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서영태 장편소설 <무서운 마을>


6월3일 저녁7시 세일용역회사 사무실.
이제 막 밤의 업무가 시작된 이곳 사무실에서는 양복 입은 건장한 사내들이 거래처에 나가거나 여러 업무를 수행하느라 분주하게 움직인다.
사무실 가장 안쪽에 자리 잡은 사장실에는 키 작은 사내와 함께 간부급 책임자 5명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출입문 앞 쪽에는 청수마을 격투에서 부상을 입고 달아난 사내가 더러워진 양복을 입은 채 부동자세로 서있다.
키 작은 사내와 간부들은 방금 전 사내에게서 청수마을 격투에 대해서 자세한 보고를 받았다. 그 사내는 청수마을 청년 20여명이 농기구를 들고 달려드는 바람에 패배했다고 과장된 보고를 했다. 뒤 따르는 책임이 무거웠기 때문이리라.
하여튼 밤의 세계를 점령한 자신들이 최고라고만 알고 있던 키 작은 남자와 간부들은 심각한 도전에 직면했음을 깨닫는다. 시골마을 청년들에게 조직원이 당했다는 사실은 너무 창피한 일이다. 다른 지역 조직에서 이러한 사실을 알기라도 하는 날에는 얼굴을 들고 다니지 못할 치욕이다. 조직에 치욕을 안겨준 청년들을 조종하는 자는 저택 주인일 것이다. 지금에서야 생각해보면 그자가 허술한 인물은 아니다. 마을 청년들이 철통같은 경비를 서고 있었다지 않는가. 그의 존재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키 작은 큰형님은 시골청년들에게 조직원이 당했다는 사실을 일단 간부들만 알고 상부나 조직원들에게 철저히 비밀을 유지하게 명령한다. 이런 치욕적인 것 가지고 여러 사람이 알아서 좋을 것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조용하고 침착하게 명령을 내린다.
「10명을 데리고 은밀하게 청수마을 동태를 살피고 대기하고 있고. 또 다른 10명을 동 원해서 저택 주인과 청수마을 관련 인물들에 대한 정보를 수집해...최대한 은밀하고 재빠르게 시행하도록.」

키 작은 사내는 전 국회의원 황연태와의 인맥 때문에 이 일을 떠맡았다. 황연태라는 인물을 중앙조직에서 8년 전에 소개 받았다. 그 후로 지금까지 막후에서 보호망 역할을 해주었던 인물이었다. 밤의 세계를 지배하다보면 아무리 은밀히 일해도 이런저런 이야기도 나오고 사정기관에 제보도 들어가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황연태가 소개해준 권력자들의 보호망이 큰 역할을 해줬다.
자신의 조직원들이 50여명에 이르는데 한 번도 붙잡히지 않고 건실한 용역회사 형태를 유지할 수 있게 도와주었으며 키 작은 사내도 황연태의 소개로 그들에게 정기적인 후원금과 향응을 바치며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
키 작은 사내는 황연태가 국회의원선거에 낙선한 직후 여러 루트를 통해서 당선된 여당후보를 접촉했었던 것도 사실이다. 밤의 세계에서 의리라는 것은 벌써 20여 년 전에 사라졌으며 철저하게 이익의 원리에 의해 움직이고 있었다. 키 작은 사내도 상부의 방침대로 당선된 국회의원과 접촉했지만 그는 무슨 이유에선지 기존의 방법이 통하지 않았다. 심지어 그는 자신의 영적인 주인님께 물어봐야 될 일이라며 이상하고 종교적인 말을 하면서 자꾸 만남을 회피하고 있었다. 그가 어떤 종교에 빠져 있는지 조차 알아내지 못했다. 그래서 키 작은 사내는 재빠르게 황연태에게 접촉하여 당선된 국회의원을 압박하는 작전으로 바꿨다.
성폭행사건이 가짜라는 증거를 획득하면 당선된 국회의원이 자신에게 굽실거리게 될 것이라는 계산이 깔려 있었다. 그런데 더욱 큰 일이 터져버렸다.
시골 청년들에게 조직원들이 패배해서 붙들린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너무도 치욕적인 사건이었다. 조직을 욕보인 그들을 철저하게 응징해야 한다. 그래야 구겨진 체면을 세우고 치욕적인 기억에서 벗어날 수 있으리라.
고민을 거듭하던 키 작은 사내는 특유의 냉정함을 유지하며 조직원들에게 비상대기를 명령한다. 이런 때일수록 상대에 대한 정확한 정보가 필요하다.

