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서영태 장편소설 <무서운마을>




요즘 들어서 남 선지자는 부쩍 환청을 많이 듣고 헛것을 보는 증상이 나타났다. 돌이켜보면 그는 젊은 시절 30여명의 신도가 집단 자살하는 장면을 목격하고 감옥이 아닌 정신병원으로 보내져 「측두엽간질」이라는 정신병을 판정받고 치료받았지만 다시 심각한 증상이 나타나고 있다. 15년간의 정신병원 수감시절 남 선지자는 가장 위험한 환자로 분류되어 양팔을 꼼짝할 수 없고 하얀 옷을 입은 채 2평밖에 안 되는 하얀 페인트칠 독방에 갇혀 생활했다. 그 독방에는 TV도, 책도, 어떤 볼거리도 없었고 인간의 모든 문명이 철저하게 차단된 무(無)의 공간이었다. 밥 먹는 일조차 통제되어서 두 손을 묶인 채로 밥통이 작은 공간으로 들어오면 개처럼 입을 대고 핥아먹어야 할 정도여서 인간이 아니라 개와 같은 모습이었다.
독방에 묶여서 입을 들이대고 밥을 겨우 넘기는 짓도 10일 정도가 지나면 알 수 없는 긴 잠에 빠져들었다. 너무도 길었던 꿈속을 헤매다가 눈을 뜨면 똥개 우리처럼 지저분하던 독방이 말끔해져 있었다. 여전히 머리는 길었지만 손톱, 발톱도 잘려나가고 더럽던 몸도 닦여있고 새로운 하얀 옷도 입혀있었다. 여전히 두 손은 꼼짝할 수 없고 끔찍스런 옷이었다. 그들은 남 선지자의 밥에 넣은 수면제가 효과를 발휘하는 걸 CCTV로 지켜보다 그를 끌어내 목욕탕으로 옮겼다. 모든 걸친 것을 다 벗겨내고 마치 털 빠진 닭 몸뚱이를 세척하듯이 닦아낸 후 다시 닭장우리에 가두듯이 원상태로 되돌려 놓았다. 그러는 동안에도 깊이 잠든 남 선지자의 꿈속에서는 자꾸 바깥세상의 소리가 들려왔다. 중년 아줌마들의 킥킥거리며 웃는 소리들은 나체로 깊이 잠든 정신병자를 내려다보기도 하고 온몸을 무엇인가로 닦아내기도 하며 묶여있는 사내에게 들려오고 있었다.
15년 동안 독방에 갇혀 있던 남 선지자는 하얀 페인트칠벽 안에서 자신만의 정신세계에 빠져들었다. 인간의 문명이 철저하게 차단된 공간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눈을 감고 자신의 내면과 만나 자유로움을 찾는 것 밖에 할 수 없었다.
정신세계의 깊숙한 곳에는 계룡산에서 처음 만났던 괴상한 바람이 불고 있었고 그 속에서 속삭이는 소리가 있었다.
「나를 계속 의지하라. 너는 언젠가 세상을 지배하리라.
나의 종이 되어 세상의 멸망을 지켜보리라.」
아이러니였다. 치료가 필요한 정신병자의 정신세계는 더욱 깊숙한 내면의 존재에 빠져들어 더 깊은 병으로 발전하고 있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남 선지자가 환청은 들었지만 환각을 보는 일까지는 없었다.

15년 만에 최현범이 그를 정신병원에서 구해준 후 3일간의 환각여행을 체험했을 때 비로소 엄청난 존재를 체험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그 두렵고 괴상스런 존재가 최현범이라는 주인인줄 알았다. 정신병원에서 내면의 정신세계에 깊숙이 빠져서 만났던 존재가 눈앞에 똑바로 다가왔다. 그래서 살아있는 신 앞에 엎드려 경배하고 충성을 맹세했다.
한동안 잊고 있었던 바람소리가 다시 귓가에 들리기 시작한 것은 가야산 계곡을 따라 산봉우리를 오르고 있을 때였다. 사방에서 불어오는 거센 바람이 그의 모자를 날려버리고 백발의 머릿결을 세차게 흔들었다. 세찬 바람소리에 묻혀 낯익은 존재의 목소리가 귀를 울렸다.
「왜 나를 잊었느냐. 너의 주인은 따로 있다.
너의 참 주인을 섬기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하리라.
가짜 주인을 죽여라! 그래서 나에게 돌아오라!」
남 선지자는 순식간에 진짜 주인의 정체를 깨닫게 되었다. 지난 수십 년의 세월동안 자신이 모셔왔던 진짜 주인의 존재를 느끼게 된 것이었다.

