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서영태 장편소설 <무서운 마을>




5월10일 낮12시반 시내 일식집 골방.
5명의 중년 남자들이 두툼하게 썰어진 횟감을 사이에 두고 밀담을 나누고 있다. 그 중의 한 사내는 유희석이며 다른 사내들은 서주 저축은행이사들이다. 유희석도 3년 전부터 이사로 참여하고 있다.
「우리 서주저축은행 이사들이 모이니까 힘이 나는 것 같습니다.
오늘 특별히 여러분들만 모신 것이니 많이 잡수십시오.」
유희석의 말에 한 이사가 물어본다.
「그런데 이사님들 중에 우리만 특별히 부른 이유라도...」
「사실은 말입니다. 이번 달 말에 있을 이사장 선거에 제가 도전해 볼 생각입니다. 그래서 좀 밀어달라고 여러분들께 부탁 좀 드리려고 합니다.」
참석한 이사들은 이 자리에 나올 때부터 어느 정도 눈치를 채고 있었다.
이번 달 말에 이사장 선출이 있기 때문에 움직임이 있을 것이었다. 이사장은 이사들이 선출하게 되어 있는데 총 9명의 이사 중 과반수를 넘으면 이사장에 선출되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현재 이사장은 세가 만만치 않아 누가 감히 도전한다는 사람이 없었다. 이사장 임기는 3년인데 현직 이사장이 벌써 12년째 독점하고 있었다. 이렇게 장기집권을 하게 된 이유는 현직 이사장의 수완 때문이었다. 그는 이사장 선출시기만 되면 한 달 전부터 이사들 집집마다 방문해서 200만원의 현찰이 든 선물박스를 전달했다. 그리고 명절 때나 생일 때도 직원들을 시켜서 커다란 선물을 안겨주곤 했다.
유희석도 현직 이사장에게서 선물과 현찰을 받아봐서 사정을 뻔히 알고 있었다. 그래서 오늘 특별히 4명의 이사들만 부른 것이었다. 자신의 표까지 합치면 과반수에 해당하는 숫자인 것이다. 유희석은 이사들을 설득하면서 자신은 현직 이사장에 비해서 더 많은 대우를 해주겠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 자리에 참석시키지 않은 이사들은 현직 이사장의 측근이므로 철저히 배제 하겠다는 말도 늘어놓는다.
「사실 여기 계신 이사님들은 그동안 들러리였습니다.
현직 이사장은 측근 이사들만 별도로 챙기고 우리에게는 약간의 배려만 했던 것입니다. 이번에 저를 지지해 주시면 확 바꿔버리겠습니다.」
식사가 다 끝나고 입구에서 유희석은 이사들에게 천만 원씩 넣은 선물상자를 손에 쥐어준다. 앞으로도 계속 챙겨드리겠다는 말도 빼놓지 않는다.

하지만 세상을 살다보면 어디에나 양다리 걸친 작자가 나타나게 된다. 유희석이 포섭하려던 이사들 중 한명이 현직 이사장에게 사실을 다 일러바친 것이다. 자기 딴에는 권력이 바뀌지 않을 테니 더 나은 쪽에 붙겠다는 처사였다. 이에 화가 머리끝까지 난 현직 이사장이 유희석을 찾아가 따진다.
「정당하지 않은 방법으로 사람을 매수하면 됩니까?」
「이사장님, 매수는 당신이 먼저 했잖아요!
200만원이나 천만 원이나 그게 그거 아닙니까?」
「유 이사. 당신 맘대로는 안 될 거야. 돈만 낭비하지 말고 포기하라고.」
현직 이사장이 이렇게 자신만만한 이유는 수적인 우세 때문이리라. 자기들 쪽이 5명으로 한명 많다는 계산 때문에 큰소리 치고 있는 것이다.
현직 이사장은 유희석이 이사들을 매수한 것을 조합원들에게 다 까발려 버리겠다는 협박도 했었다. 그러나 자신도 이사들에게 현금을 건넸었기 때문에 문제제기는 할 수 없었다.

