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마음은 환경에 따라 자연스럽게 변하게 된다. 주인님이 사망한 후 한 달이 지나자 김 시장과 이정수의 관계는 서서히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관계로 발전했었다. 이번에는 정신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돈의 힘으로 사람을 지배하는 것이 특징이었다. 수천억의 재산가였던 김 시장은 매달 5억의 현금을 이정수에게 전달해서 20여개의 언론매체 출입기자들에게 배분했었다. 물론 출처는 밝히지 않았지만 매일 배분되는 보도자료 내용을 보면 뻔한 사실이었다.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돈을 사용하는 김 시장에 비해 이정수는 나름대로의 목적이 따로 있었다. 정신을 지배해 온 주인님이 사라진 상황에서 <주간서해>를 운영하고 영향력 1위를 유지하려면 자금이 필요했다. 위에서 내려온 매달 5억 원 중에 절반씩은 적립하기 시작했다. 통장에는 기존에 남아있던 자금 7억과 새로 적립한 자금 10억이 쌓여 총 17억의 운영자금이 남아있어서 큰 문제없이 언론사를 운영할 여건을 갖추었다. 두 명의 주인을 섬기다 보니 언론사를 소유하게 됐고 거액의 운영자금까지 손에 쥐게 되었던 것이다.

김 시장이 자살한 다음날 이정수에게는 세 번째 주인이 될 사람이 찾아온다. 유희석이 사람을 보내 대화를 하자고 연락해왔다. 낮12시10분 시내 한 일식집 맨 안쪽 방에 유희석과 이정수가 마주 앉았다.
「내가 지금의 자네 처지를 잘 아네. 김 시장과 함께 했었던 것도 알고 지금은 외톨이가 된 것도 알지.」
이정수의 술잔을 가득 채워준 뒤 유희석이 이정수의 눈치를 살핀다.
「우리 두 사람은 한 주인을 섬기던 동지가 아니었나. 아직도 우리는 동지라고 생각하네. 나와 함께 하세. 김 시장 때보다 내가 더 잘해줌세. 이래봬도 내가 배포하난 크단 말일 세!」
이정수는 결국 세 번째 주인을 섬기기로 맹세하고 충성까지 다짐한다. 아직 시장에 당선되지도 않은 유희석을 시장님이라고 부르면서 충견이 되어가기 시작했다. 이정수는 원래부터 수장이 되기보다는 참모가 되어서 일할 스타일이었다. 자기 혼자서 책임을 지고 일을 추진하기보다 항상 윗사람의 말에 순응하며 작은 이익을 추구하는 스타일이었다. 그래서 이번에도 새로운 주인을 모시고 그의 방침에 따라주고 거기서 발생하는 이익을 챙기고자 하는 바람이 있었다. 그 방법이 고생도 덜하고 바람도 타지 않으면서 무난한 인생살이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해서 유희석과 이정수의 관계가 맺어졌다. 새로운 관계는 그 전에 김 시장 때와 똑같은 방식으로 진행되어서 유희석의 방패막이가 될 것이었다. 다음날부터 이정수가 배포하는 보도자료는 유희석을 찬양하는 내용으로 가득 차게 된다.

10월28일 오후2시 시장실.
관내 기관장들과 함께 한정식 집에서 식사를 마친 유희석이 커다란 회전의자에 몸을 반쯤 누인 채 나른한 낮잠에 빠져있다. 3일 전 선거 날 두 명의 강력한 라이벌 중 한명의 급작스런 죽음으로 맥 빠진 승리를 쟁취한 후 유 이사장은 유 시장으로 단숨에 승진했다.
지난날을 돌아보면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이 들어맞을 정도로 엄청난 신분상승을 경험했다. 소작농의 아들로 태어나 어려서부터 뼈 빠지게 농사일을 도우면서 겨우 끼니를 때우던 어린 소년이 주인집 아들을 이기고 시골도시 최고의 수장자리에 오른 것이다.
최후의 승자가 된 유희석이 정식으로 취임하려면 한 달여가 남았지만 사실상 그의 직무는 시작된 것이나 다름없다. 현직 시장이 없는 시장실이야 마음대로 쓸 수 있는 것이었고 어제부터 각 부서별로 업무보고가 시작됐다. 그는 아직 당선자 신분이었지만 모든 사람은 다들 시장님이라고 불렀다.
당선되자마자 유희석이 가장 먼저 지시한 것은 30여 평의 시장실을 개조하는 일이었다. 그가 처음 시장실을 둘러보고 느낀 것은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좁았고 구닥다리 냄새가 나는 가구들로 둘러싸인 답답함이었다. 직접 지시하면 체통 떨어질 것이므로 예비 비서실장을 시켜서 적어도 50평 수준으로 확장하라고 전달했다. 이참에 아예 가구부터 최고급으로 바꿔서 대기업 회장실 정도의 품격이 느껴지게 만들라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유희석은 시장이 임기동안 거처할 관사도 둘러보고 실망을 감출 수 없었다. 인테리어가 된 건지 안 된 건지 모를 우중충한 건물을 확 뜯어 고쳐서 최고급 대리석재를 사용한 이태리풍의 고급스런 실내장식을 하고 최신 모델의 가구로 싹 바꾸라고 지시했다.
다시 생각해보면 그 전에 살았던 김 시장이 왜 이렇게 우중충한 낡은 집에서 살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 전에 시장실이나 관사를 방문했을 적에도 확 뜯어고쳐서 품격에 맞추라는 말도 했었는데 그는 말을 듣지 않았었다. 아마도 청빈하게 사는 모습을 부하 직원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는지도 모르고 진짜 부자는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다는 자신만의 철학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유희석의 스타일은 정반대였다. 최대한 자신을 나타내고 싶어서 안달난 사람처럼 무엇이든 명품을 고집했다. 양복이건, 운동복이건 입었다하면 최고의 명품을 나타내는 로고가 가슴에 새겨져야하고 타고 다니는 승용차도 최고의 명차 로고가 새겨져야 직성이 풀렸다.

