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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8화] 평 화
[연재] 서영태 장편소설 <무서운 마을>
[111호] 2012년 08월 29일 (수) 10:04:43 서영태 기자 ssytt00@naver.com

6월25일 낮12시10분
춘천 호수가 내다보이는 펜션 발코니에서 김재진과 서인애가 점심을 함께하고 있다. 6월의 호수를 아름답게 바라보며 여유 있게 걷고 있는 한 쌍의 남녀가 눈에 뜨인다. 바람결에 날리는 긴 머리가 돋보이며 자전거를 몰고 가는 여성의 모습도 보이고, 호수에서 어미오리를 따라나선 4마리 새끼오리도 한 폭의 그림같이 눈에 들어온다.

김재진은 어젯밤에 도착해서 사랑하는 서인애와 함께 아름다운 밤을 보냈다. 승용차를 몰고 도로를 달릴 때에는 누가 뒤 따르지 않나 신경 쓰느라 긴장을 놓지 않았었는데 그녀를 품안에 안는 순간 뭉클한 가슴을 온몸으로 느끼며 경직됐던 몸이 부드럽게 풀려버렸다.

지난 몇 개월 동안 서인애와 떨어져 지내면서도 매일 안부를 묻는 전화를 쉬지 않았던 두 사람이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험에 노출시키지 않으려는 김재진의 마음을 아는 서인애는 매일 희망이 담긴 말로 용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김재진은 매일매일 주변에서 일어났던 일을 자세히 서인애에게 말해주었는데 가장 자주 말했던 내용이 청수교와 관련된 일이었다. 몇 개월 동안 국회의원선거사건, 첫사랑교회사건, 서주저축은행사건, 밤의 세력 소탕사건 등 끔찍한 내용을 이야기해 주었었다. 서인애는 그렇게 생생한 사건들에 대해 듣는 것을 좋아했고 작품으로 만들고 있다고 말했었다.

어젯밤 김재진은 깜짝 놀랐다. 서인애가 쓰고 있는 작품의 원고를 읽어 내려가다가 너무 흥미롭고 재미있어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법학을 전공한 여성답게 전문적인 법률지식까지 첨가해서 김재진이 매일매일 들려준 이야기를 매력 넘치게 글로 표현하고 있었다. 김재진은 그녀의 이야기에 푹 빠져서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읽어내려가다가 서인애의 입술이 뺨을 간질일 때에야 비로소 그녀의 맑고 우아한 눈빛을 들여다보며 매력 넘치는 입술에 키스를 선물했다.

오늘 점심은 서인애가 사랑하는 남자를 위해서 특별히 상큼한 채소로 비빔밥을 만들었다. 정성껏 만든 점심을 맛있게 먹고 원두커피를 잠깐 맛본 김재진이 말을 건넨다.
「인애 씨가 이렇게 매력적인 작품을 만드는 줄 몰랐어요. 제가 매일매일 전화로 말했던 장 면이 다 들어있어요.」
「재진 씨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너무 스릴 있어요.
특히 청수교 추종자들은 사건을 몰고 다니는 존재들 같아요.
결코 현실에서는 일어 날 수 없을 것 같으면서도 너무 현실적인 사건들이라서 무서움까지 생겨요.」
「그럼 소설의 결말은 어떻게 마무리 될까요.」
「그건 저도 재진씨도 알 수가 없어요. 제 작품은 끝을 알 수 없는 생명체 같아요. 그래서 더 매력 있고 끌려들어가는 것 같아요.」
「만약 저 작품이 세상에 공개되면 청수교 추종자들이 가만있지 않을 거예요.」
「저는 진실을 알리는 사람이 있어야 된다고 생각해요. 재진 씨는 신문을 통해서, 저는 책 을 통해서 진실을 알리는 사람들이에요. 만약 제가 위험해지면 또 다시 재진 씨가 구해 줄 거죠?」
애교 섞인 서인애의 말에서 귀여움이 잔뜩 묻어나면서도 여성답지 않은 강인한 용기까지 엿볼 수 있다. 그녀의 정신은 결코 약한 사람이 아니었다.

같은 시각 청수마을 앞 저수지에 낚싯대를 드리운 밀짚모자 노인이 제법 큰 붕어 한 마리를 건져 올린다. 다시 미끼를 달은 낚싯대를 응시하는 노인은 최현범이다.
저수지의 잔잔한 물결처럼 청수마을에도 다시 평화가 찾아왔다. 밤의 세계를 지배하던 조직원들이 다 사라져버린 지금이 바로 평화의 시대였다.

