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서영태 장편소설 <무서운 마을>



7월8일 오후3시 서주저축은행 이사장실.
청수교 3인 지배자 중 한명이자 저축은행 이사장이며 시민단체연합회장을 맡고 있는 유희석은 자신이 대단한 권력을 가졌음을 인식하고 있다. 실질적으로 청수교 재산을 관리하고 있는 그는 지금 장부를 넘겨가며 재산규모를 파악하고 있는 중이다.
주인님의 죽음을 알게 된 순간 유희석의 정신을 지배하고 있던 절대적인 존재에 대한 두려움은 서서히 사라지고 있었다. 살아있는 신으로 영접했던 주인님이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한 후 뇌 깊숙이 박혀있던 절대자에 대한 공포의식에서 해방되고 있다. 정신을 차려보니 유희석 앞에는 막대한 재산이 놓여있었으며 머리회전이 빠르다고 자부해온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도 있는 좋은 기회인 것이다. 이 기회만 잘 살리면 천문학적인 재산의 진짜 주인이 될 것이다.

청수교 재산관리를 맡고 있는 유희석은 주인님이 죽은 직후부터 현금을 빼돌리기 시작했다. 서주저축은행 이사장에 취임했을 때 그가 가장 먼저 했던 일은 자신의 친인척을 중요보직에 임명하는 일이었다. 어차피 청수교 재산은 음지에서 쌓은 것이기 때문에 가장 믿을만한 사람들이 관리해주어야 비밀이 유지될 수 있었다.
1천억에 가까운 청수교 정기예금의 경우 1년이면 이자만해서 50억에 달하지만 실제로는 장부를 조작해서 유희석의 차명계좌로 흘러들어가고 있었다. 또한 매달 정기적으로 권력자들에게 상납하는 뇌물의 경우도 매달 2억 원 정도면 충분한데도 7억 원으로 대폭 늘려서 거액을 횡령하기 시작했다. 유희석의 차명계좌에는 몇 개월 되지 않아서 수십억의 거액이 쌓이게 되었지만 이 정도 가지고는 도저히 멈출 수 없는 돈의 노예가 되어가고 있었다.

잠시 후 이사장실로 경리부장이 들어온다. 그는 유희석의 사촌동생으로 가장 비밀스런 일을 맡고 있는 측근이다.
「어서 와라. 저번에 알아보라는 일은 어떻게 됐어?」
「네, 형님이 말씀하신 대로 우리 편으로 포섭중입니다.
우리 측에서 청수교 돈을 내어주고 있기 때문에 그들은 우리말을 들을 수밖에 없습니다. 조금만 있으면 지역사회 전체가 형님 편이 될 것입니다.」
「그래. 더 늦기 전에 청수교를 우리 것으로 만들어야해. 그래야 모든 재산이 우리 차지가 되는 거야!」

청수교의 살아있는 신이 죽은 다음에 새로운 지배 체재를 확립한 세 사람 중에 유희석이 가장 발 빠르게 야욕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는 3인 지배체제가 어차피 오래가지 않을 것으로 보고 비밀리에 청수교를 독차지 할 수 있는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인간사라는 것이 다 그런 것 아닌가. 뺏고 뺏기는 전쟁이 세상을 발전시켜온 역사이듯이 막대한 재산을 보유한 먹잇감을 3명이 공동으로 관리한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무너질 수밖에 없다. 유희석은 오로지 자신이 먼저 그 날을 대비하고 있을 뿐 배신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야욕을 품은 유희석은 먼저 최 측근 경리부장을 시켜 청수교 사업체 때문에 뇌물을 바치는 각 분야 인사들이 자신을 지지하도록 만들었다. 특히 밤의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민주혁의 존재가 문제였다. 이곳에서 가장 큰 수익이 들어오고 있어서 이 분야를 접수해야 청수교의 자금줄을 대부분 틀어 쥘 수 있었다. 그래서 유희석은 지역을 움직이는 각 분야의 권력자 100여명을 새로 선정해서 자신이 청수교재단의 진정한 후계자이며 모든 사업을 물려받았다고 주장하며 비밀리에 포섭하기 시작했다. 물론 그냥 말로만 되는 포섭은 없었다. 권력자의 경우 영향력기준 3등급으로 나누어 매달 1등급은 500만원, 2등급은 300만원, 3등급은 200만원씩의 액수를 정해 서주저축은행에서 경리부장이 현금으로 지급하고 있었다.
이때부터 지역사회에서는 청수교의 진정한 후계자는 유희석 밖에 없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한다. 예전에도 사람들은 청수교 주인의 얼굴을 본 적이 없었다. 최현범이 워낙 은둔형의 인물이어서 사람들 앞에 얼굴을 나타내지도 않았을 뿐더러 무슨 일이든지 추종자들이 전달하는 형태로 했었기 때문에 최현범은 신비에 둘러싸인 인물이었다.
그러나 유희석은 특유의 활달한 성격으로 사람들을 직접 만나 자신이 청수교 후계자임을 당당하게 밝히고 다녀 더욱 소문이 빨리 퍼졌다.