유희석은 시장이 타고 다닌 관용차도 국내 최고의 가격이 나가는 고급차를 구입하도록 지시했다. 마음 같아서는 외제차를 구입하고 싶었지만 주위의 눈을 의식해야 한다는 참모들의 만류가 있었다.
소작농의 아들로 태어나 누려보지 못한 가난의 한을 푸는 듯 들뜬 모습이었다. 평생을 근검절약하며 살아온 것이 원통하기도 했고 이제는 세상이 바뀌었다는 사실을 마음껏 누려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복권에 당첨되어 수십억을 갑자기 얻은 행운의 주인공이 몇 년 만에 흥청망청 탕진하고 다시 가난했던 옛사람으로 돌아갔다는 설처럼 권력과 돈을 다 얻은 유희석이 그리 될 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었다.

잠시 후 비서실 직원의 노크소리에 낮잠에서 깨어난 유희석은 오후에 예정된 언론사와의 기자회견을 준비한다. 이제 본격적으로 그의 시대가 열리고 있는 것이다. 시청 900여 명에 달하는 공무원들에게도 큰 변화가 예고되고 있다.
지난 선거에서 김 시장 측을 도왔던 공무원들은 좌불안석이 되어서 사시나무 떨듯 업무가 손에 잡히지 않았다. 초반에는 김 시장 측의 우세가 예상되었기 때문에 그쪽 편에 붙어 적극적으로 선거운동을 도운 공무원들이 많았다. 특히 국장, 과장급 고위직에서는 거의 김 시장 편에 서서 적극적으로 도왔다.

6개월 전에 치러진 대규모 인사개편 때는 주민들과 일선에서 접촉할 수 있는 동장, 면장을 전부 김 시장의 충성파로 교체하여 단단히 관권선거를 준비해왔었다. 이때부터 일선에 배치된 동장, 면장들은 각 마을마다 이장, 통장, 반장까지 만나서 은밀하게 김 시장의 당선을 위해 노력해왔다. 이렇게 공무원의 선거중립의무를 어기고 적극적으로 나선 데에는 줄을 잘 서야 승진도 되고 자리를 보전 할 수 있다는 그들 나름대로의 이해타산이 있었다. 그래서 김 시장 측 공무원들 중에서도 서로 경쟁이 치열해서 자기가 맡고 있는 지역의 투표율이 더 많이 나오도록 열심히 노력 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충성도는 그 지역 주민이 누구에게 표를 많이 주었느냐에 따라 결정 될 것이었다.

