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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7화] 회 유
[연재] 서영태 장편소설 <무서운 마을>
[333호] 2012년 11월 21일 (수) 11:35:25 서영태 기자 ssytt00@naver.com


9월7일 밤7시
시내 유흥가에서 50여 미터 밖에 떨어지지 않은 2층 건물에 오늘 새로운 간판이 달렸다. 「용수건설」간판은 별로 크지도 않아서 지나가는 행인들도 별로 주목하지 않았으며 언제 있었는지 조차 의식하지 못한다.

2층 사장실에는 유난히 키 작은 사내가 20여명의 양복 청년들과 함께 밀담을 나누고 있다.
「우리가 생각보다 빨리 돌아왔다. 중앙조직에서 신속하게 손을 썼기 때문에 우리 구역을 다시 찾은 거야. 아주 깨끗하게 청소해 버렸지. 이제부터는 우리를 방해할 놈들은 전혀 없어. 너희들은 상부에서 교육받은 대로 한 달 내에 기반을 닦아 놓고 빠지면 돼!
그 후엔 지역책임자인 내가 잘 관리하면 되고.」
「형님, 저희들이야 사고구역 정리하는 전문가들 아닙니까.
한 달 내에 임무완수하고 철수할 때까지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저도 빨리 진급해서 이런 지역 책임자로 와야 할 텐데 말입니다.」
키 작은 사내와 양복사내들 중 간부 하나가 좀 더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다른 양복 사내들은 각각 배치된 관리구역으로 출발한다.

지난 사건 후 상부에 올라가 몸을 숨기고 있던 키 작은 사내는 정보망을 통해서 이 지역의 돌아가는 상황을 주시하고 있었다. 조직원들이 저지른 청수마을 청년 사망사건 때문에 전국적인 이슈가 되자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던 상부조직에서는 잠시 태풍이 물러갈 때까지 영업을 정지하기로 결정하고 키 작은 사내를 불러들였었다.
키 작은 사내가 밤의 세계에서 철수하자 무주공산이 된 이 지역에서 민주혁이라는 토끼가 범 노릇을 하고 있는 것도 정보망을 통해 파악하고 있었다. 그러나 여론이 잠잠해질 때까지 기다리라는 상부의 지시 때문에 어설픈 토끼의 장난에 눈감아 줄 수밖에 없었다. 드디어 기회가 찾아왔다. 밤의 세계를 관리하고 있던 민주혁이 한편이던 시장후보 유희석을 배신하여 비리를 폭로했다는 정보가 키 작은 사내에게 포착됐다. 민주혁과 그의 조직원을 모두 쓸어버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키 작은 사내는 상부의 허가를 받아 재빠르게 유희석을 만났다. 자신의 거대한 조직의 힘을 활용해 유희석의 문제를 깔끔하게 처리해 주는 대신 밤의 세계를 다시 접수하는 것을 양해해 달라는 것이었다. 자칫 잘못하다간 모든 것을 뺏길 위기에 처한 유희석은 키 작은 사내가 몸담고 있는 거대 조직에 손을 내밀 수밖에 없었다. 즉시 키 작은 사내는 상부조직에 연락해 모든 권력자들을 동원해서 유희석을 보호해 줄 것을 요청했다.
동시에 모든 범죄 혐의는 민주혁에게 집중되었으며 그의 모든 조직원들까지 붙잡아 가버렸다. 이 사건으로 유희석의 약점을 잡은 키 작은 사내는 시장에 당선되더라도 두고두고 이용할 수 있는 이점까지 얻게 되었다.
밤의 세계를 다시 접수한 키 작은 사내는 예전 같은 영업권을 회복하는데 한 달도 걸리지 않을 것이었다. 상부에서 보낸 사고지역 처리 팀은 전국을 돌며 문제가 생긴 지역에서 밤의 세계만 전문적으로 다시 재건하는 팀이었다.


9월10일 오전11시 시청 앞 공원이 잘 내다보이는 커피숍에서 두 남자가 창가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가게 안에는 저쪽 귀퉁이에 남녀가 마주 앉아 재미있는 몸짓을 주고받는 이외에는 한적한 공간만 보인다. 정 반대로 창밖 공원에는 대형 천막이 여러 개 보이고 선동적인 현수막들이 여기저기 정신없게 걸려있다.
커피숍에서 창밖을 지켜보며 김재진이 이연준에게 말을 건넨다.
「아직도 한 200여 명이 농성시위를 하고 있어요. 주로 아줌마들이 많이 나와 있는데 저녁 이 되면 다른 사람들하고 교대를 한단 말이죠.」
「편집장님, 제가 알아 본 바에 의하면 저들은 다 일당 받고 동원된 사람들이에요. 일당이 십만 원씩 이라는데 상당히 센 편이라서 서로 하려고 한다고 그래요. 처음에는 시민단체 회원들도 참여했었는데 다 그만두고 동원된 사람들만 돈벌이 하고 있단 말이지요.」

