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서영태 장편소설 <무서운 마을>



6월27일 밤10시
청수교회 예배당에 500여명의 추종자가 모인 가운데 거룩한 예식이 열리고 있다. 추종자들은 모두 장엄한 주문을 외우면서 점점 환각에 빠져 들어간다. 그런데 이상한 점은 기존에 최현범이 만들어놓은 예식과는 많이 달라보인다.
살아있는 검은 염소의 다리를 네 명의 부선지자들이 잡고 남 선지자가 예리한 칼로 배를 가른다. 흥분한 검은 염소가 울부짖는 가운데 선홍색 핏물이 제단 아래 큰 대접으로 흘러들어간다. 차례대로 제단 앞으로 나온 추종자들이 성스러운 제물이 흘린 피 대접에 자신의 손가락 상처에서 흘린 피를 섞고 한 모금씩 마신다. 피를 나눈 형제자매가 된 추종자들은 옆 사람과 손을 잡고 더욱 깊은 마각 속으로 빠져 들어간다.

남 선지자가 개발한 10단계 학습법은 새로운 추종자들을 세뇌시키는데 효과적이었다. 3개월 동안 매일 2시간씩 학습해서 끝내는 10단계 학습법은 정상적인 기독교인을 점차 세뇌시켜 악마의 추종자로 만들어갔다. 그러나 진정한 추종자가 되기 위해서는 마지막 단계까지 수료하고 3일간의 환각여행을 다녀와야 했다.
초창기에 추종자들이 많지 않을 때에는 주인님이 직접 3일간 세뇌 작업을 진행할 수 있었지만 청수교회 학습자들을 전부 다 세뇌시킨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어차피 청수교가 세계로 뻗어나가려면 주인님이 직접 모든 추종자의 세뇌를 담당할 수 없을 것이었다. 그래서 영적 지도자로 세운 남 선지자에게 신경독성물질을 이용한 3일간의 환각여행에 대한 비밀을 꼼꼼하게 알려주었다. 사악한 악마의 두려움을 머릿속 깊이 심어주기 위해 8시간 마다 정해진 신경독성물질을 투입해야하고 주인의 존재를 계속 일깨워 줘야하는 세뇌방법을 자세히 알려준 것이다.

청수교 주인인 최현범은 남 선지자야 말로 태어날 때부터 악마의 지배를 받기위해 준비된 운명적인 성직자라고 믿었다. 이미 그는 30여명의 신도들이 자살을 선택하게 할 정도의 영적인 지배력을 보여주었다. 그래서 정신병원에서 15년이나 썩고 있는 그를 거액을 주고 빼내왔던 것이다. 지금도 얼마나 훌륭하게 많은 추종자들을 길러내고 있는가. 4명의 부선지자까지 세워서 많은 추종자들의 영혼을 꼼꼼하게 관리하고 있었다. 청수교회에서 10단계 학습을 마치고 3일간의 환각여행을 다녀온 추종자들만 600여명이 넘어서고 있었고 대기자들도 300여명에 이르고 있다. 이대로만 간다면 1년 안에 수천 명의 추종자로 늘어나고 5년 후에는 시골도시 대부분이 추종자로 변화될 것이다. 강력한 추종자 집단은 주인님의 명령을 받아 이 세상 끝까지 나아가서 새로운 복음을 전파할 것이다. 청수교의 음모는 무섭도록 거대해지고 있었다.

한편, 청수교 지배자가 원대한 미래를 설계하고 있는 사이 악마의 새끼들 중에 또 다른 음모가 독버섯처럼 싹트고 있었다.
남 선지자는 이미 젊은 시절에 스승을 배신한 전력이 있는 자였다. 스승 선지자가 여신도와 밤을 지새운 약점을 보였을 때 반기를 들어 반대 측 신도들과 딴 살림을 차렸던 전력을 숨기고 있었다. 너무 오래된 일이라서 아무도 기억하는 자가 없고 주인님께는 더더욱 말해 줄 수가 없는 과거였다. 그런데 청수교의 주인은 완전한 신이 아니라 인간에 불과하다는 것을 점차 깨닫게 되었다. 주인님의 저택에 기거할 때 추종자 신미연이 주인님과 함께 밤을 보내는 장면이 자주 목격됐고, 주인님은 또 다른 여인을 찾기 위해 청년들을 이용하고 있었다. 그것을 알게 된 순간 3일간의 환각에서 강력히 각인된 머릿속에 의심의 목소리가 들렸다.
젊은 시절 계룡산 동굴에서 수련할 때 들었던 날카로운 바람소리 같기도 하고 30여명의 신도들을 자살로 몰고 갈 때 들렸던 귀신의 목소리 같기도 했다.
「너의 주인님은 따로 있다. 진짜 너의 주인님은 나 바람신이다.
왜 나를 잊어버리고 인간을 주인으로 모시느냐.
마음속에 살아있는 진짜 주인을 영접하라.」
남 선지자가 잊고 살던 기괴한 목소리였다. 남들은 그저 기분 나쁜 바람소리라고 말들 하겠지만 그에게는 속삭이는 어떤 존재의 목소리가 또렷이 들려왔다.
남 선지자가 정신병원에 갇혀 15년 동안 들어왔던 바로 그 목소리였다. 아무도 없는 병실에 묶여 그 목소리를 향해 대답하고 또 대답을 듣던 익숙한 목소리였다. 그 당시에 의사와 간호사들은 남 선지자가 혼자 대화하는 장면을 모니터로 지켜보며 완전히 미친 정신병자로 취급했었지만 그에게는 너무도 또렷이 들려왔고 결코 떠나지 않던 목소리였다.

