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서영태 장편소설 <무서운 마을>


 

6월17일 오전10시
시청 앞길이 개미새끼 한 마리 빠져 나가지 못할 정도로 꽉 막힌다. 차량들의 경적소리가 수도 없이 울리지만 꼬리를 물고 늘어선 차량들이 움직일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벌써 30분 째 꼼짝도 못하는 도로 위에서 운전자들은 짜증이 날대로 났다. 벌써 대지를 아궁이처럼 덥히는 6월의 태양은 높이 솟아올라 아스팔트 위에 열기를 전달한다.
터미널에서 시청 앞으로 뚫린 2차선 도로에만 차량이 전혀 없다. 도로 양쪽으로 수백 명의 전경들이 늘어서서 차량 진입을 막고 있다.
터미널 쪽에서 하얀 옷을 입은 사람들이 장엄한 노래를 부르며 천천히 행진한다. 너무 장엄하고 구슬픈 가락에 행인들도 눈시울을 붉히게 만들고 있다. 앞에서 행진하는 100여명의 사람들은 모두 상복을 입고 한발 한발 무겁게 발걸음을 옮기고 있고 그 뒤로 하얗고 붉고 노란 꽃상여가 슬프게 아름다움을 뿜어내며 뒤 따른다. 뒤로는 검은 정장을 차려입은 사람들 300여명이 뒤 따르며 장송곡을 따라 부른다.
맨 앞줄의 영정사진은 분명 청수마을 청년이다. 밤의 세력과 결투에서 머리를 가격 당하고 죽어버린 청년의 장례식이 열리고 있는 것이다. 단순한 장례식이 아니라 거리에서 시민들과 함께하는 ‘시민장’ 형태로 진행되고 있다. 장례식 주관은 시민단체연합회가 맡아 15만 시민이 모두 참여하는 장례식을 기획했다고 한다. 수백 명이 부르는 장송곡은 너무 슬프고 애달프다. 도로가로 몰려든 행인들은 장송곡을 따라 부르고 눈물을 글썽거리기까지 한다.
주관단체측은 장송곡뿐만 아니라 독재정권시절 저항의 향수를 자극하는 민중가요까지 불러댄다.
「태양은 대지위에 붉게 타오르고
한낮의 찌는 더위는 나의 시련일지라
나 이제 가노라 저 거친 광야로
서러운 모습 버리고 나 이제 가노라」
가슴이 벅차고 마음이 미어지는 민중가요가 울려 퍼질 때 모든 시민들이 한 마음으로 노래를 합창한다. 죽음을 애도하는 차원을 넘어 강력한 저항의 불길이 타오른다.

상여가 시청 앞 광장에 도착하자 수천 명의 시민들이 모여들어 인산인해를 이룬다. 잊혀졌던 민중가요를 부르는 시민들의 감정이 죽은 자를 애도하는 마음까지 더해져 최고조에 달한다. 이 때 김정철 시장이 연단에서 장엄하게 연설한다.
「시민여러분! 농촌 총각이 한 명 죽었습니다.
평생 부모에게 효도하기 위해 고향을 지키며 농사만 짓던 순진한 총각이었습니다.
저 잔혹한 폭력배들이 며칠 전 새벽에 동네사람을 납치하려고 침입했습니다. 마을 청년들 은 동네사람이 당하는 걸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농기구를 들고 맞서 싸웠습니다. 그러다가 폭력배들이 휘두른 야구방망이에 머리를 맞고 죽어버린 것입니다.
우리 고장이 언제부터 이렇게 폭력배들의 세상이 되었습니까. 시민들이 단합하지 않으면 그들을 몰아낼 수 없습니다. 우리 모두 단결해서 농촌 총각의 한을 풀어줍시다. 폭력배를 몰아내서 정의로운 사회를 만듭시다.」
김 시장의 연설은 절절이 옳은 소리요, 정의감이 끓어오르는 명연설이었다. 광장에 모인 수천 명의 시민들은 분노로 끓어오르는 가슴을 달래며 슬피 우는 자들도 많다. 이러한 모습은 신문, 방송을 통해 전국으로 퍼져나가며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한다. 성난 민심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저 시퍼렇게 날선 독재 권력도 무너뜨린 민심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작은 시골마을 청년이 죽은 사건은 공중파를 타고 전국으로 알려지며 사사프로그램까지 제작되어 방영되기 시작한다. 연일 화제가 되고 있는 이 사건을 막을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다. 심지어 국회 대정부질문에서까지 경찰청장을 질타하며 시골도시에 폭풍이 휘몰아칠 비구름이 모이고 있었다.

6월20일 저녁7시 세일용역회사 사무실.
연일 공중파 방송에서 보도되는 청수마을 청년 사망사건 때문에 조직원들의 심기가 불편하다. 오늘도 평일처럼 출근한 50여 명의 조직원들은 구역책임자들의 지시에 따라 장비를 갖추고 관리하는 업소를 순찰할 예정이다.
큰 형님은 어제 저녁부터 상부에 출장이 있다며 이틀 째 모습을 나타내지 않는다. 아마도 마을청년 사망사건 때문에 상부에서 회의가 길어지는 것일 게다. 오늘따라 사무실 밖에는 개미새끼 한 마리도 보이지 않는다. 주위에 유흥업소가 몰려 있기 때문에 이 시간 쯤 되면 슬슬 남녀가 어울려 꽤 행인이 있을 때인데 아예 한 명의 행인도 보이지 않는다.