김재진과 이연준은 계속해서 유희석과 김 시장의 대결을 취재하고 있었다. 양 진영 간에 치고받는 혈전을 취재해서 인터넷신문에 꾸준히 올리고 있지만 한정된 독자들만 들어와서 보기 때문에 영향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지역에서 발행되는 매체 중에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곳은 단연<주간서해>였다.
이곳에서는 매주 5만부의 지면을 제작해서 30여명의 일꾼들이 모든 가구마다 무료 배포하는 바람에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그에 비해 운영 자금난에 쪼들리는 <주간충남>은 돈이 많이 들어가는 지면발행은 당분간 쉬면서 겨우 인터넷신문만 운영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그래도 인터넷신문에 들어오는 독자수가 일주일이면 3천명 선은 유지하고 있었는데 다른 매체 같지 않고 진실만을 보도한다는 사실을 알고 꾸준히 찾는 독자들이었다.
편집장 김재진은 만약 1명의 독자라도 기사를 본다면 계속 운영하겠다는 생각을 가진 고집스런 사람이었다. 평소에도 기자들에게 이런 말을 하면서 운영난에도 끝까지 가보겠다는 의지를 꺾지 않았다.

「그런데 편집장님, 더 이상한 것은 저들의 주인 역할을 했던 최현범이란 작자가 전혀 보이 지 않고 있어요. 청수마을 저택도 남 선지자가 차지하고 있구요. 뭔가 내부적으로 큰 문 제가 있었던 것이 분명합니다.」
「김 시장과 유희석이 같은 청수교 추종자들이었는데 저렇게 서로 싸우는 것을 봐도 내분 이 발생한 게 분명해요. 김 시장과 이정수가 긴밀하게 내통하고 있고, 유희석과 남 선지 자가 한편으로 붙어서 서로 못 잡아먹어 안달이 났어요.」

두 사람은 오래 전부터 청수교 무리들을 취재해왔기 때문에 그들의 움직임과 변화에 대해서 상당히 자세하게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 무리들이 왜 분열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자세하게 알지 못한 채 양 진양으로 나뉘어 치열하게 싸우는 현상을 황당한 눈으로 지켜보며 더욱 깊이 취재하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잠시 후 커피숍 안으로 양복을 점잖게 차려입은 사내가 들어오더니 두 사람이 앉아있는 자리로 다가가 인사를 건넨다. 유희석이 이사장으로 있는 서주저축은행 경리부장이다.
유희석이 가장 신뢰하는 사람이며 사촌동생이기도 한 유 부장이 선거자금줄을 은밀하게 관리하고 있을 터였다.
「이렇게 두 분을 만나 뵙게 되어서 반갑습니다. 저희 이사장님께서는 오래전부터 <주간충 남>과 인연을 맺고 싶어 했습니다.
지금 김 시장측은 이정수가 이끄는 언론단체를 돈으로 매수해서 편파적인 기사를 쏟아내 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만큼은 예외이기 때문에 저희 편이 되어 주시면 섭섭지 않게 지원해 드리겠습니다.」
유 부장이 뭘 지원한다는 것인지 말을 듣지 않아도 뻔한 것이다. 그들의 속성을 이미 파악하고 있는 김재진이 아니던가.
유희석이야말로 청수교의 추종자가 되어 <주간충남> 죽이기에 시민단체의 힘을 부당하게 동원했던 자가 아닌가. 사이비종교집단의 꼭두각시 노릇을 잘하던 자가 갑자기 서주저축은행 이사장이 되더니 이제는 유력한 시장후보까지 되어 돈과 권력을 다 움켜쥐려고 욕심을 부리지 않는가. 김 시장 집안의 소작농 아들이었다는 자가 주인집아들보다 더 높아지려고 발악을 하는 것으로 밖엔 안보였다.

