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서영태 장편소설 <무서운 마을>



5월28일 오후3시 <주간충남>상담실.
지난 선거에서 무참히 낙선했던 야당후보 황연태가 편집장 김재진을 찾아왔다. 국회의원 당시 화려하고 늠름했던 표정은 다 사라지고 힘 빠진 중년 사내의 모습으로 김재진을 만나러 온 것이다.
「편집장님, 오랜만입니다.
당선되어서 인사드렸어야 했는데 떨어지니까 누구하나 오라는 데가 없네요.
그래도 이리 반겨주시는 데는 여기밖에 없습니다.」
그는 이미 여기저기 언론사를 다 찾아다니며 자신의 무죄와 억울함을 주장하는 장문의 글을 게재해달라고 부탁해봤지만 어느 곳도 받아주지 않았다며 하소연한다.
자신의 부인은 화병이 나서 병원에 입원해있고 혼자 돌아다니며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미 김재진도 잘 아는 사실이다. 떨어진 야당후보가 어디에 가 봐도 그의 호소를 들어 줄 곳은 없다. 이미 모든 언론매체가 청수교 사람들 편이 되어버린 것이다.
「저는 아직도 경찰조사를 받고 있습니다. 도대체 왜 제 여직원이 그런 거짓말을 지어 냈는지 아직도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내가 그렇게 잘해줬는데 하루아침에 성폭행범으로 만 들어 버렸습니다.
우리 아이들에게 너무 부끄러워서 진실을 꼭 밝혀내야 합니다. 편집장님, 꼭 저의 호소문 을 게재해 주십시오.」
떨어진 야당후보의 하소연은 절절이 애절하다. 그런데 아직도 그들의 정체를 모르고 있는 것이다. 어떤 수단과 방법도 가리지 않고 목적을 이루는 것이 바로 청수교 추종자들 아닌가. 첫사랑교회를 점령해버린 것이나 서주저축은행을 먹어버린 것만 봐도 무시무시한 그들의 성향을 알 수 있었다.
김재진 자신도 두 번씩이나 납치되어서 아슬아슬하게 탈출했지 않는가. 아직도 그들의 감시 눈초리가 느껴진다. 이 지역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그들의 눈을 절대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리라. 김재진은 자신을 찾아온 야당후보에게 지금 상대하고 있는 사람들이 어떤 조직인지 상세히 가르쳐준다. 그들의 힘은 지역사회 전역에 퍼져 있으며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무죄를 밝힐 수 없다는 점도 조언해 준다.
야당후보는 김재진의 설명을 듣고 깜짝 놀란다. 그제야 사건의 모든 것이 이해가 되어 진다. 왜 모든 언론단체가 나서게 됐는지, 왜 여성단체가 거리시위를 했는지, 왜 괴청년들이 선동하고 다녔는지, 왜 경찰들이 지켜만 보고 있었는지 다 이해가 되어 진다.
「그런데 왜 제 여직원이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일까요?
현재까지도 경찰조사에서 자기가 성폭행 당했다고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어요.
3일간 실종 된 것과 무슨 관계가 있을까요?」
「아마 그럴 겁니다. 추종자들로 변한 사람들이 대부분 3일간 사라졌다가 돌아왔어요.
청수교 사람들이 우리가 알지 못하는 은밀한 방법으로 그들을 세뇌 시킨 것이 틀림없어 요.」
야당후보는 김재진의 설명을 듣고 가슴이 서늘해진다. 저들이 그토록 무서운 무리들이란 말인가. 그들에게는 정상적인 대응이 통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복수를 위해서는 이쪽에서도 힘으로 밀어붙여야 할 지 모른다.
낙선한 황연태는 머릿속에 여러 가지 생각이 밀려들고 있음을 느낀다.

다음날 저녁9시 낙선한 전직 국회의원 황연태 사무실.
한 명의 키 작은 사내가 스포츠머리의 건장한 사내 두 명을 달고 들어선다.
이어서 황연태가 반갑게 맞이하여 밀실로 키 작은 사내만 안내하고 문을 조용히 닫는다.
「아우님, 오랜만이네. 내가 하도 억울한 일을 당해서 아우님을 모셨네.
