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서영태 장편소설 <무서운마을>

 


9월2일 새벽6시
엄청나게 많은 신문을 실은 1톤 트럭이 <주간서해> 사무실 앞에 도착한다. 기다리고 있던 30여명의 아줌마, 아저씨들이 승용차나 오토바이에 신문을 싣고 담당구역으로 출발한다.

요즘 이 신문은 매주 5만부씩 발행해서 시골도시 거의 모든 가구에 30여명의 인력이 투입되어 무료배포를 하고 있는 중이다. 든든한 후원자가 있는 신문사는 영향력을 키울 수 있어서 좋고 무료신문을 받아보는 독자들도 정보를 얻을 수 있어서 환영하는 편이다. 대신 광고지면도 많아져 자연스럽게 독자들은 광고까지 접하게 된다. 이렇게 무료로 불특정 다수에게 배포되는 신문들은 구독료 수입을 포기하는 대신 광고수입을 대폭 늘리겠다는 의도가 숨겨져 있는 것이다. 하지만 <주간서해>는 다른 목적이 있었다. 목적이 있는 기사를 지역주민들에게 전달해서 여론을 만들어내는 것이었다.

오늘 새벽에 집집마다 배포된 <주간서해>1면 톱기사 제목은
「유희석 이사장, 알고 보니 밤의 세계 지배자」
「서주저축은행 유희석 이사장이 밤의 세계를 지배하는 큰형님으로 밝혀졌다. 유 이사장은 지난번 지역을 기반으로 한 폭력조직이 모조리 검거된 후 새로운 폭력조직을 구성해 유흥 업소를 접수했다.
유 이사장 밑에서 활동해온 행동대장 민주혁에 의하면 300여개의 월매출 1억 원 이상의 유흥업소를 관리하며 매달 40억 정도의 수입을 올려 서주저축은행에 전달했다고 실토했다. 이에 따라 경찰수사가 급진전될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된 기사는 20여개 매체에서 전부 실려서 삽시간에 시민들에게 퍼져나간다. 차기 시장으로 거론되는 인물 중 인지도 높은 후보와 관련된 의혹이라서 더욱 관심이 집중된다.

김 시장 측에서는 이미 3일전에 민주혁과의 비밀접촉이 있었다. 민주혁의 홀어머니를 볼모로 잡혀서 유희석의 행동대장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정수가 민주혁을 찾아갔었다.
「민 회장님의 어머님이 잡혀있다는 것을 잘 압니다.
이미 경찰서장과 협조해서 전화추적을 해왔습니다.
민 회장님이 결단만 하시면 경찰에서 어머님을 구해드릴 겁니다.
배신자 유희석에게 원수를 갚도록 협조해주세요.」
「제 어머님만 구해주시면 그놈들을 가만 놔두지 않을 작정입니다.
저는 편집장님 말씀만 믿겠습니다.」
이날 비밀리에 이정수와 민주혁의 합의가 이루어졌다. 이렇게 해서 민주혁의 폭로 형식으로 기사가 작성되어 모든 언론사에 경쟁적으로 실리게 된 것이다.

언론에 대대적으로 유희석에 대한 폭로기사가 보도되자 경찰서장은 기다렸다는 듯이 유희석과 민주혁을 잡아들이라는 지시를 내린다. 결국 두 사람이 경찰서 특별수사팀에서 조사를 받지만 진술은 팽팽하게 엇갈린다. 유희석은 전혀 사실무근이며 민주혁이 김 시장의 사주를 받고 모략을 꾸민 것이라고 주장한다. 반면 민주혁 진술에 의하면 유희석이 실제로 밤의 세계를 움직이는 지배자이며 자신의 어머니를 볼모로 잡고 있어서 협조할 수박에 없었다고 주장한다. 두 사람의 팽팽한 진술은 완전 반대의 사실을 말하고 있었고 증거는 없다.

한편, 경찰서장의 지시에 따라 민주혁의 어머니를 찾기 위한 조사는 긴밀히 이루어진다. 전화 발신지를 중심으로 압축해서 추적한 끝에 서천 쪽의 바닷가 외딴 집을 알아내고 긴급히 출동했지만 흔적도 찾을 수 없다. 후원금을 매월 수령하는 100명의 주요 인사들이 유희석 측에 고급 정보를 준 덕분에 미리 빼돌렸던 것이다.
민주혁의 진술에도 문제가 있다. 매달 거액의 현금을 서주저축은행에 전달했다고 하지만 저축은행측은 정상적인 예금으로 처리하고 있었으며 통장명의도 용역회사 대표 민주혁의 이름으로 기록되어 있어 유희석이 관련되어 있다는 증거자료가 없다. 그렇지만 민주혁의 명령을 받은 50여명의 조직원들이 유흥업소로부터 매달 보호비 명목으로 현금을 받아온 것은 사실로 밝혀진다.
경찰조사 결과 유희석의 혐의는 밝혀내지 못하고 민주혁의 범죄만 밝혀진 결과가 나타난다. 민주혁의 폭로에서 시작된 사건은 자신과 조직원들만 붙잡히게 되는 결과만 낳고 만다. 아직 유희석의 힘은 죽지 않아서 정기 후원금을 받은 100인의 인사들이 그를 비밀리에 돕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다른 거대한 세력이 유희석을 돕고 있었다.