조직원 3명이 붙들린 지 이틀째. 청수마을 저택을 경비하는 청년들이 50여명으로 불어난다. 3명의 양복사내에게서 정보를 빼낸 최현범이 심각한 상황을 인식하고 급히 청수교 청년들을 투입한 것이다. 50여명은 하나같이 밀짚모자를 쓰고 농기구 하나씩을 손에 들고 저택 앞에서 텃밭을 가꾸는 척 위장하고 있지만 이 계통에서 잔뼈가 굵은 양복 사내들이 모를 리가 없다.
청수마을 청년들 측에서도 외지 승용차가 여러 대 길가에 세워져있고 양복 사내들이 저택 쪽을 주시하고 있는 상황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주인님의 명령을 받은 청년들은 저택을 사수하고 있을 뿐 먼저 공격하지는 않고 있다. 숫자로만 해선 50대 10으로 청년들이 앞서 있지만 방어만 하라는 주인님의 명령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일촉즉발의 대치상황은 밤까지도 이어진다. 양복사내들은 한 시간 단위로 대치상황을 윗선에 보고하고 있다. 어떤 명령이 떨어지더라도 재빠르게 수행할 수 있는 만반의 준비를 다하고 있다. 그러나 윗선에서는 여전히 동태만 파악하라고 할 뿐 더 이상의 명령은 떨어지지 않고 있다. 밤 12시가 다되어 갈쯤에 10여명의 조직원들이 새로운 2대의 승용차에 나눠 타고 몰려온다. 간부 책임자도 한명 더 와서 2명의 간부가 20여명의 조직원들을 현장에서 지휘하기 시작한다. 현장에 있던 조직원들은 진작부터 인원보강을 요청했었다.
아무리 실전 경험이 있는 조직원들이라도 50대 10의 싸움은 패배할 확률이 높았다. 이쪽 숫자가 늘어난다면 해볼 만한 싸움이 될 수 있다는 계산을 깔고 있다.
적과 밤을 지새우며 대치하는 조직원들은 김밥과 생수로 허기진 배를 채워가며 현장 경계를 풀지 않는다. 저택 안에는 그들의 동료가 붙들려 있는 것이다.
언제 쳐들어올지 모르는 상황에서 청수마을 청년들은 목숨을 바쳐 주인님을 지켜내겠다는 일념으로 경계를 강화하고 있다. 밤의 세계를 지배하는 자들이라 할지라도 목숨을 다해 방어하는 청년들의 혈기를 뚫기는 어려우리라. 날카로운 농기구가 흉기보다 치명적인 무기라는 것을 보여주리라. 청년들은 결연한 자세로 그들의 공격을 대비하고 있었다.

일촉즉발의 대치는 다음날 오후3시까지 이어진다. 양복사내 3명이 붙들린 지 3일이 지났다. 이제 키 작은 사내는 결단을 내려야한다. 50여명의 조직원을 동원해서 전쟁을 벌일 경우 양쪽의 피해는 엄청날 것이다. 흉기와 흉기를 지닌 자들이 대치하는 상황인 만큼 양측에서 사망자가 나올 확률이 많다.
이 경우 세상에 알려질 것이며 수사당국의 개입은 불가피하다. 어쩌면 8년 동안 쌓아올린 지역조직까지 수사망이 좁혀올 수 있다. 이런 그림은 전혀 조직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며 상부에서 알기라도 하면 커다란 징계가 떨어질 것이다. 이 때문에 키 작은 사내는 함부로 전면 공격을 못하고 신중에 신중을 기하고 있는 참이다. 키 작은 사내가 고민하고 있는 사이 현장에 나간 간부에게서 전화벨이 울린다.
「저쪽에서 청년 중 한명이 백기를 들고 다가와서 붙들린 자들을 맞바꾸고 물러나자고 합니 다. 큰형님, 어떻게 할까요.」
「그쪽에서 정 그렇게 한다면야.... 요구를 받아주고 일단 철수해.」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던 키 작은 사내에게 탈출구가 생겼다. 그래서 그들의 제안을 재빨리 받아들인 것이다. 그는 철창에 갇혀있던 두 사람을 청수마을로 보내라고 지시한다.
잠시 후 저택 앞 2차선 도로에서 양복 사내 3명과 민주혁, 여직원의 맞교환이 이루어진다. 양쪽에는 50여 미터를 사이에 두고 흉기를 꺼내든 양복사내들이 왼편에, 농기구를 세워든 청년들이 오른편에 대치하고 있다. 양측 수뇌부의 명령에 따라 동료들을 되찾은 양복사내들이 청년들을 노려본다.
「너희들은 우리를 잘못 건드린 거야.
여기가 너희들의 무덤이 될 거야.
우리는 다시 돌아온다.」
간부급 양복사내가 마지막 한 마디를 남긴 채 여러 대의 승용차에 나눠 타고 사라진다.
풀려난 청년회장 민주혁은 배신자 여직원의 머리채를 움켜잡더니 청년들과 함께 저택으로 들어선다. 주인님을 대면한 민주혁이 무릎을 꿇고 넙죽 절을 올린다.
「저 년이 배신했습니다. 주인님의 존재를 불어 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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