이날 이후 남 선지자는 10단계까지 학습을 마친 신도들을 청수교회 지하 비밀의 방으로 데려갔다. 이곳에는 200여 평의 넓은 홀이 있었는데 최근 새로 공사를 마쳐서 완벽한 방음시설이 갖춰지고 신도들을 묶을 수 있는 튼튼한 벨트까지 설치된 1인용 침대 50대가 설치됐다.
3일간의 환각여행에 필요한 최적의 비밀방을 만들어 단체로 세뇌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 더 이상 사람들을 기절시키는 야만적인 방법도 필요 없었다.
10단계 학습을 졸업한 신도들은 벌써 어느 정도 세뇌되어 빨리 3일간의 환각여행을 하고 싶어 안달이다. 영혼의 참 주인님을 만날 수 있다는 기대감에 잔뜩 부풀어 여신도들은 미용실에서 신부화장을 마치고 들어오는 경우도 있었다.
비밀의 방에는 한 번에 10명의 신도들이 들어와 준비된 침대에 주었다. 그리고는 지키고 있던 경비대가 바로 출입문을 3중 열쇠로 잠가버렸다. 비밀의 방에서 무슨 일이 생기든지 결코 밖에서는 알 수 없어서 비밀이 새어나갈 틈을 허락하지 않았다. 침대에 누운 신도들의 손과 발을 꽁꽁 묶을 때까지만 해도 신도들은 아름답고 신비스러운 신과의 만남만을 고대하며 주문을 외우고 있었다.
그런데 가늘고 길쭉한 주사바늘이 혈관에 투입된 지 3분 만에 환상이 깨져버렸다. 너무 어둡고 사악한 세상으로 홀로 떨어지더니 세상에서 본 적 없는 무시무시한 괴물이 거대한 아가리를 벌리고 미친 듯이 쫓아왔다.
구더기보다 더 징그럽고 토할 것 같은 벌레들이 꾸물거리며 입, 코, 귀, 항문, 성기의 모든 구멍으로 밀려들어온다. 너무너무 징그럽고 무시무시한 고통 때문에 죽여 달라고 외쳐도 죽을 수 없었고 끔찍한 광경을 눈뜨고 지켜봐야했다.

이렇게 고통에 몸부림치는 신도들을 지켜보면서 남 선지자는 음모를 꾸밀 결심을 했던 것이다. 자신에게 다시 찾아온 기묘한 목소리를 신도들이 영접하게 만든다면 남 선지자가 젊은 시절 꿈꾸던 왕국을 만들 수 있으리라. 그의 눈에는 더 이상 최현범은 진짜 신이 아니다. 인간의 여자를 탐하고, 인간의 재물과 권력을 탐하는 존재가 어찌 신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신도들에게 진짜 신을 만나게 만들어 주어야 한다고 결심한 남 선지자는 3일간의 환각여행을 체험중인 신도들에게 바람신에 대해서 설명하고 바람신을 영접해야 고통에서 해방 될 수 있다고 각인시켰다.

비밀의 방에서 일어나는 일을 전혀 알 수 없는 경비대와 추종자들은 남 선지자의 음모를 전혀 눈치 채지 못하고 3일마다 10명의 신도들이 변화되는 장면을 지켜봤다. 너무나 헌신적으로 일하는 남 선지자가 무서운 음모를 꾸미리라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비밀스럽게 바람신을 영접한 무리들이 소리 소문도 없이 계속 늘어나면서 400여명이 넘어섰다. 이들은 청수교 추종자들과 어울리면서도 별도의 장소에 모여 또 다른 주인님으로 영접한 바람신께 바치는 주문을 외우고 충성을 다짐했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모이면 비밀도 오래가지 못하는 법이다. 추종자 내부에서 이상한 움직임을 포착한 청년회장 민주혁이 이 사실을 주인님께 보고했다. 밤의 세계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최현범은 청수마을 저택으로 돌아가서 오랜만의 평화를 즐기느라 청수교회에 대해서 관심을 기울이지 못하고 있었다. 남 선지자가 워낙 탁월하게 신도들을 추종자로 변화시키고 있어서 관심을 끊고 새로운 왕국을 만드는 구상에 전념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민주혁의 보고에 의하면 청수교회 추종자들 사이에 내분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절반이 넘는 추종자들이 따로 모임을 갖고 있다는 것인데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당장 최현범이 남 선지자를 부른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데려오라던 남 선지자는 오지 않고 민주혁이 황당한 소식을 전한다.
「남 선지자가 완전히 미쳐버린 것 같습니다.
자기의 주인은 따로 있다면서 주인님과 결별을 선언했습니다.
청수교회에는 이미 100여명의 경비대가 삼엄하게 지키고 있는데 다들 남 선지자 편으로
넘어가 버렸습니다. 오래전부터 배신을 준비해 온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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