10월15일 오후3시 유희석 시장후보 선거사무실.
밀실에서 유희석과 사무장이 두 중년 여성과 함께 마주 앉아 이야기를 듣고 있다.
「저희 두 사람은 춘하면 영진1리, 2리 부녀회장을 맡고 있는 사람들이유.
유 후보님을 꼭 도와드리고 싶어서 이렇게 찾아왔시유.」
「며칠 전에 오신다는 말씀은 들었습니다. 저희가 녹음해도 되겠습니까?」
유희석은 두 사람의 안색을 살피면서 녹음기를 꺼낸다.
「아-네. 5일전에 시장님 측에서 보낸 사람이 면장님과 함께 저희들 집에 찾아왔구먼유. 4 년 전보다 더 열심히 도와주라면서 2천만 원씩을 꺼내 놓더라구유. 시골 사람들에게는 엄 청난 액수이기도 해서 마음이 흔들렸는디..하지만 우리 두 사람은 고발하기로 결심했시유.
다 유 후보님 도와드리려고 이러는 거쥬.」
큰 사건이었다. 3일전 남 선지자에게서 한밤중에 유희석에게 연락이 왔다.
이번에 새로 추종자가 된 50대 아줌마 신도 두 사람이 있는데 시골 마을 부녀회장이라고 했다. 그 두 신도들이 2000만원씩의 거금을 왕국건축자금으로 내놓는다며 남 선지자를 찾아왔다는 것이다. 이야기를 들어본 즉 김 시장 측에서 집까지 찾아와서 거금을 주고 갔다는 것이었다. 유희석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불법적인 돈거래를 잡기위해 조직원들을 총동원했었지만 현장을 잡는 데는 번번이 실패해왔다. 워낙 은밀하게 거래가 되기도 했지만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이 모두 철저하게 부정하기 때문에 그 실체를 파악할 수 없어 애만 태우고 있었다. 남 선지자의 여신도들이라면 확실하다. 영적인 지도자가 명령을 내리면 불 속에라도 뛰어들 수 있을 만큼 충성스런 사람들이다.
유희석은 그 날 저녁으로 남 선지자의 저택으로 찾아들어간다. 뒤따르는 탑 차에는 왕국건축자금 50억이 현금으로 가득하게 들어있었다.

정신세계를 지배하는 남 선지자의 명령을 받은 두 여신도들은 오늘 유희석을 방문해서 중대한 정보를 털어놓았다. 이어서 두 여성은 선거관리위원회로 이동해서 현금 2000만원씩이 든 선물상자를 내놓고 사실 그대로 털어 놓았다. 조심스럽게 지켜보던 유희석쪽에서는 금방 대박이 터질 줄 알았다. 그런데 당국에서는 사실여부를 더 주사해야 한다며 며칠의 시간만 흘려보내고 있었고 민감하게 다루어야 할 언론매체들은 전혀 기사화하지 않고 있었다.

유희석은 대단히 실망 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도 현직 시장 측의 프리미엄이 세단 말인가. 선거가 며칠 남지 않은 시점에 이렇게 엄청난 돈을 뿌리고 있는데 언론매체들은 왜 나서지 않는가. 물론 김 시장 측과 이정수가 이끄는 언론매체들이 한편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지만 이렇게 엄청난 사건을 감출 정도인지는 짐작하지 못했었다.

한편, 김 시장 측에서는 두 명의 부녀회장이 돈다발이 든 선물상자를 들고 선관위에 폭로했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언론단체를 이끌고 있는 이정수와 긴급대책회의를 가졌다. 선거일이 며칠 남지 않은 상황에서 이 정도의 대형악재가 터진다면 자폭하는 것과 다름없다고 판단한 실무자들은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 사태를 막기로 했다.
우선 김 시장의 동네후배가 근무하고 있는 선관위 담당자와 접촉해서 최대한 사건처리를 미뤄주고 보안을 유지해 줄 것을 부탁했다. 이어서 이정수가 각 언론매체 출입기자들을 찾아다니며 선거일까지만 보도를 연기해주면 확실한 보상을 해주겠다는 약속했다. 며칠간 여유는 얻었지만 김 시장 측은 어떻게 해서든 사건을 무마해야 할 입장에 처했다. 자칫 잘못하면 지금까지 엄청난 투자를 해왔던 노력이 한순간에 무너질 위기상황에 처했다.

