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서영태 장편소설 <무서운 마을>


6월28일 오후2시 청수마을 저택.
200여 평의 널찍한 거실에 그 전보다 더욱 화려해 보이는 소파가 길쭉하게 자리 잡고 10여명의 사람들이 긴밀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정수, 신미연을 비롯해 각 분야를 맡고 있는 중요 인물들이 죄다 모였다.
「남 선지자 그 놈이 청수교회를 완전히 먹어버렸습니다.
주인님의 명령에 따르지 않고 다른 잡신을 각인시켜서 배신자들을 만들어 냈다고 합니다. 그놈들을 절단 내라는 것이 주인님의 명령입니다.」
「그런데 이미 그놈들이 청수교회를 접수하고 100여 명의 경비대로 지키고 있다고 하는데 우리 측 인원 가지고는 어렵지 않습니까?」
이정수의 말에 시민단체연합회장 유희석이 난색을 드러낸다.
10여명의 핵심 추종자들은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내놓고 있지만 이 사태를 해결할 마땅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경찰 특공대를 투입해서 다 쓸어버리자는 말도 나오지만 종교단체를 상대하기에는 불가능한 것으로 결론이 난다.
청수마을 청년들과 밤의 세계 조직원을 다 투입해도 70여명으로 쪽수에서 밀린다. 청수교회 5층에서 기거하는 남 선지자를 붙잡아야 결론이 나는데 통로를 점령하고 있는 경비대를 뚫기 어려워 철옹선이나 다름없다.
잠시 후 민주혁이 한 가지 방법을 제안한다.
「요즘 야간업소를 관리하는 조직원을 늘렸는데 그중에 암벽등반 취미생활을 하고 있는 놈 들이 5명이나 됩니다. 야밤에 교회 벽을 타고 몰래 올라가서 사택 창문으로 침입하면 남 선지자를 잡을 수 있습니다. 주동자만 잡으면 모두 항복하고 말겁니다.」
드디어 결론이 난다. 최선의 방법이다. 빠른 시간 안에 배신자를 처단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비밀의 방에서 모니터로 회의를 지켜보던 그들의 주인도 작전을 허가한다. 이제 주동자를 잡기만 하면 소통은 끝나고 청수교회를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다음날 새벽3시 초승달이 희미하게 청수교회 건물을 비추고 있다.
5명의 검은 등산복 사내가 건물 뒤편으로 접근한다. 경비대는 하나밖에 없는 출입문을 지키느라 정문 쪽을 경비하고 있을 것이다.
건물 벽은 올록볼록한 석재가 붙어있어서 잘만하면 올라갈 것 같다. 등산복 사내들은 은밀하면서 조심스럽게 벽을 타기 시작한다.

이 사내들은 매주 한 번씩은 암벽등반에 나서고 있는 베테랑 산악인들이다. 가장 남자다움을 보여주는 것이 암벽등반이라고 생각해서 집착하다보니 프로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
이들은 밤의 세계 책임자를 맡고 있는 민주혁과는 고등학교 후배라는 인연 때문에 용역회사에 입사하게 되었다. 그런데 보통 용역회사가 아니고 밤의 세계를 지배하는 조직이었던 것이다. 어차피 사회에서 사람대우 못 받고 살아온 사내들이었기에 감지덕지한 직장이었다. 월급도 공무원의 두 배나 지급해주고 퇴직금까지 적립해주는 대우는 충성을 맹세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민주혁은 조직원들을 자신의 인맥을 동원해서 뽑았다. 청수마을 청년들이 중요 직책을 맡았지만 회사가 커지면서 수많은 인력이 필요했다.

검은 등산복 청년들은 은은한 초승달빛에 드러나는 석재를 손과 발로 지탱하며 어렵게 5층 창문까지 접근한다. 맨 처음 도착한 사내가 창문으로 내다 본 실내는 두터운 커튼이 가리고 있어서 내다볼 수 없다. 알루미늄 창문을 살짝 젖히자 움직인다. 약간의 삐걱거리는 창문소리가 들리지만 안에서는 전혀 인기척이 없다. 겨우 몸이 들어갈 만한 공간만큼 조심스럽게 창문을 열고 실내로 들어선다. 다행히 아무도 없는 방이다. 희미한 달빛 속에서 전혀 사람의 형체가 보이지 않는다. 이 사내는 나머지 4명의 손을 잡고 끌어올려서 무사히 침입에 성공한다. 이제 백발의 사내를 찾으면 된다.

