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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8화] 왕국건설
[연재] 서영태 장편소설 <무서운 마을>
[888호] 2012년 12월 04일 (화) 10:39:11 서영태 기자 ssytt00@naver.com

 

9월17일 저녁10시 청수마을 저택 비밀의 방.
200여 평의 널찍한 홀에 150여명의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앉아있다. 신비로운 보라색 조명이 은은하게 비추는 등불 밑에서 신도들의 주문 외우는 소리가 묵직하고 장엄하게 들려오는데 그들은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손을 높이 들기도 하고, 무릎을 꿇고 엎드린 신도들도 보인다. 맨 앞쪽 제단에는 방금 전 목숨을 잃은 검은 염소에게서 흘러나온 선홍색 피가 밑으로 흘러 큰 대접에 차오르기 시작한다. 제단 앞으로 나온 백발의 남 선지자가 검은 염소의 피를 양손에 들자 맨 앞쪽부터 신도들이 나와 면도칼로 상처를 낸 손가락에서 나온 핏방울을 검은 염소의 피에 떨어뜨린다. 모든 신도들의 피가 검은 염소의 피와 섞여진 다음 차례대로 핏물을 목구멍으로 넘긴다. 피 나눔 시간이 다 끝나자 그전보다 더욱 격한 목소리로 주문을 외우는 신도들 앞에서 남 선지자가 설교를 시작한다.

「청수바람의 신을 모시는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들의 살아계시는 주인님은 하늘로 승천하셨습니다. 이 마을 어른들이 들려주시던 전 설이 이루어졌습니다. 천년에 한번 이무기가 청수계곡을 거슬러 올라 하늘로 승천해서 용 이 된다는 전설을 이루신 분이 우리 주인님이십니다.
이제 하늘나라에서 우리를 내려다보시는 주인님이 우리들을 지켜보고 계십니다. 우리들이 힘을 합쳐서 이 땅에 왕국을 건설하고 나면 주인님이 다시 우리 곁에 내려와 세상을 지배 하게 될 것입니다.」
남 선지자의 설교를 들은 신도들은 더욱 힘차게 알 수 없는 주문을 외우고 환상에 빠져들고 있다.

남 선지자는 유희석과 동맹을 맺은 후 청수마을에 짓는 왕국을 건설하기 위해서 저택으로 들어왔다. 이곳 저택이야 말로 저 세상으로 떠난 최현범을 만나 주인으로 섬기게 되었던 곳이고, 괴이한 바람의 소리에 이끌려 주인님을 떠나보낸 장소였다. 청수마을을 넘겨받은 백발의 남 선지자는 우선 청수교 추종자들의 마음을 지배하기 위해 매주 저택 비밀의 방에 모이게 만들었다.

최현범이 모습을 보이지 않은 몇 개월 사이 청수교 추종자들은 핵심간부들의 권력싸움 때문에 어느 쪽 편도 들지 못하고 매주 집회도 갖지 못하는 어정쩡한 상황에 처해있었다. 그들의 정신세계를 지배해온 살아있는 신은 추종자들에게 모습을 보이지 않았고 주인님이 어디론가 떠나버렸다는 이상한 소문까지 나돌고 있었다. 그러나 사악한 악마 중의 악마요, 절대 공포의 주인이 언젠가는 다시 나타날 것이라는 막연한 두려움 때문에 악마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도 없이 잠자코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때 남 선지자가 추종자들에게 다가와 주인님의 명령을 전달할 테니 집회에 참석하라고 말했다. 남 선지자는 집회에서 깜짝 놀랄 사건에 대해 추종자들에게 설명했다. 그들의 정신세계를 지배하던 살아있는 신이 천년의 세월을 견딘 끝에 하늘로 승천했다는 것이었다. 그것도 마을전설에 나오는 것처럼 이무기가 천년 만에 용이 되어 청수계곡을 거슬러 올라 하늘나라를 지배하고 있다는 말이었다. 정상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들이라면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사건이었지만 청수교 추종자들의 정신세계는 이미 오래전에 세뇌되어 살아있는 신의 존재를 현실처럼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들의 신이 하늘나라를 지배하면서 추종자들의 인간세상을 모두 지켜보고 있다는 생각에 오싹한 기운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남 선지자는 신도들에게 하늘을 지배하고 있는 주인님이 머지않아 인간세상을 지배하기 위해서 내려올 것이라고 했다. 그때에는 수를 헤아릴 수 없는 엄청난 하늘 군사들이 함께 내려와 지구를 다 뒤덮을 엄청난 물과 함께 모든 건축물을 다 날려버릴 바람을 일으켜 인간세상을 심판하는데 오직 청수마을에 세워질 왕국만 다치지 않고 보호 받을 것이라고 설교했다.