며칠간 지역사회에서 전혀 움직임이 없자 유희석은 마지막 결단을 내린다. 도청 공무원 재직시절부터 관계를 유지해온 중앙지 기자에게 특종감을 선물해 줄 테니 당장 취재팀을 내려 보내라고 연락했다. 서주저축은행 이사장을 맡은 후 청수교의 핵심 사업이었던 밤의 세계를 관리하기 위해 권력자들 100인을 관리해 온 유희석이었다. 현재의 그의 야욕을 달성하기 위해 매달 권력자들을 관리해오고 있는데 그중의 한 명에 유력 중앙지 기자도 포함되어 있었다. 다음날 아침부터 서울에서 내려온 세 명의 취재팀이 사건을 폭로한 두 명의 부녀회장을 직접 인터뷰하고 관련된 자료들을 취재하자마자 당일로 본사에 기사를 송고했다.
본사 데스크는 어제부터 지방선거 관련 특종이 터졌다는 보고를 받고 준비하고 있었다. 요즘 같은 선거정국에서는 대표적으로 터뜨릴 사건이 필요했다. 매일 아침 열리는 편집회의에서도 선거관련 특종을 잡아오라고 기자들을 다그치고 있는 참에 기다리던 특종이 터진 것이었다. 이른 새벽에서야 인쇄가 끝난 150만부의 신문이 전국으로 실려 나갔다.

아침 출근 전에 전국의 독자 집에 배달된 신문을 펼치자마자 1면 톱으로 「현직시장이 부녀회장들에게 2천만 원 살포」라는 제목이 확 들어왔다.
아침 일찍 관사에서 신문을 받아든 김 시장의 얼굴 주름에 경련이 일어났다. 도저히 있어서는 안 될 운명적인 사건이 터져버린 것이다. 아무리 지역 언론을 장악하고 있는 김 시장이라도 중앙지까지 막을 수는 없는 일이었지만 이렇게 급작스럽게 세상이 다 알아버릴 줄은 꿈에도 몰랐다. 사실 부녀회장 사건을 막기 위해 김 시장은 어젯밤에 남 선지자의 저택을 조용히 찾아갔었다. 문제를 일으킨 부녀회장들이 청수바람교 신도라는 정보를 파악하고 그들을 저지하기 위해 남 선지자의 도움이 꼭 필요했었다. 사안의 심각성을 알고 있는 김 시장은 어떻게 해서든 부녀회장들을 설득해야 했다.
남 선지자가 이미 외지로 출타했다는 말을 전해들은 김 시장은 급하게 마련한 왕국건축자금 20억을 저택 경비대에 맡기고 밤늦게 돌아왔었다. 오늘 아침부터 급히 달려가서 다시 한 번 남 선지자를 만날 생각이었다. 그런데 벌써 중앙지에 보도되어 버렸다. 이 일을 어찌한 단 말인가. 어찌되었건 사건을 은폐하기 위해선 남 선지자를 만나야만 한다.

김 시장은 황급히 홀로 출발해서 청수마을 저택으로 들어간다. 저택에는 여전히 경비대 20여명이 삼엄한 경비를 하고 있다. 거실에 안내된 김 시장은 소파에 앉아서 가까스로 마음을 추스르며 뜨거운 차 한 모금을 입안에 넣는다. 그가 가슴 졸이며 한 시간여를 기다린 끝에야 백발을 늘어뜨린 남 선지자가 모습을 보인다.
「시장님께서 이른 아침부터 이 산속까지 어인일로 찾아오셨습니까?」
「선지자님, 제 목숨 좀 살려주십시오. 선지자님의 신도들 때문에 제가 다 죽게 생겼습니다.」

찻잔을 입에 갖다 댄 후 남 선지자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김 시장을 바라본다.

저작권자 © 충남인터넷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