전날 밤 민주혁은 후배들에게 특별 명령을 내리면서 선금으로 1억씩 지급했다. 만약 무슨 일이 생기면 가족들에게 10억씩 지급하기로 약속했다. 후배들이 평생 만져보기 어려운 거액이었다. 누구라도 한 번쯤은 모험을 걸어볼만한 거금이어서 목숨 걸고 작전에 나선 것이었다.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5명의 등산복 사내는 한걸음씩 움직여 앞으로 나아간다. 어두워서 더 이상 움직이는 것은 무리다. 맨 앞에 선 사내가 작은 손전등 버튼을 누르는 순간...아닌 이게 웬일인가...몽둥이 수십 개가 등산복 사내들 머리위로 쏟아진다. 사내들도 단검을 휘두르며 필사적으로 저항하지만 날아오는 묵직한 몽둥이에 굴복하고 만다.
맨 뒤에 있는 사내는 몽둥이를 피해 들어왔던 창문으로 급히 나가다가 아래로 떨어져버린다. 아마도 죽지 않으면 뼈마디가 다 부러졌을 것이다.
청수교회를 지키는 100여명의 경비대는 그렇게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다. 10여 명이 옥상에서 주변을 정찰하다가 검은 물체들이 서서히 다가오는 것을 감지하고 대책을 세웠다. 벽을 타고 5층 사택을 노리는 놈들의 길목에 미리 대기하고 있다가 철퇴를 가한 것이었다.

남 선지자는 최현범의 가장 가까이 있으면서 그가 얼마나 악랄하고 사악한 수법을 쓰는 자인지 잘 알게 되었다. 남 선지자의 배신을 알게 된 순간 처절하게 응징하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것이었다. 그래서 바람신을 섬기게 된 400여명의 추종자 중에서 건장한 남자들만 100여명 뽑아 경비대를 조직하고 전기충격기와 몽둥이로 무장시켰다.
청수교 추종자들도 주인을 위해 목숨을 바칠 각오가 된 것처럼 바람교 추종자들도 마찬가지로 목숨을 아끼지 않는 자들로 변화된 것이다.

이번 5인조 침투사건은 분명하게 남 선지자의 목숨을 노린 섬뜩한 짓으로 드러난다. 청수 교 무리들이 사악한 악마의 본성을 그래도 보여준 것이다. 남 선지자는 엄청난 압박감을 느끼면서 대책을 마련해야한다는 생각에 잠을 이루지 못한다.
이날로부터 남 선지자는 교회에 남아 있던 청수교 추종자들을 모두 색출해서 쫓아내 버린다. 100여명의 경비대 앞에 버티고 있을 수 없었던 무리들이 사라지자 청수교회 간판을 떼어버리고 「바람교 성전」이라는 간판을 더욱 크게 달아 누구나 쉽게 알아볼 수 있게 만든다. 청수교의 잔재를 완전히 없애버리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자 최현범과는 갈라서겠다는 선언인 것이다.

한편, 5인조 침투 작전이 실패했다는 보고를 받은 최현범은 침통한 표정 때문에 얼굴이 일그러진다.
그는 다시 한 번 남 선지자에 대해 생각해본다. 청수교 지도자로 낙점해서 신경독성물질의 비밀까지 알려줬는데 배신자가 되어 버린 것이었다.
실패의 이유에 대해서 최현범은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무슨 이유로 신경독성물질을 이용한 세뇌가 풀려버린 것일까. 왜 주인님에게 대항할 생각을 하게 됐을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저수지의 물귀신이 되어 있을 첫사랑교회 담임목사도 세뇌에 실패했었다. 그 자와 남 선지자의 공통점은 성직자였다는 점이다. 비록 정통교단과 이단교단의 차이는 있었을지언정 평소에도 신을 가까이 모시는 성직자들이었다. 그렇다면 종교적인 이유가 신경독성물질의 작용을 방해한단 말인가. 신에 대한 집념이 세뇌된 영혼을 구해낼 수도 있단 말인가. 최현범은 실패의 이유에 대한 결론을 내리지 못한다.
하지만 청수교 교주 입장에서 배신자를 살려둬서는 안 된다. 그것은 사악한 악마를 섬기는 추종자들의 제1법칙이다. 지금까지 한 번도 배신자를 살려준 적이 없다. 그래서 5인조를 침투시켰으나 참혹하게 실패했다. 그러나 계속해서 암살자를 보낼 것이다. 배신자를 처단하지 못하면 제1법칙이 무너지고 추종자들의 충성심도 많이 약해질 것이다. 그래서 반드시 배신자를 처단해야 한다.

한편, 바람교를 설립한 남 선지자도 청수교의 제1법칙을 잘 알고 있다. 백발의 선지자는 그래서 고심하고 있다. 내가 먼저 치지 않으면 언젠가는 그들의 먹잇감이 되고 말 것이다.
청수교와 바람교간에 피할 수 없는 전쟁의 서막이 올랐다. 둘 중의 하나는 없어져야 할 운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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