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서영태 장편소설 <무서운 마을>


 

10월2일 저녁9시 청수마을 저택.
가야산 자락에서 불어오는 가을 저녁의 바람이 쌀쌀하게 느껴지면서 사람들의 옷을 점차 두텁게 만들고 있다. 가을 저녁 저택 정원에도 산에서 불어온 차가운 바람이 나뭇잎을 하나 둘 떨어뜨리기 시작한다.
고요한 가야산 자락과는 반대로 저택 안에서 화려한 전등 장식이 환한 불빛을 뽐내고 있다. 200여 평의 널찍한 거실 한 켠 소파에 백발의 머리를 늘어뜨린 남 선지자가 찻잔을 만지작거린다. 맞은편에 앉은 중년의 양복사내를 쳐다보고 있는 남 선지자 앞에서 조곤조곤 이야기를 이어가는 사람은 김 시장이다.
「선지자님과 저는 같은 주인님을 섬기던 동지 아니었습니까?
저는 종교적인 견해나 그런 것에는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단지 이번 선거에서 승리하는 것이 유일한 관심거리입니다.
선지자님과 신도들이 제 편만 되어주시면 청수바람교 왕국건설에 최선을 다할 것을 약속 드립니다. 그리고 제 개인적으로도 왕국건축헌금을 바치도록 하겠습니다. 옛 정을 생각 해서 저와 함께 해 주십시오.」
김 시장은 남 선지자에게 거듭해서 간곡하게 부탁하고 있다.

남 선지자가 이끄는 청수바람교 무리들은 벌써 4천여 명이 넘어서고 있을 정도로 엄청난 성장을 해왔다. 살아있는 신이었던 최현범이 남 선지자의 능력을 높이 평가해서 종교지도자로 모셔온 것은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그렇지만 믿었던 충견이 주인을 배신하고 날카로운 이빨로 물어 죽일지는 상상도 못했을 것이었다. 하여튼 주인이 데려온 남 선지자가 왕국건설에 매진하고 4천여 명의 신도들을 이끌며 거대한 영향력을 끼치는 종교집단으로 성장하였으며 선거에서도 큰 힘을 발휘할 것이 확실해보였다.

김 시장은 남 선지자에게 몇 번이고 간곡히 부탁하며 비밀리에 실어온 현금 20억 원을 건네주고 떠난다. 남 선지자에게 왕국건설을 위한 자금이 들어오는 것은 참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반면, 유희석 측에서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이미 남 선지자와 동맹을 맺었던 유희석은 왕국건설을 위해서 자금이 필요하다는 말을 전달하는 추종자들의 편에 매번 거액의 현금을 실어 보냈었다. 동맹을 맺은 후에 보낸 현금만 40억 정도로 엄청난 거액을 후원했기 때문에 남 선지자도 선거운동을 몰래 도왔었다. 지난번에 두 번에 걸친 비방전단지 살포도 남 선지자가 보낸 신도들의 작품이었으며 철저하게 비밀로 부쳐져서 전혀 소문이 나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는 적이나 아군을 구분 지을 필요도 없어졌다. 남 선지자 말에 4000여 명의 거대한 신도들이 모이자 곧 바로 권력이 되어서 권력자들이 스스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두 명의 유력한 시장후보자들 뿐만 아니라 도지사, 도의원, 시의원, 교육의원 후보자들도 남 선지자의 눈치를 살피며 모두 서로 만나자고 약속을 잡으려 했다. 이에 나름대로 급수를 나누어 일부는 부선지자가 대신 만나서 상담하기도 했다.
사이비종교집단과 권력자들의 관계에서 영원한 친구도 영원한 적도 없었다. 오로지 이익을 누가 얼마나 많이 주느냐가 관건이었다. 이제 그들에겐 옛날처럼 강력한 절대적인 주인이 사라져버렸기 때문에 오로지 자신의 의지에 따라 야망을 키워나가고 있었다. 주인은 사라졌지만 그가 사람들의 정신세계를 지배해서 이루려고 하던 욕망은 더욱 거대하게 살아나고 있었다.

김 시장이 20억의 현금을 건네준 뒤 돌아가자 남 선지자는 저택의 2000여 평 정원을 걸으며 생각에 잠긴다. 권력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이리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권력자들이 현금을 싸들고 아부하지 않는가. 신도들을 더 많이 포섭해서 더 큰 왕국을 세운다면 세상의 권력자들이 모두 나를 찾아와서 머리를 조아리지 않겠는가. 한 때 세상을 지배하겠다는 야욕을 서슴없이 말했던 살아있는 신도 이런 기분이었을까. 그래서 그렇게 많은 사람의 정신을 지배하려고 그렇게도 무던히 애를 썼던 것인가. 그러나 보라. 나는 주인님이었던 최현범이 가지고 있던 신경독성물질의 재료도 없다. 더 이상 추종자들에게 3일간의 환각도 보여주지 못하지만 더욱 훌륭하게 사람들을 지배하고 있지 않는가. 권력자들이 스스로 나의 왕국 건설을 돕겠다고 경쟁하지 않는가. 그래서 나는 과거의 주인님보다 더욱 훌륭하다. 내가 아니었으면 어찌 이렇게 거대한 조직으로 만들 수 있었겠는가.

