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서영태 장편소설 <무서운 마을>


5월25일 오후2시 시청기자실.
이사장 선출을 3일 남겨두고 서주저축은행 경리부장이 기자회견을 자청한다. 기자실에는 벌써 20여명의 출입기자들이 운집해서 방송용 카메라부터 설치가 끝난 상태다.
일부 성급한 기자들은 미리 이정수가 배포해 준 보도자료를 메일로 받아 본사에 송고한 상태로 기자회견이 끝남과 동시에 인터넷신문에 띄울 만반의 준비를 끝내고 있다. 어떤 기자들은 「서주저축은행 이사장 비리의혹」이라는 제목의 보도자료에 내용만 살짝 바꿔서 개인 블로그에 올려 이미 수백여건의 클릭수를 올리고 있다.
잠시 후 초췌한 얼굴과 비틀거리는 다리를 억지로 옮기며 마이크 앞으로 다가선 남자가 나타나고 그 옆으로 청년회장 민주혁과 두 명의 청년들이 둘러싸고 있다.
경리부장은 미리 준비해 온 원고를 읽어 내려가기 시작한다.
「저는 서주저축은행 경리부장입니다. 이사장을 고발하기 위해 이 자리에 나왔습니다.
지난 12년 동안 독재를 해 온 이사장이 대출 압력을 넣어서 무자격자에게 대출한 금액만 160억에 이릅니다.
이중에서 현재까지 회수하지 못한 금액이 50억이 넘어서 저축은행의 운영사정이 대단 히 위험합니다. 또한 이사장이 대출형식으로 가져간 돈이 30억에 달하는데 지난 수년 동 안 한 푼의 이자도 내지 않고 개인용도로 마음껏 이용해오고 있습니다. 이사장은 저축은행이 마치 자기 개인금고인 것처럼 이용하고 있어서 큰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더 이상 방 관했다가는 저축은행이 도산할 것 같아서 이렇게 기자님들께 양심고백을 하게 됐습니다.」
경리부장의 폭로는 곧바로 20여개 매체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 퍼져나간다.
언론을 통해 모든 것이 까발려지고 다시 후속기사가 등장하고 또 다시 소설 같은 이야기들이 창조되어 기획특집이라는 이름으로 보도되어 갔다.

가장 심각하고 흥미를 끄는 매체는 <주간서해>였다.
이 신문은 특집호를 마련하여 총 6개면에 걸쳐서 방대한 기사를 게재했다. 1면 탑에서는 「이사장의 개인금고가 된 저축은행」이라는 제목으로 상세한 사건전말에 대해서 기사화했다.
「서주저축은행 이사장의 비리는 본지의 심층취재를 통해 드러났다.
1년 전부터 비리의혹 제보를 받고 은밀히 취재하여 경리부장에게서 모든 비리에 대한 내 용을 확인 할 수 있었다.
저축은행의 돈은 이사장의 뒷주머니를 채워주고 있었고 철저하게 직원들과 짜고 은폐하고 있었다.............................」
이런 내용의 기사에 이어 3면에서는 선정적인 기사까지 올렸는데 제목은「이사장은 두 집 살림 때문에 거액이 필요했다.」라는 다소 엉뚱한 것이었다.
「이사장에게는 자기 집 말고도 거울 강남에 50평대 아파트가 한 채 더 있었다.
그 곳 경비들의 말에 따르면 미모의 30대 여성이 혼자 살고 있으며 이사장이 매주 주말 이면 들러서 이틀 밤을 머물다 간다는 것이다. 두 사람이 인근공원에서 산책하고 식사하 는 것을 봤다는 주민도 있다. 그 집을 얻은 시점과 30억을 가져간 시점이 거의 일치하고 있어서 이사장의 숨겨 놓은 애인에게 시선이 쏠리고 있다......................」
분명히 근거 없는 기사였지만 거의 모든 집집마다 공짜로 배달되는 신문을 읽는 투자자들의 눈을 사로잡기에는 충분했다. 악성기사를 올리는 것에 누구하나 제재하는 사람도 없었고 이를 확인하려는 기자도 없었다. 그저 독자들이 흥미를 가지고 여론화에 성공하면 끝나는 것이었다.

언론들만 나선 것은 아니었다. 시민단체연합회를 이끌고 있는 유희석이 모든 단체들을 다 동원해서 농성시위에 나섰다. 서주저축은행 앞 주차장은 시위대 300여명이 땅바닥에 앉아서 피켓을 높이 쳐들고 힘차게 외치고 있었다.
「비리 백화점 이사장은 즉각 물러가라!
저축은행이 개인금고냐, 마음대로 돈을 쓰냐
이사장은 시민 앞에 사죄하고 지구를 떠나라!」
무시무시한 구호를 외치는 시민단체 회원들 앞에 서주저축은행의 업무가 완전히 마비되어 버렸다. 불안을 느낀 고객들도 한꺼번에 몰려들어 예금을 해약하며 맡긴 돈을 돌려달라고 아우성을 쳤다.