자네도 들었다시피 내가 성폭행사건에 휘말려서 낙선했는데 그게 새빨간 거짓말이란 말 이네.」
「저야. 형님 말을 믿고 있습니다. 그러니깐 진작 우리 애들을 썼으면 이런 험한 꼴은 안 당했을 것 아닙니까. 저희가 어떻게 도와드리면 되겠습니까?」
키 작은 사내는 이 지역 밤 세계에서 큰 형님으로 불리는 인물이었다.

일반 서민들은 눈치 채지도 못하는 사이에 밤의 세계는 조용히 돌아가고 있었다.
20년 전만해도 시장에서 노점을 하는 영세 상인들까지 불량배에게 세금을 바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밤 세계도 많이 달라졌다. 요즘에는 적어도 아가씨들 데리고 장사하는 술집 중 월 매출이 1억 이상은 되어야 조직의 관리를 받을 수 있다. 이 경우 주인이 보호비 명목으로 천만 원 정도를 떼고 재료비, 인건비, 월세, 기타비용을 공제하고 약 2천만 원의 이익을 올릴 수 있는 구조였다. 장사가 더 잘되면 주인이 더 많이 가져가고 잘 안되면 손해도 볼 수 있는 형편이었지만 밤 세계의 보호비는 전혀 깎일 수 없는 정해진 세금이었다. 밤 세계에서도 그냥 무턱대고 보호비를 떼어가는 시대는 오래전에 지났다. 무엇이든 합법적인 방법이 동원되는 세상이다 보니 상무, 전무 등으로 조직원을 직원으로 등록해서 월급을 수령하는 형태여서 경찰에서도 큰 문제를 삼을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실상은 다 알고 있으면서도 밤 세계의 법칙은 변함없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밤 세계의 키 작은 큰형님은 너무 은밀하게 행동하고 있어서 그의 이웃조차도 평범한 용역회사 대표 정도로만 알고 있었다.
그가 지역에 나타난 때는 8년 전이었다. 천안에서 왔다는 키 작은 남자가 용역회사 간판을 닫고 문을 열었을 때는 아무도 그에게 주목하는 사람이 없었다. 간판은 용역회사였지만 여직원 하나 달랑 앉아있을 뿐 실제로 일하는 사람이 없었고 대낮에는 키 작은 사장도 자리를 비우기 일쑤였다. 그런데 이 용역회사는 여직원이 퇴근한 뒤에야 본격적으로 움직이는 이상한 회사였다.
처음에는 50명의 건장한 사내들이 모습을 보이다가 1년이 채 되지 않아서 20여명의 건장한 사내들이 매일 출근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활동은 너무 은밀해서 일반인들은 잘 알 수 없었지만 월 매출 1억 이상의 유흥업소를 하나하나 점령해가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은 기존에는 보호비를 받고 있던 소규모 조직에서 순순히 관리업체를 내주거나 키 작은 사내가 운영하던 용역업체로 자진해서 들어오는 경우도 있었다. 흔히 영화에서 나오는 조직 간의 피 터지는 패싸움은 나타나지 않았다.
8년 전부터 천천히 지역의 밤 세계를 점령하기 시작한 키 작은 사내에 대한 이야기는 전설이었다. 어떤 설에는 그가 서울 강남에서 활동하던 행동대장 시절 2명의 경찰을 잔인하게 살해한 후 15년을 감옥에서 썩어 나온 살인마란 것이었다. 또 다른 설에는 전국구 두목의 오른팔로 20대 1의 싸움에서 칼 한 자루 가지고 적들을 절단 낸 후 결국 두목까지 승진했으나 모든 것을 버리고 시골로 낙향했다는 말도 있었다. 그 외에도 키 작은 사내에 대한 풍문은 밤 세계의 은밀한 전설이 되어 소수의 사람들 사이에 회자되고 있었다. 그러나 실상 키 작은 사내는 20대 1의 싸움을 해낸 적도 없었고 경찰도 살해해본 적이 없었다. 그냥 조직원들이 만들어 낸 근거 없는 이야기일 뿐이었다.
그는 전국적으로 암암리에 뻗어있는 조직의 충남 서부지역 책임자로서 8년 전에 시골까지 조직망을 넓히라는 상무의 명령을 받고 내려와 사무실을 낸 것이었다. 그들은 철저하게 점조직으로 운영되어지는데 책임자들 간에도 따른 상부에서 내려준 휴대폰을 사용하여 은밀하게 연락되었다. 이 휴대폰은 매달 택배를 통해서 받아 볼 수 있을 정도로 철통같은 보안을 유지해야했다.
