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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4화] 주인집 아들
[연재] 서영태 장편소설 <무서운 마을>
[333호] 2012년 10월 24일 (수) 10:57:10 서영태 기자 ssytt00@naver.com


8월6일 오전10시 시장실.
출입문이 굳게 닫힌 가운데 이정수가 무엇인가를 설명하고 있고 김 시장은 놀라기도 하고 한숨을 쉬기도 한다.
「시장님, 제가 말씀 드린 대로 남 선지자와 유희석이 민주혁까지 자기편으로 만들어 배신 하고 말았습니다. 우리끼리라도 돌아오실 주인님을 위해 지켜드려야 합니다. 배신자들에 대항해야 합니다.」
「저들이 그런 음모를 꾸몄단 말이지요. 제가 믿고 있던 유 이사장까지 배신자가 되었다니 놀랍네요.」
「그것뿐만 아니라 유희석이 얼마 안 남은 선거에서 시장이 되겠다고 공언한답니다. 이제 시장님까지 밀어내겠단 말이지요.」

유희석은 야망이 큰 사람이었다. 평소에도 각종 감투를 좋아하기도 했지만 여건만 되면 최고 자리까지 오르려는 욕심을 숨기지 않으면서 모사를 꾸미고 다니는 자였다. 그가 시민단체연합회장에 취임한 것이나 서주저축은행 이사장이 된 것이나 모두 머리회전이 빠른 모사를 이용해서 얻는 것이었으며 이정수와 민주혁이 자신을 노리는 것을 알고 남 선지자와 동맹을 맺은 것도 탁월한 잔머리를 활용한 덕분이었다.
막대한 자금력과 밤의 세계를 지배하게 된 유희석은 시골도시에서 가장 최고봉인 시장자리를 노리기 시작했다. 이미 지역사회에서 그가 퍼뜨린 소문이 이정수와 김 시장의 귀에까지 들어간 상태였다. 유희석이 김 시장의 선거운동을 도와주던 시절에는 거액을 던져주던 가까운 사이였지만 자신의 자리까지 노리는 자를 동지라고 부를 수는 없는 것이다.

「편집장님이 내 편이 되어서 꼭 도와주세요. 주인님을 죽인 배신자들에게 권력을 내어줄 수 없습니다. 꼭 복수해야 합니다.
내 얼마든지 자금은 지원해 줄 테니 염려 마십시오.」

갑자기 손을 붙들고 말하는 김 시장과 이정수는 매우 가까운 사이였다. 죽은 최현범이 언론단체를 지배하기 시작할 때부터 사무국장을 맡은 이정수는 수시로 시장실을 드나들며 주인님의 말씀을 전달하기도 하며 관언유착관계를 유지해오고 있었다.
출입기자들에게 매월 후원금 형태로 비밀리에 지급되는 현금도 사실은 김 시장의 개인금고에서 나온 것이었다.
김 시장에게는 한 달 2억 원 정도의 현금이야 푼돈에 불과할 정도였다. 특히 윗대에서 내려오는 땅 만해도 150만평에 이르렀는데 주로 논과 밭이 많아서 예전에는 천석 군, 만석 군으로 소문난 부자 집안이었다.
일제시대에도 그의 아버지는 특유의 생존기술을 발휘하여 일본인 지도자들을 비밀리에 후원했었다. 그 당시에도 현금 좋아하지 않는 일본인이 없어서 관내 군, 경찰, 관청의 최고 지도자들은 대부분 이 집안에서 비밀리에 제공하는 비자금을 받았고 자신들의 뒷주머니를 채워주는 재산을 보호해주었다. 서로 공생관계가 형성되었으며 후임자들에게 인계인수까지 확실히 해 줄 정도였다. 심지어 김 사장의 아버지는 가끔 밤에 찾아오는 독립군들에게까지 비밀리에 자금을 건네주었다. 해방 후를 염두에 둔 보험과 같은 것이었다. 이윽고 해방이 되었을 때는 어느새 김 시장의 아버지는 독립투사가 되어 있었다.
일본 지도자들에게 36년간 제공했던 거액의 뇌물은 워낙 비밀스런 것이어서 전혀 밝혀진 바가 없었다. 결국 독립유공자로 선정되어 훈장까지 타게 된 김 시장의 아버지는 자신의 동상까지 만들어져 공원 한 쪽에 모셔지고 있었다. 현재의 김 시장도 아버지의 재산을 지키는 비결을 보고 자라서 그대로 답습하고 있었다.
그의 진짜 돈벌이는 땅이었다. 예전에는 몇 푼 안 나가던 논과 밭이 대부분이었지만 그가 시장에 취임한 뒤로 개발바람이 부는 곳은 어김없이 자신의 땅을 지나야 되었다. 그 전에는 평당 3만원하던 땅이 갑자기 100만원, 200만원으로 껑충 뛰게 되자 엄청난 부동산재벌로 변신한 것이었다. 시청 출입기자들도 이런 사실을 모를 리 없었다. 처음에는 김 시장이 윗대에서 물려받은 땅이 많다보니 그렇거니 넘어갔지만 매번 개발계획이 발표될 때마다 김 시장의 땅이 포함되어 말이 안 나올 수가 없었다. 그때마다 김 시장의 현금 보따리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면서 김 시장이 일일이 현금을 지급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감시의 눈초리가 계속 늘어나서 역효과가 날수도 있었다.
때마침 최현범이 언론단체를 장악하면서 이 문제가 말끔히 정리되었다. 김 시장은 가장 믿을 수 있는 이정수에게만 거액을 지급하면 자체적으로 알아서 배분해주었고 말을 안 듣는 기자는 철저하게 왕따를 시키거나 언론사 본사와 협상해서 다른 지역으로 쫓아버렸다. 이때 김 시장은 윗선에 충분한 보상을 하면 되는 것이었다.