유희석의 이상한 움직임에 대한 소문은 이정수, 민주혁에게도 들어가게 되고 이에 격분한 두 사람이 오늘 아침 유희석을 찾아왔다.
「이사장님, 이렇게 약속을 어기면 안 되지요.
왜 혼자서 다 이끌어가는 것처럼 소문을 냅니까?
우리들은 뭐... 들러리입니까?」
「아니, 편집장님과 회장님, 제 뜻을 모르시겠습니까?
주인님이 없는 지금 3인이 공동으로 지배한다고 해도 체계는 필요합니다.
위계질서가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지금 우리가 나이를 따지자는 것이 아니지요. 그렇게 말씀 하시면 우리 두 사람에 대한 배신입니다. 안 그렇습니까?」
말을 참고 있던 민주혁이 갑자기 탁자를 치면서 격한 목소리를 냈다.
「그리고 우리 두 사람은 더 이상 이사장님을 믿지 않기로 했습니다. 저축은행에 맡겨둔 청수교 자금을 모두 반환하시고 손을 떼십시오. 옛 정을 생각해서 저축은행에 대한 권한만 인정해 드리겠습니다. 만약 저희 말을 따르지 않으면 가만 두지 않을 겁니다.」
두 사람의 말을 강력했다. 유희석에게 저축은행만 가지고 떨어지라는 협박이었다. 나머지 재산과 권리는 두 사람이 다 먹겠다는 선언이었다.
주인이 떠나간 후 3인지도체제의 파국은 생각보다 너무 빨리 왔다. 유희석이 하루 빨리 청수교를 독차지하고 싶은 생각에 자신의 의도를 노출한 것이 화근이었다.

유희석의 고민은 민주혁이 이끌고 있는 50여명의 조직원들과 20여명의 청년들이다. 그들이 배신자를 처단하겠다고 나선다면 어떤 수단과 방법이라도 동원하고도 남을 것이다. 밤을 새워 고민하던 다음날로 유희석은 과거의 동지였던 남 선지자를 찾아 바람교 성전을 방문한다.
이곳에는 정문에서부터 삼엄한 경비가 세워져서 외부인의 출입을 엄격하게 통제한다. 1층 상담실로 안내되어 30분을 기다린 뒤에야 경비대원을 따라 5층으로 안내될 수 있었다. 응접실 소파에서 10분여를 기다리자 백발을 늘어뜨린 남 선지자가 걸어온다.
「남 선지자님, 정말 반갑습니다. 얼굴이 더욱 좋아 보이십니다.」
「유 이사장님이 이곳까지 방문해주셔서 깜짝 놀랐습니다. 무슨 일이십니까?」
「주인님이 돌아가신 후 이정수와 민주혁이 저를 죽이려고 합니다.
청수교를 다 차지하려고 욕심을 부리고 있어요.
그래서 말인데 선지자님이 저를 도와주시면 앞으로 청수마을에 건설될 왕국과 재산을 모 두 넘겨드리겠습니다.」

청수마을에 거대한 왕국을 세우는 계획이 진행 중임을 남 선지자도 잘 알고 있다. 땅은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청수마을의 젊은이들이 모두 추종자들이었기 때문에 집, 논, 밭이 전부 청수교 재단으로 넘어갔고 일부 노인들만 있는 가구도 청년들의 공작으로 헐값에 넘긴 상태였다. 실제로 마을을 지배하는 청년들의 말을 듣지 않으면 어떠한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었다. 이렇게 추종자들의 기증과 헐값매입으로 조성된 왕국부지는 20만평에 달했으며 그 가치가 작게 잡아도 1500억은 되는 것으로 평가되었다. 또한, 정치권을 움직여서 500억의 국가예산이 들어오면 그 가치는 2000억에 달하게 된다.
이런 가치를 잘 알고 있는 남 선지자의 마음이 움직이지 않을 리 없다. 두 사람은 이 시간부로 이해를 같이하는 동지가 된다. 유희석의 자금력과 남 선지자의 조직력이 합쳐지면 무슨 일이든 성공할 것 같다. 그런데 알고 보면 두 사람 다 청수교 배신자들이다. 처지가 똑같았기 때문에 더욱 마음이 잘 통하는 것 일게다.

동지가 된 두 사람은 먼저 서주저축은행에 경비대 20명을 파견하여 만일의 사태에 대비한다. 민주혁과 이정수 일당이 유희석을 노리는 사태가 일어나면 믿음직한 경비대가 막아 줄 것이다.
두 사람이 연합했다는 소식을 민주혁과 이정수도 알게 된다. 배신자들끼리의 연합에 처음에는 황당했지만 유희석이 방어태세를 갖추었다는 점에서 계획을 바꿀 수밖에 없다.
말보다 행동이 먼저 앞서는 민주혁은 이미 유희석을 납치하고 재산을 뺏어올 은밀한 작전을 세워두고 있었다. 그런데 20여명의 경비대가 유희석을 경호하고 있다면 문제가 복잡해진다. 좀 더 신중하고 효과적인 작전이 필요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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