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서영태 장편소설 <무서운 마을>


9월25일 오전 10시.
<바른시민모임> 회의실에 20여명의 사람들이 모여 앉아있다. 이 사람들은 지역사회를 바르게 만들자는 이념에 동의해서 자발적으로 회원이 된 지역주민들로 연령층은 30대에서 60대까지 꽤 폭 넓게 동참하고 있었다. 사무국장 윤길현을 포함해서 <주간충남>편집장 김재진, 가야산자락농촌교회 정 목사 등 다양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지역사회를 걱정하며 참여하고 있었다. 윤 사무국장의 사회로 김재진에게 먼저 발언기회가 주어진다.
「저희는 작년 정태섭 회장 가족의 비극을 취재하면서 청수교 집단의 문제점을 알게 되었 습니다. 취재하던 저희 기자가 그들에게 납치되어 포섭된 후 저까지 해치려고 시도했던 위험한 사이비종교집단입니다.
그들의 핵심 지도자인 최현범이란 자가 행방불명 된 후 추종자인 남 선지자와 유희석이 한편이 됐고, 김 시장과 이정수, 경찰서장이 한편이 되어서 서로 죽일 듯이 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저들 무리는 내분이 생겨서 싸우고는 있지만 여전히 우리지역의 언론, 공권력, 행정 등을 강력히 통제하고 있어서 커다란 문제점이 되고 있습니다.」
윤 사무국장과 참석자들은 심각한 표정이 되어 김재진에게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한 질문을 하고 답변도 이어진다. 다음으로 정 목사가 발언에 나선다.
「김 편집장님이 전체적인 문제점을 언급해 주셨는데 저는 청수마을에 세워지고 있는 왕국 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청수바람교를 이끌고 있는 남선지자는 청수마을에 사이비 종교 집단 왕국을 건설하고 있습니다. 마을사람들의 논과 밭을 뺏어서 엄청난 부지를 조성했는데 500억의 국비지원까지 받았답니다.
요즘 신도수를 3천여 명까지 늘린 거대 집단으로 컸으며 종말론을 강조해서 모든 신도들 의 재산을 다 거둬들이고 있습니다.
현재까지만 해도 수천억의 돈을 모았을 텐데 갈수록 주민들의 피해가 커지고 있습니다. 빨리 그들을 막지 않으면 지역사회 전체가 종말론 소용돌이에 빠질 겁니다.」
정 목사의 이야기도 참석자들에게 커다란 충격을 안긴다.
사이비종교집단의 힘이 이토록 대단하단 말인가. 내분이 일어나 싸우고 있다는 집단에서 그렇게 거대한 자금으로 왕국을 건설하고 지역 권력을 장악하고 있다는 말이 믿어지지 않을 지경이었다.
마지막으로 사무국장 윤길현이 발언에 나선다.
「지금 시장선거전이 한창인데 현 시장이나 강력한 도전자인 유희석의 2파전양상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두 사람 다 불법적인 행위를 마음대로 저지르고, 도덕적으로도 큰 문제가 있다는 겁니다. 두 사람 다 청수교 추종자들이었는데 김 시장은 재임시절 부동산 투기에 혈안이 된 사람이고, 관언유착을 너무 심하게 저지르고 있습니다. 유희석 후보는 한때 조직폭력배의 막후 조종자라는 혐의가 있으며 서주저축은행을 불법적인 방법으로 접수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습니다. 두 사람 다 엄청난 돈을 쏟아 부으며 금권선거로 몰고 가고 있어서 문제가 심각한 사람들입니다.」
윤길현의 발언은 참석자들을 더욱 침울하게 만든다.
최현범이란 자가 만든 청수교의 폐단이 이렇게 심각하단 말인가. 정치, 행정, 사회, 종교 할 것 없이 사회 전 분야에서 대단히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지 않는가. 김재진의 생각에 청수교를 만든 장본인 최현범만 사라지면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리리라 예단했었다. 그런데 최현범이란 괴물이 만들어 놓은 추종자들이 더욱 대단한 일들을 하고 있었다. 천문학적인 돈이 들어가는 왕국을 건설하지 않나, 시민단체와 언론단체의 대부분을 장악하지 않나, 지역의 권력자들을 꼭두각시처럼 이용하고 있었다.
20여명의 참석자들은 엄청난 파란이 일어나고 있는 지역사회를 바로잡자는 데에는 모두 동의하고 있다. 그런데 워낙 소수이다 보니 거대한 청수교 무리들과 정면대결 한다는 것은 꿈도 꿀 수 없다. 회원들이 할 수 있는 능력에서만 최선을 다하자는 것이 결론이었다. 그들 앞에는 거대한 거인 골리앗이 버티고 서있는 것이다.