「그래 유희석씨가 우리에게 얼마나 지원해주겠다는 말을 했습니까?」
이연준의 당돌한 말에 잠깐 주위를 둘러보던 유 부장은 사람들이 없는 것을 보더니 조용한 어조로 말을 꺼낸다.
「우리 이사장님은 편집장님이 원하는 액수는 얼마든지 말하라고 하셨습니다. 이 기회에 확 실하게 밀어만 주신다면 저희 이사장님은 무엇이든지 즉시 들어주실 겁니다. 이번 기회를 꼭 잡으십시오.」
운영난 때문에 지면발행까지 중단한 상태에 있던 김재진은 마음이 흔들리기도 한다. 얼마든지 말만하면 다 지원해 준다고 말하지 않는가. 더구나 유희석을 편드는 언론사는 한 군데도 없다. 김 시장과 이정수가 워낙 치밀하게 언론을 관리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에게 대항할 수 있는 언론이 <주간충남>밖에 없는 실정이다. 충분한 자금만 지원된다면 엄청난 부수를 제작하여 영향력을 과시하고 여론을 유리하게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김재진은 단 번에 거절한다. 지난 10년 동안 어렵게 신문을 만들어 왔던 이유가 돈 때문만은 아니었으며 좋은 언론을 만들어 보자는 결심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여러 번의 회유와 협박과 싸우며 타협하지 않았었는데 이제 와서 고집을 꺾을 수는 없었다.

다음날 새벽 김재진은 춘천으로 달려간다. 최현범의 모습이 오랫동안 보이지 않은 후 자신을 미행하던 세력들이 사라졌다. 그 전에는 항상 두 어 명의 그림자가 뒤를 밟는 흔적이 느껴졌지만 전혀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오늘도 일부러 휴게소를 들러 뒤따라오는 차를 유심히 살펴보았지만 이른 새벽이라서 차량 출입조차 거의 없다. 커피 한잔을 뽑아든 김재진은 안심하고 서인애가 기다리는 호숫가 펜션으로 들어선다.
그녀는 새벽안개와 함께 도착한 연인을 꼭 안아준다. 일주일 만에 연인이 오는 날이면 설레는 마음에 늦게 잠드는 것이 습관처럼 되었다. 김재진은 아직도 반쯤은 잠에 빠져있는 서인애를 번쩍 들어 푹신한 침대에 눕히고 옆자리에 같이 누워서 눈을 감은 연인의 아름다운 얼굴을 지켜본다. 어깨까지 늘어뜨린 머릿결, 잠에 빠진 눈매, 가녀리면서도 우뚝 솟은 코, 키스를 부르는 입술을 들여다보다가 그녀의 볼에 입술을 부드럽게 얹은 채로 잠에 빠져든다.

창 밖에는 시원한 호수물결 대신에 새벽안개가 흐물흐물 넘실대며 두 사람의 꿈속같이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4시간쯤 지나서 눈을 뜬 김재진에게 안개처럼 하얀 원피스를 입은 서인애가 가스레인지를 켜고 프라이팬을 뒤집는 모습이 보인다.
「재진 씨, 벌써 깼어요? 아침은 지났고 브런치 준비했는데 맛이 어떤지 보세요.」
「신문기자 생활하면서 아침 먹어본 적이 거의 없어.
더구나 브런치는 태어나서 처음인걸. 이곳에 오면 난 행복한 남자로 변하는 것 같아.」

김재진의 일터는 치열한 전쟁터였다. 사람이 사람을 배신하고, 오늘의 동지가 내일의 적이 되고, 의리를 찾아볼 수 없는 전쟁터에서 기자로 살아간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은 삶이었다. 하지만 김재진의 핏속에는 평범한 생활을 거부하고 사건사고가 즐비한 취재현장을 돌아다녀야 진짜 인생을 사는 것 같은 뜨거운 열정이 흘렀다. 맹수들의 먹고 먹히는 살벌한 아프리카 정글을 홀로 떠돌아다니는 하이에나가 된 느낌이랄까. 그런 아슬아슬한 스릴이 좋았다.

브런치를 함께 하는 두 사람은 여전히 안개가 말끔히 가시지 않는 호수를 바라보며 깊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이어나간다. 김재진이 취재하면서 보고 느낀 것, 진실은 어디까지이며 가려진 진실에 대한 추정까지... 모두 다 소형녹음기에 담고 있는 서인애의 눈이 반짝인다.
「그런데 같은 청수교 추종자였던 그 사람들이 왜 양측으로 나눠서 싸우고 있을까요? 그들 을 지배하던 최현범과 그 신미연이란 기자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바로 그 점이 오리무중이야. 두 사람이 요즘 들어 전혀 눈에 띄지 않는 것을 볼 때 누구 한테 살해당했을지도 몰라.
그래서 추종자들이 양쪽으로 갈라져 싸움이 일어났는지도 모르지. 참 재미있는 사건이 계 속되고 있어.」

김재진이 전해주는 청수교 무리의 이야기는 서인애의 글을 통해서 작품이 되어가고 있다. 그 결말을 아무도 모르는 살아있는 생명체의 일대기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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