백발의 머릿결을 휘날리는 남 선지자는 가야산 계곡에서 불어오는 10월의 쌀쌀한 바람소리를 듣고 있다. 남들에게는 가을밤에 흔히 부는 소리겠지만 그의 귀를 울리는 소리는 분명 계룡산 동굴에서 다가왔던 괴이한 존재의 목소리로 들리기 시작한다.
「세상에 나의 바람이 휘몰아치게 하라.
인간이 만든 모든 것을 다 허물어 버리리라.
이제 그 날이 얼마 남지 않았도다.」
괴이한 존재의 목소리는 남 선지자가 젊은 시절 30여명의 신도들과 함께 들었던 바로 그 소리다. 이제 세상 끝 날이 다가왔다는 무시무시한 예언이었으며 사람을 무서움에 떨게 만드는 괴이한 소리다.

요즘 들어서 백발의 남 선지자는 잠을 이루지 못하고 저택 정원을 돌아다녀야 했다. 밤에 잠들기 전에는 어김없이 산에서 불어오는 바람소리에 섞여 괴상한 음성이 귀를 울려왔다. 남들은 환청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지난 수십 년간 괴이한 소리를 듣고 있는 그에게는 실제로 옆에서 어떤 존재가 들려주는 말소리였다.

오늘밤도 괴이한 소리에 이끌려 정원을 떠나지 못하고 있었다. 괴이한 바람의 속삭이는 음성이 또 말을 시작한다.
「나의 추종자여! 나를 만나려면 청수계곡으로 오라.
너에게 나의 모습을 보여줄 때가 이르렀노라. 어서 오라.」
바람의 속삭이는 소리를 따라 백발의 남 선지자가 이끌려 간다. 저택 정문을 지나 2차선 길을 따라 올라가다보니 청수계곡의 맑고 청량한 물소리가 들려온다. 요 며칠 비가 많이 내린 청수계곡의 물 흐르는 소리가 우렁차게 밤의 세계를 울린다. 어둠속에서도 저 멀리서 전달된 가로등 불빛이 계곡물을 희미하게 비추고 있다. 산꼭대기에서 계곡으로 불어오는 바람소리에 묻혀 또 다시 괴이한 목소리가 속삭인다.
「나의 종이여! 계곡물에 너의 몸을 담그라.
착한 나의 종에게 주인님의 모습을 나타내리라.」
주인님의 속삭이는 소리에 순종하는 남 선지자가 물속에 발을 담그고 깊은 데로 들어가자 배꼽까지 시커먼 물이 차오른다. 10월의 청수계곡은 얼음장같이 차가워서 온 몸으로 순식간에 떨림이 전달된다.
잠시 후 백발의 머리를 물속까지 늘어뜨린 남 선지자를 향해서 거대하고 무시무시한 존재가 엄청난 굉음을 내며 다가오는 소리를 듣는다.
「휘리릭. 휘리릭, 쿠르르릉」
그 존재를 감히 예상할 수도 없게 만드는 괴이하고 희한한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 저 소리는 어떤 거대한 괴수가 내는 소리가 분명하다.
가야산 꼭대기에서부터 청수계곡 물길을 따라 뭔가 거대한 존재가 바로 앞까지 내려온다. 드디어 어둠 속에 거대한 괴수의 몸체가 모습을 드러낸다. 꼬불꼬불한 기다란 몸체가 마치 거대한 뱀의 몸뚱이처럼 흐느적거린다. 그런데 기다란 몸뚱이 아래를 힘차게 꿍꿍거리는 거대한 발과 날카로운 발톱까지 달려있다.
너무 무서워서 도망갈 생각마저 달아나버린 남 선지자의 바로 앞까지 다가선 삼각형 모양의 괴수머리가 그를 사납게 노려본다. 저승에서 사람이 썩어가는 냄새 같은 악취까지 풍겨난다. 순식간에 거대한 몸뚱이를 세운 괴수가 삼각형의 무시무시한 머리를 들더니 날카로운 삼지창 같은 이빨을 드러내며 목구멍까지 훤히 내다보이는 아가리를 열어젖힌다. 한 입에 덥석 남 선지자를 삼키자 사람 썩는 냄새가 끌어 올라오는 목구멍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간다. 좁고 기다랗고 끈적끈적한 목구멍으로 들어간 남 선지자의 몸이 어둡고 끈적끈적한 웅덩이에 머리를 박힌다. 사방을 손으로 더듬거리더니 금세 죽은 사람의 눈 뜬 얼굴이 만져진다. 시체들의 얼굴은 수백 개가 넘어서 웅덩이를 가득 채우고 있다.
그 웅덩이에서도 어둠속에서 뭔가 움직인다. 시체와 시체들 사이에서 거품을 물고 기다란 몸을 꾸물거리는 존재가 몸뚱이를 흐느적거린다. 마치 거대한 회충처럼 끈적끈적하고 더럽고 괴상한 몸을 움직인다. 한 마리가 불쑥 상체를 일으켜 더럽고 추한 입을 벌리더니 방금 삼켰던 사람의 얼굴을 뱉어낸다. 남 선지자의 가슴에까지 날아와 떨어진 사람의 얼굴을 내려다보는 그의 모습이 새파랗게 질리며 쓰러져 버린다. 그 시체의 얼굴은 최현범이다.

다음 날 새벽 저택을 경비하고 있던 20여 명의 경비대가 주변을 수색하기 시작했다. 남 선지자가 야밤에 산책을 나간 후 새벽까지 돌아오지 않자 비상이 걸려 찾아 나선 것이다. 한 시간여를 헤매던 경비대가 청수계곡 상류까지 올라가서야 바위에 몸이 끼어 있는 선지자를 발견하게 된다. 그는 새파랗게 변색된 상태로 급격하게 떨어진 체온 때문에 상당히 위험하다. 경비대는 그를 업어서 따뜻한 방에 눕히고 온몸을 마사지 하자 겨우 의식이 돌아오는 기운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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