청수마을을 중심으로 활개 치는 신흥 종말론집단 때문에 가장 큰 피해를 당하는 쪽은 기독교계였다.
한때 전국적으로 큰 피해를 줬던 종말론자들이 다시 청수마을을 중심으로 재건 될 조짐을 보이면서 기독교계의 고민은 깊어지고 있었다.
청수바람교 집단의 폐해를 더 이상 좌시할 수 없었던 농촌교회 정 목사가 용감하게 일어나서 각 교회 목회자들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먼저 첫사랑교회의 담임목사가 의문의 행방불명이 되고 난 후 사이비 집단이 점령한 과정을 상세하게 언급하며 더욱 큰 집단으로 커지기 전에 기독교계가 강력히 뭉쳐야 함을 주장했다.
이 때 이미 많은 교회에서 신도들에게 이상한 징후가 나타나고 있었다. 멀쩡히 교회에서 잘 출석하던 신도가 어느 날부터 전혀 소식이 두절되더니 청수바람교 쪽으로 넘어가버리고 이어서 그 가족, 친지까지 모두 넘어가 버린 사례들이 늘어나고 있었다.
종말론자들에게 포섭된 자들은 계속해서 교회 신도들을 빼내가려고 별별 노력을 다하고 다녔다. 가장 잘 쓰는 방법이 불안감을 조성하는 것이었는데 이제 곧 왕국이 건설되면 세상이 엄청나게 많은 물과 상상할 수도 없는 거대한 바람 때문에 멸망하리라는 불안을 안겨주면서 나약한 신도들의 마음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갈수록 종말론자들의 힘이 커지자 지역에 소재한 200여개 교회 담임목사들이 단결하여 공동대응을 결의하게 됐다. 평소에는 잘 뭉치지 못하고 서로 경쟁적으로 교세를 확장하던 교회들이 무서운 종말론자들의 출현에 더 이상 당하고만 있을 수 없다는 의기의식을 갖게 된 것이었다.
200여개 교회들이 공동으로 힘을 합치게 된 데이는 정 목사의 활동이 컸기 때문에 그가 맨 앞장을 서서 이끌어 가게 됐다. 종말론자들에 대항하게 될 단체를 만들어「종말론 반대 기독교 대책위원회」라는 현판을 달고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대책위원회는 우선 200여개 교회 신도들에게 종말론의 잘못을 가르치고 빠져서는 안 된다는 교육부터 시키기 시작했다. 종말론자들이 가장 즐겨 쓰는 방법이 성경구절을 통한 세상멸망이라는 위기의식을 퍼뜨리는 것이었다.
종말론자들이 가장 많이 언급하는 성경구절은 요한계시록 16장 19절, 20절로「큰 성이 세 갈래로 갈라지고 만국의 성들도 무너지니 큰 성 바벨론이 하나님 앞에 기억 하신 바 되어 그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잔을 받으매 각 섬도 없어지고 산악도 간데없더라.」라는 구절을 비롯해서 세상이 모두 멸망할 것이라는 여러 구절을 이용해서 두려움을 전파하는 수법이었다.
이에 대책위는 신도들이 이단자들의 괴변에 당하지 않도록 철저하게 교육시키고 주변에서 이단자들에게 포섭될 위기에 빠진 신도들을 목격할 경우 대책위에 신고해 줄 것을 당부했다.
「종말론 반대 기독교 대책위원회」의 핵심은 젊은 목회자들로 구성된 긴급출동팀으로 팀장은 정 목사가 맡았으며 30여명의 목회자들이 상시 대기하는 방법으로 운영에 들어갔다. 대책위에는 하루 5건 정도의 제보 전화가 걸려 와서 종말론자들의 포섭활동을 알려주고 있었다.

긴급출동팀 5명이 첫 번째로 제보된 신도의 가정에 찾아갔을 때 이 가정의 시부모가 오랜만에 아들, 며느리, 손자와 함께 모여 있었다. 제보한 며느리의 말에 따르면 어느 날 갑자기 시부모가 찾아와서 세상이 곧 멸망해서 빨리 모든 것을 정리해서 왕국으로 들어가야 한다며 아예 아들네 집에 수일간 머무르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긴급출동 한 5인의 목회자는 시부모를 상대로 종말론자가 된 이유를 물었다. 큰 아들네가 청수바람교 신자인데 어느 날 간곡히 권하여 집회에 참석하게 됐고 백발의 남 선지자가 신의 음성을 들려주어 세상에 곧 밀어닥칠 증언을 알게 되었다고 말했다.
5인의 목회자가 타일러도 보고 설득도 해보고 올바른 교리를 가르쳐도 보았지만 시부모의 잘못된 믿음은 전혀 꿈쩍도 하지 않았다. 5인의 목회자가 이대로 물러간다면 이 가정도 결국 이단자들의 무리로 넘어갈 것이 뻔했다. 목회자들은 마지막 수단으로 그 자리에 앉아서 금식기도를 시작했다. 기도소리는 1초도 그치지 않고 집안에 울려 퍼졌고 시부모와의 영적인 싸움이 팽팽하게 전개되었다. 이단에 붙잡힌 시부모도 자신들만의 알 수 없는 주문을 외우며 대항하면서 밤낮이 흘러갔다.
5일째가 되었을 때 5인의 목회자들의 기도소리만 들릴 뿐 알 수 없는 주문소리는 사라져버렸다. 영적인 대결에서 자신을 잃은 시부모가 슬며시 떠나버린 것이었다. 결국 제보자 가정은 이단자들로부터 구해냈지만 부모 자식 간의 애정은 깨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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