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서영태 장편소설 <무서운 마을>

 

8월25일 오전 10시30분 서주저축은행 이사장실. 유희석이 남 선지자와 함께 밀담을 나누고 있다.
「선지자님 신도들이 꼭 좀 나서주셔야 됩니다.
이번 선거에서 제가 당선되어야 왕국이 차질 없이 건설됩니다.
김 시장이 3선에 성공하면 절대로 그냥 놔두지 않을 겁니다.」
「우리 신도들이야 내 말에 목숨을 걸 수도 있는 사람들이니까 잘 해낼 겁니다. 너무 걱정 말고 당선된 뒤에 왕국건설에 차질 없도록 지원이나 잘 해주세요.」
두 사람은 뭔가 새로운 음모를 꾸미고 있다. 선거를 3개월 앞둔 민감한 시기에 판세를 흔들 수 있는 묘안을 논의하고 있다. 유희석은 직원을 시켜서 지하 주차장에 세워진 봉고차에 사과박스를 5상자나 실어서 바람교 성전으로 운반한다. 이 박스에는 2억 원씩 10억 원의 현금이 가득 들어있다.

다음날 새벽2시 시내 곳곳에 검은 모자에 검은 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인적이 드문 거리에 나타난다. 2명씩 한 팀을 이루어 다니는데 한 사람은 전단지를 벽에 대면 다른 사람이 테이프로 붙이고 빠르게 옆으로 움직이더니 또 같은 행동을 반복한다. 원래 이 시간대가 되면 무단으로 전단지를 붙이는 사람들이 가끔 나타난다. 그들은 주로 나이트클럽, 룸살롱, 땡처리 등을 홍보하는 사람들이어서 검은 마스크들도 비슷한 사람들로 보인다. 그런데 검은 마스크 팀은 새벽2시를 기점으로 동시에 200개 팀이나 된다. 총 400여명의 남녀들이 동원되어 불과 2시간 만에 시골 도시를 도배하듯이 만들어 버린다. 똑같은 문구가 써진 전단지의 내용은 놀라운 빅뉴스다.
「비리를 고발합니다. 김정철 시장이 재임하는 8년 동안 우리고장이 참 많이도 변했습니다.
서민들 사는 것은 더욱 어려워지고 빚만 늘어나는 가정에 희망이 없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많이 변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김 시장이 소유하고 있는 부동산의 가치 가 100배는 올랐다는 사실입니다. 이상하게도 개발 계획이 발표된 부지에는 반드시 김 시장의 논과 밭이 있었습니다. 매번 개발계획만 발표되면 김 시장의 땅이 있어서 평균 100배의 가격까지 올랐습니다. 김 시장의 땅 가치는 현재 수천억 원에 달한다고 합니다. 개인의 재산을 늘리기 위해 권력을 이용하는 사람에게 또 다시 시장 직을 맡겨야 합니 까?」
시골도시에 도배되다시피 한 전단지는 완벽하게 김 시장의 비리를 고발하는 글이다. 두 시간 만에 그 많은 전단지를 부치고 사라진 사람들은 남 선지자가 이끄는 신도들이다. 정신세계를 지배당하는 신도들은 생명을 걸고 임무를 완벽하게 완수한 것이다.

아침부터 전단지를 본 시민들의 여론이 들끓기 시작한다. 전단지 하단에는 김 시장 소유의 땅 번지수와 평수가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었고 지도까지 자세하게 그려져 있다. 이렇게 자세하게 기록되어있는 이상 발뺌하기엔 상당히 어려울 것이다.
전단지 살포에 대한 보고를 받은 김 시장은 즉각적으로 이정수를 불러 참모들과 함께 대책 회의를 연다. 회의 결과 나온 결론은 무조건 부인, 명예훼손 고발, 언론보도 철저통제로 요약된다. 이에 따라 성난 민심을 억누르기 위한 보도가 전 언론매체에 동시에 실린다.
「김 시장은 무책임한 전단지 살포행위에 대해 명예훼손 혐의로 경찰에 고발했다.
경찰은 즉각적으로 수사에 착수하여 불법적인 비방행위를 저지른 범인을 잡아낼 것으로 보인다.
불법적인 비방행위와 관련 김 시장측은 전혀 사실무근이며 이런 구시대적인 불법행위는 사라져야 한다고 말했다.」
<주간충남>만 빼고 모든 매체에서는 이런 내용의 기사가 연일 실리며 시민들의 눈과 귀를 가로막고 있다. 대부분의 언론을 동원한 물타기 전략은 시간이 지나면서 성과를 발휘하여 불법적인 비방행위에 대한 문제점을 우려하는 여론이 높아가고 있다.

이 작전을 계획한 유희석은 이런 상황도 미리 계산하고 다음 단계까지 준비했다. 김 시장과 이정수가 언론을 등에 업고 반대여론을 조성할 것을 짐작하고 있었던 것이다. 다음날 시청 앞 공원에는 800여명의 시위대가 운집하여 대형 현수막과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기 시작한다. 이들 중 400여명은 남선지자가 동원한 신도들이고, 나머지는 시민단체회원들이었다.
「땅장사 하느라 바쁜 시장은 사과하라!
사유재산 늘리려고 시장에 당선됐냐!
늘어난 재산 반납하고 당장 물러가라!」
800여명의 시위대들은 강경한 구호를 외치며 자리를 굳게 지키고 있다. 뒤에서 조종하고 있는 유희석은 얼마든지 자금을 지원할 준비가 되어있다. 이미 동원한 사람들에게는 일당 10만원의 비싼 현금을 주기로 약속되어있다. 요즘같이 일자리가 없는 시절에 이 정도 일당이면 괜찮은 하루벌이다.
아무리 언론에서 시장을 옹호하는 보도를 한다고 해도 시청 앞에서 연일 구호를 외치는 시위대의 존재를 가릴 수는 없다. 시위대는 아예 커다란 천막을 줄지어 세워서 비오는 날씨에도 문제없게 시설을 완벽하게 갖추고 장기전을 대비하고 있다. 마침 따뜻한 여름이라서 잠을 자는 것도 별 문제가 없다.

시청정문에는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서 전경들 200여명이 줄을 맞춰 가로막고 있다. 시위대들의 시청진입을 걱정한 김 시장은 평소 가까이 지내던 경찰서장을 급히 만나 그동안 일어났던 사건에 대해서 말해주었다. 그들의 주인이 누군가에게 암살을 당했으며 남 선지자와 유희석과 민주혁이 한 패가 되어서 반란을 일으키고 있다는 말에 당황하던 조 서장은 기꺼이 김 시장을 도와주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청수교의 살아있는 신이 암살됐다는 것이 알려질 경우 추종자들의 혼란을 걱정하여 비밀을 유지해야 한다는 합의도 했다. 정신세계를 지배하던 주인의 죽음은 곧 파멸을 가져올 것이며 김 시장과 조 서장에게도 결코 이로울 것이 없었다.

조 서장이 보낸 전경들의 경호에 우선 안심이 된 김 시장은 이정수와 민주혁을 불러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이제 전세는 김 시장, 이정수, 조서장이 방어하고 유희석, 남 선지자, 민주혁이 공격하는 형국으로 살얼음을 걷는 긴장감이 유지되고 있다.
천막까지 치고 장기전을 펼치는 시위대의 주장에 분노하는 여론이 훨씬 많았지만 김 시장측은 모든 언론매체를 동원해서 힘겹게 방어하고 있었다. 전세를 뒤집을 특단의 대책이 절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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