세상의 사이비종교 중에 가장 센 힘을 보여주었던 모든 집단들은 항상 종말론을 앞세워 사람들의 정신을 지배했다. 한번 종말론에 빠진 신도들은 부모, 형제, 남편, 자식의 말까지 듣지 않고 모든 재산을 털어버리고 오직 종말을 준비하도록 세뇌되어 버리고 말았다. 백발의 남선지자가 외치는 종말론은 더욱 효과를 발휘해서 150여명의 신도들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예전에 남 선지자가 30여명을 자살로 내몰고 감옥이 아닌 정신병원으로 보내진 것에 대해 당시 재판부에 증인으로 나온 의사 말에 의하면 「측두엽간질」이라는 판정 때문이었다. 이 병은 40개 이상의 서로 다른 간질 타입 중 가장 흔한 종류다. 측두엽은 뇌의 양쪽 가장자리에 자리 잡은 부위로 인간의 감정과 기억을 관장한다. 불면증·공포감·환청·환각에 시달리거나 정신과 몸이 분리되는 느낌을 받을 수 있으며 심한 환자는 폭력을 저지르거나 발작 중의 기억을 잃을 수 있는 정신병이다.
이처럼 정신병을 앓고 있는 남 선지자에게는 사이비 종교 지도자야말로 가장 적당한 직업일지도 모른다. 세뇌 되어진 신도들은 그를 두고 신의 음성을 듣는 백발의 선지자라며 칭송했다. 청수교 추종자들의 정신을 지배하기 시작한 남 선지자는 거대한 물과 엄청난 바람으로 세상을 멸망시켜 버린다는 뜻에서 자신들의 종파 이름을 청수바람교로 바꾸고 본격적으로 종말론을 지역사회에 전파하기 시작했다.
첫사랑교회에서 청수교회로, 다시 바람교 성전으로 바뀌었던 곳의 이름도 청수바람교 성전으로 바뀌어 청수교와 바람교 추종자들을 완전히 통합해서 더욱 효과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이렇게 종말론을 설파한 이후 커다란 변화가 일어났다. 하늘을 지배하는 주인이 빨리 내려와서 인간세상을 쓸어버리기 전에 신도들은 가지고 있는 재산을 하나하나 처분해서 청수마을 왕국에 지을 집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거대한 물과 엄청난 바람이 일어나 세상을 다 쓸어버릴 텐데 이 세상의 재산은 아무 필요가 없는 무용지물이 될 터였다. 저택 비밀의 방에 마련된 현금창고는 다시 차오르기 시작했다. 그 전에 남아있던 현금은 50억 정도였는데 더 크고 좋은 집을 지어달라며 신도들이 맡긴 현금은 500억을 넘어서기 시작했다. 매일매일 현금이 쌓여가고, 더욱 위대하고 커다란 왕국으로 만들 비용으로 쓰여 질 것이었다.
종말론의 장점은 또 있었다. 세상이 곧 망할 거라고 철썩 같이 믿는 신도들은 자신들의 가족을 먼저 설득하기 시작했다. 꼭 6·25때 피난을 떠나는 사람들처럼 다급한 마음이 되어서 밤낮으로 남편, 아내, 부모, 자식을 설득해서 끝내 추종자로 만들어버렸다. 너무나도 확고한 믿음 때문에 가족들이 견뎌낼 수가 없었고 추종자가 되지 않으면 이혼까지도 불사하겠다는 협박에 굴복한 가족도 많았다.
직장을 다니던 사람들은 멀쩡한 회사를 그만두고 왕국건설 현장에서 벽돌을 나르고 허드렛일을 도왔고, 집안일을 하던 여자들은 공사현장에 천막을 치고 인부들 밥이며 간식을 챙겼다. 심지어 멀쩡히 학교에 잘 다니는 아이들까지 공사현장에서 심부름을 시키는 일까지 벌어져 도저히 제정신이라고 말할 수 없었다. 추종자들이 워낙 열심히 가족을 끌어들이고 친지들끼리 끌어들이는 바람에 그 숫자가 계속 불어났다. 처음에는 성전에서 모이던 숫자가 400여명, 저택 비밀의 방에서 150여명이었는데 몇 개월 사이에 급격하게 불어나 3천여 명까지 늘었다. 늘어난 추종자 가족들을 한 곳에 모이게 할 수 없어서 매주 요일별로 나눠 5일간 청수바람교 성전에서 집회를 가졌으며 그 숫자는 계속 늘어나고 있었다.

