 신도들을 바라보는 눈빛은 굶주린 늑대가 먹잇감을 노리듯이 이글거렸다.
왜 청년들이 이토록 변했단 말인가. 그렇게 착하고 아름답던 그들이 사악한 무리의 앞잡이가 되어서 신도들 앞에 나타난 것이다. 청년들의 적극적인 시위를 바라보는 신도들 중에는 그들을 동정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교회에서 할 짓이 아니라는 입장이었다. 교회가 예배드리러 오는 곳인데 누구 물러나라고 시위하는 것에 신도들의 비난이 쏟아졌다. 청년들은 지지받지 못하는 시위를 계속 할 수는 없었다.
며칠 후「청수성경연구회」에 다시 모인 남 선지자와 신미연, 30여명의 청년들은 첫사랑교회 장로들의 거센 저항에 부딪혀 새로운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
「장로들의 방어가 너무 튼튼합니다. 그리고 우리 쪽에서 명분 없는 시위를 하고 있어서 신 도들에게 먹혀들지를 않아요. 이제는 작전을 바꿔야 할 것 같습니다.」
신미연의 말에 남 선지자는 골똘히 생각하다 입을 뗀다.
「미연이의 말이 맞아. 좀 더 어필할 수 있는 명분을 찾아야해.
종교인들에게 가장 치욕스런 것이 무엇인 줄 알아? 바로 여자문제야! 이번에도 그걸 잘 이용하면 그들의 방어선을 뚫고 분란을 일으킬 수 있어! 이번에는 미연이가 수고 좀 해줘 야겠어.」
다음날 아침 신미연이 올린 장문의 글이 교회 홈페이지와 교회 앞 게시판에 붙여졌다.
「첫사랑교회 신도여러분. 저는 청년부 신미연입니다.
1년 전부터 부 목사님과 친해졌습니다. 저는 그분을 인격적으로 신뢰했습니다. 그러던 어 느 날 저에게 기도해주시겠다면서 둘만의 만남을 원하셨습니다. 저는 의심 없이 따랐습니 다. 그런데 그는 저의 몸을 원했습니다. 저는 감히 저항할 수 없었습니다. 그 후에도 그는 계속 저를 만나자고 합니다. 이제는 모든 것을 고백하고 해방되고 싶습니다.」
간추려서 이런 내용의 장문이 공개적으로 내걸리자 일대 파란이 일어났다. 성직자에게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되는 추문이었다. 사실여부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성직자가 스캔들의 주인공이 되었다는 자체가 신도들에게 불쾌하고 거부감으로 받아들여졌다.
이 일을 계기로 청년부 30여명이 교회 앞에 죽치고 앉아 농성에 들어갔다.
「성폭행 성직자는 사죄하라. 그를 옹호하는 임직원은 전부 물러가라.」
이제 청년들에게는 싸울 명분이 생겼다. 신도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 당장 부목사와 장로들을 대하는 신도들의 눈빛이 차가워졌다. 입에 담을 수조차 없는 불경한 일에 교회 분위기는 급속도로 혼란에 빠졌다.
신도들의 무리는 크게 둘로 양분됐다. 부목사와 장로들을 끝까지 지지하는 의리파, 청년들의 농성을 지지하는 반대파로 나눠졌다. 두 진영 간에는 말싸움이 연일 벌어졌다. 성추문에 대한 진실공방에다 인격에 문제가 있다는 논란까지 일다가 결국 몸싸움까지 터지고 말았다.
청년들을 지지하던 한 신도가 부목사의 멱살을 잡고 따지기 시작했다. 옆에 있던 한 장로가 신도의 뺨을 때리며 야단을 쳤다. 그러자 양 진영 간에 밀고 밀리는 몸싸움이 일어나 여신도 한 명 넘어져서 깔리는 바람에 병원에 입원하는 사건까지 발생했다.
신미연의 긴급취재요청을 받은 언론사들도 앞 다투어 첫사랑교회 사태를 보도하기 시작했다. 기자들은 주로 혐오스럽고 추악한 사건으로 몰아갔다.
어떤 매체에서는 보도의 내용이 이렇게 나왔다.
「첫사랑교회 부목사가 여신도를 성폭행했다. 1년 동안이나 끈질기게 성폭행을 이어오다 꼬리를 잡혔다. 임직원들이 모두 알고도 묵인한 걸 보면 공범이나 다름없다. 이에 격분한 청년들이 농성을 이어가고 있어서 첫사랑교회는 완전히 내분상태에 빠졌다.」
언론들은 종교계의 사태를 은근히 즐기고 있었다.
평소에는 성역이나 다름없던 종교계 비판을 못했던 언론들이 이 사건을 계기로 늑대의 이빨을 사정없이 드러내고 있었다. 그들에게 사건의 진실은 중요하지 않았다. 마음껏 비판하고 써 대서 독자들에게 전달하면 그것으로 그만이었다. 어떤 매체에서는 「성직자의 부적절한 사랑」이란 제목으로 러브스토리를 만들기도 했다. 그 매체 보도에 따르면
「첫사랑교회 성직자들은 로맨틱한 구석이 있었다. 평소에도 아름다운 처녀신도들과 은밀한 데이트를 즐겼다. 이 교회 신도의 말에 따르면 성직자들은 하나같이 수려한 이목구비를 이용하여 처녀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다고 한다. 자연스럽게 남녀지간에 사랑의 감정이 싹트고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빠진 것이다.」
그들의 기사들은 화려한 수식어를 주렁주렁 달면서도 교회를 무너뜨리려는 마각을 숨기고 있었다. 언론보도 사태는 더욱 심각해져갔다.
결국 부목사 옹호파와 반대파는 서로 대화를 하지 않으려 했고 모든 예배를 따로 드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예배만이라도 같이 드렸는데 부목사가 설교하려하자 반대파 신도들이 고함을 지르는 바람에 중단되는 사태가 벌어지자 아예 시간을 바꿔서 예배까지 양분되었다. 부목사파에서는 반대파가 회개할 것을 바라는 기도를 올리고 반대파는 부목사파가 회개하라고 요구했다. 이들은 건널 수 없는 다리를 건넜다.
서영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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