이때 검은 헬멧, 장갑, 방탄복, 곤봉으로 무장한 20여 명의 사내들이 세일용역회사 동쪽 벽을 따라 몸을 숨기고 있다. 서쪽 모퉁이에도 20여 명의 사내들이 몸을 숨기고 있고 남쪽과 북쪽 모퉁이에도 수십 명의 사내들이 명령을 기다리고 있다. 모두 다해서 100여명이 넘는 인력으로 보인다. 이 사내들은 경찰청에서 직접 투입한 특수기동부대로 테러 진압을 위해 전문적으로 훈련된 프로들이다. 대장의 진입명령이 떨어지자마자 2층 사무실 창문이 박살나면서 최루가스가 퍼져나간다. 갑작스런 최루가스에 눈을 제대로 뜨지 못하고 숨이 막히며 엄청난 고통을 온몸으로 체험하는 50여명의 조직원들이 우왕좌왕한다.
겨우 출입구를 향해서 기어가다시피 계단을 내려오던 조직원이 검은 헬멧 특공대원의 곤봉에 맞고 쓰러진다. 그 후에도 줄줄이 계단을 내려오던 조직원들이 차례차례 쓰러지며 수갑이 채워져 대형버스 안으로 밀려들어간다. 특공대원의 작전을 눈치 채기 시작한 간부들과 일부 조직원들이 급히 옥상으로 올라가 출입문을 잠근다. 옥상으로 탈출한 양복사내들은 10여명으로 2층 건물 아래를 둘러보지만 동서남북이 특공대원과 경찰들로 완벽하게 포위된다. 워낙 완벽한 작전에 말려들어 도저히 탈출할 곳이 보이지 않는다.
순간 옥상 출입문을 박차고 뛰어든 특공대원들이 곤봉을 앞세우고 양복사내들을 밀어붙인다. 양복사내들도 안주머니에서 단검을 꺼내들고 난폭하게 휘두른다. 점점 늘어나는 특공대원이 양복사내들의 앞뒤를 포위하면서 곤봉을 휘두른다. 양복사내들은 최후의 한 사람까지 단검을 휘두르다 장렬히 쓰러진다. 그렇게 8년 동안 은밀하게 뿌리내렸던 밤의 세력이 붕괴된다.

한편, 키 작은 사내는 전날 밤에 상부 책임자로부터 특공대 진입 정보를 통보받았다.
상부 책임자는 50여명의 조직원을 희생시킬 수밖에 없으며 모든 중요서류를 가지고 당장 상부로 올라오라고 명령했다. 전국적인 이슈로 떠오른 지금, 상부에서도 더 이상 버티기 어려웠을 것이다. 키 작은 사내가 8년간 힘들게 일궈놓은 노력이 한 번에 허물어지고 있는 것이다. 모든 시작은 청수교 집단 때문이었다. 사이비종교집단 정도로 생각하고 얕보았던 것이 치명적인 실수였다. 그들은 종교를 넘어 언론, 시민단체, 정치권까지 지역사회의 낮 세계를 지배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번 전쟁은 낮의 지배세력과 밤의 지배세력 간 피할 수 없는 전쟁이었다. 그것도 4차전까지 팽팽하게 치르고 나서야 결정이 났으며 낮의 지배세력이 완벽하게 승리를 차지했다. 이제 밤의 세계를 지배하던 키 작은 사내가 목숨만은 부지한 채 쓸쓸하게 퇴장하고 있다. 그러나 거대 조직은 철저하게 점조직으로 운영하는 방침 때문에 존재가 드러나지 않을 것이다. 이런 날을 대비하여 키 작은 사내는 절대로 이름을 밝힌 적이 없다. 그의 가족은 천안지역의 아무도 모르는 아파트에 살고 있었다.

이날로 상부에 올라간 키 작은 남자는 철저하게 조직의 명령이 따라야 함을 안다. 8년간 공들인 지역조직이 무너진 책임도 져야 될 것이다. 그리고 조직에서 만들어준 안전가옥에서 몇 년간 갇혀 살아야 될 것이다.
언론에서는 경찰이 시골 도시 폭력조직원 50여명을 검거했다고 대대적으로 보도하기 시작한다. 단지 지역에서 활동하던 조직일 뿐이라며 전국적인 거대조직과의 연관성은 전혀 언급되지 않는다. 50여 명을 이끌며 밤의 세계를 지배했던 키 작은 사내에 대한 언급도 전혀 찾아 볼 수 없다. 그는 이름도 없었고 존재도 없었던 사람이 되어 있다.
상부로 올라오기 전 키 작은 사내는 조직 내 2인자에게 다짐을 받아두었다.
「만약 비상사태가 발생하면 네가 두목이라고 밝혀라.
3년 뒤에는 반드시 너를 꺼내줄 것이다.
그동안 너의 가족을 우리가 보살펴 줄 것이다. 네 가족의 생사는 우리 조직에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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