저축은행 측은 처음에 고객이 요구하는 현금을 돌려 줄 수 있었지만 인출금이 60억이 넘어서면서 잔고가 바닥났다. 이사장은 긴급하게 거래하는 은행에서 50억을 빌려 다시 고객들에게 현금을 인출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하루가 지나지 않아 잔고가 바닥나버렸다. 예금을 빼내려는 고객은 줄을 서서 창구가 100여명의 고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이사장은 심각성을 느끼고 업무일시중지를 명령했다. 직원들도 당황했지만 고객들에게 사정을 말하고 양해해 줄 것을 간곡히 부탁했다.
이에 더 불안해진 쪽은 고객들이었다. 일부 성질 급한 고객은 고함을 지르며 쓰레기통을 발로차서 혼란을 부추겼다. 직원들이 제지하려했지만 또 다른 고객이 멱살을 잡고 왜 돈을 돌려주지 않느냐고 따지기 시작했다. 분노한 대중 앞에서 직원들은 매우 불안한 상황에 빠졌다. 돈을 찾지 못한 고객들이 눈에서 분노가 이글거리고 있었고 「한 놈 걸리면 죽여 버린다.」는 소리도 들려왔다.
저축은행에서 경비를 서던 청원경찰도 이미 구석으로 밀려나서 아무 말도 못하고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일촉즉발의 대치상황에서 고객들에게 나가라고 했을 경우 목숨을 부지할 수 있을지 두려웠다. 이때 창구 맨 앞에서 선동하고 있는 젊은이들의 낯이 익었다. 그들은 청수마을 민주혁과 청년들 20여명이었다. 이들도 10일전 이곳에서 20개의 계좌에 각각 1억씩의 현금을 입금해서 고객이 되어 있었다. 서주저축은행에 오늘의 사태가 올 것을 예상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사실 이 사태가 오기 10일전에 유희석과 이정수, 민주혁은 은밀한 시나리오를 준비했다.
머리회전이 빠른 유희석은 현재의 대결구도로는 이사장에 선출되는 것이 어렵다는 점을 알고 마지막 충격요법을 구상했다. 이 계획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언론단체, 시민단체, 청년들의 힘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그래서 10일전에 20억의 현금을 저축은행에 예치토록 한 것이다. 물론 그 자금은 비밀의 방 금고에서 빼내왔다.
이제 마지막으로 민주혁과 청년들의 선동에 달려있다. 민주혁의 신호를 받은 청년들이 저축은행 창구에서 집기들을 부수기 시작한다. 이때 민주혁은 아무도 나갈 수 없도록 현관문을 잠가버린다. 나머지 고객들도 청년들의 행동이 지나치다고 생각하면서도 감히 막을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창구에 있던 직원들이 무서움에 벌벌 떨면서 이사장실로 한꺼번에 들어가서 문을 잠가버린다. 창구를 점령한 청년들이 이사장실로 들어가려고 문을 당겼지만 꿈쩍도 하지 않는다.
안에 있던 이사장과 직원들은 마지막 문이 열릴까봐 노심초사 하고 있다. 그 틈에 이사장이 112로 신고해서 경찰을 불렀다. 그러나 출동한 경찰도 현관문이 잠겨있어서 안으로 들어서지 못하고 있다. 1시간 만에 나타난 경찰서장이 창구를 에워싼 고객들에게 마이크로 외친다. 자신이 중재할 테니 문을 열어달라는 내용이다.
경찰서장까지 나선 마당에 한없이 문을 걸어 잠글 수만은 없던 모양인지 고객들 중에 하나가 현관문을 열고 경찰의 지시에 따라 밖으로 빠져나간다. 고객들은 자동으로 밖에 있는 시위대와 합류하여 더 큰 목소리로 이사장 사퇴를 외친다.
경찰서장이 이사장을 단독으로 만나 제안한다.
「지금 당장 300억을 예치할 큰손을 알고 있습니다.
이사장님이 바로 사퇴하시면 그분이 예치한 금액으로 저축은행이 살아날 수 있습니다.
저쪽에서도 모든 고발을 취소할 겁니다.」
최후의 궁지까지 몰린 이사장은 모든 것을 체념하고 고개를 끄덕인다.

부도 위기에 시달리던 서주저축은행이 최현범이 예치한 300억 덕분에 정상을 되찾았다.
이 사실은 즉각 언론매체에 알려져 시민들이 다 알게 되고 불안이 해소된 고객들도 모두 돌아가 서주저축은행 창구는 언제 그랬나 싶게 평소모습으로 돌아갔다.
며칠 뒤 열린 이사회에서는 현직 이사장 측 이사들이 모두 퇴진하고 청수교 사람들이 차지했다. 이사진이 확 바뀌자 뒤이어 직원들의 성향에 따라 이사장 측근으로 분류된 사람을 강제적으로 내쫓고 청수교 사람으로 교체하는 인사폭풍이 몰아닥쳤다. 직원들의 경우에도 강압적인 위협이 뒤따랐다. 이사장 측근임이 분명한데도 퇴직에 동의하지 않을 경우 불법적인 대출과 업무에 대해 동조한 것으로 보고 고발하겠다는 협박이 가해졌고 견딜 수 없던 직원들이 짐을 싸게 만들었다.
새롭게 서주저축은행 이사장이 된 유희석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임직원을 장악했으며 주인님의 금고노릇을 충실하게 이행하기 위한 준비를 착착 진행해 간다.

서주저축은행과 고객이 대치하던 결정적인 순간에 경찰서장이 중재에 나선 것도 머리회전이 빠른 유희석의 작품이었다. 이미 10일 전에 이정수와 민주혁이 함께 시나리오를 짜면서 극적인 상황에서 중재자를 경찰서장으로 설정해 놓은 것이었다. 청수교 무리들의 인맥은 이토록 무섭고 치밀했다. 이미 중요 기관장과 단체장이 추종자들이었기 때문에 영향력 있는 인물들을 이용해서 어려운 일까지 훌륭하게 마무리 할 수 있었다. 이제 최현범을 살아있는 신으로 모시는 청수교는 국회의원, 시청, 경찰서, 언론단체, 시민단체, 교회, 저축은행까지 지배하며 더욱 큰 무대를 준비하고 있었다. 세상 끝까지 청수교를 전파하는 것이 그들의 사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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