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서영태 장편소설 <무서운 마을>




6월15일 새벽3시 검은 승용차가 청수마을 입구에서 멈춰 선다.
헤드라이트까지 꺼져 있어 멀리서 봤을 때는 전혀 정체를 알 순 없다. 그런데 검은 승용차가 줄지어 서서 10대는 넘어 보인다. 승용차 안에서 검은 양복 사내들이 4명씩 내리더니 모두 50여명이 넘는다. 이 사내들 무리는 재빠르지만 소리 없이 청수마을로 사라진다. 맨 마지막에 키 작은 사내와 건장한 사내 3명이 뒤따른다.
키 작은 사내는 며칠 전부터 상부에 전면 기습을 요청했었다. 조직이 사이비종교집단에게 무릎 꿇으면 이 지역에서 사업을 접을 수밖에 없다는 언급도 했다. 은밀한 사업을 강조하는 상부에서는 3일 만에 허락했다. 단, 아주 은밀하게 할 것과 사상자를 최소화하기위해 야구 방망이만 사용할 것을 조건으로 달았다. 이에 조직원 50여명 전원을 투입하여 저택을 접수하려고 잠입하는 중이다. 소리를 죽이고 재빠르게 다가선 검은 양복사내 무리는 저택이 보이는 소나무 밭에 몸을 숨긴다.

저택 정문에 10여명의 청년들이 농기구를 손에든 채 사방을 주시하고 있다. 담장을 둘러서 여러 명의 청년들이 보초를 서고 있을 것이 틀림없다.
양복사내들은 이미 작전을 세워두었다. 30여명이 정문에서 청년들과 결투를 벌이는 사이에 저택 뒤로 돌아간 20여명이 담장을 넘어 침투하는 양공작전 시나리오였다. 모든 준비가 끝났음을 무전으로 보고받은 키 작은 사내가 기습명령을 내린다. 순간적으로 소나무 밭에 숨어있던 30여명의 양복사내들이 힘껏 달려 나간다. 10여명의 청년들이 농기구를 휘두르며 방어하고 있지만 3배에 달하는 양복사내들에게 난타 당한다. 청년들이 정면의 사내에게 농기구를 휘두르는 사이 뒤로 돌아간 양복사내가 야구방망이로 난타하는 작전이 효과를 발휘한다. 정문 쪽의 소란을 감지하고 정원에서 보초를 서던 10여명의 청년들이 차례로 몰려든다. 빠른 시간에 승기를 잡은 30여명의 양복사내들이 굳게 잠긴 정문을 차례로 뛰어넘어 청년들과 혈투를 벌인다. 한 청년이 휘두른 쇠스랑에 어깨를 찍혀 피를 흘리는 양복사내도 있었지만 숫자로 밀어붙이는 양복사내들의 야구 방망이에 난타당한 청년들의 모습이 더 많이 눈에 띈다.

정원에서 보초 서던 10여명의 청년들이 정면 쪽으로 몰려가 혈전을 벌이는 사이에 뒷담을 넘은 20여명의 양복사내들이 야구방망이로 저택 뒤쪽 창문을 깨부수고 실내로 침투한다.
저택실내에서 문을 걸어 잠그고 상황을 지켜보던 20여명의 청년들이 허를 찌르며 뒤쪽 창문으로 침입한 양복사내들과 혈전을 벌인다.
양쪽의 숫자는 비슷하지만 실전경험이 풍부한 양복사내들이 점차 승기를 잡는다. 그러나 청년들은 쉽게 무너지지 않고 완강하게 버티고 있다. 이때 정문 쪽에서 청년들을 차례로 쓰러뜨린 30여명의 청년들이 현관 유리창을 깨부수고 합세한다. 급격하게 쪽수가 많아진 양복사내들이 협공하여 실내에서 대치하던 청년들을 차례로 쓰러뜨린다. 마지막 청년이 야구방망이에 머리를 난타당하고 힘없이 쓰러지면서 상황은 마무리 된다.
즉각적으로 양복사내들은 저택 이곳저곳을 이 잡듯이 뒤진다. 그러나 이곳 주인 최현범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모든 방과 옷장, 창고를 모두 수색하지만 전혀 찾을 수 없다.

조금 전 최현범은 비밀의 방에서 양복사내들의 침입을 모니터로 주시하고 있었다. 그들의 기습은 놀라울 정도로 신속하고 과감했다. 자신을 보호하고 있던 청년들 40여명을 빠른 속도로 때려눕히고 있었다. 역시 그 놈들은 보통 조직이 아니었다.
이정수의 보고처럼 엄청난 조직이 그들 뒤에 숨어서 밤의 세계를 지배하고 있을 것인지도 몰랐다. 아직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그들의 힘은 놀라웠다. 사악한 악마의 가슴에 점점 밤의 세력을 손아귀에 넣고 싶다는 욕망이 끓어오르고 있었다. 모니터로 청년들의 패배를 지켜보면서 최현범은 민주혁과 함께 지하통로를 거쳐 100여 미터 떨어진 전원주택으로 빠져나갔다. 그 곳에서 대기하고 있던 승용차를 타고 청수교회로 달려갔다.