한편, 유희석은 서주저축은행을 기반으로 한 자금력과 밤의 세계를 기반으로 한 조직력을 갖추게 되자 엄청난 힘이 생긴 것을 자각하게 되었다. 이 정도의 배경을 가진 이상 자신이 늘 동경해왔던 시장에 도전하고 싶은 욕망이 끌어 올랐다. 게다가 직접 관리하는 시민단체연합회에서 유희석을 시민후보로 밀어준다면 금상첨화일 것이었다. 밤의 세계에서 나오는 후원금을 매달 지급받고 있는 각 분야 100여 명의 권력자들도 전적으로 자신을 믿어 줄 것이 확실하다. 한 때는 현직시장의 선거운동을 돕던 책임자였었지만 자금력과 조직력까지 갖춘 지금은 해볼 만한 싸움이 된 것이었다.

알고 보면 김 시장과 유희석은 56세의 같은 나이였다. 누구나 다 두 사람을 친구라고 부를 수도 있었지만 두 사람 간에는 친구라고 할 수 없는 미묘한 관계가 형성되어 있었다. 김 시장의 아버지가 천석군, 만석군이라 불리며 거대한 논과 밭의 소유주 일 때 유희석의 아버지는 겨우 논 세마지기를 빌려 농사를 지어먹던 소작농이었다. 그 논 세마지기도 산비탈을 깎아 만든 다랭이논이라서 지게를 지고 한참 올라가야 농사를 지어 먹을 수 있는 산골짜기였다. 유희석은 소작농의 아들로 태어나 어려서부터 부모의 농사일을 도우며 어려운 시절을 보내야 했다.
학교에 다닐 나이가 되어서는 주인집 아들 김정철과 같은 반이 됐다. 같은 동네에 살면서도 워낙 신분 차이가 커서 같이 노는 것은 엄두도 못 내던 주인집 아들이 같은 반이 되어서 신기했다. 동네에서도 먼발치에서 바라다 볼 뿐 몇 마디 나눠본 적도 없었고 어린 유희석은 부모를 따라서 산길을 올라 논밭에서 동생과 함께 놀아주거나 심부름하는 게 전부였다.
같은 반이 된 후 주인집 아들은 당연하다는 듯이 유희석에게 가방을 들라고 하질 않나, 돈을 쥐어주며 가게에서 뭘 사다달라고 하는 둥 심부름을 시키는 것이었다. 어린 유희석이었지만 위아래 관계를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던 까닭에 주인집아들 꼬봉노릇을 마다할 용기가 없었다. 약간의 좋은 점도 있었던 것은 가게에서 물건을 사오라고 하면 꼭 잔돈은 그냥 가져도 된다는 것이 주인집 아들의 법칙이었다. 아버지는 유희석에게 동전 한 푼주지 않았지만 주인집 아들의 씀씀이가 커서 나름대로 잔돈이나 받아 군것질하는 재미는 있었다.

그렇게 주인집 아들과 소년 유희석은 친구답지 않게 관계를 형성하며 6년을 보냈다. 그 후 주인집 아들은 중학교를 서울 명문중으로 정해 유학길에 오르고 유희석은 지역 중학교로 진학하면서 긴 세월동안 만나지 못했다.
주인집 아들을 다시 보았을 때는 20대 중반의 가을 추수가 한창일 때였다. 아버지가 모는 소달구지에 가득실린 벼가마를 뒤에서 붙들고 고래 등 같은 주인집을 지나가는데 방금 도착한 승용차에서 내리는 주인집 아들 김정철과 얼굴이 하얗고 아름다운 아가씨와 눈빛이 마주쳤다. 청년 유희석을 알아본 김정철은 반갑다는 듯 미소를 띠우며 손을 흔들어 보였고, 곧 결혼하게 될 사람이라며 그 아가씨를 가리키더니 소개도 할 새 없이 고래 등 같은 대문 안으로 사라져 버렸다. 때깔 나는 그의 승용차와 얼굴이 하얗고 아름답던 아가씨의 모습에 침만 꼴딱 삼키고만 청년 유희석은 애써 다른 생각에 전념해보려고 노력했다. 그 당시 유희석은 군에서 막 제대하고 잠깐 아버지 농사일을 돕고 있었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시골에서는 공부를 잘 한다는 말을 들었고 중 고등학교에서는 더욱 두각을 나타내었다. 하지만 어려운 가정환경 때문에 농사를 매일 돕다보니 충분한 시간을 내서 공부에 전념하기는 어려웠다. 고3때 가정방문을 온 담임선생님이 가정형편이 어려운 것을 보고 부모에게 한 가지 방법을 제안했다. 유희석이 공부를 잘하니까 말단 공무원 시험에 합격한 뒤 몇 년 후에 야간 대학으로 보내는 것을 알려주었다.
유희석은 선생님의 제안에 따라 말단공무원 시험에 합격해서 본격적으로 공무원 인생을 시작했다. 그렇게 20년을 보낸 끝에 40대의 유희석이 충남도의회 사무계장으로 근무하고 있을 때 김정철이 충남도의회의원으로 당선되어 들어오면서 다시 긴 인연이 이어졌다. 언제까지나 주인집아들 김정철은 유희석의 상전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인생역전이란 말도 있지 않는가. 유희석의 마음에는 주인집 아들을 꼭 한번은 이겨보고 싶은 평생의 한이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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