키 작은 남자는 자신을 큰 형님이라고 부르면 혼을 내곤 했다. 공식적으로는 무조건 사장님이라고 부르게 만들었는데 가끔 룸살롱에서 단합대회를 할 적에만 큰형님이란 호칭을 받아주곤 했다. 키 작은 남자는 조직폭력이라고 부르는 것 자체를 혐오하는 것 같았다. 본인은 용역회사를 운영하고 조직원들을 회사 직원으로 보이는 것이 정답이라는 듯 회의 시간마다 강조하곤 했다.
이 회사의 규모는 조직원들조차 아무도 알 수 없었다. 그들의 큰 형님도 충남 조직보스정도만 연락될 뿐이지 그 윗선에 대해서는 알 수도 없었고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매달 말일만 되면 큰 박스에 가득 담긴 현금을 봉고차에 싣고 키 작은 남자가 어디론가 사라지곤 했다. 그 돈이 얼마인지도 어디로 가져다 바치는 지도 조직원들은 전혀 알 수 없었다. 그것이 바로 이 회사의 특징이었다.
어떤 조직원 말로는 현재 이 지역에서는 거둬들이는 현금이 매달 20억이 넘는다고 말했다. 이 경우에는 월 1억 이상 매출액이 넘는 유흥업소가 200개 정도 되니까 관리비 10%를 떼서 그 정도 될 것이라고 추측했다. 어떤 조직원 말로는 그 배는 되는 40억 정도라고 계산했다. 200개 정도 관리하는 업소에서 매출이 큰 업소까지 포함해서 추측한 것이었다.
이 이야기는 조직원들끼리 몰래 한 술자리에서 내기를 했던 것인데 끝내 확인 할 수는 없었다. 아무튼 이 이상한 용역회사에 등록된 일꾼은 50여명에 이르렀으며 저녁7시부터 출근하면 밤 세계 유흥업소를 보호해 주고 매달 말일이면 십일조를 거둬들이는 것이 주된 업무였다.
조직원들의 직함은 철저하게 위계질서에 따랐다. 사장 바로 아래서부터 전무, 상무, 부장, 과장 순으로 나갔는데 유흥업소에서도 똑같은 위계질서에 따라 명함을 팠다. 말하자면 조직원들은 용역회사에서 업소로 파견 나온 고급인력이었다.

2년 전 크리스마스쯤에는 조직원들 간에 회사의 규모에 대해서 내기를 건 적이 있었다.
한 쪽 주장에 의하면 이 지역에 50여명의 인력이 있으니까 전국 300여개 시군단위라고 생각할 때 전국으로 1만 5천명은 될 것이어서 대기업에 속한다는 말이 나왔다. 한 쪽 주장에 의하면 대도시에는 더 많은 조직이 있고 해외에도 지사가 있을 것으로 보고 그 두 배인 3만 명 규모여서 글로벌 기업일 것이라는 말이 나왔다. 물론 확인해 볼 수도 없는 것이었으며 철저히 점조직 운영이기 때문에 큰 형님도 모를 것이었다. 어쨌든 조직원들은 대기업이나 글로벌 기업이 부럽지 않은 회사 직원이라는 의식이 생겼으며 직업에 자부심을 가질 수 있었다.

사실 키 작은 남자가 8년 전에 용역회사 하나를 차려서 현재 50여명의 인력을 보유하고 지역 상권을 대부분 차지할 수 있었던 비결이 있었다. 50대 중반인 그는 20대 초반부터 경기도 용인을 중심으로한 군소조직의 말단으로 들어가서 형님들이 시키는 궂은일을 해냈다. 그러다가 영역 쟁탈을 위한 패싸움도 하고 영세 상인들에게 몇 푼의 돈을 갈취하기도 하며 조폭이라는 죄명으로 교도소를 들락거렸다.