이사장이 현금까지 돌려가면서 이사들의 환심을 사려한 것에는 이유가 있었다. 우선 직원들을 뽑을 권한이 있었다. 현재 20여명의 직원들이 근무하고 있었는데 거의 전 직원을 이사장의 측근으로 뽑아서 충성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놓았다. 이 때문에 이사장의 말에 별 견제를 할 만한 사람이 없었다. 또한, 대출승인권이 있었다. 저축은행에는 대출 규정이 있었지만 이는 서류에 불과한 것이었고 이사장의 입김이 크게 작용했다. 직원들도 모두 이사장이 채용했기 때문에 사실상 이사장이 정하는 대로 운영되었다.
작년에만 해도 부실 대출건이 터져서 회수하지 못한 금액이 10억 원에 이르렀다. 이 건도 몇 년 전 이사장과 가까운 사업자가 청탁해서 빌려간 돈이었는데 이사장은 모른 체하다보니 직원들도 쉬쉬하면서 이사회에 보고도 하지 않았었다. 이 외에도 이사장과 관련해서 부실 건이 터진 게 50억 원이 넘었지만 직원들이 보고 자료를 왜곡하는 바람에 잘 알려지지 않고 있는 상태였다. 이 외에도 이사장 개인이 저축은행에서 빼간 금액만 30억에 이르렀다. 이 금액은 대출형태로 빌리긴 했지만 실제로는 이자 한 푼 내지 않아서 막대한 이득을 취하고 있었다. 이렇게 이사장이 측근직원들의 비호 속에 저축은행을 자기 지갑처럼 이용하고 있었지만 워낙 꼼꼼하게 숨기고 있어서 크게 문제가 된 적은 없었다.
저축은행 이사를 맡고 있는 유희석도 이러한 사정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있었다. 분명히 어떤 냄새가 나긴 하는데 워낙 직원들이 말을 아끼고 있어서 그 실체를 알 수는 없었다.
이에 유희석은 그동안 이사회에 보고된 자료를 잘 아는 회계사에게 맡겨서 분석을 부탁했다. 회계사는 3일간 방대한 자료를 다 살펴본 후 부실대출건이 많고 정상적인 절차를 밟지 않은 대출이 많은 것으로 보아 이사장의 지시에 의해 이루어진 것 같다는 말을 꺼냈다. 또한 30억의 대출금에 대해서는 수년간 이자가 늘어오지 않고 있다는 점도 밝혀냈다.
유희석이 회계사를 통해 정황증거는 찾아냈지만 직원들의 실토가 있어야 전모를 밝혀 낼 수 있을 것이었다. 이제 무엇이든지 해결하는 청수마을 청년들이 나설 때였다.

서주저축은행 이사장 선출 7일 전 이 곳 정문 앞에서 청년회장 민주혁과 두 명의 청년들이 승용차 안에 대기하고 있다. 이 들은 유희석의 요청에 따라 저축은행 경리부장을 납치하기 위해 며칠 전부터 뒤를 쫓고 있다. 이들은 명령에 따라 납치를 수차례 자행했었기 때문에 이제는 제법 여유도 생겼다. 가장 빠르고 효과적으로 하기 위해 비슷한 영화도 여러 개 살펴보고 청년들끼리 모의실험도 여러 차례 하다 보니 이제는 베테랑이 되어 있었다.
무엇보다 실전에서 여러 차례 납치에 성공한 것이 상당한 자신감으로 이어졌다. 딱 두 번의 실패가 김재진과 서인애였다. 두 사람을 납치하려 했을 때마다 김재진의 반격에 당황해서 결정적인 순간에 놓치고 말았던 것이다. 그러고 보면 김재진이란 놈은 주인님의 말씀처럼 보통 놈이 아닌 게 분명했다. 주인님의 말씀만 아니었다면 당장에 쫓아가 끝장을 내고 말았을 것이었다. 민주혁은 끓어오르는 혈기를 억지로 참고 있는 중이었다.
민주혁이 지나간 일들을 생각하고 있는 사이에 며칠 간 뒤를 쫓았던 경리부장이 퇴근하고 있었다. 그는 가정적인 남자는 아니었다. 며칠간 뒤를 쫓아 간 곳은 집이 아닌 다른 아파트 지하주차장이었다. 그곳에 사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 본 결과 혼자 사는 이혼녀라는 것도 알아냈다. 경리부장은 거의 매일 이혼녀와 놀아나면서 밤 12시가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가곤 했다. 오늘도 그의 승용차는 외떨어진 아파트 지하주차장으로 들어간다. 12시쯤 엔 틀림없이 모습을 드러낼 것이리라. 세 청년은 기나긴 잠복에 들어간다.
유희석의 말에 의하면 경리부장은 저축은행 이사장의 오른팔이었으며 모든 일에 대해서 훤히 꿰뚫고 있다고 했다. 또한 경리부장은 이사장의 사촌동생이어서 웬만해선 불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12시가 가까워지자 경리부장이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는 게 보인다. 그가 승용차에 올라타려는 순간 옆구리에 감당할 수 없는 전기충격이 몰려온다. 납치된 경리부장은 결국 비밀의 방에서 3일간의 환각여행을 다녀와서 주인님의 충성스러운 추종자로 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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