선거가 시작되면서 세찬 비바람을 견뎌낸 유희석에게 시간이 갈수록 동정론이 퍼지기 시작한다. 여전히 언론에서는 악 소문을 보도하고 있었지만 경찰에서도 혐의를 밝혀내지 못하자 유희석을 불쌍하게 여기는 여론이 형성되고 있었다. 또한, 김정철은 땅 부자라는 인식이 박혀있었고 유희석은 소작농의 아들에서 자수성가한 서민형 후보라는 이미지가 있었다. 시골도시 특성상 서민들이 대다수인 경제구조에서는 동정심을 유발하는 것도 좋은 선거 전략이었다.
예비후보로 등록한 유희석은 본격적으로 「주인집 아들과 소작농의 아들 간 대결」이라는 제목을 단 거대한 현수막을 선거사무실 외벽에 부친다. 선거 구도를 부자후보 대 서민후보로 몰고 갈 구체적인 계획도 세운다.

반면, 김 시장측은 히든카드였던 민주혁 패거리의 몰락으로 당황했으나 다시 전열을 가다듬어 현직 시장의 프리미엄과 관변조직, 언론단체의 힘을 최대한 끌어 모아 선거에서 필승목표를 설정한다. 아직까지는 각종여론조사에서 상대방을 10%차로 따돌리고 있다. 이대로만 결승지점까지 격차를 유지해서 골인하면 3선의 목표를 이룰 수 있다.

상대적으로 지지율이 10%대까지 뒤지는 유희석 측에선 시민단체연합회를 이용해 시민후보로 추대를 받는다. <바른 시민모임>만 참여하지 않았을 뿐 14개 단체들이 다함께 참여하여 결정한 시민후보로 선정된 유희석은 더욱 힘을 낼 수 있게 되었다. 이 당시에는 유희석이 시장선거 출마 때문에 연합회장에서 사임한 상태였지만 그의 영향력은 전혀 줄지 않고 유리할 수 있었다. 이미 간부급들이 모두 유희석의 편이었으며 단결이 잘되어 있었다. 무엇보다 비밀리에 내려 보내는 거액의 현금이 큰 작용을 하고 있었다.
시민단체 연합회에서 유희석을 시민후보로 추대했다는 사실조차도 언론에서는 전혀 무시해버렸지만 남 선지자의 신도들이 또 다시 나섰다.
수 십 만장의 전단지를 각각 배낭에 넣어 400여명의 신도들이 새벽에 살포하고 다녔다. 한 사람당 두 번씩이나 받아 볼 수 있는 전단지를 뿌린 날은 시골도시 전체가 전단지로 뒤덮인 쓰레기장이 된 분위기로 변했다. 아침에 집 앞에 나온 시민들은 전단지를 치우느라 짜증을 낼 정도였지만 시민후보 유희석을 각인시키는 데는 효과만점이었다.

이날 새벽에 괴 전단지를 살포하는 검은 마스크 사람들이 몰려다니고 있다는 전화가 이정수에게 울렸다. 즉시 언론사 기자들에게 긴급취재요청 단체 문자를 띄운 그는 승용차를 몰고 거리를 살펴보았다.
여기저기에서 검은 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두 명씩 전단지를 배포하는 장면이 목격됐다. 이정수가 어둠속에 승용차를 세우고 조용히 다가가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순간 두 명의 검은 마스크가 그를 발견하고 뛰기 시작했다. 즉시 두 사람을 뒤쫓던 이정수가 막 한명의 검은 마스크를 붙잡는 순간 사방에서 여러 명의 검은 마스크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들의 숫자는 금방 10여명으로 늘어나더니 이정수를 포위해버렸다. 미처 이정수가 저항 할 틈도 없이 10여명의 발길질이 그의 온몸에 날아와서 몸을 웅크리고 꼼짝할 수가 없었다. 그 와중에 두 명의 검은 마스크를 찍었던 카메라까지 빼앗기고 말았으며 잠시 후 주위를 살피자 검은 마스크 사람들은 한명도 보이지 않았다. 너무도 철저하게 움직이는 검은 마스크 사람들이 누구인지는 밝혀내지 못했다. 그들이 배포한 전단지에는 유희석을 찬양하는 글이 빽빽했다.
「서민들 대변하는 유희석 시민후보를 지지해주세요.
우리 14개 시민단체는 금번 시장선거에서 유희석 후보를 시민후보로 추대하기로 결정했 습니다. 유 후보는 가난한 소작농의 아들로 태어나 자수성가한 사람으로 부자를 대변하는 김정철 시장과는 전혀 다르게 서민들을 대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깨끗한 인생을 걸어온 경력에 비추어 청렴결백하게 시정을 이끌어 갈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에 유희석 시민후보 에게 표를 몰아주시기 바랍니다.」
김 시장 측에서는 언론을 이용한 선전에 혈안이 되어 있는 반면 유희석 후보 측은 전단지 무단배포를 활용한 선전전으로 맞서고 있어서 양쪽의 홍보전은 한 치의 양보도 있을 수 없는 극한 대치상황으로 치닫고 있었다. 여론조사 결과도 거의 오차범위 내까지 좁혀져 누구도 당선을 확실 할 수 없는 백중세로 접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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