그는 크게 성공해 보지도 못하고 군소조직에서 일으킨 사건 때문에 함께 엮여서 10여년의 세월만 흘려보냈다. 그러던 중 교도소에서 한 방을 쓰던 50대의 남자를 만나게 된다. 그는 점잖은 신사로 보였지만 방에서는 큰 형님으로 불리고 있었다. 나름대로 머리를 굴린 키 작은 남자는 큰형님에게 최선을 다해 보필하며 인생역전의 기회를 노린다. 그 큰형님은 출소하는 키 작은 남자에게 주소를 일러주며 찾아가 보라고 일러주었다.
키 작은 남자가 간 곳은 대전에 있는 용역회사였다. 이 회사 역시 저녁이 되어야 본격적으로 가동되는 업체였는데 일꾼이 무려 300여 명에 이르렀다. 키 작은 남자는 영세한 조직에서 궂은 일만 하다 큰 조직에서 일하다보니 욕심이 생겼고 깡다구로 견뎌냈다.
키 작은 남자가 이 회사에 입사한지가 지금부터 20여 년 전이었다. 그 당시에는 험한 꼴도 많이 봤다. 구역을 뺏고 뺏기다 칼 맞아 죽은 동료도 봤고, 패싸움에 다리가 부러지고, 머리에서 피가 철철 흐르고, 온몸에 화상을 입고 죽은 동료도 있었다. 그 어려운 세월을 깡다구로 견디다 보니 조직에도 어느 정도 평화가 찾아왔다.
키 작은 남자는 지금도 전국적인 회사 규모는 잘 모르지만 회사는 아주 큰 조직으로 성장했고 다른 회사와 흡수 통합하며 함께 공생하는 구조로 정착되어갔다.
8년 전에는 키 작은 남자에게도 지역 책임자라는 직함이 붙었다. 그 동안 깡다구로 조직을 위해 헌신해온 가치가 인정을 받아 기회가 주어진 것이었다. 회사에서는 키 작은 남자를 이 지역에 내려 보낼 때 그냥 보내지는 않았다. 든든한 권력자 리스트와 10억 자금과 5명의 조직원을 투자해 주었다. 그 때 알게 된 권력자가 국회의원 황연태였다. 중앙조직에서는 각 지역 책임자가 올려 보낸 막대한 자금을 가지고 적당한 법인단체를 만들어 권력층에 거액의 후원금을 대주고 있음이 분명했다.

권력과 돈은 끌어당기는 힘이 자석보다 강한 속성을 가진 것이다. 이들이 은밀하게 제공하는 후원금을 받아먹고 배탈 난 권력자는 없었다.
한 때 삼성돈은 먹어서 배탈 안 난다고 했지만 밤의 세계를 움직이는 거대한 전국조직의 돈은 더욱 안전한 것으로 소문나 있었다.
8년 전 지역책임자로 내려온 키 작은 남자는 국회의원 황연태를 통해서 지역 권력자들과 사귀고 정기적인 후원금도 제공하게 된다. 그리고 10억 자금과 5명의 정예 조직을 동원해서 은밀하게 영세한 동네 조직들을 포섭한다. 키 작은 남자는 충남 조직에서 내려올 적에 이미 군소 조직의 계보를 훤히 꿰고 있었으며 그들의 선배들을 적절하게 이용해서 전국 조직에 자연스럽게 흡수 될 수 있도록 은밀히 처리했다.
그 당시 영세한 군소조직들의 가장 큰 문제는 언제 붙들려 갈지 모르는 불안감이었다. 그런데 키 작은 남자가 5명의 조직원들과 함께 선배소개로 방문하여 전국적 조직에 대한 브리핑을 하는데 군침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브리핑 내용은 첫 번째 안전이 보장되고, 두 번째 공무원 월급과 퇴직금이 보장되고, 배신만하지 않는다면 평생 고용도 보장된다는 것이었다. 또 한 가지 중요한 점은 영세 조직을 이끌었던 책임자들을 전부 구역 책임자로 맡겨서 구역에서 나오는 매출의 10%를 가질 수 있는 특혜도 약속했다.
키 작은 남자는 흡수통합 작업을 워낙 은밀하게 진행하다보니 5년간의 세월이 흘렀다. 그 결과 월 1억 원 이상 매출의 10%를 보호비로 걷는 곳이 300여 곳으로 늘어났으며 규모가 큰 업소를 포함해서 총 매출은 40억이 넘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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