이미 유희석 측에서는 공직자들의 성향에 대해 많은 것을 파악하고 있었다. 누가 얼마나 김 시장 측 선거운동을 도왔는지에 대해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었다. 이런 고급정보는 김 시장 측에 끼지 못했던 왕따 공무원들에게서 나왔다.
어느 사회에나 왕따는 존재하기 마련인 것. 공직자들 사이에도 같은 무리에 끼고 싶어도 끼워주지 않는 패거리문화가 존재하고 있었는데 이들은 철저하게 외면되어 승진도 못하고 각종 불이익을 당한 채 곧 쫓겨날 위기에 몰린 소수자들이었다.
정권이 바뀌자 이런 소수자들에게 갑자기 큰 기회가 찾아왔다. 그동안 받은 설움을 다 앙갚음 하려는 듯 유희석 측 사람들과 함께 공무원들의 성향을 하나하나 파악해서 3등급으로 나누기 시작했다.
A급은 가장 적극적으로 김 시장의 선거운동에 가담한 자, B급은 보통가담자, C급은 소극적 가담자로 분류해서 인사개편 때 적극적으로 활용할 계획까지 세웠다. 이처럼 왕따를 당해왔던 소수의 공무원들은 패거리문화 낙오자에서 설움을 앙갚음하는 복수의 화신으로 변신했다. 그들은 마치 6·25때 공산정권 아래서 지주들을 죽창으로 찔러 죽이던 소작농들처럼 살기가 서린 눈빛으로 설움에 복수하느라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디에나 변수는 있게 마련이다. 가장 큰 변수는 여자들의 치마 바람이었다. 갑자기 바뀐 정권 때문에 어리둥절하며 낙담하고 지내던 김 시장 측 남자들에 비해 여자들의 행동은 매우 빨랐다. 당선자 유희석의 마누라가 다니는 헬스클럽, 골프연습장, 목욕탕을 비롯해서 소소된 사회단체까지 알아내서 무조건 가입부터 했다. 우연을 가장한 접근은 대단히 적극적이었으며 유희석의 마누라가 다니는 곳엔 매일 20여명의 아줌마들이 곁에 따라 붙어서 이것 좀 드셔보시라, 마사지에는 이 영양크림이 최고라며 호들갑을 떠는 바람에 여왕을 받드는 20여명의 시녀들 같았다. 이 때문에 유희석 마누라는 한껏 우쭐해져서 진짜로 여왕이 된 듯 어디를 가나 거들먹거리고 다녔고, 말도 꺼내기 전에 웬만한 잔심부름은 경쟁적으로 바쳐지니 더욱 기고만장해졌다.
공무원 마누라들의 치맛바람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어느 정도 가까워 진 뒤에는 집에까지 찾아와서 둘만 있는 기회가 되면 무릎을 꿇고 눈물까지 흘리며 사정을 하는 것이었다. 자기 남편이 시청 무슨 과장인데 철없는 짓을 해가지고 자리에서 밀려나게 됐다며 앞으로는 유희석에게 충성을 다하겠으니 한 번만 봐달라는 읍소작전을 펼쳤다. 한참을 질질 짜고 하소연하던 무슨 과장 마누라는 마지막에 커다란 백에서 5천만 원의 현금다발이 든 선물꾸러미를 내밀고 돌아갔다. 이런 해프닝은 매일 계속 되었는데 어떤 때는 두 세 명이 겹쳐서 찾아오는 바람에 서로 눈치만 보다가 순위를 정해서 먼저 들어가고 대문 앞에 기다리다 들어가는 경우도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너무 많은 아줌마들이 유희석 마누라와 만나기를 원해서 스케줄을 관리해 줄 사람이 필요하게 됐다. 자연적으로 처음에 5천만 원을 건넨 무슨 과장 마누라가 비서역할을 맡아 관리에 들어갔다.
이제는 유희석 마누라를 함부로 만날 수 없게 되다보니 비서까지도 특권이 생기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아줌마들은 비서에게 서로 전화해서 자신이 먼저 면담할 수 있게 해달라며 뒷돈과 선물을 바칠 정도로 경쟁이 거세졌다.
김 시장의 편에 섰던 공직자들도 마누라의 치맛바람을 모르는 바가 아니었다. 남자의 입장에서 비굴하게 무릎 꿇고 나서는 것이 자존심 상하기도 했지만 아부할 방법도 마땅하지 않는 차에 마누라가 나서주기를 은근히 바라던 바였다. 저녁이면 들어온 마누라에게 어느 정도 진도가 나갔는지 꼬치꼬치 캐묻는 공직자도 많았다. 열심히 해보라며 비밀리에 모아두었던 비자금까지 지원해주기도 했다. 소심한 남편들에 비해 마누라들은 어쩌면 저렇게 용기를 내서 로비에 나서는지 모를 정도로 용맹한 모습을 보였다. 그에 감탄하며 비로소 마누라의 가치를 인정해주는 공직자도 있었다.

유희석 마누라는 이렇게 비서까지 두며 수많은 공직자 마누라에게서 현금을 받은 것만 해서 60억에 이르렀는데 도저히 집안에 쌓아 둘 수만은 없어서 친정아버지, 어머니, 오빠, 동생들의 명의를 빌려 서주저축은행에 넣어두기도 했다. 넘쳐나는 돈과 20여명의 아부꾼들이 매일 유희석 마누라의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니 정말로 여왕이 된 듯 착각에 빠지기 시작했다. 온 몸에 걸치고 다는 것, 타고 다니는 것, 먹는 것 어느 하나 최고의 명품이 아닌 것이 없었다. 적어도 수백만 원에서 수천만 원에 이르는 명품을 몸에 휘감고 다녔지만 본인의 돈으로 산 것은 전혀 없었고 속옷부터 머리핀까지 모두 아부꾼들의 지갑에서 나온 돈으로 선물 받은 것이었다.
유희석도 마누라의 변신을 잘 알고 있었다. 저녁마다 이불 속에서 하루하루 일어났던 일에 대해서 꼬박꼬박 전달 받았다. 나중에는 누가 얼마나 냈는지 마누라가 메모해 준 장부를 보고 인사개편에 반영할 계획까지 세웠다. 그러나 최대한 인사개편을 늦추고 있었다. 마누라 말이 아직 면담하지 못한 공직자 마누라가 100여명은 예약되어 있다는 말을 했기 때문이었다. 그 사람들이 다 충성을 맹세하고 거액을 들고 올 텐데 인사를 서두를 필요는 없었던 것이다. 조금 여유를 가지고 마누라를 통해서 거둬들이면 된다. 선거 때 뿌린 돈을 원금은 거둬들여야 할 것이 아닌가. 가만히 있어도 마누라들끼리 투자금 회수는 다 마칠 수 있을 것이다. 다른 큰돈은 자신이 직접 만들어 내면 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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