추종자들의 숫자가 급격하게 늘어나다 보니 왕국에 집을 마련하라는 명령에 따라 모이는 돈도 엄청나게 늘고 있었다.
비밀의 방 현금창고에 500억의 현금이 쌓였던 것이 한 달 만에 1000억으로, 다시 한 달 만에 2000억으로 늘어났다. 추종자가 된다는 것은 곧 멸망할 세상을 피해서 청수마을 왕국으로 피신한다는 믿음을 갖게 된 것이었다. 가족들은 곧 멸망할 세상의 집과 땅과 건물을 급히 팔아버렸다. 왕국에서는 세상의 돈도 필요 없다는 말에 은행예금과 직장에서 나온 퇴직금, 보험까지 몽땅 해약하고 왕국 건설에 갖다 바쳤다.
남 선지자는 하늘을 지배하고 계신 살아있는 신이 모든 추종자들의 마음을 두루 살피고 있어서 누가 멸망할 세상의 재산을 숨기고 있는지를 다 알고 계시며 그 정성에 따라 철저하게 계급을 준다고 설교했다. 추종자들은 두려운 마음에 아무것도 숨길 수 없었고 어서 왕국이 건설되기만 고대하며 건설현장에 나가 잡부역할을 자청하고 여자들은 식사를 마련하느라 고된 하루를 보냈다.

추종자들의 엄청난 헌신에 따라 청수마을은 날로 변하고 있었다. 국비로 건설되는 자연체험학습장 인근에는 엄청나게 거대한 청수바람교 성전이 마련되고 있었다. 남 선지자는 이 성전이야 말로 살아있는 신이 하늘로부터 내려와 왕국을 통치할 신성한 곳이라며 최고의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새로 설계된 성전의 규모는 총 20층이었으며 맨 꼭대기 층에 살아있는 신이 거처할 성소가 마련되고 5개 층에 걸쳐 1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예배당이 자리 잡고 나머지는 왕국 백성들을 다스릴 수 있는 정부청사가 위치한다는 계획이었다.
20층의 성전 주위로는 왕국백성들이 거처할 5천세대의 주택과 공원, 체육시설 등이 자리 잡아 신도시 건설을 방불케 만드는 규모였다.
신의 음성을 전달한다는 남 선지자는 아직도 왕국건설 자금이 부족하다며 신도들에게 외쳤다. 5천세대가 기거할 주택을 마련하자면 총 8000억의 자금이 필요한데 현재 3000억 밖에 없어서 하루빨리 자금을 마련해야 한다는 설명이었다. 모든 추종자들은 더 열심히 세상에 나가 이웃들을 포섭해야 했으며 그것이 멸망할 세상에서 건져내는 마지막 기회라고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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