그 시각 200여 평의 청수마을 저택 거실에 40여명의 청년들이 밧줄에 꽁꽁 묶여있다.
청년 중 한명은 야구방망이에 머리를 맞고 혼수상태에 빠져 조직원이 응급실로 데려갔다. 묶인 청년들에게 최현범의 행방에 대해서 집요하게 캐물었지만 아무도 입을 열지 않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알 수 없는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사이비종교집단 특유의 주문을 외우면서 마음속으로 주인님에 대한 충성을 맹세하고 있었다. 그 주문소리는 양복사내들의 귀를 따갑게 하기도 했고 빠져드는 느낌을 받기도 했다.
키 작은 사내는 거실 한쪽 소파에 깊게 몸을 맡긴 채 청년들의 상태를 꼼꼼히 주시하고 있다. 저택을 수색한 지 3시간이나 됐지만 어떤 실마리도 찾지 못했다. 청수마을을 감시하던 조직원의 말에 따르면 최현범이란 작자가 저택을 떠난 정황은 없었다. 워낙 은밀히 활동하는 자라서 밖에 모습은 잘 드러내지 않았지만 청년들의 감시망이 풀리지 않은 것으로 봐서 분명히 저택에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의 행방을 전혀 알 수 없다. 상황이 이대로 종료되면 지금까지의 성공은 모두 수포로 돌아간다. 용감하게 늙은 여우의 굴에 들어왔지만 새끼들만 있었지 늙은 여우는 보지도 못한다는 것은 실패를 의미하는 것이다.
이에 대한 결과를 상부에 즉각적으로 보고해야한다. 상부에서는 실패에 대한 책임을 물을 것이다. 그것은 어쩌면 지역책임자 자리를 내놓아야할지도 모르는 것일 게다. 이미 상부에서는 키 작은 사내의 능력을 의심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마도 치명적인 실수가 될 수도 있다. 키 작은 사내는 기습에 성공하고도 저택 주인을 잡지 못한 결과에 대단히 실망하며 조직원들에게 철수 명령을 내린다. 이미 날은 밝아오고 밤의 세계는 사라지고 있었다.

한편, 최현범은 청수교회 5층에 마련된 담임목사 사택에서 긴급대책회의를 소집하라고 명령했다.
잠시 후 청수교회 회의실에 즉각적으로 모인 남 선지자. 이정수, 민주혁, 시장, 경찰서장 등 10여명은 우선 청수교회 청년들과 건장한 남자들로 구성된 결사대를 긴급 조직해서 주인님이 계신 청수교회 경비를 맡긴다. 100여명의 충성스런 결사대에겐 최신형 전기충격기를 한 대씩 지급한다.

날이 밝아오자 청수마을 저택에서 연락이 온다. 주인님을 찾지 못한 양복사내들이 모두 철수 했다는 것이다. 결국 그들의 목적은 주인님을 납치하는 것이었다. 주인님만 잡는다면 승리 할 수 있으리라 여겼을 것이다.
저택으로 달려간 민주혁을 기다리는 것은 40여명의 청년들과 처참하게 부서진 결투현장이다. 난폭한 양복사내들은 그냥 철수하지 않았다. 그들의 분노로 저택 유리창은 다 깨버리고 비싼 가구를 야구방망이로 내리쳐서 망가뜨려버렸다. 이태리제 소파는 예리한 단검으로 쫙 그어놔 고물을 만들어버렸다. 정원의 비싼 나무들도 뿌리를 뽑아버리거나 가지를 부러뜨려서 형편없이 만들어버렸다.
양복사내들의 야구방망이에 맞아서 팔이 부러진 청년, 다리가 부러진 청년, 갈비뼈가 나간 청년 등 부상자만 15명에 이르렀고, 머리를 정통으로 맞아 응급실로 실려 간 청년은 방금 전 숨을 거두었다는 연락까지 받았다.
지난 새벽 혈투에서 청수교 측은 1명 사망, 15명 부상이라는 심각한 인명피해를 입었다. 저택 수리비만 해도 수억 원이 들어가야 할 것이다. 이제 밤의 세력과 청수교간에 피할 수 없는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지난 2차전까지는 국지전이었으나 새벽에는 전력을 다한 전면전이 벌어진 것이다. 청수교 측의 가장 큰 피해는 주인님의 저택을 지키지 못한 것이었다. 청년들 40여명이 다 죽는 한이 있더라도 저택만은 지켰어야했다. 다행히 주인님은 지하통로를 지나서 빠져나갔지만 치명적인 약점을 노출한 것이었으며 전면전에서 완벽하게 패배한 것이었다. 그렇다고 밤의 세력이 완승을 거두지도 못했다. 청수교의 살아있는 신을 붙잡았다면 전쟁을 끝낼 수 있는 결정타를 날렸겠지만 얻은 것 없이 빈손으로 철수하고 말았다.
이제 양쪽간의 피 터지는 결투는 불가피해졌다. 정신세계를 지배하는 청수교의 승이냐, 밤의 세계를 지배하는 조직의 승리냐. 전혀 예측불허의 싸움이 또 한 번 예고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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