최현범은 가장 강력한 적을 만났었다. 밤의 지배자는 청수마을 저택까지 기습해서 낮의 지배자를 납치하려 했었다. 다행히 피신해서 무사했지만 일촉즉발의 위기상황에까지 내몰렸었다. 지금도 그들의 기습을 떠올리면 오싹해진다. 그러나 낮의 지배자가 밤의 지배자를 몰아내고 완전한 지배자로 탄생했다. 더 이상 시골도시에서는 지배자에게 도전하는 놈은 없다.
이미 청년회장 민주혁을 시켜서 밤의 지배자가 관리했던 밤의 세계를 하나씩 접수하고 있다. 그들이 했던 방식으로 청수용역회사를 설립하고 50여명의 청년들이 밤의 세계 유흥업소를 매일 순찰하고 보호비 명목의 십일조를 걷고 있다. 청수교회에서도 십일조를 걷듯이 밤의 세계에서도 똑같은 방식이 통하고 있었다. 사악한 악마가 보호해주는 대가였다.
관리를 받는 유흥업소에서는 아무 이견이 없었다. 어차피 지배자만 바뀌었을 뿐 밤의 세계 규칙은 똑같았고, 군소 조직이 집적거리는 것보다는 훨씬 신사적이었기 때문이다.
민주혁의 보고에 의하면 300여개 유흥업소에서 내는 십일조만 해서 월 50억은 될 것으로 추산했다. 청수교에서 벌이는 사업 중에 가장 수입이 컸다. 이제는 추종자들 중에서 전담 회계사를 두어 청수교의 모든 재산을 관리하도록 만들어야했다.

평화를 되찾은 최현범은 다시 한 번 서인애의 얼굴과 몸매에서 풍기는 매력을 그리워하고 있었다. 지난밤에도 남자의 욕정에 끌려 신미연을 오랫동안 품었다. 그러나 갈등이 완전히 풀리지를 않았다. 진짜 맛보고 싶은 먹이를 사냥하지 못하는 맹수가 느끼는 갈증이었다. 일단 김재진을 살려놓으면 언젠가는 서인애를 품에 안을 수 있을 것이다. 다시 그 녀석 주변을 철저하게 미행해서 감춰 놓은 먹잇감을 빼앗고 말리라.
이제 <주간충남>편집장 김재진 따위는 진정한 지배자에게 상대가 되지 않는다. 겨우 신문사 하나 붙들고 있지만 바람 앞에 촛불과 같다. 가만히 놔두어도 스스로 꺼져버리리라.
그렇게 나약한 녀석을 살려두는 것은 오직 매력덩어리 서인애를 차지하기 위한 미끼이기 때문이다. 먹잇감이 미끼를 무는 순간 모든 것을 끝장내리라. 최현범은 낚시 바늘에 미끼를 달면서 예쁜 붕어가 걸려들길 기다리고 있다.

밤의 세력과의 전면전에서 승리를 거둔 최현범은 커다란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 사악한 악마의 왕이 거처할 왕국을 만든다면 그 권위가 더욱 높아지리라 생각하게 된다.
악마의 왕국을 짓기 위해 그는 정태섭 회장이 이끌던 건설회사 후임자를 이미 추종자로 만들어 두었다. 그 사람들은 예전에 저택 비밀의 방과 지하통로를 은밀하게 만들었던 경험도 있다. 왕국은 청수마을을 완전히 개조시켜서 세워질 계획이었다. 우선 마을 중심에 지상 10층, 지하4층 규모의 청수선교센터가 건립되는데 가장 높은 10층에는 주인님의 집무실, 개인용 사우나, 비서실, 침실, 개인헬스장이 들어선다. 1층부터 9층까지는 예배당, 강당, 교육장, 사무실 등 주로 추종자들이 모일 수 있는 공간이 만들어지고 지하층에는 경비대 훈련실을 만들어 200여 명이 상시 대기하며 주인님을 지킬 수 있도록 구성된다. 또한 지하통로를 여러 개 뚫어 저택 비밀의 방과 연결시키고, 별관을 5개나 만들어 모두 지하통로로 연결시킬 계획이다. 미래의 별관에는 신미연과 같이 주인님을 모시게 될 젊은 여인들이 살아갈 거처가 될 것이다. 그 중에 서인애까지 데려와서 가장 훌륭한 별관에 살게 만들 것이다.
최현범이 머릿속에 그리던 왕국은 이미 설계가 들어가서 최대한 빠른 시일에 견본이 나올 것이다. 이 왕국이야 말로 주인님의 지배를 더욱 강화하고 세계로 뻗어나가는 청수교의 성지가 될 것이다. 생각만 해도 흐뭇한 왕국이었다. 다른 면에서 청수교 주인은 애국심까지 느끼고 있다. 생각해보면 세계를 지배하는 종교들은 모두 먼 나라에서 시작된 것 아닌가. 청수교가 세계로 퍼져 나가 새로운 종교 세력을 만든다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성지순례라는 이름으로 우리나라를 방문 하겠는가. 종교야 말로 우리나라를 발전시키는 애국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낚싯대를 드리운 노인의 밀짚모자속에서 금이빨이 선명히 드러나고 빛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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